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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제한속도 160km/h에 집착하는 극우 정치인들

알프스산맥이 품고 있으며, 유럽 고전 음악의 중심지였던, 그리고 한때 권세가 하늘을 찔렀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터전이기도 했던 오스트리아는 작고 살기 좋은 나라죠. 같은 독일어권이라 독일과 사회, 경제, 문화적으로 통하는 것도 많고 또 묘하게 비교되고 경쟁하기도 합니다.

오스트리아 알프스 / 사진=픽사베이


이런 오스트리아가 지난 10월 총선을 치러 중도우파 국민당과 극우적 성향의 자유당이 각각 1, 2위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새로운 정부는 보수적 성격이 짙어졌죠. 오랜 세월 국민당과 오스트리아 정치를 이끌었던 중도좌파 사민당은 0.7% 차이로 자유당에 2위 자리를 내주고 말았습니다.


이 새로운 정부의 교통부 장관(정확히는 인프라 장관)이 지난 18일 임명됐는데 자유당 소속의 노르베르트 호퍼(Norbert Hofer)가 그 주인공입니다. 그는 최근 오스트리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새로운 정부가 오스트리아 고속도로 일부 구간에서 최고제한속도를 160km/h까지 올리는 테스트를 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혀 이웃 나라 독일까지 이 소식이 전해지는 등,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왜 이게 논란일까요?


떠오르는 극우 정치인 노르베르트 호퍼

노르베르트 호퍼 장관 / 사진=위키피디아 & Ailura


새로운 교통 정책을 책임질 노르베르트 호퍼는 유럽 내에서 유명한 극우 성향 정치인입니다. 반이민 정책에 목소리를 높이고, 독일어를 쓰는 이탈리아 북부 티롤 지역을 오스트리아에 흡수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합니다. 또 터키가 유럽연합에 가입하면 오스트리아는 탈퇴를 해야 한다는 탈 EU 주장도 해왔죠.


그는 2016년 오스트리아 연방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당선이 유력시되던 후보이기도 했는데요. 비록 독일처럼 총리가 실권을 가지는 정치 구조이지만 나치 친위대(SS) 출신들이 세운 극우 정당 후보가 오스트리아 대통령이 된다는 것에 유럽 전체가 우려했습니다.


1차 투표에서 1위를 했지만 과반 득표에 실패해 결선 투표까지 갔고, 거기서 녹색당 출신의 이민 2세 무소속 후보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에게 재투표까지 가 패하고 맙니다. 극적인 과정이었죠. 그러고 보니 이번에 노르베르트 호퍼의 임명장을 준 이가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 대통령이네요.


대선에서는 고배를 마셨지만 호퍼 장관은 자신이 몸담은 정당의 약진으로 화려하게 정치 전면에 복귀했습니다.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항공사에서 3년 간 엔지니어로 일하기도 했던 그는 40대의 젊고 밝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통부 장관에 임명되고 불과 며칠 만에 말을 바꿔 논란을 자초했는데요. 고속도로 최고제한속도 올리는 것에 반대한다고 계속 주장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선례를 남긴 또 다른 극우 장관

그런데 이 제한속도 160km/h 주장은 호퍼 장관이 처음은 아닙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이미 2006년에 봄과 겨울 두 차례에 걸쳐 시속 160km/h 테스트가 있었습니다. 12km의 짧은 구간이었고, 오전 5시부터 밤 10시까지, 날씨와 교통량 등이 받쳐줘야 한다는 등의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당시 교통부 장관의 결정은 국민은 물론 정부 내에서조차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당시 테스트를 실행했던 후베르트 고르바흐 장관은 호퍼와 같은 자유당 소속이었습니다. 결국 제한속도를 160km/h로 올리기 위한 계획은 별다른 소득 없이 후임 장관에 의해 폐기됐고, 후베르트 고르바흐는 자유당보다 더 극단적인 국민연합으로 당적을 옮기게 됩니다. 그렇다면 왜 이처럼 독일 극우 성향의 정치인들은 고속도로 제한속도 160km/h에 집착하는 걸까요?


포퓰리즘의 유혹

유럽 각국 고속도로 제한속도. 화살표 표시된 곳이 오스트리아 / 출처=위키피디아 & KaterBegemot


오스트리아는 유럽의 여러 나라처럼 고속도로 제한속도를 130km/h로 하고 있습니다. 유일하게 제한표시가 없는 곳이 독일인데요. 독일은 130km/h를 권장속도로 두고 있습니다만 무제한 구간에서 이 권장속도를 지키는 사람은 아무도 없죠. 호퍼 장관이나 고르바흐 전 장관은 할 수만 있다면 독일처럼 무제한 구간을 만들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당장은 실현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현실적 수준에서 시속 160km/h 제한속도를 기준으로 삼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정책은 달리고 싶어 하는 많은 오스트리아 운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지난 2000년 이후 계속 보수화 되고 있는 유럽 분위기, 그리고 오스트리아 분위기라면 2006년과는 다른 결과를 얻을 수도 있을 텐데요.


실제로 자유당이나 국민연합 같은 극우정당을 유럽에서는 포퓰리즘 정당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바로 이런 파격적이고 자극적 정책들을 밀어 부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반EU, 반이민 정책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다면 그들 입장에서는 이것보다 좋은 전략은 없는 것이죠.

1,400미터 높이에 놓인 최초의 산악 고속도로 / 사진=위키피디아 & Ralf Pfeifer


이 소식이 전해지자 독일에서도 여러 얘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제한속도 160km/h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수준이라는 의견도 있고 우파의 이런 정책에 매력을 느낀다는 댓글도 보였습니다. 환경적인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 또 포퓰리즘 정치인들에 빠지지 말라는 충고도 있었지만 생각 이상으로 제한속도를 올리거나 없애야 한다는 운전자들의 의견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무제한 아우토반을 이용하는 독일인들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댓글 내에서도 포퓰리즘 정책에 너무 쉽게 현혹되는 거 아니냐는 얘기가 있는 거 보면 분명 이런 정책이 사람들에게 자극이 되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는 제한속도 문제가 정치 이념의 관점을 탈피해 논의되었으면 싶지만 오스트리아는 이미 그 선을 넘은 듯합니다. 국민의 선택은 과연 어떨지 계속 지켜봐야겠네요.


추가-히틀러와 관련성

최고제한속도 논란과 직접 관련은 없지만 묘하게도 이번 소식이 히틀러를 떠올리게 합니다. 1938년 오스트리아를 히틀러가 병합한 뒤에 먼저 한 일은 고속도를 건설하는 것이었는데요. 오스트리아 최초의 고속도로 A1은 바로 히틀러 삽질(?)로부터 시작됐습니다.

A1 고속도로 건설 현장의 히틀러. 뒤에 서 있는 사람이 프리츠 토트 / 사진=위키피디아


이 독재자는 독일에서 그랬던 것처럼 오스트리아의 아름다운 자연을 국민이 느끼고 우월감을 가질 수 있도록 프리츠 토트(아우토반 총책임자)와 함께 건설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물론 전쟁으로 인해 히틀러 살아생전 12km가 조금 넘는 구간만 완성했지만 오스트리아의 첫 고속도로 건설이 그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또 다른 연결점은 오스트리아 자유당인데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호퍼 장관이 몸담고 있는 자유당은 바로 히틀러의 친위부대 출신들이 1956년에 세운 정당입니다. 초기에 의석수는 적었지만 친위대 복무했던 인사들이 이 당에 모여 극우적 정책들을 내놓으며 활동했죠. 과거에 비해 극우 색깔이 좀 퇴색되고 나치와의 연관성도 많이 줄었다고는 해도 뭔가 찜찜하게 바라보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