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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잘 팔린다는 팰리세이드, 텔루라이드 '왜 유럽에선 안 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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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와 기아에서 만든 SUV 팰리세이드와 텔루라이드가 국내와 북미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습니다. 팰리세이드는 한국에서 출시 초기 계약을 하면 수개월을 기다려 차를 받을 정도인, 한 마디로 없어서 못 파는 차였죠. 지금도 여전히 대기 시간이 길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팰리세이드 / 사진=현대자동차

텔루라이드는 미국에서 올해의 북미 차에 뽑히면서 기대감을 더 높였죠. 그런데 처음엔 판매가 예상보다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해가 바뀌면서 판매량이 크게 뛰었습니다. 카세일즈베이스닷컴의 통계 자료를 보면 미국에서 올 1~3분기 동안 팔린 중형(midsized) SUV 중 팰리세이드가 59,827대로 11, 텔루라이드가 46,835대가 팔려 14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 카테고리에 포함된 게 44개 모델이니까 나쁜 순위가 결코 아닙니다.

포드 익스플로러(160,209), 지프 그랜드 체로키(152,856), 토요타 하이랜더(141,301) , 압도적 판매량을 보인 모델들을 제외하면 상당히 좋은 성적을 보인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전장 5m 전후 모델들만 놓고 보면 팰리세이드보다 앞서 있는 것은 포드 익스플로러, 토요타 하이랜더, 혼다 파일럿, 쉐보레 트래버스 정도뿐입니다. 무엇보다 전년에 비해 판매량 상승률이 상당해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할 수 있습니다

텔루라이드 / 사진=기아

이처럼 전장 5m 전후의 한국산 SUV가 한국은 물론 미국에서 선전을 하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궁금증이 생길 법합니다. ‘그렇다면 유럽 시장에선?’ 우리가 흔히 유럽이라 부르는 EU 27개국과 EU 탈퇴한 영국, 그리고 노르웨이, 스위스, 아이슬란드 등 유럽자유무역연합(EFTA)국의 신차 시장 규모는 연간 약 1 6백만 대 수준으로 1 7백만 대를 조금 웃도는 미국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당연히 완성차 업체로선 놓칠 수 없는 곳이겠죠? 하지만 현대나 기아 모두 팰리세이드와 텔루라이드를 유럽에 팔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까지는요.

, 텔루라이드는 북미 전용 모델(전용 모델이라는 소식은 제가 가장 먼저 전했을 겁니다)이라고 했으니 유럽에 들여오지 않는다고 해도 이해가 되지만 왜 팰리세이드까지 유럽 판매 소식은 없는 걸까요? 차에 관심이 많은 분이야 ~ 이러저러한 이유로 인해 유럽과 안 맞을 겁니다.”라고 추측할 수 있겠지만 일반적 관점에서는 왜 그런지 쉽게 짐작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유럽에서 국산 대형 SUV가 왜 아직 판매되지 않는지, 그 이유에 대해 간단히 정리해 봤습니다.


좁은 도로에 어울리지 않아서?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유럽의 도로 여건이 아닐까 합니다. 미국이나 한국과 달리 유럽은 좁은 도로가 많고, 따라서 이런 도로에 어울리지 않는 큰 덩치 때문에 팰리세이드, 또는 텔루라이드가 판매가 안 된다고 추측해보게 됩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함부르크 시내 / 사진=이완

제가 사는 독일은 물론 유럽 여러 곳에서 운전해 본 경험에 비춰보면 5m 전후의 SUV가 못 다닐 만한 곳은 오히려 손에 꼽힐 정도이고, 대부분의 도로는 이 정도 크기의 차를 수용할 수 있습니다. 독일의 아우토반이나 프랑스, 스위스, 네덜란드 등의 고속도로는 오히려 좋은 토목 기술과 운전자들의 약속된 운전법 덕분에 편하게 장거리 주행이 가능하죠. 그러니 도로 상황과 연결 짓는 것은 큰 의미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SUV=럭셔리라는 인식

그보다 더 현실적인 이유라 한다면 유럽에서 팔리는 대형 SUV 종류가 미국과 비교해 적고 비싼 것들만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한국이나 미국, 또는 일본 브랜드가 판매량을 견인하는 미국 시장과는 달리, 유럽에는 이 세 지역에서 만든 대형 SUV가 없습니다. 포드 익스플로러를 제외하면 몇 안 되는 전장 5m 수준, 혹은 5m 이상의 SUV는 모두 값비싼 유럽 프리미엄이나 럭셔리 브랜드뿐입니다.

애스턴 마틴 DBX, 아우디 A7, 벤틀리 벤테이가, BMW X7, 메르세데스 GLS, 레인지로버, 마세라티 르반떼, 렉서스 RXL.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이처럼 억 소리 나는 것들입니다. 이 외의 모델들 역시 유럽 시장용 대형 SUV는 모두 고가 모델들뿐입니다. 자연스럽게 유럽에서 대형 SUV는 럭셔리라는 인식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물론 이들을 제외한 양산 브랜드 대형 SUV가 유럽에서 판매 안 되었던 것은 아니지만 의미를 부여할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어쨌든 현재 유럽의 대형 SUV 시장은 럭셔리 SUV 시장이라 보면 됩니다.

GLS는 전장이 5207mm로 현재 유럽에서 판매 중인 SUV 중 가장 큰 모델이라 할 수 있다 / 사진=다임러

상황이 이렇다 보니 판매량에서 미국과 유럽은 큰 차이를 보입니다. 미국에서 올해 3분기까지 유럽의 대형급에 속하는 SUV 판매량이 2백만 대를 넘겼다면 2019년 한 해 통틀어 EU에서는 33만 대 정도가 팔린 게 전부입니다. 유럽 대형 SUV 시장도 매년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고는 하나 시장 자체는 여전히 비교 안 되는 수준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유럽에서는 대형 SUV 시장이 활성화 안 된 걸까요?  


그래도 왜건

또한 아직 남아 있는 안티 SUV 분위기

전체 자동차 시장 규모는 큰 차이가 없음에도 이처럼 덩치 큰 SUV 판매량 차이가 심한 것은 여전히 유럽에서는 소형차가 잘 팔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설령 SUV를 선택한다 하더라도 역시 경차급 CUV가 인기를 끌 정도로 유럽은 콤팩트한 SUV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만약 국경을 넘어 장거리 운전을 하는 운전자라면 어떨까요? 그 경우 운전이 SUV보다 더 편하고 실용적인 왜건을 선택했을 겁니다.

과거에 비해 왜건 비중이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유럽은 중형 이상 세단의 경우 왜건 선택 비중이 높습니다.  얼마전 폴크스바겐 세단 아테온의 부분변경 모델을 내놓았죠. 그런데 독일 등에서는 세단형 아테온에 대한 리뷰는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이 왜건 모델인 아테온 슈팅브레이크 소개하기 바빴습니다.

아테온 슈팅브레이크 / 사진=VW

아우디 A4, 메르세데스 C-클래스 등이 왜건 중심으로 팔리는 것은 물론 그보다 한 세그먼트 위인 모델들까지도 왜건 수요가 상당한 곳이 유럽입니다. 이 소비층에서 대형 SUV로 갈아타려는 분위기가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는 이상 이 시장은 럭셔리로 계속 제한되어 있을 것이고, 유럽에 현대나 기아, 또는 일본산 대형 SUV가 들어오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이유라면 SUV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여전히 상대적으로 우리나라나 미국에 비해 더 높다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SUV를 가리켜 이기적인 자동차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 표현은 유력 언론에 수시로 등장합니다. 다른 운전자의 전방 시야를 방해한다거나, 충돌 시 상대 차량이 받을 부담, 또 무게로 인해 더 발생하는 분진이나 이산화탄소, 질소산화물 배출 등, 환경 문제와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그러니 안 좋은 이유로 자주 언론에 오르내리는 덩치 큰 SUV가 유럽에서 시장을 넓히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도전?

그 외에도 운전의 재미를 찾는 운전자들이 여전히 많다는 점도 대형 SUV 확산의 걸림돌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냥 시장이 5미터짜리 SUV에 폐쇄적일지는 두고 볼 일입니다. 전기차 활성화는 기존의 운전 문화에 변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멀리 전기차까지 가지 않더라도 매년 조금씩이나마 판매량이 늘고 있다는 점도 제조사들이 기대를 하게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토요타는 하이랜더를 유럽에서 곧 판매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이랜더 / 사진=토요타

만약 하이랜더가 판매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보인다면 혼다도, 마쯔다도, 그리고 현대와 기아도 유럽 시장에 즉각 뛰어들 겁니다. 이미 모델들은 준비돼 있으니까요. 오늘은 그간 보고, 듣고, 경험한 것 중심으로 유럽 대형 SUV 시장에 대해 이야기해봤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공감하는 분도, 또 내용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 줄 압니다. 명확하게 분석하고 규정하기 어려운 내용이니만큼, 그냥 가볍게,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주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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