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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두 올드보이의 열정이 만들어낸 자동차



자동차는 기계덩어리이지만 저와 같은 이에겐 감성의 영역 안에 있는 대상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거대한, 정말 너무나도 거대한 산업의 핵심으로 자리하고 있지만 어떤 이들에게 자동차는 거대한 비즈니스의 결과물로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꿈을, 추억을, 그리고 삶을 아름답게 변주해주는 음악과 같은 대상으로 여겨지기도 하죠.

 

사실 한국에서 살 땐 지금처럼 차에 미쳐(?) 있지도 않았고, 지금 보다 훨씬 건조하고 바삐 살다 보니 자동차에서 뭔가 느끼고 말고 할 것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냉소적이기까지 했죠. 그런데 나이도 들고 자동차의 나라라는 독일에 살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차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기 시작하더군요.

 

빠르고 좋은, 세련되고 첨단의 것에만 눈이 가는 게 아니라 자동차 속에 담긴 사연이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전통이 어떻게 현재를 품고 미래를 향해 가려는지 등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평생 차와 함께 해온 소박하면서도 열정 가득한 이들의 삶을 접하며 저의 20년 후도 가끔은 그려보게 됩니다. 물론 자동차와 함께 하는 모습이겠죠.

 

오늘 소개할 자동차는 두 가지 면에서 제게 관심 있게 다가왔습니다. 하나는 차를 만든 이들의 열정이었고,  또 하나는 자동차 자체가 주는 클래식함의 매력이었습니다. 이미 외국의 자동차 소식 관심있어 하는 분들에겐 소개가 되었을  '스피드백 GT'가 그 주인공입니다.

 

 

영국 코벤트리에 자리하고 있는 '데이비드 브라운 오토모티브'는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 수제차 전문 제조업체입니다. 코벤트리하면 자동차 좋아하는 분들에겐 재규어의 본사가 있는 곳으로 잘 알려진 곳이죠. 우선 앞모습을 보면 떠오르는 게 제임스 본드의 자동차로 유명한 애스턴 마틴 DB5가 아닐까 싶어요. 독일의 자동차 매거진들도 이구동성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스타일을 보면 일단 차게 굉장히 매끄럽고 군더더기 없다는 느낌을 줍니다. 별도의 트렁크 공간 없이 납작하고 누운 뒷모양을 한 자동차를 패스트백 자동차라고 부르는데 아마 스타일을 패스트백처럼 한 것 때문에 이름을 스피드백이라고 한 게 아닌가 짐작해 봅니다.

 

애스턴 마틴 DB5. 사진=netcarshow.com

 

첫 번째 사진이 영국을 대표하는 수퍼카 애스턴 마틴의 DB5이고 나머지는 스피드백이의 사진인데, 많이 비슷합니다. 정식으로 디자인 라이센스를 받아 만든 레플리카 차량 (허가된 모조 자동차)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그러기엔 나머지 부분들은 DB5와는 다른 느낌을 줍니다. 특히 실내가 그런데요.

 

 

이 자동차 회사 홈페이지(davidbrownautomotive.com)에 가면 사진들을 내려받을 수가 있는데 아무리 뒤적여도 실내 사진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운로드할 수 있는 브로셔에 실내 이미지가 다행히 있어 조금은 보여드릴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실내의 느낌은 오히려 재규어를 더 닮아 있죠?

 

그런데 실제로 이 수제차 안에는 재규어 XK-R의 엔진이 들어가 있습니다. 5.0리터 8기통 수퍼차저로 510마력까지 힘을 내는 그런 엔진이죠. 제로백은 4.8초고 최고속도는 시속 250km/h까지 냅니다. 6단 자동변속기가 장착되었고요. 연비는 리터당 8.1km 수준입니다. 무게가 1800킬로그램인데 차의 크기를 봤더니 차폭이 굉장히 넓었습니다. 2미터가 넘더군요. 전장과 전폭만 놓고 보면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와 거의 같고, 높이는 재규어 F타입 쿠페와 비슷합니다.

 

 

스피드백 GT가 바로 며칠 전에 영국에서 정식 론칭행사를 가진 모양이더군요. 가격은 아직 공개가 안된 거 같은데, 아마 탑 마르케즈 모나코 쇼에 출품하면서 공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탑 마르케즈 모나코 쇼는 모나코에서 열리는 초호화, 최고 럭셔리 박람회 정도라고 이해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수십, 수백 억의 요트와 보석과 시계, 그리고 자동차 등의 다양한 럭셔리 제품들이 전 세계 부자들과 만나는 그런 자리죠.

 

데이빗 브라운이라는 호주인이 회사의 대표로 있는데요. 이 사람이 이 수제차 회사를 만든 이유가 재밌습니다. 자신의 자동차들이 기대만큼 튼튼하지 않고 고장이 자주 났고, 그게  짜증이 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예 본인 이름을 딴 일종의 카로체리아(자동차 공방)를 차려 본인이 원하는 그런 자동차를 만들어야겠다 마음을 먹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번에 공개한 스피드백 GT가 바로 그의 첫 번째 작품인 것이죠. 

 

데이빗 브라운 대표. 사진 데이빗브라운오토모티브 홈페이지 캡쳐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데이빗 브라운 대표의 모습인데, 스타일이나 품질, 퍼포먼스 등이 스피드백 GT 안에 다 담겨 있다는 그런 내용이 나란히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이 차를 디자인한 수석 디자이너 알란 모버리 씨가 특히 눈길을 끕니다. 그 수석 디자이너 역시 백발의, 누가 봐도 나이 지긋한 모습을 하고 있죠. 뭐랄까, 요즘 신생 제조사의 사장이나 수석 디자이너들이 비교적 젊다는 걸 생각하면, 이 두 사람의 조합은 좀 다른 느낌을 줍니다.

 

수석 디자이너가 한 이야기를 보면 이들이 어떤 차를 지향하는지 알 수 있는데요. "현대적인 GT에 클래식카의 영혼과 심장을 접목하는 것에 도전했다." 라고 했습니다.  앞서 애스턴 마틴 DB5와 닮았다고 말씀을 드렸죠. 어쩌면 이 두 사람은 어린 시절 DB5 (1962년)를 보며 자동차에 대한 꿈을 키웠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꿈을 머리가 하얗게 센 지금 이뤄낸 것이 아닐까 합니다.

 

알란 모버리 수석 디자이너. 사진=데이빗브라운오토모티브 홈페이지 캡쳐

 

돈이 많은 누군가가 만든 사치스러운 차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자신들이 꿈꾸고 원하는 차를 만들고 싶었다는 늙은 두 남자의 열정에 대한 이야기죠. 이런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반성도 하게 되고 그렇습니다. 나이 들었다는 것이 꿈과 열정까지 노쇠하게 만드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특히 수석디자이너 이 분은 재규어 랜드로버 좋아하는 분들은 기억할 수 있는 디자이너죠. 1985년부터 20년 가까이 재규어 랜드로버의 수석 디자이너 자리를 지켰으니까요.

 

알란 모버리가 디자인한 것으로 알려진 컨셉카 XJ220의 모습. 1992년형 모델. 사진=netcarshow.com

 

1978년에 이미 푸조시트로엥에서 수석디자이너 생활을 시작했으니까 대충 연령대가 짐작이 되실 겁니다. 속된 말로 한물 갔다고 할 수 있는 이런 디자이너에게 손을 내민 데이빗 브라운 사장도 멋지고, 그와 함께 클래식 카의 아름다움을 되살려낸 디자이너도 멋있습니다. 이들에게 스피드백 GT는 과거와 현재를 오롯하게 담아낸 소중한 그릇일 겁니다. 올드보이들이 만들어낸 멋지 수제차 스피드백 GT. 이거 좀 잘 됐으면 좋겠어요. 더불어, 수석디자이너의 연륜이 가득한 또 다른 차를 만날 수 있길 바라겠습니다.

 

꼭 이렇게 화려하지 않아도 자동차와 함께 멋지게 늙어가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볼 수 있습니다. 허름하고 작은 차고 안에 다 썩은 차를 사다 놓고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시간 날 때 마다 고치고 닦으며 자신만의 차를 만들어가는 사람. 또 은퇴하고 스페인의 따뜻한 섬에서 자신의 차고에 정비 장비를 갖추고 오래된 벤츠만 고쳐주는 어느 할아버지의 이야기. 손자와 함께 타고 싶어 50년 전 마이크로버스를 고치고 또 고쳤다는 어느 노인의 따뜻한 이야기까지.

 

세상의 중심에서 벗어난 OB가 되어도, 차에 대한 열정과 애정만큼은 지금처럼 팔팔할 수 있었음 좋겠습니다. 이 뜨거움은 꼭 돈이 많아야만  얻을 수 있는 건 아니겠죠? 우리 모두 그렇게 나이들어갔음 합니다. 멋진 하루 되세요~

 

 

스피드백 GT 사진들=davidbrownautomotiv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