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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배출가스 원숭이, 인체 실험 관련 글을 쓰고나서

독일 자동차 업계가 만든 연구협회(라 쓰고 로비 단체로 읽는) EUGT가 주도한 것으로 드러난 원숭이와 인간을 대상으로 한 디젤 배기가스 (질소산화물) 실험 소식이 또 한 번 세상을 들끓게 했습니다. EUGT라는 단체가 무엇인지, 어떤 목적을 갖고 있는 곳인지에 대해 엊그제 글을 썼죠. 혹시 안 읽어보셨다면 먼저 글을 읽어보시길 권하겠습니다.(아래 제목 클릭)



사실 인간을 대상으로, 혹은 동물을 대상으로 한 임상 시험은 있어 왔죠. 하지만 인간 및 동물 실험에 대한 윤리적 비판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이런 소식이 전해졌다는 점, 그리고 디젤 게이트와 관련 있었다는 것 등이 문제가 됐습니다. ECU에 프로그램을 심어 배출가스 수치를 속이려다 걸린 것도 모자라 몸에 해로운 질소산화물의 무해성을 입증하기 위해 비윤리적 실험이 강행된 것이죠. 그리고 그것이 매우 조직적으로 이뤄졌으니, 이에 대해 분노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겁니다.


독일 사회도 충격을 받았습니다. 부끄럽다 분노한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왔습니다. 물론 이 와중에 일부 언론은 변론하는 듯한 기사를 싣기도 했죠. 예를 들어 보수적인 포쿠스 같은 매체는 네덜란드에서도 인간과 쥐를 대상으로 질소산화물 테스트가 과거부터 있었다는 소식을 전했는데 '왜 우리한테만 그래!'라는 뉘앙스라 해야 할까요? 하지만 변명의 여지가 없는 사건입니다. 


처음 이 소식이 한국에 전해졌을 때 어떤 분께서 독일 현지 분위기가 궁금하다며 글 써주기를 바라셨습니다. 그 외에도 몇몇 분들은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솔직히 화도 나고 지치기도 해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과 관련해 뭔가 잘 정리된 기사가 보이지 않더군요. 


그래서 독일 언론 사이트 곳곳을 뒤지고 또 이미 사라진 EUGT 홈페이지 흔적까지 쫓으며 저의 방식대로 사건을 정리해 봤습니다. 다 쓰고 나니 맥이 풀리더군요. 자동차 소식 전하는 일에 처음으로 회의 같은 게 들었습니다. 독일에서 독일 자동차 업계나 독일 자동차 문화에 대한 글을 쓰면서 요즘처럼 마음이 무거운 적이 없었습니다.


2015년 디젤 게이트 소식을 모터쇼 현장에서 듣고 입장권을 구겨 버린 채 집으로 돌아왔을 때부터, 작년에 터진 제조사들 담합 의혹, 그리고 이번에 터진 인체 및 원숭이 실험까지, 연이어 터지는 독일 자동차 업계의 추한 모습을 접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신차 소식을 전하고 독일 차에 대한 긍정적 이야기를 늘어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떤 분은 왜 이렇게 이완은, 스케치북은 무겁고 우울하고 부정적인 이야기만 하느냐고 말하기도 하더군요. 그런데 저라고 그러고 싶겠습니까? 자동차 좋아하고 자동차의 문화와 역사를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기에 기분 좋은 소식만 전해드리고 싶은 마음 굴뚝 같습니다. 럭셔리한 자동차 사진, 좋아하는 올드카 사진 잔뜩 올리고, 단맛 가득한 그런 소식 찾아 전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증강현실 기술이 어떻게 자동차에 접목되는지, 스마트 시티는 뭐고, 어떻게 도로 환경이 바뀌며, 어떤 기술이 자동차의 트렌드를 바꾸고 있는지 등도 공부하며 함께 기쁘게 논의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화딱지 나는  사건들을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이런 뛰어난 엔진(OM 654)과 좋은 후처리장치(SCR)를 조합해 좋은 경쟁을 할 수 있음에도.../사진=다임러


어제는 쥐트도이체 차이퉁이 단독으로 아우디의 엔지니어 중 한 명이 아우디 경영진이 디젤 게이트 조작 관련해 알고 있었을 거라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EU는 환경 개선에 대한 압박을 독일에 가하고 있다는 뉴스도 있었죠. 거기에 올해 시작과 함께 부쩍 가솔린 직분사 엔진에 대한 비판적인 소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잠깐 쉬었다 가자는 그런 마음까지도 들었습니다. 그러다가도 '한 사람이 됐든 두 사람이 됐든, 내게 기대하는 부분이 있을 텐데, 그것을 위해 정보 공유에 역할을 해보겠다는 나름의 원칙을 그래도 지켜야 하지 않겠나, 그러니 쓰든 달든, 이슈에 대해선 덤덤하고 냉정한 마음과 눈으로 접근하자'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습니다.  


많은 분이 이곳을 찾았다 떠나기도 하고 그렇지만 저는 변함없이 이 공간에서 지금처럼 이야기할 것이고 앞으로도 제 색깔, 제가 할 수 있는 수준에서 정보를 공유할 것입니다. 독일에서 만들어지는 좋은, 혹은 의미 있는, 또는 스케치북다이어리만의 정보를 여러분과 함께 나눈다는 보람과 자긍심이 앞으로도 유지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게 없다면 더는 글을 쓰지 못할 테니까요. 오늘은 아주 개인적인 글을 하나 써봤습니다. 넋두리라 여겨주세요. 고맙습니다.

<영상 하나 만든 거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