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하면 농담처럼 수컷들의 장난감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차를 좋아하는 이들의 상당수가 남자이기 때문일 텐데요. 여기에 더해 차를 만드는 제조사나 부품업체 등, 업계 전체적으로도 남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절대적입니다. 독일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아니었다’라고 과거형으로 쓴 것은, 최근 들어 독일의 자동차 업계에 여성들의 참여, 특히 그중에서도 경영에 참여하는 임원들의 비중이 점점 높아져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독일의 한 언론이 독일 자동차 업계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여성 50인을 소개한 데 이어, 경제지 ‘매니저 매거진’은 10명의 업계 파워 여성을 소개해 많은 독자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어떤 이들이 주인공인지 바로 확인해보도록 할까요?
티나 뮬러 (Tina Müller)
티나 뮬러 / 사진=오펠
우리 나이로 만 48세인 티나 뮬러는 현재 오펠 마케팅 전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화장품 업체인 로레알과 쌍둥이 칼과 세제 퍼실 등으로 유명한 헨켈 등에서 경력을 쌓고 2013년 오펠이 위기 타개를 위해 모셔온(?) 인물입니다. 경영과 경제를 전공한 그녀는 오펠에 와 ‘머릿속을 다시 포장한다’라는 캠페인 문구를 만들며 오래된 오펠의 부정적 이미지를 씻어내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언론에 자주 노출이 되는 등, 오펠에 새로운 활력소가 돼주고 있죠. 실제로 여성 오너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등, 긍정적 변화를 이끌고 있습니다.
아리아네 라인하르트 박사 (Ariane Reinhart)
아리아네 라인하르트 / 사진=콘티넨탈
독일 나이로 46세(1969년생)인 아리아네 라인하르트 박사 (독일은 학위 등을 공식적으로 이름과 함께 쓰는 게 일반적)는 노사 문제 등에 전문성을 발휘하며 자동차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입니다. 15년 동안 폴크스바겐에서 노사문제나 기업경영 및 마케팅 관련한, 다양한 영역에서 경력을 쌓았고, 2014년에는 벤틀리에서 임원 자리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세계적인 자동차 부품업체 콘티넨탈 그룹의 인사최고 책임자가 타이틀을 얻습니다. 노사 문제나 직원 관리에서 뛰어난 전문성을 보인다는 게 대체적인 업계의 평가라고 하는군요.
밀라그로스 까이냐 안데레 (Milagros Caiña Andree)
밀라그로스 까이냐 안데레 / 사진=BMW
1962년생인 밀라그로스 까이냐 안데레는 스페인에서 태어난 지 3년 만에 독일로 건너왔습니다. 이후 독일에서 성장하며 철도 회사 도이체반 등에서 근무를 하는 등 다양한 경력을 쌓게 되죠. 그리고 그녀는 2012년 BMW 인사부문 총괄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전임 노르베르트 라이트호퍼 회장이 2020년까지 BMW 내 관리직 여성의 비율을 17%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냈고, 이를 그녀는 적극 지지하며 BMW의 여성 임직원 비율 확대를 위해 앞장서고 있습니다.
크리스티네 호만 덴하르트 (Christine Hohmann Dennhardt)
크리스티네 호만 덴하르트 / 사진=폴크스바겐
1950년 생이니까 우리 나이로 만 66세네요. 그녀는 1999년부터 2011년까지 독일 헌법재판소 판사로 일한, 법률 전문가입니다. 헤센주의 장관 자리도 역임했었죠. 헌법재판소를 나온 그녀는 같은 해 메르세데스 벤츠가 있는 다임러 그룹의 법률팀을 이끌게 됩니다. 이곳에서 2015년까지 일하게 되는데 크리스티네 호만 덴하르트는 다임러 그룹 내 최초의 여성 임원이기도 했습니다. 2016년 1월 폴크스바겐 그룹 법률팀 수장으로 다시 자리를 옮기게 되죠.
그녀가 폴크스바겐으로 옮긴 시기는 디젤 게이트가 터진 직후로, 사건 수습을 위해 그녀의 능력이 필요했던 폴크스바겐 그룹이 즉각적으로 스카웃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디젤 게이트 관련한 미국 내 소송이나 그 외 국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법적 갈등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는 건 그녀의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마리아 엘리자베스 셰플러 (Maria-Elisabeth Schaeffler)
마리아 엘리자베스 셰플러 / 사진=셰플러 그룹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나 오스트리아에서 성장한 그녀는 1941년 생으로 10명의 주인공 중 가장 나이가 많습니다. 자동차 부품을 만들고 납품하는 회사 여럿을 거느린 셰플러 그룹을 아들과 함께 이끄는 경영인이자 대주주인데요. 셰플러 회장이 유명해진 것은 2008년 자신의 회사보다 덩치가 큰 콘티넨탈 그룹을 인수하려다 실패한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인수 실패로 많은 빚을 졌지만 현재는 대부분을 갚았고, 여전히 그녀는 업계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며 엄청난 부를 누리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와 독일 국적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한국에도 규모가 큰 베어링 제작 회사가 진출해 있는 상태입니다. 셰플러 그룹에는 약 8만 명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브리타 제거 (Britta Seeger)
브리타 제거 / 사진=다임러
한국 나이로 만 47세의 이 여성 임원은 우리에게도 매우 친숙하죠. 2015년까지 메르세데스 벤츠 코리아를 이끌었기 때문인데요. 그녀는 2017년 1월 1일부로 승용차 부문 판매 총괄로 승진을 하게 됐습니다. 터키와 한국에서 현지 법인을 성공적으로 이끈 공로가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2019년 말까지 계약이 되었다고 하네요.
주잔네 클라텐 (Susanne Klatten)
독일 교통부장관(사진 좌)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는 주잔네 클라텐 / 사진=BMW
한 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인물이 등장했네요. 주잔네 클라텐은 헤르베르트 크반트의 딸로 유명하죠. 헤르베르트 크반트는 바로 다임러의 주주로 BMW를 인수하려다 직원들의 열정에 반해 자신의 다임러 주식을 팔아 BMW를 살린 인물입니다. 주잔네는 크반트 가문의 일원이자 BMW 대주주의 한 명으로, 얼마 전 타계한 어머니 요한나와 남동생 슈테판 크반트의 재산이 50조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크반트 가문은 기본적으로 경영에 직접 참여하지 않지만 최근 슈테판 크반트가 회사 경영에 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에 반해 누나인 주잔네 클라텐은 경영보다는 회사 경영권 확보 등에 좀 더 신경을 쓰는 것 같은데요. 주잔네는 몇 년 전 스위스 사기꾼에게 걸려 호된 곤욕을 치른 여성 중 한 명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습니다.
150억을 세 명의 부유층 여성에게 갈취한 이 스위스산 제비(?)는 그중 주잔네에게 더 많은 돈을 뜯어내려 협박하다 결국 그녀의 신고로 잡혀 독일에서 6년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녀의 자산은 현재 15조 전후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8개 국어를 할 줄 알며, BMW 외에도 여러 기업을 보유하고 있는 독일 최고 여성 갑부입니다.
이멜다 라베 (Imelda Labbé)
이멜다 라베 / 사진=폴크스바겐 그룹
경영학을 전공한 그녀는 오펠에서 재무와 관련된 업무로 임원의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그러다 2013년 폴크스바겐 그룹 산하에 있는 스코다 독일 법인을 책임지며 그녀의 능력을 본격 발휘하게 됩니다. 스코다의 높은 성장은 결국 2016년 시작과 함께 폴크스바겐의 글로벌 애프터세일즈 파트를 책임지는 자리에 오르게 했습니다. 유럽 나이로 48세인 그녀는 여러 자동차 회사에서 많은 경험을 쌓은 것을 잘 활용해 승승장구하고 있는 인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아네테 빈클러 박사 (Annette Winkler)
디터 체체 다임러 회장과 함께 한 모습 / 사진=다임러
프랑크푸르트 괴테 대학교에서 경영을 전공한 그녀는 1956년생으로 현재 다임러 그룹 내에 있는 스마트 브랜드를 이끌고 있는 여성 CEO입니다. 2010년부터 스마트를 이끌고 있는데, 디터 체체 회장의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보입니다. 가족 사업에 참여했던 그녀는 1995년 다임러에 입사해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자동차 브랜드를 책임지는 최고 경영자의 자리까지 오르게 됐죠. 비록 작은 브랜드이지만 여성이 자동차 회사를 대표하는 최고 경영자가 되었다는 건 결코 흔한 일이 아닙니다.
힐데가르트 보르트만 (Hildegard Wortmann)
힐테가르트 보르트만 / 사진=BMW
우리 나이로 만 50세인 그녀는 현재 BMW 브랜드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2016년 6월부터니까 최근에 승진한 경우네요. 경영학을 역시 전공한 그녀는 자동차 업계에 들어오기 전에는 캘빈 클라인 향수 파트에서 근무했었는데, 평범했던 회사 생활을 뒤로하고 BMW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성공의 길로 내달리고 있습니다.
과연 이들 중 자동차 그룹을 이끌 인물이 탄생할까요? 독일은 전통적으로 그룹 최고 경영자 자리는 엔지니어링을 전공한 이공계 계통의 남성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이 흐름이 오랜 세월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경상대 출신의 여성이 절대 왕좌를 차지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도 세상은 변하고 있죠. 실력과 열정으로 정당하게 평가받아 벤츠나 BMW의 회장 자리에 오른 여성 CEO의 모습도 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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