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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차급 분류, 일 제대로 하고 있는 독일

자동차에 큰 관심이 없는 분들은 물론이고 자동차에 관심이 있는 분들, 심지어 자동차 기사를 작성하는 일부 언론에서조차 헷갈리는 것이 차의 급이 어떠냐일 겁니다. 요즘은 세그먼트라는 표현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는 유럽에서 차급을 분류하기 위해 만든 표현이고 우리나라의 자동차 관리법에서 정한 승용차 분류 기준과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유럽에서 경차(급)로 분류되는 피아트 500 / 사진=피아트

이렇듯 복잡한 자동차 분류를 좀 더 편안하게 한 눈에 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미국과 영국, 독일, EU 위원회 (유로NCAP도 이 기준에 포함), 그리고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분류 방식이 위키피디아에 친절하게 나와 있긴 하지만 나라별로 조금씩 그 분류가 달라 쉽게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내용을 종합적으로 정리해 표에 담을 필요가 있겠다 싶어 간단히 정리를 해봤습니다.

좀 더 체계적일 필요가 있는 우리나라 차급

준중형과 준대형은 독일식을 따른 듯

우리나라의 승용자동차 분류는 경차 / 소형 / 중형 / 대형, 이렇게 4개로 나뉘어 있습니다. 이를 규모별 분류라고 하고, 이와 달리 유형별로 분류한 것도 있는데 일반형 / 승용 겸 화물형 / 다목적형 (SUV) / 기타형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중 수치를 통한 구체적 기준이 나와 있는 건 규모별 분류인데 이미 수차례 언급했지만 배기량은 최근 들어 이 분류법에 나와 있는 기준을 넘나드는 다운사이징 엔진이 장착된 차들이 많아 정확하지 않고, 그나마 현실적으로 많이 기준 삼는 게 바로 차의 길이(전장)입니다. 

하지만 경차의 경우 길이보다 너비에 걸려 해외 많은 모델이 한국에 경차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고, 전장 4.7미터, 너비 1.7미터, 높이 2.0미터 중 어느 하나라도 넘어서는 것은 중형으로 분류되는데 이 역시 너무 그 대상이 많아 현실적으로 차급을 분류하는 데 애를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현대차는 소형과 중형 사이에 준중형이라는 것을 넣었고, 중형과 대형 사이에 준대형이라는 분류를 추가했습니다. 법적으로는 인정받지 않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흔히 쓰이고 있는 분류죠. 많은 분이 현대차가 자기들 멋대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사실 이 분류 방식 자체는 현대도 독일, 혹은 EU의 것을 가져온 것으로 보입니다. 

위 표를 보면 알겠지만 EU에서 정한 세그먼트와 독일에서 쓰고 있는 세그먼트는 기본적으로 같습니다. 다만 EU에서는 C세그먼트를 미디엄카로 표현을 하고 있고 독일 연방자동차청(KBA)에서는 컴팩트 클래스라고 해 표현에 있어 차이가 있죠. 우리가 쓰는 준중형의 개념은 EU와 독일식과 같지만 표현은 좀 더 독일식의 컴팩트 클래스에 가깝지 않나 합니다.

또 중형 이상인 E세그먼트를 EU 위원회에서는 '오버 클래스' 또는 익스큐티브로 분류하고 있지만 독일의 경우 정확히 중형 이상급 (Obere Mittelklasse)이라고 표현해 우리나라의 준대형이라는 표현이 좀 더 독일식에 가까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시리즈는 C세그먼트, 준중형급임 / 사진=BMW

여전히 정리가 안된 대한민국 양대 포털의 분류

벌써 3~4차례에 걸쳐 우리나라 양대 포털 네이버와 다음의 자동차 분류가 문제가 있음을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요. 그동안 개선을 위한 나름의 노력을 기울인다고 하지만 쉽지 않아 보입니다. 여전히 차급을 낮춰 표기한 경우도 많고, 같은 차를 네이버와 다음이 각각 달리 분류하고 있는 경우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BMW 1시리즈는 다음에서는 소형으로 네이버에서는 준중형으로 분류되고 있고, 볼보 신형 S90은 다음에서는 중형, 네이버에서는 대형으로 분류가 돼 있습니다. S90의 경쟁 모델인 재규어 XF는 또 양대 포털 모두에서 중형(D세그먼트)으로 낮게 분류돼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재규어 XF (전장 4950mm) - 포털 분류 기준 : 중형

현대 그랜저 (전장 4910mm) - 포털 분류 기준 : 대형

BMW 5시리즈 (전장 4907mm) - 포털 분류 기준 : 중형


메르세데스 A클래스 (전장 4305mm) - 포털 분류 기준 : 소형

현대 i30 (전장 4300mm) - 포털 분류 기준 : 준중형

이처럼 국제 기준과 달리 우리나라에서 자동차 분류가 다른 건 정부에서 정한 기준이 애매하기 때문입니다. 또 일반적으로 어떤 기준으로 삼을 수 있을 정도의 신뢰할 만한 단체, 또는 영향력이 매우 큰 전문 매체 등이 존재할 수 없는 환경도 차급 분류가 이현령비현령이 되어 버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독일, 꼼꼼하게~

최근 한 매체에서 차급 분류와 관련한 기사를 냈는데, 유럽의 세그먼트는 전장을 기준으로 한다고 되어 있더군요. 하지만 적어도 독일을 보면 이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독일의 연방자동차청은 차급, 그러니까 세그먼트를 정하기 위해 어떤 기준을 세우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는데요.

우선 연방자동차청(KBA)와 자동차 산업협회 (VDA), 그리고 수입 자동차 협회 (VDIK)등이 모여 협의를 통해 차급을 결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을 가지고 이들은 협의를 하는 걸까요? 총 11가지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차의 크기 (전장과 전고), 차량 무게, 배기량, 성능 (최고속도), 트렁크 공간 (용량과 변형 타입), 좌석수, 앞좌석 (1열)의 높이, 휠베이스, 차량의 뒷모양, 차량 카테고리 (예를 들면 캠핑카), 기본 판매가

이렇게 심도 있게 차급을 모델별로 정함으로써 어떤 혼선이 생길 여지가 생기지 않을 겁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내가 구매하려는, 혹은 구매한 차가 어떤 차급인지 그 가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경쟁 모델들이 어떤 것인지 확인해 구매나 중고차 판매 때 잘 몰라서 불이익을 당할 일도 줄일 수 있게 될 겁니다.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분류법이 마련되지 않는 이상 우리나라도 독일처럼 정확하게 차급을 나눠 올바른 정보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어야 할 텐데요. 아무래도 이런 걸 제대로 하려면 우리나라도 하루빨리 자동차청과 같은 전문 정부 기관이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보다는 분명 자동차나 교통 관련 법규나 제도가 체계화될 수 있을 겁니다. 차급 이야기하다고 자동차청 이야기까지 나왔네요.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