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이었던가요? 자동차 매체들이 '알파로메오'가 한국에 들어온다는 보도를 했습니다. 알파로메오? 처음 들어본 분들도 계실 텐데요. 이탈리아의 자동차 브랜드로 유럽에서는 멋진 스타일이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사실 이탈리아 디자인 감각은 패션에서만 볼 수 있는 건 아니죠. 개성 있고 멋스러운 고급 자동차 브랜드 또한 이탈리아 디자인 수준을 느낄 수 있게 해줍니다.
페라리나 람보르기니 외에도 마세라티, 럭셔리 수제 차 브랜드 파가니, 지금은 이름만 남아 있는 란치오, 그리고 마세라티와 함께 피아트크라이슬러 그룹에 속한 알파로메오 등은 모두 스타일에서 한 가닥씩 합니다. 이 중에서도 알파로메오는 럭셔리 브랜드이지만 상대적으로 대중적이라 유럽 도로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알파로메오가 한국에 들어온다니, 기대할 수밖에요.
중형 스포츠 세단 줄리아 / 사진=FCA
내구성이나 빈약한 라인업이 약점이기는 하지만 최근 스텔비오와 같은 중형 SUV가 유럽 전역에서 제법 비싼 가격에도 잘 팔려나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곧 다른 SUV 모델 2종도 나올 거라고 하니까 기존 중형 세단 줄리아와 준중형 해치백 줄리에타, 그리고 소형 해치백 미토와 스포츠카 4C 등까지 더한다면, 그래도 과거와 비교해 구색을 어느 정도는 갖췄다고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하지만 작년에 아쉬운 소식 하나가 전해졌습니다. 알파 로메오의 가장 작은 모델 미토(MiTo)를 더는 생산을 안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회장이 작년 초에 언급했었고, 결국 그 얘기대로 됐습니다. 유럽에서 소형 해치백은 여전히 인기가 높은데 왜 이런 결정을 한 걸까요?
미토 / 사진=FCA
미토는 2008년 피아트 소형 해치백인 푼토가 만들어지던 플랫폼을 통해 세상에 등장했습니다. 푼토가 저렴한 모델이었던 것에 반해 미토는 미니나 아우디 A1 등과 경쟁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처음 나왔을 때 앙증맞고 예쁜 디자인이 단연 화제였습니다. 이탈리아와 폴란드 등에서 가장 예쁜 자동차로 뽑혔고, 이탈리아 저널리스트들이 꼽은 올해의 유럽 차, 슬로베니아와 포르투갈 등에서도 카테고리 베스트카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영국, 독일 할 것 없이 수년 동안 유럽 전역에서 B세그먼트 최고의 차, 혹은 가장 예쁜 디자인의 자동차로 미토는 선정됐습니다. 미토는 처음에 '주니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유럽인을 대상으로 이름을 공모했죠. 미토에 회사가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는 상징적 이벤트였습니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퓨리오사라는 이름은 하지만 채택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미토라는 이름을 내놓게 됩니다. 본사가 있는 밀라노의 앞글자와 공장이 있는 토리노의 앞글자를 떼어다 붙인 것인데요. 차의 이미지와 결과적으로 잘 맞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미토는 이탈리아어로 '신화의' '전설적인'이라는 뜻도 담고 있다고 하네요.
사진=FCA
출시 전부터 충분히 분위기를 띄운 덕이었는지 미토는 등장과 함께 잘 팔려나갔습니다. 0.9리터 터보 가솔린 엔진부터 디젤까지 엔진도 다양했고, 170마력짜리 엔진이 들어간 콰드리폴리오 베르데 같은 고성능형 모델도 등장했습니다. 가격은 미니나 아우디 A1보다 저렴하게 책정됐습니다. 본격 판매가 이뤄진 2009년에는 유럽 전역에서 62,000대가 넘게 팔려나갔습니다.
최근 부분변경이 이뤄진 현대 i20의 휠 / 사진=현대자동차
역시 최근 등장한 체코 브랜드 스코다 코디악의 고성능 버젼인 RS의 휠 / 사진=스코다
다들 알파로메오의 휠을 떠올리게 합니다 / 사진=FCA
2011년까지 유럽에서 연 4만 대 이상이 팔리던 미토는 그러나 2012년부터 판매량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2017년에는 11,000대 수준까지 곤두박질치게 됩니다. 판매량이 떨어진 이유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는 건 2008년 등장 이후 한 번도 세대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경쟁자들은 꾸준히 새로운 디자인, 새로운 기능으로 승부를 펼 때 어찌 된 일인지 알파로메오는 부분 변경만 조금 했을 뿐 제대로 투자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미토는 처음 그 모습 그대로 계속 버티고 경쟁해야 했죠. 또 한 가지 문제는 3도어 쿠페 타입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미니도 5도어 모델을 내놓는 등, 실용성을 보강하는 상황에서 미토는 일관되게 3도어 형태로만 출시됐습니다.
사진=FCA
여기에 시트로엥이 내놓은 DS3 등이 경쟁에 가세하면서 미토의 입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었는데요. 보통 이쯤 되면 세대교체를 통해 반전을 꾀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알파로메오는 뜻밖에도 10년 동안 회사 위해 수고했다며 미련 없이(?) 미토의 퇴출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SUV 모델에 집중하기로 합니다.
보통 규모가 어느 정도 되는 자동차 회사들은 여러 모델을 내놓고 보다 큰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기 마련입니다. 이것저것 내놓다 보면 그 안에서 대박 나는 차도 있을 것이고, 왕창 까먹는 차도 있을 겁니다. 또 본전은 해주는 모델, 점유율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모델 등, 여러 역할, 여러 결과가 뒤섞여 있기 마련인데요.
하지만 알파로메오와 같은 작은 제조사는 그렇게 다양하게 차를 내놓고 경쟁할 처지가 아닙니다. 더욱 재정적으로 안정적이지도 않다면 말이죠. 따라서 미토처럼 대당 이익이 상대적으로 적은, 그래서 원가 절감이 쉽지 않은 가운데 다시 거액을 들여 투자를 하는 게 부담되는 모델은 아예 포기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습니다.
미토와 함께 사진을 찍고 있는 세르지오 마르치오네(중앙) 회장 모습 / 사진=FCA
이미 몇 차례 이야기했지만 폴크스바겐이 호시탐탐 알파로메오를 노리고 있다는 점도 피아트크라이슬러 그룹은 신경이 쓰였을 것입니다. 자생력을 키우지 않고 그룹에 계속 의존만 하다가는 그룹 전체가 위험에 처할 수 있고, 그래서 결국 백 년이 넘는 브랜드를 독일인들에게 팔아 넘기게 될지도 모를 일이니 뭔가 돌파구를 찾아야겠죠. 그게 '볼륨 세그먼트 포기, SUV에 대한 투자'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좋은 차를 내놓았지만 모기업과 알파로메오 자신의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 결국 이 차에 더 많은 돈을 더 투자할 수 없게 만들었다니, 씁쓸하죠? 최근 마세라티와 알파로메오의 실적이 그리 좋지 않다는 얘기는 한 바 있습니다. 사실 그룹 전체가 위기라는 게 좀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싶은데요. 그나마 잘 나가는 지프가 버텨주는 형국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제대로 한국에 알파로메오가 론칭할 수 있을까요? 현재까지 미토가 다시 등장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입니다. 후속에 대한 언급도 없네요. 미니와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 미토 수입을 혹 기대하고 있던 분들에게는 보통 아쉬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알파로메오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궁금한 분들은 아래를 클릭하세요.
한국오는 알파로메오 그 탄생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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