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 아우디보다 독일인들이 더 기대하는 재규어 I-페이스

재규어가 내놓은 순수(배터리)전기차 I-PACE는 여러 면에서 의외라 할 수 있는 자동차입니다. 재규어 하면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와 비교했을 때 점잖고 우아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요. 약간 부정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세단은 지루한 감이 없잖아 있습니다. 뭐,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얘깁니다. 

실내 디자인은 최고급 플래그십이나 F타입 같은 스포츠카가 아닌 이상 조금은 올드한 느낌을 받기까지 했죠. 또 재규어를 몰면서 운전의 재미를 이야기하기는 좀 그렇습니다. (세단 기준) 그런데 I-PACE는 뭔가 다른 것 같네요. 제가 직접 타보진 않았지만 지금까지 나온 여러 영상 자료, 또 영국이나 독일에서의 평가를 보면 운전의 감각이 새롭고, 뭔가 기대를 하게 만듭니다.

사진=재규어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11월 초에 '독일 올해의 자동차(GCOTY) 결과가 나왔습니다. 13명의 독일 판정단이 60여 개의 후보를 심사했고, 그중 5대가 최종 결선에 올랐습니다. 쟁쟁했죠. 아우디 A6, 현대 넥쏘, 폴크스바겐 투아렉, (그 멋진 디자인의!)푸조 508, 그리고 재규어 I-PACE.

경쟁은 I-PACE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독일에서 선정한 올해의 차에서 전기차로는 처음으로 재규어 I-PACE가 선정된 것이라고 하네요. 늦었지만 축하합니다. 하지만 올해의 차에 뽑혔다고 해서 그게 반드시 판매량에 큰 도움을 준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결국 선택은 전문가들이 아닌 일반인들이 하는 것일 테니까요. 그런데 재규어 입장에서는 기대를 조금 더 해봐도 좋을 내용이 또 하나 있었습니다.

디자이너 이안 칼럼 형님이 '독일 올해의 차' 트로피를 받으며 활짝 웃고 있습니다 / 사진=재규어

독일에서 자동차 소식을 전문적으로 전하는 아우토모빌보헤(automobilwoche)라는 꽤 괜찮은 (유료 독자의 부심) 매체가 있습니다. (네. 저는 여러 정보를 얻기 위해 정기 구독을 참 많이도 하고 있습니다. ㅠㅠ) 여기서 진행하고 있는 설문 하나가 눈에 띄더군요. '어떤 전기-SUV가 가장 성공할 것이라 보느냐?'라는 질문에 9138명이 이렇게 응답을 했습니다.

아우디 E-tron (13.59%)

재규어 I-PACE (60.89%)

메르세데스 EQC (15.51%)

테슬라 모델 X (10.02%)

보셨듯이 예상을 깨고(?) 재규어가 압도적으로 많은 표를 받았습니다. 이 투표가 영국이었다면 '그러겠거니~'하고 넘겼을 겁니다. 그런데 자신들 자동차에 자부심 강한 독일에서 아우디와 벤츠를 따돌리고, 거기다가 프리미엄 전기차의 원조라 할 수 있는 테슬라를 꼴찌로 밀어내며 당당히 I-PACE가 1위를 차지한 것은, 저는 분명 의미 있는 결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만약 저에게도 이 4개의 모델 중 만약 한 대를 고른다면 뭘 할래? 라고 묻는다면 재규어를 선택할 겁니다. 단 한 번도 (사실은 F타입 제외하면) 재규어 자동차를 사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던 제게 큰 망설임 없이 I-PACE를 선택하도록 한 힘은 '새로움과 운전의 재미에 대한 기대'라고 요약할 수 있을 듯합니다.

뭔가 자신감 뿜뿜하는 느낌인데요? / 사진=재규어

아주 영리하고 영리했던 전략

우선 I-PACE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무릎을 탁~치게 만든 부분은 차의 포지션이었습니다. 콘셉트라고 해야겠죠? 이것도 저것도 아닌, SUV라 하기엔 좀 낮고, 그렇다고 세단이라고 하기엔 뭐한, 지상고 높은 고급 해치백 같은 이 중형급 전장의 CUV는 마땅히 경쟁 브랜드의 무엇과 매칭을 시키기 어려운 개념의 전기차라 하겠습니다.

벤츠의 EQC에 대한 소감을 이야기할 때도 드린 이야기이지만 EQC나 E-트론은 기존의 SUV 시장을 많이 고려한 모델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SUV적인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가운데 자신들이 보여줄 수 있는 전기 SUV의 강점을 살렸다 할 수 있죠. 덜 용감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런데 I-PACE는 기존 시장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색깔로 어필했습니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고 싶다는 그런 의미로도 읽힙니다.

보이스가 너무나 매력적인 두아 리파. 10대와 20대가 좋아하는 이 팝가수가 모델이라는 것은 I=PACE의 전략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 사진=재규어

기존의 재규어 이미지를 벗어냄으로써 새로운 트렌드가 된 전기차 시대에 맞는 '새로운 브랜드'의 이미지를 입을 수 있다는 것, 그런 관점에서 연결해 보면 익스테리어는 물론 실내의 확 바뀐 디자인도 좋은 결정이었다 봅니다. 막 가지고 놀고 싶고, 이것저것 만지며 뭔가를 익히고 싶게 하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킵니다. 

흔히들 '자동차는 남자들의 장난감'이라는 표현을 하는데 I-PACE는 그것과 어울립니다. 그런데 이 장난감이란 표현은 단순히 보여지는 것만이 아닌, 주행 감각으로도 이어지는 듯합니다. 생각보다 (운전이)재미있는 모양이에요. 타는 사람들 대부분 긴 휠베이스임에도 (운전) 맛이 난다고 합니다. 400마력과 696Nm라는 큰 토크는 낮은 지상고, 그리고 배터리 팩으로 무게 중심을 또한 낮춘 이 차와 조화를 잘 이뤄냈습니다.

참고로 전장이 더 긴 재규어 F-Pace의 휠베이스가 2874mm인데 I-PACE는 4682mm의 전장에 휠베이스는 2990mm나 됩니다. (<==이게 레인지로버 수준이라는 거 아닙니까.) 다만 이렇다 보니  엔진 자리도 트렁크처럼 공간을 마련해 놓고 있음에도 뒷좌석을 눕혔을 때 한 공간에 부피 있는 물건을 싣기에는 다소 모자란 점도 있습니다. 어쨌든 실내 좁다는 말은 안 나올 겁니다. 

이렇게 승차감 좋고, 배터리는 유럽의 새 연비법 기준으로 최대 480km의 거리까지 달릴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고, 거기에 운전의 재미까지 있습니다. 뭔가 전기차 시대에 어울리는 듯한 콘셉트를 보여주고, 호기심 갖게 합니다. 무엇과 비슷하다는 소리도 나올 일 없습니다. 이런 차를 재규어가 내놓다니요!!!

저 같으면 이 차를 타고 오프로드를 달릴 일 없겠지만 재규어는 그래도 SUV이니 이런 험로에서의 주행도 염두에 두고 차를 만들었음을 이렇게 보여주고 있네요 / 사진=재규어

전통적인 암스테르담의 구시가이지만 전기차에 친화적이고 트렌디한 네덜란드의 이미지와 맞아 떨어지지 않나 생각됩니다 / 사진=재규어

사진=재규어

한국 재규어 홈페이지에는 차 가격이 9920만 원부터 시작이라고 돼 있습니다. 비싸죠. 비싼 거 맞습니다. 그래도 만듦새가 좋고, 알루미늄 바디 등, 소재도 '고급'이라는 단어를 해치지 않는 수준인 거 같습니다. 독일 사람들이 재규어에 이렇게 표를 주고 기대를 하는 것도 정말 오랜만에 보는 듯 (제 기억엔 처음이지만;;)하네요.

재규어의 전기차 전략이 얼마나 좋은 결과를 얻게 될지 저도 참 궁금합니다. 부디 잘 팔렸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 오너들의 평가(입소문), 또 계속될 라이벌들과의 비교 테스트(전문 매체들) 등에서도 나쁘지 않은 이야기를 들어야겠죠. 지금까지만 놓고 보면 크게 실망할 일은 없을 거 같네요.

SUV로 분류되지만 이런 자체 레이싱 대회도 펼칠 수 있는 독특한 전기차 I-PACE /사진=재규어

처음에는 I-PACE에 대한 이야기를 다음(Daum) 칼럼 코너에 쓸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블로그에서 그냥 편하게 쓰고 싶었습니다. 포털 같은 곳에 노출되면 단박에 '얼마 받고 빨아주느냐'는 소리가 나올 그런 글이니까요. 그렇다 보니 내 마음에 들어서 내 마음 가는 대로 글을 쓸 때에는 역시 이 곳만 한 곳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앞으로도 지극히 주관적인 (하지만 데이터를 잘 활용한;;) 이런 글쓰기는 블로그에 주로 쓰게 될 거 같습니다. 이런 글 혹 마음에 드신다면 이야기해주세요. 좀 더 자주 쓰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오늘은 영국 올드보이 브랜드의 대변신을 이끈 I-PACE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