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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독일인 스스로가 밝힌 자신들의 운전 문화

자동차 뒷좌석 안전띠 착용률 97%로 세계 1위인 나라. 속도제한이 없는 아우토반을 질주하지만 스웨덴과 영국 등에 이어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적은 나라. 1차로를 철저하게 추월차로로 이용할 줄 알며 오른쪽 차로에서 절대 앞지르기하지 않는 나라. 독일의 교통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이런 모범적인 내용만 있는 건 아니죠. 의외로 독일인의 운전을 거칠게 느끼는 외국인들이 많고, 운전 중 스마트폰 등으로 통화를 하는 이들을 제법 목격하게 됩니다.

횡단보도에서 보행자 보호에 투철한 반면 과속 단속 카메라에 찍히는 운전자가 많다는 양면성이 있는 곳이기도 하죠. 그렇다면 독일인 스스로는 자신들의 교통 문화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최근 독일 보험 협회(GDV)가 보험에 가입한 성인 2,061명을 대상으로 심층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응답자의 남녀 비율이 반반이었고 74%는 자동차 운전자 입장에서, 3%는 오토바이, 38%는 정기적으로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 23%는 대중교통 이용자였고, 그리고 80%가 보행자의 입장에서 질문에 답했습니다. 결과 중 몇 가지만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프랑크푸르트 시내 / 사진=스케치북

절반이 운전 중 스트레스받고 남성, 고소득자 더 공격적

설문에 응답한 이들의 절반가량은 운전 중 스트레스를 받고 긴장하게 된다고 답했습니다. 운전을 그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좋아하는 독일인이지만 그래도 운전이 가져다주는 긴장감은 어쩔 수 없는 모양입니다. 이에 독일 교통 전문가는 운전 중 스트레스는 대부분 운전자 자신이 만드는 경우라고 분석했는데요. 역시 마음을 다스리는 것만큼 안전하고 쾌적한 운전은 없는 듯합니다.

또 눈에 띄었던 것은 남성 운전자의 44%, 여성운전자의 39%가 공격적, 혹은 거칠게 운전을 한다는 답이었습니다. 특히 20대 중반부터 40대 중반까지의 연령대의 58%가 자신의 운전이 다소 공격적이라고 답했고, 소득이 높고 학력이 높아도 운전이 거칠고 공격적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여성 운전자들의 경우 자신의 차량 뒤에서 상대가 위협운전을 할 때 1/3 정도가 급제동을 해본 경험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사진=GDV

"급 끼어들기 본 적 있지만 난 하지 않아" 80%

주차장에서 빈 공간을 발견해 주차하려다 다른 차가 먼저 가로채듯 파킹을 하는 경우, 종종 보셨을 겁니다. 설문 참여한 독일인들도 이런 경우를 대부분 목격했다고 했는데요. 하지만 정작 20%만이 가로채기 주차를 해봤고, 또 급차선 변경으로 다른 차에게 위협을 가했다고 고백했습니다.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응답자의 80%가 자신과는 무관한 나쁜 운전 태도라고 선을 그은 것입니다.

이번 조사를 담당한 교통사고 조사관 브록크만에 따르면, 독일에서 일어나는 대부분 교통사고는 배려심 없는 운전을 할 때 발생한다고 합니다. 과속, 음주운전, 공격적 운전 등이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는데요. 하지만 벌을 받아야 함에도 이런 운전자들에게는 처벌 자체가 운전습관 개선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유는, 이런 운전자들은 대체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편이며 문제의 원인은 다른 운전자에게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는데요. 이러다 보니 처벌이 잘못됐다는 판단, 억울하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을 듯하네요.

사진=GDV

독일 교통환경 더 좋아지고 안전해져

노인 운전자들 테스트받아야

자동차 운전자와 보행자, 그리고 자전거 운전자 등은 독일의 도로 환경이 점점 더 안전해지고 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습니다. 2010년에 53%였던 긍정적 답변은 2016년 조사에서는 62%로 늘었고, 이중 남성 66%와 여성의 58%가 더 안전해졌다고 답했습니다. 또한 자동차의 안전성이 계속해서 높아져 가고 있어서 이에 대한 신뢰도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고령화 시대를 맞은 독일에서도 노인 운전자 문제는 사회적 이슈 중 하나인데요. 특히 응답자의 2/3가 75세가 넘어가면 규칙적인 운전 능력에 대한 테스트가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설문에 응했던 노인 운전자 중 해당 문항에 찬성한 이는 없었다고 합니다.

음주운전, 과속운전 줄고 운전 중 스마트폰 통화 50% 넘어

독일에서 음주운전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인데요. 응답자의 91%가 음주운전을 하지 않는다고 답했는데 2010년 84%에서 7%가 늘어난 결과였습니다. 이처럼 음주운전이 드문 이유로는 단속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는데요. 사실 독일은 퇴근 후 회식 문화라는 게 거의 없고, 일을 마친 후에는 대부분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음주 운전 환경 자체가 자리잡히지 않았습니다. 대리운전이란 개념도 그간 없었는데 최근 프랑크푸르트에 대리운전을 해주는 곳이 생겼다고 합니다. (한국 현지 직장인들이 이용한다는 얘기도...)

사진=adac

그 외에 눈에 띄는 답변으로는, 시내에서 제한속도를 15km/h 이상 넘게 과속하는 경우가 드물다고 답한 부분입니다. 전체 응답자의 76%가 제한속도를 대체로 지킨다고 답했는데 2010년의 66%보다 10%가 증가한 결과였습니다. 독일 시내는 시속 50km/h 이하가 대부분인데, 주택가나 시내 중심에서 속도를 조금만 높여도 눈에 확 띄기 때문에 전체적인 흐름에 맞춰 운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일부 젊은 운전자나 택시의 경우에는 심심치 않게 도심에서 과속을 하기도 합니다.

설문 결과를 보면 독일은 점점 더 도로 환경, 운전문화가 좋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운전 중 스피커를 이용하지 않고 직접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며 운전하는 비율이 55%나 된다는 점 등은 개선이 필요해 보입니다. 또 27%가 운전 중 문자를 확인한다고 답했는데, 안전을 위해서 이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과 홍보가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사진=GDV

독일 교통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해 드렸지만 사실 이는 우리의 교통문화를 비춰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마냥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교통문화가 나아지기 위해서는 어느 한 가지 노력만으로는 부족하죠. 단속을 강화하고 벌금을 강하게 물리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는 건 이곳 독일에서 자동차 문화를 직접 경험하며 더 강하게 느끼게 된 부분입니다.

무엇보다 교통 시스템과 제도가 합리적이어야 하며, 제대로 된 교육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제대로 된 운전 교육, 교통 교육은 학생 때부터 이뤄져야 하고, 면허 취득 과정에서 체계적이고 심화된 운전 교육이 이뤄져야만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이런 교육과 홍보는 사회적 관심 속에 지속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룰 때, 진정 쾌적하고 안전한 대한민국 도로, 당신의 도로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