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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운전하는 아내가 저는 이래서 예쁩니다

 

오늘은 팔불출이 되어 볼까 합니다.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요. 자동차 관련한 글을 많이 썼지만 집사람에 대한 글은 처음 같네요. 사실 같은 운전자로서 그간 곁에서 지켜보며 느낌 점이 제법 됐습니다. 그래서  그 보고 배운 것들 이 시간을 통해 한번 담담히 공개해볼까 합니다. 

 

 

운전을 잘하는 아내

동갑내기 아내는 저보다 먼저 면허를 땄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면허를 땄고 아내는 독일에서 면허를 취득했죠. 평소 둘은 서로 자기가 운전을 더 잘한다고 우기고 그러기도 하네요. "자존심이 있지. 내가 그래도 남잔데 아무래도 더 낫지 않아?" 라고 허세찬 표정을 하면 바로 돌아오는 소리가 있습니다 "변속도 잘 못하면서!"

 

"끙~"

둘 다 수동변속기로 면허를 딴 세대이지만 저는 이후로는 자동변속기 차량만 운전을 했고, 아내는 쭉 수동만 몰았습니다. 독일에 와서는 수동으로만 운전을 하게 됐는데, 처음엔 클러치와 스틱을 제 타이밍에 맞추질 못해 버벅거리고 그랬죠. 그런 저를 보며 깔깔대며 놀리던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네요. 아, 물론 전 지금은  프로 중의 프로 드라이버입니다.

 

사실 저를 놀려도 할 말이 없는 게, 집사람의 변속 시점은 꽤 정확합니다. 직선로에서 가속을 하다가 큰 코너 구간을 만나 감속을 하고, 다시 빠져나가는 타이밍에서 가속페달을 밟으며 기어를 넣는 등의 일련의 과정이 무척 자연스럽고 하나의 동작처럼 느껴지거든요. 낮은 언덕을 만난다거나 저속 구간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할 때도 특별히 거슬리는 점이 없을 정도로 수동 기어를 능숙하게 다룹니다.

 

또 기어 변속의 능숙함 못지 않게 아내는 교통표지판을 철저하게 따르는 운전을 합니다. 철저히 지킨다는 걸 잘못 이해해 초보 운전자 뉘앙스로 들을 수도 있을 거 같은데요. 시내에서, 스쿨존에서, 주택가에서, 그리고 국도와 아우토반에서 어떻게 운전을 하는 것이 정답인지를 제대로 체득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무리한 운전을 하는 거 같지 않으면서도 주춤거리거나 당황하는 기색도 없고, 아주 사소한 것들까지 좋은 습관이 들어 있어 동승자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운전을 하는 편인데요. 이런 운전이 가능했던 건 아무래도 독일 면허학원에서 철저하게 배운 덕이 아닐까 합니다.

 

 

인상적 에피소드

제가 처음 독일의 면허취득시스템이 우리와는 많이 다르구나를 느낀 건 연애 때 아내로부터 들은 에피소드 때문이었습니다. 한 번 말씀을 드린 적이 있는데요. 아내 친구의 도로주행 시험 얘기입니다. 독일 면허시험은 대략 45분에서 1시간 가량 주행을 하며 여러가지를 체크하는데 그 친구는 거의 틀린 게 없었습니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예상하고 차에서 내린 그녀에게 감독관은 "불합격"이라는 말을 건넸습니다. 

 

당황스러워 하는 친구에게 감독관은 아주 하찮아 보이는 행동 하나를 지적했죠. "당신은 차에서 내릴 때 사이드미러를 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불합격이에요." 뒤에서 자전거나 보행자가 오는 걸 살피지 않은 그 마지막 행동으로 인해 결국 그 친구는 다시 시험을 봐야 했습니다. " 혹시 이거 자기 얘기 아냐? " 슬쩍 떠봤더니 " 어허~ 난 한 번에 붙은 사람이야 이거 왜 이러셔~" 라고 펄쩍 뜁니다.

 

 

잔소리의 여왕

아내가 운전을 제대로 배웠다는 걸 인정한 건 저의 독일운전 초창기 때 쏟아내던 그녀의 그 엄청난(?) 잔소리들 덕분이었습니다. 한국면허증이 독일에서 인정받아 따로 시험을 치르지 않고도 교환이 가능해진 게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닌데요. 한동안 운전을 하지 않고 때를 기다린 저는 결국 독일 면허증으로 1:1 교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돈으로 200만 원 정도 하는 면허취득 비용을 아낄 수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막상 도로 위에 나가 보니 환경은 우리나라와는 많은 부분에서 달랐습니다. 교통표지판을 읽는 방법에서부터 360도 로터리를 진입하는 방법, 좌우회전할 때 어떤 차량에 우선권이 있는지, 또 자전거 운전자가 팔을 뻗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등. 처음 경험하는 것들 투성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하루라도 빨리 독일 도로환경에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잔소리 여왕 아내의 덕이었습니다.

 

아우토반에서는 차가 없을 땐 무조건 우측 차로에서 주행하는 것이 기본이라는 것도 아내의 끊임없는 잔소리의 힘에 의해 습관화되었고. 로터리는 어떻게 진입을 하는 것인지, 또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차가 깜빡이를 켰다 껐다하는 게 성질을 부리는 게 아니라 먼저 가라는 양보 신호라는 것 등도 아내가 아니었음 좀 더 시간이 걸려 알았을 내용들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차선을 변경할 때 깜빡이를 몇 번 어떤 타이밍에 켜줘야 하는지, 또 기어봉 위에 손을 얹고 운전하는 게 미션에 부담을 주는 행동이니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것 등의 아주 사소한 것들까지도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자기도 다 그렇게 배웠다나요? 그리고 이런 당부도 잊지 않았습니다.

 

"당신, 혹시라도 앞차가 운전을 못한다고 해서, 혹은 자칫 사고를 낼 뻔했다고 해서 추월하면서 그 차량 운전자 노려보는 행동은 하지 않길 바래. 만약 그 운전자가 운전을 제대로 배운 사람이라면 당신이 그렇게 행동 안해도 본인이 잘못한 걸 느끼고 있을 테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자기가 화가 나 노려 본다 해서 그 사람이 바로 바뀌지도 않을 거야. 괜한 짜증 남에게 풀지 말고 그냥 숨 한 번 크게 쉬고 지나가는 게 어떨까?"

 

그 얘기를 들으니 한국에서의 한 기억이 떠오르더군요. 수서분당 간 도로를 달리며 선배의 저녁 초대에 동행할 때였습니다. 우측으로 빠져나가는 차량들 때문에 잠실 근처에서 차들이 많이 막히는 상태였죠. 저는 직진해서 다리를 건너 강변북로를 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1차선까지 막혀 있길래 '사고가 났나?' 싶었는데 앞에 한 차량이 1차로에서 우측 꽉 막힌 차들 사이로 삐집고 들어가려다 어중간하게 걸려 엉덩이를 걸쳐 놓은 상태였습니다.

 

여기저기서 경적음 소리가 울리고 난리도 아니었죠. 그래도 경적음까진 참았는데 힘들게 그 곳을 빠져나오며 저도 모르게 그 차의 운전자 쪽을 목을 빼 쳐다보게 됐습니다. 물론 좋지 않은 표정으로요. 아마도 아내가 그 때 저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던 모양입니다. 아내의 당부섞인 얘기를 들은 후  착한 학생처럼 저는 절대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부부, 보완적 관계

요즘도 아내의 잔소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표지판 제대로 봤느냐, 왜 무리하게 과속을 하느냐 등, 시도 때도 없네요. 어쩔 때는 좀 귀찮기도, 싫기도 하지만 집사람의 그런 잔소리가 저를 위한 당부의 말이라는 걸 누구 보다 잘 알기에 마음으로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집사람이라도 못하는 건 있더군요. 특히 주차가 그렇습니다.

 

도로변에 빈공간을 찾아 차를 세워야 할 때면 당황해 하는 게 눈에 보입니다. 이때는 제가 아내 앞에서 목에 힘을 줘도 됩니다. 또 기계치인지라 차의 엔진룸을 열면 뭐가 뭔지 잘 몰라 하죠. 이 때도 제가 '척' 좀 할 수 있죠. 뭐 사실 표현은 잔소리라고 했습니다만 저희는 운전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눕니다. 서로 보완적 관계라고 할까요?. 이처럼 운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게 발화점이 돼 더 다양한 것들을 소재로 대화를 이어가게 됩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서로 속내를 터놓고 이야기하는 시간도 많아지고 여러가지로 저희에겐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제 아내의 운전에 대한 이야기를 해봤습니다만 분명 당신의 아내, 당신의 남편, 당신의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과 친구들의 이야기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 기회에 한 번 체크해 보세요. 운전에 대해, 우리 운전문화에 대해  얼마나 내 아내 내 남편과 대화를 나누며 살고 있는지를요.  나는 운전에 대해 어떤 잔소리를 하고 살고 있는지, 난 누구에게 이런 고마운 잔소리를 듣고 있는지 한 번 체크해 보셨으면 합니다. 

 

제 아내의 잔소리는 내일도 계속될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아내의 모습이 예뻐보입니다. 그저 나 하나 잘 새겨듣고 웃으며 받아들인다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잔소리가 아니겠어요? 어떠세요? 이정도면 제가 아내 자랑 좀 해도 괜찮은 거였죠? 모두 행복한 크리스마스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