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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배기음으로 스포츠카 즐기는 시대, 끝났다

얼마 전 독일의 한 도심에서 이태리산 스포츠카 마세라티가 경찰 단속에 걸려 주행 금지 명령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언론에도 이 내용이 소개됐는데, 주행 금지 이유는 너무나 큰 배기음 때문이었는데요. 측정을 해보니 128데시벨(dB)이 나왔는데 이는 전투기가 출발할 때 내는 130dB 수준에 다다르는 것이었습니다. 도심에서 낼 수 있는 소음의 수준이 아니었던 거죠.

특히 불법 튜닝은 물론 제조사들이 스포츠카 등에 선택적으로 달아주는 가변 배기 시스템, 흔히 스포츠(또는 액티브) 배기 시스템이라 불리는 배기음 강화 장치는 앞으로 강화된 규제 때문에 더는 달 수 없게 되므로 우렁찬 배기음의 시대가 저물 것으로 보입니다. 

그란투리스모 스포츠 배기구 / 사진=마세라티

EU, 7월 1일부로 배기음 강화

유럽에서 그간 승용 자동차 최대 배기음 기준은 74dB이었습니다. 74dB은 전화벨 소리보다 조금 더 큰 정도인데요. C세그먼트(준중형) 이하 승용차가 가속 시에 74데시벨 이하, 정속 주행에서는 60dB대에서 배기음을 내는 수준이라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기준은 우리나라에서도 똑같이 적용됐었죠. 일부에서는 우리 배기음 기준이 너무 심한 거 아니냐고 말하지만 스포츠카 천국인 유럽도 같은 기준이니까 특별히 까다롭다고 할 순 없을 겁니다.

그런데 이 기준이 유럽에서 올 7월 1일부터 더 강화됐습니다. 정확하게는 올 7월 1일 이후 등록되는 새로운 타입의 자동차에 적용되는 건데요. 현재 판매되고 있는 모델과 부분변경 모델의 경우는 해당이 안되며, 세대 변경 모델, 또는 이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자동차를 등록할 때 새 기준에 따라야 합니다.

718박스터 / 사진=포르쉐

우선 최대 배기음 허용 기준은 72dB로 조금 낮춰집니다. 조건은 164마력/1ton당이며 공차 중량 1톤당 272마력의 힘을 내는 기준은 조금 높은 75데시벨까지 가능해집니다. 사실 이 법이 EU에서 통과되기 직전까지 포르쉐 등의 스포츠카 회사는 EU 의원에게 로비를 시도했다는 기사가 2년 전에 나왔을 정도로 스포츠카 업체들에겐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비싼 돈을 내고 스포츠카를 구매하는 고객들은 배기음 자체를 즐기는 경우가 굉장히 많기 때문에 이를 억제하는 건 스포츠카에 대한 구매력을 떨어뜨리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스포츠카에 대한 배기음 규제를 최대한 완화시키는 게 그들에겐 어떤 일 못지않게 중요했죠. 하지만 거의 원안대로 통과됨으로써 이제부터 스포츠카의 배기음, 그중에서도 버튼을 눌러 인공적으로 배기음을 크게 배출하는 시도는 불가능하게 됐습니다. 물론 불법적 개조도 계속 이어지겠지만 소음 강화라는 흐름을 거스르긴 어려워 보입니다.

스포츠 배기장치 버튼 / 사진=포르쉐

배기음 강화 시스템 효과 어느 정도일까?

2년 전 독일의 자동차 전문지 아우토빌트는 자동차의 배기음을 측정하는 테스트를 실시한 적 있는데요. 그때 재규어 F타입이 배기음 강화 장치를 껐을 때와 켰을 때를 비교한 테스트를 진행했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액티브 배기 시스템 껐을 때>

2단 풀 가속 시 : 96.9데시벨

3단 풀 가속 시 : 84.0데시벨

3단 정속 주행 시 : 69.0데시벨


<액티브 배기 시스템 켰을 때>

2단 풀 가속 시 : 100.3데시벨

3단 풀 가속 시 : 96.0데시벨

3단 정속 주행 시 : 80.0데시벨

분명히 효과가 있었습니다. 재규어뿐 아니라 모든 스포츠카, 그리고 배기음 강화 장치가 달린 모든 차는 이런 효과를 볼 수 있고, 요즘 나오는 3~4가지 주행모드를 적용할 수 있는 자동차도 에코나 컴포트 모드보다 스포츠 모드일 때도 분명히 배기음이 커지는 효과가 나타납니다. 이제 이 모든 것들이 다 규제를 받게 됐습니다. 특히 제조사들이 최대 배기음이 규제 이하임을 직접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니, 이제부터는 배기음 줄이는 고민도 심각하게 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F타입 / 사진=재규어

큰 배기음, 타인에겐 괴로움

독일에서 나온 자료에 따르면, 독일 국민 절반인 4천만 명이 매일 자동차 소음에 영향을 받고 있으며 그중 2백만 명은 매일 65dB의 소음에 노출돼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자동차 소음이 1데시벨 오를 때마다 집값이 평균 0.3%가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된 적 있죠.

이렇듯 자동차 소음은 경제적 정신적으로 모두에게 피해를 줍니다. 따라서 제조사들은 배기음을 줄이는 노력을 더 큰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야 합니다. 독일 교통법에는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자동차는 발전하는 기술 수준에 비례하는 소음을 내야 한다.' 소음 줄이는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함을 법으로 분명하게 해놓고 있는 것입니다. 어드 제조사뿐일까요? 운전자들도 이제 소음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에는 증폭된 배기음을 차 안에서 운전자가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기술들이 조금씩 적용되고 있습니다. 머플러 끝을 통해 터져 나오는 배기음을 듣고 자랑(?)하는 시대는 이제 끝이 난 거죠. 도대체 무슨 맛으로 스포츠카를 타느냐며 불평할 분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시대의 요구는 배출 가스나 소음 등이 강화되는 쪽이고, 따라서 자동차도 그것에 맞게 변할 수밖에 없음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끝으로, 이미 소개해 드린 적 있지만 2년 전 아우토빌트의 한 자동차 에디터가 배기음 소음 측정 테스트를 마친 후에 쓴 글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스포츠카 운전자나 할리 데이비슨 같은 바이크 운전자, 그리고 흡연자나 애완견 키우는 사람들은 다른 이들에겐 관용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자동차 배기음 등은 많은 이들에게 애완견의 배설물, 흡연자의 담배 연기와 같은 것이다. 남을 배려해 운전해야 할 곳에서는 조용히 운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