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남대문 시장 근처의 버스정류장... 헤드라이트 불빛들이 불나방들 처럼 뒤엉켜 있는 불야성 서울. 그 곳엔 늦은 퇴근길을 재촉하는 사람들과 버스와 택시의 경적음이 질펀하게 어우러져 뜨거운 에너지를 토해내고 있습니다.
익숙했던 풍경들을 뒤로하고 외국생활을 하는 제게 있어서 이젠 이런 풍경이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낯설고 한편으로는 경이로움으로까지 비춰지느 걸 보면 사람 참 간사하다는 생각이에요. 어쨌거나 오늘 포스팅은 붙박이로 한국에서 사람살이를 하는 대부분의 우리 이웃들 시각이 아닌, 대한민국 방문자의 이방인적 시각으로 쓰게 될 거 같습니다. 바로 택시와 버스에 대한 소고입니다...
1. 택시이야기
#첫번 째 에피소드- 인상 좀 쓰지 맙시다!
한국의 택시는 모범과 일반택시로 나뉘어 있습니다. 비싼 모범 택시는 고급차종에 친절한 서비스를 주무기로 하고 있죠. 그렇다면 일반택시는 상대적으로 불친절해야 할까요? 그건 아닙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런 택시기사분들을 심.심.치.않.게! 만나게 됩니다. 택시의 입장에선 손님을 내려준 곳에서 바로 다음 손님을 태울 수 있는 것이 제일 좋은 영업이겠죠. 그리고 이 것이 계속 반복해서 맞물려 돌아가려면 그에 맞는 승객들이 있을 만한 곳으로의 주행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이상적 운전이 안된다고...자신의 계획을 수포로 돌아가게 하는 변두리 승객을 태운다고 인상을 쓰시면 되는 걸까요? 정당한 금액을 지불하고 자신의 목적지를 요청하는 승객을 죄스럽게 만드는 공포의 낯빛, 그런 기사님들의 연기력은 가히 연기파 배우들 뺨치는 수준이란 생각입니다. 한 마디도 못하고 불쾌한 맘으로 택시에서 내린 엊그제 일은, 생경함을 넘어 불쾌함이 된다는 거...일부 인상파 기사님들은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 두번 째 에피소드- 이왕이면 현금으로 주세요~
택시요금을 교통카드나 신용카드(교통카드 내장된)로 내는 신기한(?) 경험. 참 좋아졌더군요. 그것 뿐입니까? 조금 후에 버스편에서도 얘기하겠지만 웬만한 택시 안은 승객의 편의를 위한 갖가지 아이디어들로 넘쳐납니다. 뒷좌석에 앉았더니 조그마한 모니터를 통해 TV 프로그램을 보여주고, 외국인들을 위해 갖가지 안내멘트를 영어로 병기해 놓았습니다. 불편한 일 있으면 신고하라고 스티커도 이쁘장하게 붙여 놓았죠. 하지만,
시스템만 갖춰진다고 다 되는 건 아닐 겁니다...호기심에 교통카드로 택시비 6천원 가량을 계산하고 싶어졌습니다. "기사님 교통카드로 요금 결제 가능한 거죠?" 순간 멈짓하는 기사분의 표정을 읽었습니다. 얼른 재차 물었습니다. " 현금으로 하는 게...?" 라고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 분이 말씀하십니다. "솔직히 제 입장에선 수수료 나가는 교통카드보다 현금이 낫죠." 이해가 됐습니다. 4700원 요금인데 5000원 드리고 잔돈 놔두라고 말하면 참 좋아할 정도로 100원 200원이 아쉬운 게 택시기사분들이니까요. 그래도,
다음부턴 꼭 덧붙여주세요. " 저 손님이 기분 좋게 요금내고 내리시는 일이 우선이랍니다" 이렇게 말이죠. ^^
# 세번 째 에피소드 - 정당한 승차거부?
넉살 좋은 기사분을 만난 일입니다. 조금만 관심 갖고 대화를 나누면 신이나서 정치,사회,경제, 국제문제 등을 쉼없이 쏟아내는 그런 스타일의 기사님들 왜 있잖습니까? 이 분도 그런 경우셨죠. 다양한 정보를 피곤해 꾸벅이며 조는 제게 룸미러를 통해 끝없이 알려주시더군요. 그러다 이런 얘기를 하십니다. "서울 택시들은요 인접 지역들 중에서도 추가 요금 더 달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구간이 있구요. 아예 가지 않겠다고 말해도 되는 지역이 있습니다."
오잉~ 아예 대놓고 승차거부를 해도 된다고? 설마 법적으로 보장된 건 아닐 테고...그러면서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라며, 빈택시로 돌아오게 되거나, 전체 운행에서 그 코스 때문에 사납금 채우거나 벌이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곳은 피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한편으론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막히는 도로, 긴 거리를 빈택시로 돌아와야 하는 것, 후진하기도 어려운 산동네 골목 끄트머리집까지의 요구 등등...하지만 서러울만도 합니다. 강남 신사역이나 명동이 목적지가 아닌 할머니 할아버지, 장애인 승객들은 말이죠. 사회 구조적 폐단...모두에게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은 정녕 없는 걸까요?
# 마지막 에피소드- 택시 승강장?...당장 치워버리라 그래!
택시 승강장에 서 있었습니다. 보통은 적당한 도로변에 서서 손을 들지만 이 날은 왠지 외지고 썰렁한 승강장에서 택시를 잡아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렇게 30분이 지났고...저는 여전히 서 있어야만 했습니다. 어떻게 된 것이 단 한 대의 택시도 제가 서 있는 승강장에 서질 않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흔히 말하는 택시의 피크타임이었던 이유가 가장 컸습니다. 여기저기서 손을 쑥쑥내밀어대니 '빈차' 불빛의 택시들은 그들 앞에 급브레이크를 밟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죠.
심지어 사거리 우회전 하는 곳, 횡단보도 바로 앞에서 주변 상황은 일절 고려하지 않고 택시를 잡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자기 택시 타기 좋으면 되는 거지 주변 교통상황이야 알 게 뭐람...뭐 이런 쿨(?)한 족속들...하지만 박수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그런 고객의 요구에 충실히 응하는 택시들은 어떤가요?
결국, 우회전해 들어오는 혹은 좌회전, 직진해 오는 택시를 먼저 잡기 위해 사거리 코너쪽으로 저 역시 한 발 두 발 옮겨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저의 잰걸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제 앞으로 얼른 내려서서 대로변으로 나가 택쉬~~! 태엑쉬이~! 하고 마구 손을 흔드는 사람들에 의해 저는 다시 후순위로 밀려나야 됐고, 외롭게 있는 택시승강장으로 돌아와 빈의자에 털석 주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씁쓸하게 되뇌였습니다.
" 택시승강장?...당장 치워버리라 그래!"
2. 버스이야기
대중교통의 꽃이자 서민들에겐 가장 친밀감 있는 교통수단으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가고 있는 버스. 요즘 한국의 버스들은 놀라울 정도의 하드웨어적 업그레이드를 이뤄냈습니다. 특히 먼거리를 가야하는 서민들에게 '환승시스템'은 대단히 유익한 것이 되었는데, 출퇴근 시간이나 늦은 시간에는 갈아타는 시간을 1시간까지 연장해 준다는 내용은 정말 좋은, 박수받을 방식이 아닌가 싶습니다.
뿐만아니라 버스의 영어 안내 방송이나 그 노선 구간에 있는 관광정보 등을 노선표 옆에 영어로 설명해 놓아 외국인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데, 세상의 어떤 나라가 이처럼 여행객들에게 친절할까 싶을 정도로 세심한 배려들이 엿보였습니다.. 지하철은 또 어떻나요? 일본인이나 중국인들이 많이 타고 내리는 역에선 여지없이 일본어, 중국어 안내 방송이 나오더군요. 감동, 또 감동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놀라운 시스템적인 성과로 대한민국 버스문화가 단연 최고라 말할 수 있을까요?
어떤 정류장 주변은 난장판을 방불케 할 정도로 버스들, 그리고 버스와 승용차들이 뒤엉켜 있습니다. 정류장 위치가 애매해 교차로에서 미쳐 차선을 바꾸지 못한 승용차들이 대형 버스에 포위되는 장면도 보게 되구요. 편도 4차선 도로의 정류장에선, 버스가 바로 앞에 있는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받기 위해 아예 차선을 바로 가로질러 버리는 아찔한 광경들도 자주 보게 됩니다.
계획도시가 아닌 서울의 경우인지라 다른 곳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중앙차로가 운영되지 않는 많은 버스길들에서 이런 모습들은 자주 목격되지 않을까 싶더군요. 거기다 기사분들의 난폭운전은 여전히 개선되어야할 부분입니다.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승객이 미쳐 교통카드 찍기도 전에 부릉~하고 출발하면서 넘어질 뻔한다든가, 몸이 불편해 천천히 내리기라도 하면 기사분은 짜증섞인 표정이 되어버립니다.
요즘은 지상고가 낮은 버스들로 교체가 되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여전히 높은 층계 오르듯 올라야 하는 버스들은 노약자에겐 매우 이용하기 불편합니다. 바로 어제, 제가 좌석버스를 한 번 이용했었는데, 온 갖 하지 말았으면 하는 내용들을 한 방에 압축해 그 버스기사분이 보여주더군요.
우선 놀라운 클락션 활용도(?)였습니다. 클락션과 그가 '물아일체' 가 돼, 생각이 고스란히 경적음으로 표현되고 있었습니다. 빵빠방 빠앙~(거기 자전거 비켜요) // 빠방 빵~~~(빨리 가란 말야!) // 빵빵빵빵빵빠앙~~( 횡단보도 거기 사람들 조심해욧!) 등등...한 시간 정도 이용하면서 들어본 것만 거의 40~50회 정도 클락션을 울렸습니다. 거기다 분명 빨간 신호인데 주변 두리번 거리다 사람 없으면 바로 치고 나갑니다. 아이 한 명이 자전거 타고 지나가려다 그 버스로 인해 급하게 멈춰서야 했던 장면은 아찔하기까지 했었죠.
비가 왔기 때문에 물이 고여 있던 도로변을 지나는 버스는 더욱 조심했어야 했지만 이분은 아마 배차 간격에 문제가 있었던지 물이 튀기든 말든 신경도 안 쓰고 달려댔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놀라서 도로 안 쪽으로 몸을 피했던지 제가 다 미안한 맘이 들었지 뭐겠습니까...빨리 타고 내리라는 보챔에, 놀라운 정도의 순간 가속력을 발휘해 과속을 하는 등...도무지 손에 땀이 나서 앉아 있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아주, 흔하지 않은 경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고객, 승객에 대한 친절한 배려는 자신들의 배차간격, 운행상의 이유에 의해 여지없이 무시당하게 된다는 거...정말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결론
제가 앞서 언급한 내용들은 일반적이라고 보다는 좀 특별한 경우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그래야 하구요. 대한민국의 시스템은 친절하고 세심한 배려로 점점 발전되어가고 있습니다. 가끔 정치적 결정에 의해 어처구니 없는 제도들이 길바닦에서 굴러다니는 것들을 빼면 확실히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하드웨어, 시스템이 좋아도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들의 마인드가 앞서 있지 못하고, 제대로 되어 있지 못하다면 시스템은 별 의미 없는 게 됩니다.
예전에 어느 내용에서도 잠깐 썼었지만, 독일의 자전거 도로가 뭐 대단한 게 아닙니다. 교차로나 횡단보도에 가끔 자전거 전용 신호등이 있다는 게 별스럽다면 좀 별스러울까, 그냥 도로 한 쪽에 힌 줄 주욱~ 그어낸 게 전부일 뿐. 하지만 그 속에서 룰을 만들고 그 만들어진 룰을 철저하게 서로 지켜가는 모습에서 분명 다른 차원의 문화를 발견하게 됩니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버스나 택시에 대한 하드웨어가 부족한 게 아니라, 그것들을 위해 마련된 룰과 그 룰을 지키고 따르는 사회적 환경 개선이 선행돼야 할 것입니다. 고객을 골라 태우고, 난폭운전을 일삼고 하는 일 등은, 사회적 분위기가 개선되고 자연스럽게 그럴 필요가 없는 환경으로 안착되었을 때 자연소멸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개인 각 자가 각성하고 노력하는 태도를 유지할 수 있어야겠죠.
대중교통 문제는...우리의 시스템에 문제가 아닌, 우리의 사회적 환경과 문화의 문제라는 인식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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