누구나, 운전 중 DMB 시청이 위법이라는 사실을 잘 압니다. 법 위반 이전에 얼마나 안전을 위협하는지 역시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DMB 시청이라는 문제가 해결이 안 되고 있는 듯합니다. 예전 한국 방문 때 이용했던 한 택시의 기사분은 목적지에 내릴 때까지 계속 DMB를 보며 운전해 저를 놀라게 했는데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와는 다른 경우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폭염이 가신 지난 월요일 택시를 탔습니다. 평소대로라면 늘 뒷좌석에 앉는데 이번엔 무슨 일인지 운전석 옆자리를 선택했습니다. 차 안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는데 센터페시아에 매립된 내비게션 화면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DMB를 켜놓고 있는 거 같은데 소리만 나오고 화면은 보이지 않는 거였습니다. 기사님께 물었더니 "아직 모르셨어요? 요즘 제조사들 매립형 내비게이션에는 주행 중 DMB 시청이 안 되도록 되어 있어요."라고 하는 거였습니다.
사진=스케치북
정부에서 제조사에 요구를 먼저 한 것인지 아니면 제조사 스스로 주행 중 DMB 시청의 위험성을 공감하고 먼저 대응을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현재는 제조사 매립형 내비게이션의 경우 이처럼 기어를 주차 모드(P), 또는 엔진이 꺼진 상태에서 중립(N)에 놓고 ACC 상태인 경우에서만 DMB로 방송을 즐길 수 있도록 해놓고 있습니다.
친절하게 기사님께서 시연해 준 덕에 잠금 기능이 작동하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죠. 너무 많은 분이 운전하는 중에 DMB 시청이나 동영상 감상을 해 걱정이 많았는데 이렇게라도 대응을 하고 있다니 다행이다 싶었죠. 제조사 관계자에게 몇 가지 관련한 질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기술적인 답변보다는 안타까움 가득한 얘기만 들어야 했습니다. 많은 운전자가 이 잠금 기능을 해제하고 있다는 거였습니다.
P단이 아닌 상태에서도 DMB 시청이 가능하게 어렵지 않게 해제할 수 있으며, 속도와 연동해 (시속 0km/h가 아니면 방송이 안나오도록) 잠금 기능을 보강했지만 이 역시 해제시켜 버리는 운전자가 많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포털에서는 어떻게 주행 중 DMB 시청이 가능한지를 묻는 말과 해제 방법을 설명하고 있는 콘텐츠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이쯤이면 집착이라 해도 되지 않을까요? 궁금해지더군요. '사제 내비게이션들은 그러면 어떨까?'
전문가 증언에 따르면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사제 내비게이션 중 일부에도 GPS와 연동해 DMB 시청을 금지하는 기능이 기본적으로 들어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유명한 내비게이션 제품 몇 개를 검색해 봤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첨단의 기능을 자랑하듯 설명하고 들 있었지만 이 기능을 언급한 곳은 없었고 그나마 주행 중 DMB 시청이 현행법에 저촉된다는 직접적 표현은 딱 한 업체만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문구 바로 아래에 장거리 주행 중에도 DMB 시청이 원활하다는 점을 자랑했고, 길 안내 (지도)와 함께 방송이나 영상을 함께 즐길 수 있는 화면분할 기술에 대한 설명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이 아이러니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또 다른 유명 업체 한 곳의 경우 DMB 기능에 대한 설명 자체를 하지 않고 있었지만 역시 주행 중 영상 감상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음주운전보다 위험한 주행 중 영상 시청
운전하면서 방송을 보거나 동영상을 재생하는 일은 음주운전보다 더 위험하다는 미국고속도로교통안전국의 발표도 있었죠. 또 DMB 등 영상 시청을 하다 사고가 났을 때 중상 이상의 사고가 날 확률도 4배나 높다는 기사도 있습니다. 음주운전이나 운전 중 전화통화를 하거나 인터넷 서핑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우린 잘 압니다. 하지만 왜 영상을 시청하는 행위에 대해선 스스로에게 관대한지 모르겠습니다.
운전 아무리 잘한다 해도 자랑할 것도, 장담할 것도 없습니다. 원칙에 맞는 운전을 하겠다는 그런 긴장과 겸손한 마음만 있어야 합니다. 순간의 즐거움, 작은 편안함을 위해 나와 남의 목숨이 걸린 안전 운전을 소홀히 하는 것은 답이 아닙니다. 혹시라도 당신이 탄 택시의 기사님이 주행 중 DMB를 보고 있다면, 혹 내 친구, 나의 남편, 지인이 운전 중 동영상을 보려 한다면, 정중히 지적하고 설명해 드리시면 좋겠습니다. 저 또한 그리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먼저, 나는 어떻게 운전하고 있는지 한 번 이 기회에 점검해 보면 어떨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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