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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좌충우돌 어느 한국인의 아우토반 적응기



유럽 출장길이나 독일 등으로 여행을 오는 우리나라 분들 중 차량을 렌트해 아우토반을 달려봤다는 얘기를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당연히 운전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아우토반은 꼭 한 번은 달려보고 싶은 그런 도로겠죠. 그런데 한 번 다녀가는 정도로는 이 곳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느꼈다고 하기는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뭐 그렇다고 특별한 도로라는 얘기는 아니에요.

 

하지만 분명 아우토반은 아우토반만의 어떤 특징이 존재합니다.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제가 처음 아우토반이라는 도로를 달렸을 때의 느낌, 그리고 몰랐던 사실들에 대한 경험담입니다. 그간 간간히 아우토반 이야기를 해봤습니다만 이번엔 하나의 이야기 형식을 빌려 '처음 아우토반을 달리고자 하는 분들이 알아 두면 좋을 만한' 그런 내용으로 꾸며봤는데요. 약간 각색을 했지만 기본적으로 모두 제가 보고 느끼고 배운 것들이라는 점, 잘 참고 하시고 함께 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진=스케치북

 

 

 '왜 이렇게들 빨리 달려?'

말로만 듣던 아우토반. 내가 이 곳에서 운전을 하게 될 줄이야. 운전면허를 따고 처음 운전을 하는 것마냥 긴장과 설렘이 교차한다. 표지판 어디에도 한국어는 당연하고 영어조차 없는 독일. 우리나라와 큰 차이는 없다고 해도 표지판 읽는 것에서부터 실수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일단 아우토반에 합류를 하게 되자 가장 놀란 건 차량들의 속도였다. 편도 3차선의 경우 가장 느리게 달리는 오른쪽 차선조차 무제한 구간에선 120km/h 정도를 유지해줘야 했다. 중간 차선은 시속 140~180km/h 사이를 유지한다. '얘들 뭐지? 왜 이렇게 빨리 달리지? 화장실이 급한가?' 별별 생각들이 머리를 채웠다. 이 곳은, 모든 게 초스피드였다.

 

3차선에서 조심스레 2차선으로 차선변경을 시도했다. 그때  성난 모습의 포르쉐 한 대가 1차선으로 옮겨 타곤 순식간에 추월해 사라져 갔다. 점이 되어 사라진 포르쉐 덕에 "허~"하는 헛웃음이 나왔고, 그 덕인지 긴장이 조금 풀렸다. 하지만 긴장이 풀릴 틈도 없이 어디서들 날아 왔는지 차들이 계속 달라 붙었다. 난 다시 3차로로 들어왔다. 표정없고 룰에 철저한 게르만들이지만 아우토반에서 만큼은 바이킹의 후예들 처럼 거칠고 야만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그 터프함은 절묘하게도 자신들이 정한 룰을 통해 철저하게 컨트롤되고 있었다. '이 기묘한 조화는 또 뭘까?'

 

 

 1차선은 정말 추월차선?

운전에 있어 위험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다른 차에 지기 싫어 자존심을 세우는 태도라고 본다 . 날 앞지르겠다면 앞지르게 해주고, 깜빡이 켜고 들어오겠다면 무조건 양보해준다. 그런데 아우토반에선 나도 모르게 경쟁 심리가 발동한다. 다들 밟아대니 안 그럴 수가 있을까. 그나마 옆자리에서 단단히 지켜보는 아내 덕에 속도를 조절할 수 있었다. '이런 악마의 도로 같으니라고...' 

 

열심히 내달리고 있던 초보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그림은 텅 비어 있는 1차로 모습이었다. 말로만 듣던 추월차로였고, 정말로 앞지르기하는 차들 외엔 그 곳으로 들어서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1차로에선 추월을 방해하는 느림보 차량도 경찰의 단속 대상이다. 제한속도 표지판 구역 내에선 그 속도를 지키는 게 룰이고, 제한표시가 없는 무제한 구간에선 달리는 걸 막는 게 불법인 곳이 아우토반이다.

 

말로만 듣던  시속 300km/h로 공공도로를 달리는 차들을 이 곳에서 목격을 하며 다시 한 번 1차로를 비워두는 게 왜 중요한 일인지 알게 됐다. 시속 120km/h의 최고속도 제한된 곳에서 조차 굳이 앞지르겠다면 비켜주는 게 이 곳 사람들, 운전자들이다. 설령 쌩하고 달려가는 차가 과속 단속에 걸리든 말든. 참 재밌는 도로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2차선도 비워두고 다 오른쪽으로~

텅 비어 있는 1,2차로 모습. 사진=스케치북

 

이제 좀 익숙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속도를 올리고 싶어 가속페달에 힘을 주는 데 사감선생같은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추월할 차도 없고 우리 차로 앞에도 비어 있는 데 그냥 오른쪽으로 가시죠~" 이건 또 무슨 소리지? 결론부터 말하면 아우토반에서는 1차로뿐 아니라 2차로든 3차로든, 오른쪽 차로가 비어 있다면 거기서 달려야 한다. 다시 말해 내 앞에 차가 없다면 굳이 왼쪽 차로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우토반에서 운전하며 아내에게 가장 많이 잔소리를 들은 대목이 바로 이 부분이다. 갑자기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던 때가 떠올랐다. 거기선 우측 차로에서도 좌측차로에서 주행하는 차들을 앞질러 달려도 아무도 뭐라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우린 마치 그게 당연하다는 듯 운전했다. 그런데 여기선 오른쪽 차가 왼쪽 차보다 앞서 달리지도 않을 뿐더러 아무리 1,2차로가 비어 있어도 내 차선 역시 비어 있다면 차선 변경을 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면허를 따 온 사람들이 아우토반에서 가장 많이 실수하는 게 이 룰을 잘 지키지 못하는 거라고 아내는 한 마디 더 거들었다.

 

가끔 아무 생각없이 우측 차로가 비어 있는데도 가운데 차로로 주행하는 차를 보게 된다. 그리고 어떤 경우엔 그 차량의 앞과 뒤에서  운전 똑바로 하라고 심술을 부리는 못된 운전자들도 보게 된다. 그만큼 차로 주행의 룰은 아우토반에선 중요했다.

 

 

휴게소 화장실은 능구렁이? 

얼마만큼 달렸을까?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 왔다. 화장실도 사용을 해야겠기에 적당한 휴게소에 들르기로 했다. 한국도 비슷하지만 이곳도 트럭들이 주차하는 공간과 자가용들이 주차하는 공간이 나뉘어져 있다. 그래서 휴게소 진입 시 표지판을 잘 살피는 것도 요령이다. 마침 차들이 많지 않아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런데 아뿔싸~

 

창피를 무릅쓰고 화장실 한 컷~ 사진=스케치북

 

화장실이 한국 지하철 역처럼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아우토반의 화장실은 모두가 유료다. 보통 70센트 정도의 비용을 받는다. 다만 화장실 티켓(놀랍게도 화장실 티켓이 있다!)을 휴게소에서 물건 구입 시 내밀면 50센트 할인을 해준다. 그러니까 화장실만 사용할 거면 70센트 다 내고, 뭔가 구입할 거면 20센트만 내면 된다는 뜻. '생긴 거 같지 않게 잔머리에 능한 독일인들 같으니라고...' 

 

사진 속엔 두 가지 정보가 더 담겨져 있다. 우선 화장실에서의 흡연은 금지되어 있다. 화장실 앞 야외에서 담배를 따로 피우게 되어 있다. 담배 피우는 이들에겐 군대 훈련소 생각이 떠오를 게다. ㅜ.ㅜ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주황색 화살표 부분으로, 어린이들은 무료 이용이 가능하다. 다만 저기 표시된 키 이상의 어린이들은 돈을 내야만 한다.  '그래 무릎을 조금만 구부리자'

 

만약 화장실에 단 돈 1센트라도 돈을 내는 게 아깝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휴게소 외에 화장실만 이용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곳이 아우토반 주변엔 많으니 거길 이용하도록. 단, 황량한 공터에 있는 화장실 중에도 돈을 받는 곳이 있다는 것은 주의하자.

 

 

이왕 아우토반 휴게소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나만 더 이야기를 하고 가자면, 휴게소에서 식사를 하고자 하는 분들은 두 가지를 알면 된다. 우선은 일반 식당처럼 주문을 하고 본인의 음식을 기다리거나 혹은 받아 가는 게 한 가지이고, 또 하나는 사진에서처럼 뷔페식 형태의 휴게소 식당이다. 입구(화살표로 표시)로 들어가면 여러가지 음료와 음식들이 마련돼 있고 그 중 원하는 것을 선택해 계산대로 가지고 가면 된다. 한 가지 더 팁을 드리자면, (귓속말로) ' 음식 맛은 크게 기대하지 마시길.'

 

 

아우토반에도 단점은 있는 법

휴게소를 나와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이제 어느 정도 도로가 익숙해졌다. 그렇게 자신감이 붙었을 때즈음  하늘도 무심하시지. 순식간에 해가 넘어가고 어둠이 찾아왔다. 특히 아우토반은 더 어둡다. 그도 그럴 것이 주변엔 그 흔한 가로등 하나 없다. 초행길인 난 앞 차의 꽁무니를 한동안 좇아가야만 했다. 앞에 아무런 차가 없을 땐 그 짙은 어둠 탓에 속도를 내기 만만치 않았다.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순간 번개처럼 차 한 대가 추월해 간다.

 

생각해 보면 아우토반은 어려움이 많은 도로다. 속도제한이 없는 구간이 몇 킬로미터 일직선으로 쭉 뻗어 있을 땐  정말 풀가속이 뭔지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지만 또 어떤 코스는 일직선 구간을 1시간 이상 달려도 만날 수가 없다. 그 꼬불꼬불한 길을 그것도 야간에, 그것도 비까지 오는 날에 굉음을 내며 달리는 차들을 보고 있자면 공포영화가 따로 없다. 여지없이 사감 선생님이 옆에서 한 말씀 하신다. ' 저저..정신나간!'

 

 

운전을 마치고

힘들게 목적지에 도착한 나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침대에 몸을 뉘였다. 오늘의 운전을 되돌려 봤다. 그리고 아까 미처 생각지 못한 것들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차량들이 차로 안에서 비교적 우측으로 붙어 달렸던 것 같다. 특히 트럭들은 더 그러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심지어 좌측으로 붙어 운전을 하는 트럭의 경우 그 간격이 문제가 돼 경찰에 단속돼 벌금딱지를 받기도 한다.

 

큰 차들은 특히 더 우측으로 붙여 운전한다

또 아주 흔하게 아우토반에선 오토바이를 볼 수 있다. 여기선 이륜차도 고속도로를 이용할 수가 있는데, 처음엔 아우토반에 오토바이를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이런 아우토반이 이젠 익숙해져 자연스럽게 흐름에 맞게 운전을 하게 되었지만...

 

그렇다면 아우토반을 처음 달리는 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제일 좋은 건 표지판대로 운전을 하는 거다. 제한속도를 지키고, 추월하지 말라는 곳에선 하지 않으면 된다. 그보다 덜 엄격하고 싶다면 전체적인 흐름에 맞춰 달리는 게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래도 '이 기회가 아니면 언제 달려!' 라는 생각에 몸이 쑤시는 사람들은 무제한 표지판이 세워진 곳에서 시도를 해보시길. 

 

이 표시가 보이면, 그 때부터는 속도 제한이 없다는 뜻~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무제한 구간을 없애고 속도제한을 둬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독일인들 대다수는 아우토반만큼은 그대로 내버려 두길 바란다. 수십 년 동안 이어져온 질주의 역사, 그 욕망이 그리 쉽게 무너질 것 같진 않다. 지금처럼 아우토반 주변을 자연친화적으로 가꾸며 환경피해를 최소화 하는 방향에서 타협점을 찾고 싶어들 한다.

 

또 무지막지하게 달려대는 이곳이 생각보다 안전한 이유는 운전자 서로 간 철저히 룰을 지키려 하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잘 지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약속을 지키는 운전이 자신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임을 이 곳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질주와 법규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채 아우토반은 오늘도 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