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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신호위반 없는 시대, 맞을 준비 되셨나요?

최근 독일에서는 신호위반과 관련해 사람들 관심을 끈 뉴스가 있었습니다. 쾰른이라는 도시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한 여성 운전자가 적색등이 켜진 신호등 앞에서 주행을 하다 경찰 단속에 걸리고 만 것이죠. 그런데 운전자 입장에서 가혹하다 싶을 정도의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범칙금 90유로에 벌점, 그리고 한달 동안 운전을 해서는 안되는 면허정지 통보가 온 것입니다. 그녀는 소송에 들어갔고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우선 그녀가 받은 범칙금과 벌점은 기본적인 신호위반 시 부여되는 것으로, 여기에 면허정지처분이 추가된 것으로 봐서 단순한 신호위반 이상의 약간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던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 정도면 법원에서도 경찰의 결정을 대체로 존중하는 편이죠. 그런데 법원은 운전자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유는 수학적인 그녀의 주장이 일리가 있다고 본 것입니다.

단속을 벌인 경찰관 2명은 증언을 통해 정지선으로부터 약 자동차 2대가 서 있을 정도의 거리에 그녀의 차가 있었고, 신호등이 붉은색으로 바뀌고 1초 이상 지난 뒤에 신호를 무시한 채 지나갔다고 밝혔습니다. 충분히 의도적인 행위였다고 주장한 것이죠. 하지만 그녀는 해당 도로의 제한속도는 70km/h였고, 이 제한 속도로 경찰이 밝힌 거리를 신호등 아래까지 지나가는 건 0.5초면 가능하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결국 법원은 그녀에게 내려진 한 달 면허정지 건에 대해서는 무효 판결을 내렸습니다. 다만 신호를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기 때문에 벌점과 벌금은 유효하다고 최종 판결을 내렸습니다. 

교통신호위반에 대해 굉장히 엄격한 독일에서는 종종 이런 다툼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암행과속단속 경우도 동영상 장비로 촬영된 차량 운전자에게는 그 영상을 반드시 보여준 뒤 벌점과 범칙금을 부과하죠. 우리나라처럼 범칙금을 과태료로 대신하고 벌점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면허취소에 해당하는 벌점 8점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운전에 터프한 독일인들이지만 교통법규에 대해선 대체로 엄격하게 따르는 편입니다.

이제 우리나라의 경우로 와보죠. 아주 기본적인데 잘 모르고 있는 내용이 하나 있습니다. 교차로를 진입하는데 정지선을 기준으로 황색등이 들어오는 게 보였습니다. 빨리 빠져 나가면 되겠거니 싶어 그대로 교차로에 진입했지만 우측 도로에서 대기 중이던 다른 차량이 바뀐 신호를 보고 바로 출발하다 직진하던 내 차량 후측면을 받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경우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정지선 지나기 전에 황색등이 들어온 것을 확인한 내가 가해차량 운전자가 됩니다. 반대로, 내가 정지선을 지난 직후 신호등이 황색등으로 바뀌었다면, 그래서 위와 같은 사고가 발생했다면 내 차를 받은 차량의 운전자에게 안전운전의무 불이행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돼 있습니다.


각 종 신호위반 사고들은 곧 사라지게 된다?

Car-to-X 시스템의 현실화

교통신호위반과 관련해 지금 어딘가에서 단속 경찰과 시시비비를 가리는 운전자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정지선을 지나쳐 횡단보도를 물고 정차한 바람에 보행자 보호 위반으로 면허정치 처분을 받은 분도 있을 수 있겠죠. 아니면 신호기가 '황색등이었다 아니다'로 목소리 높여 싸우는 접촉사고 운전자들을 목격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는 이런 끝없는 다툼들, 논란이 우리의 도로에서 사라지게 될지도 모릅니다. 바로 Car-to-X 시스템이 사고 없고 벌점 없는 도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카-투-엑스 (Car-to-X)는 자동차와 교통인프라 사이에 정보를 주고 받는 기술을 말합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BMW, 벤츠, 볼보 등, 여러 메이커들이 이 기술의 실현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죠.

독일의 경우 정부 차원에서 프로젝트로 진행하고 있고, 예전에 소개해드린 바 있지만 폴크스바겐은 개미들의 이동 시스템을 연구해 이를 Car-to-X에 적용하려 할 정도로 현재 안전한 이동(모빌리티)에 대한 연구는 자동차의 최대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자율주행도 이런 거대한 흐름 속에서 볼 필요가 있겠죠.

메르세데스 Car-to-X설명도 /사진=다임러


미래는 신호등, 도로, 그리고 자동차가 대화하는 시대

Car-to-X의 핵심은 상호 정보 교환입니다. 최근 공개된 메르세데스 E클래스는 보이지 않는 전방 도로 상황을 수집한 벤츠 클라우드 센터가 다시 운전자에게 상황을 전달해주는 기본적 Car-to-X 통신 시스템을 갖춘 상태입니다. 코너 돌아가면 사고차량이 서 있으니 서행하라는 주의를 주고, 갑자기 폭우가 내린다거나 폭설이 쏟아지니 안전운전하라는 정보를 건네주는 정도까지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 기술은 최근 바이크(오토바이)에도 적용이 될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그런데 미래의 Car-to-X는 여기서 더 발전된 형태를 보입니다. 자동차가 신호등으로부터 정보를 받아 지금 앞에 있는 신호등이 몇 초 후에 파란색에서 붉은색으로 바뀔지를 운전자에게 알려주는 것이죠. 알려주는 것뿐만 아니라 자동차가 직접 제동까지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미 비슷한 실험을 몇 년 전 BMW가 일반 도로에서 한 적도 있죠. 특히 횡단보도에서 많은 인명사고가 발생하는데, Car-to-X 시스템은 보행자 보호 등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 단순히 신호등과 자동차만 통신하는 게 아닙니다. 현재 러시아의 한 기업이 연구 중인 지능형 도로는 자동차의 움직임을 도로가 읽고 이에 따라 신호체계를 조절하고 차량과 차량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게 어느 한 시점에 합쳐지게 되면 도로와 자동차, 그리고 신호체계가 정보를 주고 받으며 안전한 도로를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죠. 물론 이런 기술은 늘 오류나 외부의 공격 등, 보안에 대한 우려를 동반한 채 진행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위험에 대한 대책을 분명하게 마련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지만 충분한 시간을 갖고 추진한다면, 훨씬 안전하고 쾌적한 도로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기술이 만능은 아닙니다. 늘 불안요소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도로는 자동차에 점령돼 있습니다. 이천만 대가 넘는 자동차가 대한민국 곳곳을 다니고 있습니다. 늘 보행자에겐 '차 조심해라' 운전자에겐 '과속하지 마라' '정지선 지켜라', 정부엔 '독일처럼 신호등 위치를 횡단보도 위에 설치해 정지선 넘어가면 안보이게 해라' 등, 목소리를 내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한 게 현실입니다. 

이제 이런 현실을 Car-to-X와 같은 시스템 등을 통해 조금 더 낫게 만드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아직 미래의 일이긴 하지만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정부나 기업에 Car-to-X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와 연구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그래야 더 나은 미래가 좀 더 앞당겨 질 수 있을 테니까요.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차원의 교통의 시대, 맞을 준비 되셨나요? 

Car-to-X 시스템에 의해 응급출동차량의 정보가 다른 차들에게 전달된다/ 사진=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