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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이기적인 자동차의 이타적인 안전장치들



자동차를 이기적이라고 표현하니까 좀 그렇죠? 차라는 건 따지고 보면 운전자와 동승자를 위해 존재하는 사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를 어딘가로 데려다 주고, 좀 더 편안하게 데려다 주고, 또 갈수록 더 안전하게 모시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거기다 요즘은 환경을 생각하라고 주변에서 하도 그러니까, 뿜어내는 배설물(배기가스를 오늘은 이렇게 부르기로 하겠습니다.) 까지 청정하게 만들려 신경을 쓰고 있네요.

 

이쯤 되면 고마운 녀석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주인님 다칠까 옥이야 금이야 난리도 아니죠. 갖가지 안전기능들을 주렁주렁 달고 나와 믿음직한 존재임을 강조합니다. 이러다 보니 자동차가 자기만 알고, 자기 주인만 챙기는 물건 아니냐는 비판의 소리들도 덩달아 커졌습니다. 특히 보행자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불만이었죠. SUV 같은 덩치가 큰 차들을 생각해 보세요. 차주는 좋을지 몰라도 보행자에겐 위협적인 크기와 구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소리들이 자극이 되었을까요? 자동차가 바뀌기 시작합니다. 점점 다른 사람들의 안전까지도 고려를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최근들어 이런 움직임은 더욱 커졌습니다. 유로NCAP이 실시하는 충돌 테스트 같은 것 보세요. 보행자 부분을 핵심 항목으로 넣어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미국 같은 나라도 갖가지 법률적 장치를 통해 "보행자 보호 못하면 늬들 장사할 생각 하지 말아."라고까지 합니다. 이제 차는 자신만이 아닌 남까지 고려를 해야 살아남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남까지 배려하는 자동차의 기술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현재 적용되고 있는 핵심적인 몇 가지 장치들을 통해 차가 어떻게 이타적인 대상으로 변해가고 있는지 가볍게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액티브 후드 리프팅 시스템

재규어 XK. 사진=netcarshow.com

 

위에 사진은 재규어 브랜드의 XF 2006년형 모델입니다. 일단 제가 알고 있는 바에 따르면, 2005년 재규어가 최초로 이 차량에 보행자를 위한 독특한 안전장치인 PDBS(Pedestrian Deployable Bonnet System)이라는 걸 장착하게 됩니다. 흔히 액티브 후드 리프팅 시스템이라고 불리는데요. 쉽게 말씀드리면 보행차가 차에 부딪혀 차량 본닛 위로 떨어질 때 그 충격을 감소시키기 위해 후드(혹은 본닛)가 10센티 이상 들리게 됩니다. 완충작용을 한다는 거죠.

 

최근에 한국에서도 제네시스가 이 기능을 국내 최초로 장착을 했다고 합니다.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현대가 유럽 수출용 싼타페에도 이 액티브 후드 시스템을 이미 적용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유는 유럽충돌테스트 때문이었죠. 어쨌든 당시 포드에 속해 있던 재규어에 이 기능이 달린 후 닛산도 2008년부터 적용을 하기 시작했고, 그 외에 다수의 회사들이 차량들에 적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능이 달린 시기가 중요합니다. 사실 보행자 보호는 1970년대 말부터 구체적으로 논의가 시작됐고 미국 주도로 범국가적인 보행자 안전 연구가 본격화 되었습니다. 하지만 80년대 후반까지 거의 십여 년을 구체적인 결과물을 내놓지 못한 채 넘어가게 됩니다. 그러다 유럽에서 1987년 경에 보행자 안전 위원회가 설립되고, 여기서 실행 그룹이 다시 조직돼 실질적으로 보행자 안전과 관련한 규칙의 기초를 다지게 됩니다.

 

2003년에 이르러서야 보행자를 보호하는 안전기준이 제정되었고, 2005년부터 이를 단계적으로 시행하기에 이릅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유로NCAP의 보행자 충돌 테스트인 것이죠. 그리고 이제는 국제 안전기술 규정 안에 보행자 안전규정이 자리를 하면서 이를 주요국들은 엄격하게 지키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니까 재규어의 PDBS는 이런 안전기준 강화가 본격화 된 시점에 나온 기술이었던 것인데요. 만약 규정이 더 늦어졌더라면 이런 기술도 더 늦게 출현했을지도 모릅니다.

 

 

 

▼ 보행자 보호 에어백

V40. 사진=볼보코리아

 

위에 보이는 자동차는 2012년에 출시된 볼보의 준중형 해치백 모델 V40입니다. 이 차가 특히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건 적용된 안전기술 한가지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보행자 보호 에어백 (Pedestrian Protection Airbag)이었죠.

 

보행자 에어백 이미지. 사진=볼보코리아

 

쉽게 설명드리면, 앞서 말씀드린 본닛이 들리는 기능에 에어백이 터지는 기술을 접목을 한 것이 바로 볼보의 보행자 에어백입니다. 이 에어백이 등장하게 된 이유는, 차량과 사람의 충돌사고가 일어났을 때 사망에 이르는 경우는 대체로 머리에 가해지는 충격에 의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머리는 본닛이나 A필러, 앞유리 하단부에 주로 부딪히게 된다고 하는군요. 이러한 자료에 근거해 볼보가 절묘한 곳에 에어백을 장착해버린 거죠.

 

에어백에 관해선 볼보가 일가견이 있는 회삽니다. 사이드 에어백, 커튼 에어백 이런 거 다 볼보가 최초로 적용한 기술이거든요. 반응이 대단히 좋았지만 최근에 볼보는 이 기술을 다른 차량들에는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고 하네요. SUV와 같은 높은 차량에선 효과가 없고, 이 보다는 좀 더 적극적인 안전 기술을 적용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을 한 것입니다. 이 기술이 얼마나 효율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발상을 하고, 이걸 실현해서 제품화하는 그런 기업의 마인드가 아닐까 합니다.

 

 

 

▼ 액티브 세이프티 (active safety)

보행자 및 자전거 인식 자동 브레이크 시스템. 사진=볼보

프리 세이프 기능 시연 중인 E클래스. 사진=다임러

 

이제 자동차는 부딪혔을 때의 상황을 최소화 하는 것에서 만족하지 않고 아예 미연에 충돌을 방지하는 단계에까지 현재 기술이 올라섰습니다. '미리 충돌을 방지한다'는 의미의 능동적 안전장치를 흔히 액티브 세이프티라고 부르는데요. 벤츠는 '프리 세이프', 토요타는 '프리 콜리전 시스템', 볼보는 '시티 세이프티 시스템' 등으로 각 회사들 마다 다르게 명칭을 붙였습니다.

 

사실 이 액티브 세이프티라는 개념은 2002년 모터쇼에서 벤츠가 S클래스에 적용한 프리 세이프 브레이크 시스템에서부터 시작을 한다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차가 충돌을 감지하면 열린 창문을 닫고, 썬루프도 닫고, 안전벨트가 탱탱하게 당겨지면서 차량 탑승자의 위험을 자동으로 최소화키죠. 최근 출시된 벤츠의 프리 세이프 기능은 여기서 계속 발전을 시켜서 이젠 보행자를 감지하고 급정거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보행자를 대상으로 한 충돌 예방 시스템은 렉서스가 먼저 실현시켰죠. 프리 콜리전 시스템이라고 해서 2006년 렉서스 LS 4세대 모델에 장착이 됐습니다. 시속 80km/h에서도 작동을 하고, 아예 운전대가 알아서 돌아가 사람을 피해 멈추는 더 발전된 기능에까지 이르렀습니다. 토요타 측에선 내년엔 보다 저렴한 차량에도 장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유럽은 앞으로 강제 적용인지라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어쨌든 이렇게 발전된 액티브 세이프티 기술은 2009년 볼보에 의해 극대화 되죠. 볼보의 중형 S60과 XC60과 같은 SUV에 적용이 된 이 기술은 보행자와 자전거까지 인식하는 진일보된 기술력을 자랑합니다. 흔히 시티 세이프티 기술이라고 하는데, 좀 더 자세하게 표현하면 '보행자 및 자전거 인식 자동 제동장치'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사람만이 아니라 자전거까지도 이제 식별을 하게 된 것이죠. 한 때 오작동 해프닝도 있었고, 또 다른 회사들에 비해 저속 (35km/h)에서 적용 가능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여전히 볼보의 안전에 대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이라 평가할 수 있을 거 같네요. (다행스럽게도 최근엔 35km/h에서 50km/h의 속도까지 제동범위가 올랐다고 합니다.)

 

 

 

▼ 후방 카메라

인피니티 JX의 후방카메라및 어라운드뷰. 사진=롱버텀님 제공

 

요즘 자동차 중앙, 그러니까 센터페시아에는 멀티미디어용 버튼들이 즐비하게 달라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센터페시아의 그 핵심은 모니터가 되고 있습니다. 이 모니터는 인터넷과 연결되면 컴퓨터 모니터로 변신하고, 길안내를 할 땐 내비게이션이 되어 줍니다. 그 외에도 차량의 정보나 음악과 동영상을 듣고 볼 수 있게 해주고 있죠.  그 중에서 요즘 각광받는 게 있는데요. 차의 앞과 뒤를 확인할 수 있는 전후방 카메라의 화면 역할을 한다는 겁니다.

 

후방카메라는 후진 시 시야가 가려지는 곳을 카메라를 통해 볼 수 있게끔 해주는 역할을 하죠. 화면에는 표시선까지 있어서 정확하게 주정차를 하거나 주차 상태에서 빠져나오게 도와줍니다. 그래서 주차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겐 상당히 도움이 되는 장치인데요. 하지만 이 후방 카메라는 보행자의 안전에 더 의미를 둘 수 있는 시스템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국 같은 곳에선 후진하는 차량에 치어 사망하는 어린이들의 숫자가 상당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예 이 후방카메라를 모든 차에 의무적으로 장착을 하게끔 하겠다고 법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최근 어린이집 차량들에 이 후방카메라를 의무적으로 설치하게끔 했습니다. 비용이 좀 들기는 하겠지만 애들의 안전을 비용과 비교할 순 없겠죠?

 

특히 요즘은 단순히 앞과 뒤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전후좌우 360도 상황을 모두 읽고 그걸 보여주는 어라운드 뷰 기능까지 더해져 더 안전하게 주변 상황을 살필 수 있게 됐습니다. 흔히 버드 뷰, 부감 등으로 표현하는데요. 마치 하늘에서 내 차 주변을 내려다 보게 해주기 때문에 좀 더 입체적으로 주변 상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기 타

벤츠의 어댑티브 하이빔 어시스트 시스템. 사진=다임러

 

앞에 소개해드린 것들 외에도 여러 기능들이 보행자를 보호하기 위해 준비돼 있는데요. 가장 기본적인 것은 역시 가장 먼저 보행자가 닿게 되는 범퍼입니다. 범퍼의 기능과 소재를 보행자 보호에 최적화시키고 있습니다. 아예 차량의 각진 부분을 없애고 있고요. 옛날에 캥거루 범퍼라고 해서 SUV에 추가로 달렸던 쇠막대기들(?)은 이제 아무도 달지 않게 됐습니다. 거기다 차량 엔진 덮개 (후드)의 구조도 그물망 형태, 멀티콘 형태를 취해서 사람의 충격을 흡수하는 쪽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지난 번 포스팅에서도 언급이 된 헤드램프의 발전도 보행자의 안전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커브라이트나 나이트 비전처럼 잘 안보이는 각도에 있는, 잘 드러나지 않던 사람과 동물을 자동차가 인식해 비춰주는 것입니다. BMW나 아우디의 매트릭스 LED 램프 등은 아예 보행자에게 경고 신호까지 보내는 단계까지 발전을 하기에 이르렀죠. 

 

앞으로는 지금까지의 기술들이 더 다듬어지고, 없던 기술이 새롭게 적용이 될 겁니다. 요즘 한창 개발 중인 차량과 차량의 정보교환 시스템에는 보행자의 휴대폰 신호를 인식해 주변에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미리 파악하고 대처는 기능도 담길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자동차는 갈수록 첨단 기술을 품고 달려가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비용일 거예요. 옛날에 안전벨트의 개념이 없던 시절에는 안전벨트가 차량 가격을 올리기만 할 뿐 효과도 없다고 소비자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괜히 운전자를 불편하게 만들고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어 있는 느낌을 준다나 어쨌다나요.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안전벨트가 차량 가격을 높이는 물건쯤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지금 적용되고 있는 보행자 안전과 관련한 기술비용도 이런 관점에서 생각을 하면 어떨까 합니다. 내 자신은 물론, 나의 가족과 이웃 모두 차에서 내리면 그 순간부터 보행자 아니겠어요? 앞으로 관련 기술이 어디까지 발전할지 지켜보는 것도 무척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점 잊지 말아야 할 겁니다. 운전자 자신이 보행자 안전을 위한 최고 장치이라는 것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