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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제네시스, 현대를 프리미엄으로 이끌 것인가?



요즘의 대한민국 운전자들에겐 가장 뜨거운 감자가 현대차일 수밖에 없는데요. 온 갖 비난, 혹은 비판을 감수하고 몇 가지 이야기 '꺼리'를 만들어 봤습니다. 한 주 동안 현대자동차와 관련한 나름 특집(?) 포스팅으로 함께 할 텐데요. 오늘은 본편에 들어가기에 앞서 분위기를 띄우는(?) 차원에서 '더딴지'에 기고했던 내용을 하나 소개하고자 합니다.

 

예전에 <제네시스의 착각>이란 글의 앞부분만 보여드린 적 있죠. 오늘은 그 글의 전체 내용을 소개하려 합니다. 이렇게 얘기하니까 대단한 글이나 되는 거 같아 조금 민망하긴 한데요. 그냥 자동차를 아끼는 한 남자의 애정어린 시선에서 나온 이야기 4편 중 하나라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나머지 준비된 내용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습니다.)

-시장에서 조용히 사라지고 있는 베라크루즈

-현대 비판하면 현까, 현대 칭찬하면 현빠?

-LF 쏘나타가 잘한 것과 잘 못한 것들

 

제네시스가 요즘 한국 내에서 판매 성적이 좋다고 들었습니다. 그랜저와 같은 준대형급 자동차가 가장 많이 팔리는 (2014년 1분기 기준) 놀라운(?) 결과를 생각하면 제네시스의 선전은 특별한 일도 아니란 생각인데요. 사실 이런 급의 차들은 법인 판매량이 많은 편이죠. 독일도 중형이나 준대형 급은 6:4 정도로 법인과 개인고객의 비율이 나뉘니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진 않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또 수입차들의 선전이 역설적으로 제네시스의 판매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다 나를 드러내는 신분증으로 자동차를 여기는 분들의 큰 차에 대한 소비를 스스로에게 자극하는 점도 이런 고급 차의 판매량 증가에 한 몫 거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쨌든 제네시스는 현대차가 야심차게 내놓은 고급 모델이고, 특히나 독일 메이커들을 경쟁자로 선언하고 유럽 시장을 공략할 준비를 마친 상태입니다. (그런데 디젤 엔진 없이?)

 

유럽에선 여름부터 판매가 시작될 예정인데, '스포츠세단'이란 표현을 쓰며 주행성능을 마케팅의 포인트로 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 글은 바로 이 부분, 그러니까 한국 내에서 제네시스에 대한 여론이나 판매량 등의 관점이 아닌, 세계 시장에서 과연 제네시스가 현대차 스스로가 밝힌 것처럼 BMW나 아우디, 벤츠 등과의 경쟁에서 이겨, 그토록 원하는 프리미엄의 길로 들어서게 해줄 만한 모델인지에 초점을 맞췄음을 밝힙니다.

 

이렇게 미리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자칫하면 이 내용이 괜한 현대차 트집잡기로 보여질 수 있겠단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그러니  한국이 아닌 유럽 시장에서 경쟁을 펼칠 제네시스라는 점을 염두에 두시고 글을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사진=hyundai-genesis.eu

 

 

제네시스, 과연 현대차를 프리미엄으로 이끌 수 있을까?

 

자동차 만드는 나라들 중 자국 브랜드 점유율이 80% 넘는 곳은 한국과 일본 정도다. 차이라면 한국은 현대자동차그룹 하나가 80% 정도를 (최근엔 이마저도 무너지는 추세) 차지하고 있고 일본은 13개 브랜드가 시장을 나눠먹기 하고 있다는 것. 어쨌든 한 개 회사가 한 나라의 자동차 시장을 싹쓸이 하다시피 한 경우는 대한민국 외엔 없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시장이 변하고 있다. 옛날엔 애국심이 자동차 구매의 주요 작동 요소였다면 지금은 독과점 논란에 빠진 시장에서 애국심은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다. 오히려 한국 내 소비자들은 비슷한 조건이면 수입차로 건너가기 위해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이젠 자동차 그 자체의 가치에 지갑을 여는 시대가 된 것이다.

 

소비자들의 변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대차도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가성비, 그러니까 가격 대비 성능 괜찮은 차를 만드는 회사의 이미지를 벗고 마진율 좋은 프리미엄 브랜드로의 전환을 꿈꾸고 있다. 오랜 시간 저가 자동차를 파는 회사라는 이미지가 있던 현대차 그룹은 한 대를 팔더라도 더 많이 남길 수 있는 고마진 시대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프리미엄 브랜드 전략을 이끌 상징적 모델이 작년 11월 말 공식 데뷔했다. 2세대 제네시스가 그 주인공이다. 얼마 전부터 현대와 기아는 신차를 내놓을 때마다 독일 차와 비교하며 은근히 프리미엄 마케팅을 펼쳤다. 하지만 제네시스는 슬쩍 발을 담그는 정도에 머무르지 않는다. 독일 차들과 경쟁하기 위해 내놓은 자동차임을 공식적으로 선언했기 때문이다.

'독일 고급 세단 시장 정조준'
'BMW 5시리즈 이미 넘어섰다'
'독일 차와의 경쟁 자신 있다.'
'제네시스 경쟁 상대는 벤츠 아우디 BMW!'

 

도발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기사 타이틀이 연일 제네시스 론칭과 함께 쏟아져 나왔다. 이미 많은 시승기를 통해 이 차의 성능이 어느 정도인지도 드러나고 있다. 아직 유럽에서 판매가 이뤄지지 않은 관계로 유럽의 평가는 나오지 않았지만, 어쨌든 유럽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만들었고 그 시장을 점령하고 있는 독일제 준대형 차들을 겨냥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유럽피언의 관심을 끌기엔 충분하다.

 

그렇다면 제네시스는 누구나 인정하는 현대차의 첫 번째 프리미엄 자동차가 될 수 있을까?  이미 모든 스펙에서 독일 차와 다를 바 없는 수준이며, 오히려 경쟁 모델들 보다 더 나은 점들을 제네시스가 가지고 있다고 현대가 당당하게 말하고 있으니 어렵지 않을 거 같은데. 하지만 이는 섣부른 외침이다. 제네시스가 잘 만들어진 차라고 할지라도 그것만 가지고 프리미엄 딱지를 받기는 어렵다. 

 

과연 무엇이 부족한 것일까? 또 어떻게 해야 제네시스는 프리미엄 자동차가 될 수 있는 것일까? 근데 되기는 되는 걸까?...지금부터 몇 가지 이유와 나름의 해결책을 같이 버무려 보기로 하겠다.

 


<디자인의 착각>

제네시스가 공식 데뷔했을 때의 일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호주 등지에 거주하고 있는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현지인들의 반응을 살펴봤다. 독일까지 합치면 6개국의 반응이니, 이정도면 '세계반응'이라고 해도 될 수준이다. 그 때 가장 많이 나온 얘기는 역시 '무엇과 닮았다' 라는 것이었다.

 

아우디의 싱글 프레임부터 시작해 포드와 재규어, 실내는 BMW와 다시 아우디 등.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신차가 나오면 익숙해진 디자인에 빗대더 이야기하길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제네시스는 그 지점이 너무 크고 직접적이다. 결국은 베끼기 논란으로까지 이어졌다. 기아가 K9을 내놓았을 때의 노골적인 야유에 비하면 덜하지만 제네시스는 어디서 본 듯한 이미지들 여러 개가 뒤섞인 느낌을 줬다는 얘기가 가득했다. 여기서부터 제네시스의 착각, 아니 현대차의 착각은 시작된 것이라 본다.

 

자동차 디자인이라는 게 세상에 없던 게 나올 수는 없다. 특히 많이 팔려야 하는 양산형 디자인의 경우는 보편적이어야지 실험적이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안에는 자신들만의 고유한 색이 담겨 있어야 한다. 점유율 높은 한국시장만 생각하면 덜 중요하겠지만 현대는 세계 무대를 상대로 뛰고 있는 자동차 회사가 아닌가. 어디에서 만나도 이 차가 현대의 자동차라는 걸 보여주어야 한다.

 

바로 이 색을 찾기 위해 기아자동차는 페터 슈라이어라는 유명 디자이너를 스카웃해왔다. 그리고 어느 정도 기아만의 특징을 만들어냈다. 이에 뒤질세라 현대도 독일인 출신의, 독일 회사에서 근무했던 수석 디자이너들을 불러와 현대만의 색 만들기에 힘을 쏟았다. 플루이딕 스컬프쳐라는 어려운 이름의 디자인 철학까지 부여해 가며 현대표 스타일을 끄집어 낸 것이다.

 

그리고 이젠 아예 페터 슈라이어에게 현대와 기아 디자인 전체를 책임지게 했다. 그리고 나온 신형 제네시스엔 좀 더 변화를 준 플루이딕 스컬프쳐 2.0이라는 디자인이 반영되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생김새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예상 외로 높았다. 자기 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차의 생김새는 사람에 따라 좋은 게 나쁘게 보일 수 있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좋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니 정답이란 게 존재할 수 없는 것. 하지만 보편적인 평가는 가능하다. 바로 이 보편적인 관점에서 매력이 떨어진 것이다. 전면 싱글 프레임은 헤드램프나 전체적인 전면부 디자인과 어울리지 않는, 자연미가 떨어져 보였고, 뒤쪽 램프 디자인은 준대형급 이상에서 요구되는 고급스러움 보다는 스포티함이 더 강조된 느낌을 주고 있다.

 

다소 평범했지만 자연스러움에선 1세대가 나았고, 고급스럽다고 하기엔 뭔가 이것 저것 뒤섞여 있는 느낌이 난다. 벤츠는 늘 벤츠임을 알 수 있고 BMW와 아우디는 늘 이 차가 어디 출신인지를 스타일에서 분명하게 해주고 있다. 현대가 이런 메이커들과 경쟁을 하겠다고 한다면 바로 그러한 자기정체성이 분명한 디자인을 택했어야 했다. 실내로 들어가면 이런 모호함은 더 커진다. 

 

배우 로버트 드 니로는 잘 생긴 얼굴이 아니다. 알 파치노 역시 미남계열 스타는 아니다. 요즘 핫한 헝거게임, 아메리칸 허슬의 그녀 제니퍼 로렌스 역시 빼어난 미모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세 배우의 공통점은 연기력이란 바탕 위에 자신들 만의 개성 있는 이미지를 구축했다는 점이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어떤 기자가 디자인이 참신성은 떨어지지만 상품성은 높아졌다고 제네시스를 평가했는데, 프리미엄이 되고자 한다면 이 참신성, 그 고유함이 곧 상품성이라는 걸 잊어선 안된다. 이걸 극복하지 못하면 매번 '따라쟁이' 꼬리표가 따라다니고 말 것이다. 모 일간지에서 디자인 관련 다양한 전문가 그룹에 물었을 때도 모두 제네시스 디자인이 경쟁모델들에 뒤떨어진다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 다시 한 번 얘기하지만 제네시스는 나쁘지 않은 디자인이다. 하지만 자신만의 존재감을 세계 시장에서 드러내기엔 2% 이상 부족해 보인다.

 


<성능에 대한 착각>

디자인을 먼저 이야기했지만 뭐니뭐니해도 차의 가치 판단 기준은 성능이다. 운동선수가 제 아무리 잘생기고 예뻐도 운동을 못하면 의미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일 것이다. 현대는 이 성능에서 경쟁작들과 등등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아니 뛰어넘었다고까지 자신감을 보인다. 어떤 점이 그들이 그렇게 큰소리를 치게 하는 걸까?

 

상시사륜구동 H트랙

우선 현대는 해외 부품업체와 합작해 자체적인 승용차용 상시사륜구동 시스템(AWD) H트랙(HTRAC)을 개발 장착했다. 현대차 최초의 시도다. 상시사륜이란 엔진이 만들어내는 힘이 앞뒤바퀴 모두에 균형 있게 전달이 되는 것으로 좌우바퀴에서 제동력 차이도 스스로 만들어 최대한 안정적인 운전을 돕는 장치다.

 

한마디로 도로상황을 인식하고 알아서 그에 맞는 힘을 바퀴에 분배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빗길 눈길 등에서 앞바퀴 굴림이나 뒷바퀴 굴림 보다 뛰어난 안정감을 보여주게 된다. 또 굽이치는 도로에서도 안정적 주행을 펼치며 언덕길을 오를 때도 네바퀴 모두 힘을 받기 때문에 등판 자체 능력이 향상되게 된다.

 

이쯤 되면 사륜구동 장착의 의미가 차의 가치를 높이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승용 사륜이란 컨셉은 오래 전부터 시작된 기술이다. 이미 70년대에 일본 메이커 스바루가 시도를 했고, 1980년 아우디가 콰트로라는 이름으로 최초 승용차용 사륜을 내놓으며 브랜드를 규정짓는 하나의 컨셉으로 자리잡게 했다.

 

그 후 벤츠는 4Matic, BMW는 xDrive, 폴크스바겐은 4motion 등의 이름을 붙여 자신들의 네바퀴 굴림이 최고라고 광고하기 시작했다. 혼다와 닛산 등도 자체 네바퀴 굴림을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 한국인들이 잘 모르는 체코의 스코다와 독일(GM 산하) 오펠조차 승용차용 네바퀴 굴림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더군다나 현대가 준대형급 모델에 첫 승용차용 AWD를 장착한 것에 비해 다른 메이커들은 C세그먼트, 그러니까 준중형급 모델에까지 네바퀴 굴림을 적용해 오래 전부터 판매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냉정하게 보자면 현대는 프리미엄 브랜드 뿐 아니라 여러 양산차 메어커들이 적용하고 있는 승용 네바퀴 굴림을 이제 적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다. 현대의 사륜이 다른 메이커의 사륜을 압도하느냐는 것. 이는 유럽에서 판매가 시작되면 치열한 검증 과정을 거치며 드러나게 될 것으로 본다.

 

이렇게 말하면 많은 분들이 현대자동차 무시하는 글로 오해할 거 같아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H트랙의 좋고 나쁨 그 성능을 우선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과연 네바퀴 굴림을 승용차에 적용했다고 해서 그것을 프리미엄 진입으로 봐야 하는가?' 라는, 기준에 대한  문제제기인 것이다.

 

현대가 내세우는 승용 4바퀴 굴림은 현대자동차 자신에게, 그리고 좀 더 넓혀 한국 자동차 시장에서, 자체 개발한 최초의 승용차 사륜시스템이라는 의미 정도로 보는 게 맞을 듯 싶다. 그리고 이것을 시작으로 더 나은 차, 더 좋은 차를 만들기 위한 첫 발을 내디딘 것이라 여기는 것이 냉정하지만 정확한 평가가 아닐까 한다.

 

  사진=hyundai-genesis.eu


기술혁신적 기업이 프리미엄 기업

현대차가 또한 제네시스에 적용한 것 중 내세우는 부분이 차체강성이다. 초고장력 강판의 비율을 이전 제네시스에 비해 3배 가량 늘려 적용했다는 것. 프레임 용접도 좀 더 신경을 쓴 것으로 보인다. 제네시스의 초고장력 강판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여기서 다루진 않겠다. 어쨌든 이런 적용을 통해 차체의 견고함이 더 좋아졌다. 하지만 이런 보강이 현대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대가 경쟁모델로 보는 5시리즈, E클래스, 그리고 아우디 A6 같은 모델들은 이미 적용이 되어 있다. 또 현대가 원가상승의 부담 때문에 많이 쓰지 못한 경량화의 척도 알루미늄 비율도 적은 편이다. 이런 부분은 양산형 메이커의 한계일 수밖에 없다. 어쨌든 차체가 더 단단해지다 보니 주행 안정성이 좋아졌고, 서스펜션처럼 승차감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부분도 단단함과 안락함의 황금비율을 찾기 위한 노력의 흔적이 보인다. 물론 비싼 소재를 쓰지 않고 비싼 소재를 쓴 경쟁 모델들을 압도한다면 그것만큼 좋은 게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투자에 비례한 결과물이 나온다는 이치를 현대차 자신들이 더 잘 알 것이라 본다.

 

여러 국내 시승기 등에선 그럼에도 과거 현대차에서 느낄 수 없는 주행성능의 향상을 이구동성 이야기했다. 사실 5시리즈 같은 차를 연구원들이 철저하게 분석해 그것을 제네시스에 적용했기 때문에 주행 안정성과 핸들링 등의 성장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역시 제네시스만의 무엇, 자신만의 기술적 강점이라며 내세울 만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답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건 아쉬운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프리미엄 브랜드라 하면 가장 먼저 충족시켜야 할 요소로 기술혁신을 꼽고 있기 때문이다.

 

BMW는 1954년 알루미늄 V8 엔진을 세계 최초로 자동차에 적용했다. 회사가 자동차 전문업체로 바뀌고 30년도 안된 시점의 일이다. 같은 해 벤츠는 세계 최초로 가솔린 직분사 엔진을 메르세데스 300SL 모델에 적용했다. 1959년엔 최초의 자동차 전복 실험을 벤츠가 실시했다. 아우디 역시 터보 디젤 직분사 엔진 TDI를 80년대에 개발했고, 앞서 언급한 콰트로 역시 지금의 아우디를 만든 1등 기술이다.

 

이처럼 이미 오래 전부터 프리미엄 메이커들은 여기서 언급하지 못한 수많은 최고, 최초의 기술을 만들고 보유하고 있다. 볼보하면 안전한 차라는 이미지로 잘 알려져 있다. 실제로 볼보는 신모델이 나올 때마다 새로운 안전 시스템을 공개한다. 그래서 이번엔 또 어떤 게 적용됐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최근엔 보행자를 보호하기 위한 보행자 에어백을 공개하기도 했다. 안전하면 벤츠와 볼보로 양분될 정도로 그 이미지는 이미 독보적이다.

 

폴크스바겐도 최근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 XL1을 통해 100킬로미터의 거리를 기름 1.6리터 정도로 달릴 수 있는 기술력을 선보였다. 이제 현대에게 물어 보고 싶다. 과연 현대자동차는 기술에서 'First'로 무엇을 내세울 수 있는가? 늘 현대차를 위한 변론 중 하나로 자동차 역사가 짧다는 것을 든다. 하지만 경쟁 메이커들의 경우 초창기에 자신들의 방향성을 분명히 하고 그에 맞는 기술 개발을 이어 왔다. 그렇게 자기만의 기술과 그걸 통한 색깔을 입혀온 것이다.

 

얼마 전 제네시스에 첨단 기술 중 하나인 액티브 후드 시스템이 장착이 됐다며 "역시"를 외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보행자가 차에 부딪혔을 때 앞유리 쪽 보닛이 들리며 충돌 충격을 완화시켜주는 장치로 이는 수출용 차량과 일부 내수용 차량에 이미 적용이 된 기술이며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여러 메이커에서 적용한 기술일 뿐이다.

 

기술로 현대를 말하라

차량 경량화와 공기저항을 낮추는 것에서는 아우디는 많은 노하우를 갖고 있다. 토요타는 프리우스를 통해 하이브리드의 원조 메이커로 이미지가 굳어졌다. BMW의 주행의 즐거움은 누구나 알고 있다. 벤츠나 정숙함은 최고라 자부할 수준이다. 볼보는 안전의 대명사다. 그렇다면 현대는 어떤 기술적 색깔을 입어야 할까? 이 부분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늘 패스트 팔로워(빠른 추격자)밖에 될 수 없다. 마치 삼성이 애플의 아이폰을 쫓고 있듯.

 

제네시스를 통해 경쟁을 하려면 기술에 자신만의 색을 입혀야 한다. 디자인에서 자신의 정체성 외에도 기술을 우리는 이런 방향으로 발전시켰고 그렇게 나아갈 것임을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어떤 특징적 모습을 가져야 한다. 현대도 외계인 기술자들을 빨리 섭외하시길! (흔히 독일 차 엔지니어링을 사람들이 외계인 고문시켜 만든다고 말한다. 그만큼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내놓기 때문에 나오는 우스개 소리다.)

 

 

<브랜드의 착각>

디자인과 기술에서 자신만의 성격이 만들어지면 자연스럽게 브랜드의 가치도 그것에 따라 변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현대자동차는 지금껏 기술력이나 디자인으로 승부를 펼친 회사가 아니었다. 제네시스를 본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한 부분 중 하나가 바로 '현대자동차'라는 브랜드의 제네시스라는 대목이다. 그 얘기는 현대자동차의 이미지가 제네시스와 맞지 않다는 뜻으로 풀 수도 있다. 현대가 고급 브랜드를 별도로 가져야 한다는 주장들이 여전히 제기되는 이유다.

 

하지만 현대는 고심 끝에 현대 브랜드를 그대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 그 결과 "현대가 만든 고급 세단이라고? 그걸로 유럽 브랜드랑 싸운다고? 될까?" 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게 됐다. 한국에서야 가격 비싼, 판매 1위의 메이커이지만 해외에선 저렴하고 보증기간 좋은 소형차 잘 만드는 회사로 여전히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이미지는 한국에서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깊고 폭넓게 유럽인들에게 각인돼 있다.

 

이건 제네시스가 아무리 좋은 차라고 해도 선택에 어려움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거금을 들여 차를 사야 하는데 가격의 차이가 크지 않다면 이미 브랜드의 영향력에서 경쟁이 안되는 독일 프리미엄 3사 모델들과 공정한 싸움이 되겠느냐는 것이다. 차 자체의 경쟁력도 중요하지만 '어디서 만든 자동차'냐는 것은 소비자의 선택권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현대는 제네시스 앰블렘을 최대한 활용 해 고급 이미지를 부여하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현대차라는 딱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또 고급 브랜드를 만들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기술력을 과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이것을 최대한 홍보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다.

 

토요타가 렉서스라는 고급 브랜드를 통해 LFA와 같은 차를 선보였다. 팔면 손해보는 차를 내놓은 이유는 자신들의 기술력을 과시할 수 있기 때문이고, 그것이 고스란히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마케팅으로 연결이 되기 때문이다. 벤츠는 안락한 차만이 아니라 AMG와 같은 자회사를 통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스포츠카를 만든다. 아우디는 RS로, BMW는 M으로 이런 고성능 시장에서 자신들의 기술을 과시한다.

 

예전에 언급한 적 있지만 폴크스바겐 그룹은 부가티라는 괴물을 통해 기술 발전의 계속 꾀하고 있다. 여기서 언급된 존재들은 돈을 더 벌겠다는 의미 보다는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의미가 더 크다. 그렇다면 현대는 이런 극강의 기술력 보유하고 있으며, 과연 그럴 의지는 있는 것일까?

 

  사진=hyundai-genesis.eu

 

<제네시스가 달려야 할 길>

현대자동차는 전통이 깊지 않다. 하지만 전통이라는 것이 단순히 회사의 연혁이 길다고 만들어지는 것만은 아니라 생각한다. 기술을 통해, 또 다양한 문화적 활동 등을 통해, 소비자와 소통하는 과정들이 쌓이며, 비교적 짧은 기간이라도 전통의 기틀은 마련될 수 있다. 전기차 메이커 테슬라가 좋은 예다. 비록 규모 면에서 현대와 비교할 수준은 아니지만 비교적 짧은 시간에 자신들의 색깔과 가치의 틀을 잡아 놓았다.

 

좋게 생각해보자. 현대자동차가 지금껏 어떤 색깔도 갖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반대로 자신만의 가치를 얼마든지 잘 다듬어 선보일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그렇기에 제네시스를 통해 이런 현대의 방향성을 좀 더 분명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단순히 최고속도, 마력, 다양한 옵션을 내세우며 숫자 싸움만 할 거라면 현대는 프리미엄 딱지는 포기해야 할 것이다.

 

제네시스는 프리미엄 자동차가 될 수 있을까? 이전 보다 좋은 차라는 데엔 이견이 없지만, 수치 상으론 분명히 프리미엄들과 경쟁할 수준에 올라왔지만, 브랜드 가치와 대표할 수 있는 혁신적 기술, 꼼꼼한 조립과 부품의 배치, 디자인의 독자성, 그리고 소비자와의 끈끈한 소통과 교감 등, 해결하고 넘어야 할 산들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독일 프리미엄과 싸우겠노라, 우리도 그렇게 가겠노라 선언해버린 순간부터 현대자동차의 성장예찬론은 의미가 없어졌다. 이제부턴 현재 현대차 기술과 브랜드의 경쟁력으로 평가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관점에서 제네시스를 논하자면, 프리미엄 평가는 아직 이른 것이 아닌가 싶다.

 

현대는 자신들이 이뤄낸 결과물에 취해 착각을 해선 안된다. 진검승부는 지금부터다. 이제 프리미엄으로의 도전을 시작한 제네시스에겐 그래서 더 겸손이 필요한지 모른다. 자신감은 깊이 묵혀 두고 묵묵히 실력을 키워가길 바란다. 그러면 남들이 먼저 엄지손을 치켜들어 줄 날이 올지 모른다. 그 때 웃어도, 그 때 우리가 최고라고 자신해도 늦지 않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네시스에겐 참으로 어려운 길을 달려야 하는 운명이 주어진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