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Vegan)이란 말 혹시 들어 보셨나요? 채식하는 이들 중에서도 달걀이나 우유, 치즈 등, 동물성 재료까지도 섭취하지 않는 엄격한 채식주의자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과연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싶으실 텐데요. 얼마 전 신문을 보니 영국은 2006년에 15만 명 수준이던 '엄격한 채식주의자' 수가 10년 만에 3.6배 (54만 2천 명)나 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더 많습니다.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약 백만 명 수준이라고 하는군요. 이곳 독일도 780만 명의 채식주의자와 약 90만 명의 엄격한 채식주의자가 있다고 전해지고 있고, 매일 2천 명의 채식주의자와 2백 명의 엄격한 채식주의자가 새롭게 늘고 있다고 독일 채식주의협회는 추정하고 있습니다. 굉장하죠? 유럽 내에서도 독일 채식주의자 수가 가장 많습니다.
채식주의자들 자동차에 왜 불만일까
이처럼 늘어가는 채식주의자에게 자동차는 불편한 생필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실제로 독일에 있는 '동물의 권리보호(PETA)'라는 단체에는 동물 가죽이 사용되지 않는 자동차 모델이 거의 없다는 불만 메일이 자주 온다고 관련 소식을 전한 모터토크는 밝혔습니다.
사진=롤스로이스
말이 나왔으니 자동차 회사들이 얼마나 많은 가죽을 사용하는지 알아보도록 하죠. 모터토크는 가죽 기업 컨설턴트인 데이비드 피터스의 자료를 소개했는데, 해당 자료에 보면 2014년 자동차 기업들이 소비한 소가죽이 4천 5백만 개였습니다. 이는 한 해 동안 세계에서 소비되는 소가죽의 17% 수준입니다.
아우디만 하더라도 1년에 백만 마리의 소에서 나오는 가죽이 쓰인다고 컨설턴트는 밝혔는데요. 이처럼 동물의 가죽이나 뼈 등, 동물성 재료를 이용해 만든 자동차를 거부하는 채식주의자들 목소리에 언제부터인가 자동차 회사들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테슬라부터 시작된 변화
테슬라가 내놓은 첫 번째 순수 전기 SUV 모델X는 위로 열리는 팔콘윙 도어나 강력한 에어필터, 그리고 빠른 가속력 등, 여러 부분이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자동차는 가죽을 많이 쓰는 고급 브랜드로는 처음으로 완전히 가죽이 없는 인테리어로 만들어졌습니다. 테슬라 주주인 어느 미국인 부부의 요구에 의해 이런 비가죽 인테리어 옵션 선택이 가능해졌다고 하는군요.
모델 X / 사진=테슬라 홈페이지
테슬라만큼은 아니지만 BMW 역시 i3에 동물성 재료 사용을 최소화한 구성을 해놓고 있습니다. 'Atelier'와 'Loft' 트림의 경우 가죽으로 마감된 운전대 외에는 동물성 재료를 쓰지 않고 있죠. i3는 작물이나 식물잎 추출물을 이용한 소재 등을 쓰는 등, 실내를 친환경적으로 만들었지만 이와는 별도로 가죽이나 동물성 재료 사용을 최소화하는 노력도 함께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노력은 테슬라나 BMW만 하는 것은 아닌데요. 아우디 역시 플래그십 모델인 A8의 경우 고객이 원할 경우 가죽시트가 아닌 천시트를 적용할 수 있게 해놓고 있습니다. 대형 세단치고는 굉장히 이례적인 구성입니다. 또 포르쉐는 특히 미국의 채식주의 고객들에 의한 가죽 없는 인테리어 구성 요구가 많은 편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i3 실내 / 사진=BMW
메르세데스 벤츠 역시 채식주의 고객들을 위한 비동물성 재료를 이용한 구성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고, 폴크스바겐 그룹 역시 전통적 가죽 이용에 대한 철학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소비력이 크고 늘어가는 채식주의 고객들의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내용 검토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새로운 고객층에 대한 전략이 있어야 할 때
이런 변화는 가죽 사용이 특히 많은 고급 브랜드에서 먼저 이뤄지고 있는데요. 하지만 전통적으로 가죽의 고급감을 선호하는 많은 운전자들이 있기에 기본적 가죽 구성은 그대로 둔 채, 선택적으로 비동물성 재료로 구성된 인테리어 옵션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흐름이 이어지지 않겠나 예상됩니다.
벤테이가 실내 / 사진=벤틀리
자동차에는 실내 구성 말고도 윤활유나 접착제 등에도 동물성 재료가 사용되고 있다고 알려져 있죠. 또 부품의 경우 제조사가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부품업체로부터 제공받고 있기 때문에 자동차 회사가 온전히 동물성 재료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릴 때 차창에 부딪혀 죽는 벌레들 때문에 자동차 구매를 포기했다는 어느 '엄격한 채식주의자'에겐 자동차는 포기 가능한 선택의 대상이지만 대부분의 채식주의자에게 자동차는 필요한 도구입니다. 더군다나 채식주의 시장의 규모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 완성차 업체들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고객층을 잘 짜인 전략으로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채식주의 시장이 식품이나 화장품 등에서 자동차까지 그 영역을 점점 더 넓혀가고 있네요.
'독일 자동차 세상 > 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편이 왼쪽 차로에서만 운전하는데 어쩌죠?" (13) | 2016.11.25 |
---|---|
이런 타이어 들어보셨나요? UHP와 톨 앤 내로우, (6) | 2016.11.18 |
”독일 VW 고객은 바보” VS ‘폴크스바겐 망할 수도’ (8) | 2016.11.04 |
등하굣길 교통사고 방지를 위한 두 가지 당부 (5) | 2016.10.31 |
휘발유 차에 필터 장착 안 하면 도시 진입 금지? (15) | 2016.10.17 |
내연기관 자동차 금지 소식으로 시끄러운 독일 (16) | 2016.10.10 |
거대 모터쇼 시대가 저물어 간다 (10) | 2016.10.07 |
교통표지판 무색하게 만드는 운전자들 (14) | 2016.09.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