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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독과점 자동차 기업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

지난 주 '그것이 알고 싶다' 에서 자동차 급발진 관련한 내용이 다뤄졌다는 몇몇 제보(?) 덕에 방송을 보게 됐습니다.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 뿐 아니라, 제조사의 대응태도에 분노까지 일더군요.

하지만 과연 분노한다고 해서, 그런 시청자 후기들이 쏟아져 나온다고 해서 과연 제조사들이 급발진과 관련해 능동적 대처로 돌아설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급발진 사건을 규명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는 EDR(사고기록장치)을 현재로선 제조사가 스스로 공개하지 않는 이상 운전자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나마 계속되는 급발진 추정사건 동영상이 퍼져나가자 부담을 느낀 정부가 합동조사단을 꾸려 6개 사례에 대해 EDR을 체크하는 등, 사건 규명을 해보겠다고 한 상태입니다. 또 이와 관련해 법적 제도를 만들 수 있다는 뉘앙스의 발언까지, 그래도 어느 정도 진전이 된 상태더군요.

그런데 자동차가 생필품이 된 시대, 자동차 소비와 생산에서 세계적 시장이 된 대한민국을 생각하면, 우리나라는 너무나 자동차 관련 법규와 제도가 허술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에어백의 경우, 현기차는 한국에선 디파워드 에어백을 쓰지만 미국에선 스마트 에어백을 씁니다.

이건 미국 소비자들이 더 이뻐서가 아니라 그 나라 법규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죠. 제가 사는 유럽도 법규가 미국처럼 안되어 있어서 그냥 디파워드 에어백이 장착된다고 하더군요. 레몬법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차가 고장이 났는데, 일정기간 제조사가 그 고장의 원인을 3회 안에 밝혀내지 못하면 차를 바꿔주든가, 변호사 비용 포함 일체의 금액을 고객에게 돌려주도록 미국은 레몬법이란 이름으로 정해놓았습니다. 이게 생각만큼 쉽지 않고 까다롭긴 하지만 어쨌든 법으로 정해놓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싸울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우린 그런 법이 없습니다. 없다보니 제조사가 고장을 규명하는 게 아니라, 소비자가 왜 이차가 문제인지를 규명해야만 하는 반대의 상황에 놓인 것입니다. EDR 제출도 법적으로 강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제조사는 그걸 내놓지 않아도 되게 되어 있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법을 잘못 정해놓으면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건데요. 요즘 가장 많이 얘기 되는 게 운전면허 간소화입니다. 이거 뭐 하도 논란이 일자 정부에선 도로주행을 어렵게 하겠다고 보완책을 내놨는데, 면허교육 자체가 기본이 안되어 있는데 현장 테스트를 어떻게 보강하겠다는 건지. 참 답답한 노릇입니다.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제조사 욕할 필요 없다는 겁니다. 법적으로 소비자의 합리적 권리만 보장된다면 모든 건 그것에 근거해버리면 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우린 법을 잘 만들어달라. 필요하다. 요런 얘기들까지 하곤 대체적으로 끝이 납니다. 사실 그렇게밖에 현실적으론 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끝나선 안됩니다.

정작 중요한 건 지금부터라고 봐요. 꼼짝도 안하는 독과점 자동차 회사를 움직이는 힘, 그들이 어쩌지 못하게 하는 힘은 법입니다. 그런데 이 법이라는 게 그냥 만들어지나요? 그냥 에어백 관련 기사 나오고, 소비자들 불만 계속 나오면 언젠간 법으로 이런 억울함을 해소할 수 있겠지...설마 이런 걸 기대하는 건 아니겠죠?

저는 제도를 만드는 건 행정부나 입법부의 몫이긴 하지만 이런 자들이 움직이기 위해선 강력한 소비자의 힘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여기서 말하는 소비자의 힘은, 포털뉴스에 댓글 수백개 씩 달리고, 아고라나 몇몇 커뮤니티에서 입에 거품물고 비판을 하는 등의 개념이 아닙니다.

우리도 이젠  입법기관을 움직여 실질적으로 법이 제정되게 하기 위한 강력한 소비자단체가 출현해야 하는 거죠. 이게 그냥 몇 만명 수준의 단체가 아니구요. 적어도 수십만 명에서 수백만 명의 회원들이 있는 그런 단체 말입니다. 독일의 아데아체처럼 1800만 명까진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 보다 적은 수라도 얼마든지 정치인들이나 공무원들에게 소비자의 요구를 합당하게 할 수 있을 겁니다. 나 혼자, "너무 한 거 아냐?" 라고 얘기해 봐야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것밖에 되지 않지만 "이건 잘못된 거잖아요?" 라는 얘기를 수백만 명이 한 방향에서 하게 된다면 이건 힘이 됩니다.

우린 자동차 타고 다니고, 가끔 뉴스 보면서 혀차고 말지만 내가 정작 그 문제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잘 못합니다. 보다 나은 환경, 보다 안전하고 효율적인 도로문화는 공무원이나 국회의원의 자발적 봉사정신에 기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변화를 이끄는 것은 결국 많인 이들이 한목소리를 낼 때에야 가능해지는 것이죠.

한국의 아데아체가 되길 바란다며 더모터스타를 시작하긴 했지만, 어디서 누군가 훨씬 더 나은 방법과 길을 제시한다면 저도 기꺼이 동참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러하셨음 합니다. 그리고 목소리를 모으십시오. 그런 다음 강하게 주장하세요. 이것이 법을 만드는 힘이 되고, 그렇게 좋은 제도를 마련함으로써 독과점 기업의 횡포(?)도 개선시킬 수 있습니다.

나의 운전환경, 도로환경 뿐 아니라 우리의 아이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자동차를 누리고 즐길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라도 여러분은 이런 논의에 한발 더 나아가셔야 합니다. 조금만 더 마음과 귀를 열어보세요. 그렇게 힘을 모으는 것만이 길입니다.

(더모터스타에 "현대자동차에 정말로 필요한 건 뭐?" 라는 글 하나 올렸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주소 클릭하시면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themotorstar.com/column/column_view.asp?bid=halo&idx=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