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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마진까지 다 공개하는 독일의 중고차 매매 문화

요즘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로 말이 많죠? 대기업이 들어오면 수십만 명의 기존 업계 종사자들의 생존권이 위협받기 때문에 이를 반대한다는 목소리와 대기업의 진출로 시장 규모 자체가 커지고 투명해져 신뢰를 얻게 된다는 찬성론으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 결국 생존과 신뢰의 다툼이라 정리를 할 수 있을 듯한데요. 

이쯤에서 독일 중고차 시장을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이 글은 10년 전 썼던 내것으로 여전히 유효하다는 생각에 새롭게 정리한 것입니다. 독일은 1년에 8백만 대 이상의 중고차 거래가 이뤄집니다. 우리나라 2.5배 규모라 보면 될 거 같은데요. 기존의 신차 대리점들이 중고차 사업을 같이 하기도 하고, 중고차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딜러가 있는가 하면, 또 개인 간의 직거래 또한 무척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자동차 극장 같은 곳에 주말 낮에 잠시 시장이 형성돼 거기서 거래를 하기도 하는데, 자칫 사기를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거래는 웬만큼 차잘알 아닌 이상 권하진 않습니다.

사진=ADAC

그런데 이곳엔 예전부터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중고차 가격 산정  시스템이 있습니다. 어떤 자동차가 중고차 시장에 나왔다고 치죠. 사실 소비자들은 애초에 그 차량을 딜러가 구입했을 때의 가격은 거래 당사자가 아닌 이상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니 딜러가 얼마의 마진을 보는지 모릅니다. 또 매물의 상태에 맞춘 적정한 판매가인지 역시 궁금할 뿐입니다. 

물론 비슷한 연식, 같은 차종, 비슷하게 적용된 옵션이 적용된 다른 중고차의 가격(시세표)을 참고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찜찜함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독일도 중고차 사기가 없는 건 아닙니다. 잘못하면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은 마찬가집니다. 하지만 조금만 신경 쓰면 비교적 투명한 거래를 통해 차를 사고팔 수 있습니다. 시스템으로 이 부분을 어느 정도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죠.

여기 서류 하나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내용이 잘 안 보일 텐데요. 그냥 이런 서류가 있다는 것 정도로만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서류는 몇 년 전 제 지인이 독일의 한 중고차 딜러에게 이러이러한 차를 당신(딜러)에게 팔고 싶은데 차 가격을 얼마로 해줄 수 있소?라고 자신의 자동차 정보와 함께 문의를 넣었고, 그에 대해 딜러가 답을 보낸 서류입니다. BMW X3  수동기어 모델이고, 팔려고 하는 곳은 BMW 한 대리점의 중고차 영업팀입니다. 

여기서 한국에선 경험하지  못한 내용이 나옵니다. 내가 당신의 차를 얼마에 살 수 있는데, 그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하고 그 내용을 모두 공개합니다. 여기서 잠깐 내용 일부를 볼까요? 

사진=이완

1. 우선 예비 고객(지인)이 보낸 정보를 모두 수집합니다. 이때, 이 차량의 옵션 사항을 하나도 빠짐없이 목록에 넣습니다. 

2. 그리고 이 데이터를 "eurotaxSCHWACKE"라는 시스템에 입력합니다. 한 번 이용하는데 7,90유로 정도로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이곳을 이용해 차량의 가치 (가격)가 일단 나옵니다. 

3. 위 서류를 잠시 보시죠. 옵션 사양들 중 PDC(주차거리컨트롤)를 보면 처음 차량이 출시됐을 때 옵션가격이 700유로인데 문의한 시점에는 184유로의 가치로 평가되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기본 옵션들뿐만 아니라 추가 옵션에 대한 가치를, 이미 공인된 시스템을 통해 정확하게 산출해 줍니다. 여기에 상당히 특이한 점이 하나 있는데요. 

4.  -26,400km라는 숫자입니다. 이것은 00 년식 BMW X3가 동일한 시기에 판매된 동일 차량의 평균  주행거리 보다 26,400킬로를 덜 탔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 부분에서 653유로의 플러스 요인이 발생했습니다. 

좀 복잡한 내용이긴 한데 간단히 정리하면 독일은 연식보다는 주행거리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그것에 따라 가격 차이가  발생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딜러나 업체가 임의대로 정하는 게 아니라 공통된 기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5. 사진 맨 아래에 보면 왼쪽에 -2%라고 되어 있고 오른쪽에 -393유로라고 되어 있는 게 보이실 겁니다. 독일 중고차 시장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이 중고차가 그동안 몇 번의 주인이 바뀌었냐 하는 것입니다. 이 차량은 지금의 주인을 포함해 2명이 운행했던 차량이다. 따라서 마이너스(손해) 요인이 발생했고 그 금액은 -393유로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6. 이런 과정을 전부 거쳐 나온 차의 가치는 14,121유로입니다.  물론 이 가격은 딜러가(또는 회사가) 구매하는 액수죠. 중요한 것은 이 금액뿐 아니라, 이렇게 받은 차를 수리하고 체크해 시장에 내다 팔 때는 19,750유로가 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자신들이 이 차를 어떤 기준에서 14,121유로를 냈는지 투명하게 공개를 했고, 최종 판매 가격은 5,000유로 이상이 더해져 19,750유로가 된다는 사실을 하나 빠짐없이 고객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7. 다만 딜러가 조건을 하나 붙였습니다. 자신들의 중고차를 고객이 산다는 조건일 때 구입을 하겠다고 밝힌 것입니다.  만약, 조건과 상관없이 그래도 자신에게 차를 팔고자 한다면 그땐 다른  개인 딜러들에게 2,000유로 정도의 마진을 붙여서 판다는 내용까지 설명을 했습니다. 즉, 고객 입장에선 더 손해를 보고 팔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죠.

사진=이완

흥미로웠던 것은 마지막 내용입니다.  상담을 진행했던  딜러는 직접 개인 간 거래를 추천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자신이 구입하는 가격 보다 더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소비자에게 알려준 겁니다. 이렇게 했을 경우 18,000유로 선에서 매매를 하면 적절하다는 조언으로 상담을 마쳤습니다. 앞서 잠시 말씀드렸지만 독일은 개인 간 거래가 워낙 활발해서 지인 역시 조언대로 개인 직거래로 차를 팔고 원하는 차를 살 수 있었습니다.  

판매자도 확인 가능한  시스템을 통해 차의 가격이 정해진다는 점, 또 딜러는 얼마의 마진을 붙여 차를 판매할 것인지 이를 모두 고객에게 알린다는 점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모든 독일의 중고차 딜러가 이렇게 일처리를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이런 시스템이 정착되었고, 이를  일상적으로 이용한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우리나라도 중고차 가격 산정 과정을 투명하게 하려는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죠. 하지만 여전히 소비자들은  거래 시 불안감을 갖습니다. 무언가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인데요. 하루빨리 투명한 시스템이 대중화돼 차를 잘 모르는 운전자조차 어렵지 않게 자신의 중고차 가치를 파악하고 이를 통해 신뢰할 만한 거래를 할 수 있어야겠습니다.좋은 시스템, 제도가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누가 시장에 뛰어들든 큰 의미는 없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