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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럭셔리 SUV 베라크루즈, 이대로 버려지나?


 

어제 포스팅을 통해 밝힌 것처럼, 이번 주는 현대차 특집(?)으로 꾸미고 있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순서인데요. 현대자동차를 대표하는 대형 SUV 베라크루즈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얼마 전 무심코 ix55에 대한 자료를 보려고 현대차 독일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습니다. ix55는 베라크루즈의 유럽식 이름이죠. 그런데 홈페이지 신모델 카테고리에서 ix55를 찾을 수가 없더군요. '계속 있었던 거 같은데...' 고개를 갸웃하며 이웃한 영국 현대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더니 역시나 거기서도 ix55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 현대 독일 홈페이지 캡쳐 화면(ix55가 없다)

 

현대 영국 홈페이지 캡쳐 화면

↑ 현대 영국 홈페이지 화면 캡쳐 (역시 ix55가 없다)

 

 현대 한국 홈페이지 화면 캡쳐

 

아무래도 언제, 왜, 이 대형 SUV가 유럽시장에서 조용히 사라졌는지 알아 봐야 할 거 같아 좀 뒤적여 봤습니다. 2013년 2분기부터 독일 판매 카타로그에서 빠졌더군요. 왜 이렇게 자신들의 대표 SUV를 판매 중단한 걸까요? 인터넷에서 관련된 내용을 검색해 보니, 신형 싼타페의 7인승 버젼인 그랜드 산타페 (한국명 맥스크루즈)를 유럽에 들여오면서 일종의 선수교대를 한 것이더군요. 그런데 결론부터 먼저 말씀드리면요. 저는 좀 황당하기도 하고 뭔지 모를 괜한 배신감 같은 걸 느꼈습니다.

 

럭셔리 SUV 베라크루즈 등장

유럽엔 ix55로 수출

 

2006년에 출시된 모델이니까 상당히 오랫동안 세대 변경 없이 이어져 오고 있는 모노코크 바디의 SUV가 베라크루즈입니다. 모노코크라는 건 차의 몸체와 하체가 모두 하나의 구조 안에 담겨 있는, 그러니까 승용차와 같은 형태의 자동차를 이야기하는 건데요. 공간과 승차감을 위해 선택한 모노코크 바디의 베라크루즈는 고급스러운 도심형 SUV라는 의미에서 LUV (Luxury Utility Vehicle)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렉스턴이 한국에서 나름 고급스러움으로 성적을 내고 있을 무렵 베라크루즈가 떡하니 출시되면서 식은땀깨나 흘렸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2008년인가 아마 그랬을 겁니다. 파리모터쇼에 출품하고, 이듬해부터 유럽에 ix55라는 이름으로 수출을 하게 되었죠. 차의 성능 얘기는 차치하고라도 일단 현대도 이런 도심형 럭셔리급 SUV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는 점에서 나름 의미있는 시도였다 봅니다.

 

그런데 일단 유럽엔 너무 강한 경쟁자들이 많았습니다. BMW X5, 아우디 Q7, 메르세데스 ML 뿐 아니라 폴크스바겐 투아렉까지. 거기다 일본엔 렉서스 RX가 버티고 있고 닛산은 패스파인더라는, 베라크루즈처럼 독특한 7인승이 가능한 모델까지 경쟁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죠. 미국에선 말할 것도 없이 더 많은 모델들과 경쟁을 펼쳤으리라 봅니다.

 

*어떻게 비싼 독일의 SUV와 비교를 하나요? 라고 물을 수 있겠지만 여기선 별도로 럭셔리급을 따로 나누지 않기 때문에 그냥 가져다 붙입니다. 그래서 비교테스트도 막 뒤섞여 받죠. 그냥 있는 그대로 평가될 뿐입니다.

 

베라크루즈의 옆모습은 군더더기 하나 없이, 질리지 않으면서도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어쨌든 수출차량이긴 했지만 가격 경쟁력은 충분히 있던 모델이었습니다. 3.0리터급 V6 디젤엔진 딱 하나가 들어와 판매가 됐는데요. 기본가가 44,630유로 정도였습니다. BMW X5 3.0리터급 디젤 모델이 57,290유로, 아우디 Q7가 55,550유로 수준이니까 1500만원에서 2천만 원 사이에서 가격 차이가 발생하는 정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닛산 패스파인더도 55,230유로니까, 한국에서만큼의 차이는 아니지만 이 정도면 유럽인들에겐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이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었죠.

 

특히 독일차들은 옵션을 더하다 보면 베라크루즈와의 가격 차이는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 그리고 5년 무상보증, 거기에 7인승이라는 경쟁력 등은 분명 경쟁을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분위기는 된다 봤습니다. 그런데 판매량은 신통치 않았습니다. 제대로 마케팅 지원도 못 받은 것으로 보였고요, 또 현대가 내놓은 럭셔리 SUV라는 브랜드 이미지 탓에 더 관심을 끌지 못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브랜드 이미지에서 손해,

전문지들의 성능 평가 역시

 

거기다 베라크루즈에 대한 전문지들의 평가는 썩 좋은 편은 못 됐습니다. 승차감이나 공간(7인승이라는 이점)에 대해서는 좋은 평도 있었지만 제동력과 주행 안전성과 조향능력 등에서는 안 좋은 평을 들어야 했습니다.

 

아우토모토운트슈포트의 평가는, 박하네요. 별 세개라니... 연비 받아들일만 하고, 안락함도 있지만 제동력과 하체의 약함, 그리고 조향성이 떨어져 SUV 톱 리그에는 들지 못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아우토뉴스는 별 네개를 줬습니다. 기술로 승부를 보는 차는 아니라는 것이 이 잡지의 평가였는데요. 역시 7인승이라는 특이점과 저렴한 가격이 장점이라고 했고, 디젤 연비도 나쁜 수준은 아니었고 다양한 활용도와 풍부한 기본사양 기능들을 역시 장점으로 꼽았습니다. 하지만 6단 자동변속기와 좋지 못한 주행성은 단점으로 지적을 했네요.

 

 

아우토차이퉁의 벤츠 M클래스, 랜드로버 디스커버리와의 비교테스트 내용입니다. 차체비교는 비교적 선방(?)을 했다고 볼 수 있는데요. 붉은색 표시된 차체 안전성에선 점수를 많이 까먹었지만 품질이나 마감에선 그래도 견줄만한 결과를 얻기도 했습니다.

안락함 항목입니다. 붉은 표시는 배점이 가장 높은 서스펜션 항목인데 생각보다는(?) 큰 차이가 안 났습니다.

주행성항목입니다. 파란색은 핸들링, 슬라롬, 조향성 등을 평가한 건데 항목에 따라 좋은 평가를 얻기도 했네요. 다만 6점 받은 제동력과 118점의 주행 안전성 등은 아쉬운 대목입니다

 

이런 평가는 가격의 장점을 가지고 있는 베라크루즈였지만 극복이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2012년 기준으로 독일 내에서 총 326대가 팔려 가장 안 팔린 모델 50위 안에 이름을 올리고 말았으니까요. 사실 고급 SUV를 원하는 소비자에겐 가격도 가격이지만 브랜드를 고급스럽게 소비하고자 하는 욕구와 성능에 대한 기대치를 만족시켜주지 못하면 다양한 차종이 경쟁하는 시장에선 살아남기 어렵다는 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죠. 

 

산타페 신형 등장

그리고 산타페 롱바디로 대체된 굴욕

 

이처럼 판매가 시원치 않자 현대차는  유럽에 들여온 지 4년 만에 베라크루즈, 아니 ix55를 더이상 팔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런 결정을 과감하게(?) 내릴 수 있었던 배경엔 산타페의 롱바디 버젼인 그랜드 산타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실제로 차의 길이만 놓고 보면 오히려 베라크루즈 보다 그랜드 산타페가 조금 더 깁니다.

 

베라크루즈 전장 : 4840mm

그랜드 산타페 전장 : 4915mm

 

하지만 이런 전략은  그닥 좋은 모습은 아니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차의 길이를 제외하면 무게나 차폭 등, 안전과 관련한 부분은 모두 베라크루즈가 더 낫고, 무엇보다 6기통과 4기통의 엔진 사이즈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정적으로, 아래급의 롱바디 버젼으로 상위 럭셔리 SUV의 자리를 대체한다는 게 과연 설득력이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예를 들어 BMW가 X3에 롱바디 버젼을 만들었다고 그게 X5를 대체할 수 있는 건 아니잖습니까? 또 앞서 닛산이란 일본 브랜드를 이야기해드렸습니다만, 투산급인 콰시콰이, 산타페급인 무라노, 베라크루즈급인 패스파인더가 여전히 영역을 구분해서 판매를 하고 있다는 점도 현대는 생각을 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세계시장에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베라크루즈

세그먼트별로 SUV를 구축하는 흐름

 

현재 베라크루즈는 일부 지역에서는 판매가 계속되고 있지만 또 많은 지역에서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중동에선 판매가 되고 있지만 유럽에선 철수해버렸고, 필리핀에선 판매를 하지만 말레이시자에선 더 이상 만날 수 없습니다. 물론 미국에선 일찌감치 판매를 접었고, 이제 국내에서 그나마 자신들의 플래그십 SUV를 판매하는 것으로 베라크루즈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죠.

 

2006년 첫 선을 보였으니 이제 이 차가 나온 지 8년이 지났네요. 이쯤되면 보통 후속 모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현대차는 베라크루즈 후속 모델을 만든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예상도나 출시 계획 등을 소개하는 해외 매체들 또한 잠잠할 뿐입니다. 

 

사실 요즘 현대차의 분위기를 보면, 독일에서 지적받은 안정성이나 조향성, 제동력은 충분히 개선이 가능한 부분입니다. 제네시스나 쏘나타에 들인 노력과 결과를 생각하면 더 분명해지죠. 그러니 2세대 베라크루즈는 이런 단점들을 보강해 내놓을 수 있음에도 왜 아직 아무런 이야기가 없는지 궁금할 뿐입니다. SUV들도 세단처럼 각 세그먼트별로 촘촘하게 라인업을 짜는 것이 요즘 하나의 흐름인데요.

 

폴크스바겐만 해도 티구안과 투아렉으로만 버티고 있지만 폴로 SUV(소형), 타이군 (경차급), 또 티구안과 투아렉의 간극을 메우려는 SUV 등을 준비하고 있거든요. BMW나 아우디처럼 쿠페형 모델을 내놓으란 얘기까진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멀쩡하게 있는 대형 SUV에 대해 현대차가 너무 무관심한 것이 아니냐는 불만은 나올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현대는 유럽에 판매하는 차량을 크게 두 가지로 이름을 분류해놓고 있습니다.

세단 및 해치백 : i 시리즈

SUV : ix

하지만 ix35 (투산), ix55 (베라크루즈) 만 그 원칙을 따르고 산타페는 ix45가 아닌 산타페로 판매를 하고 있죠. 이제 ix55조차 사라졌으니 ix35 하나만 남았습니다. 그나마  ix25라는 투산 아래급 소형 SUV를 투입할 예정이라지만  어금니 하나 쑥 빠진 것같은 허전함은 어쩔 수가 없네요.

 

대형 SUV에 신경을 쓰는가?

현대의 비젼 제시가 필요할 때

 

기아엔 모하비라는 괜찮은 프레임 SUV가 있죠. 이 녀석이 왜 유럽에 안 들어왔는지 그게 참 아쉽습니다. 그리고 이젠 그 중요하다는 미국 시장에서조차 모하비와 베라크루즈 모두 철수한 상태입니다. 현대기아차가 정말 고급화를 생각하고 있다면, 이런 럭셔리 SUV에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봅니다. 괜히 고급화한다고 국내에서 엄한 작은 차들 가격만 올릴 게 아니라, 누구나 인정하는 럭셔리 SUV 제대로 만들어 그에 맞는 가격을 받으란 얘기지요.

 

소리소문없이 사라져가고 있는 베라크루즈. 과연 더 좋아진 베라크루즈 2세대 풀체인지 모델을 만날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다시 유럽시장을 찾아와 "우리 이만큼 성장하고 발전했소이다" 라고 자랑을 좀 해보시기 바랍니다. 자신들을 대표하는 대형 SUV 하나 제대로 관리 안하고 홀대해서야 현대차가 바라는 고급시장으로의 진출이 제대로 될 수 있을까요? 현대의 SUV에 대한 청사진을 보여주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청사진 안에 베라크루즈가 당당히 자리하길 바랍니다.

 

베라크루즈 사진=favcar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