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2차 패전 후 완전히 망가진 국가 경제가 폴크스바겐과 같은 자동차 제조사들의 기사회생을 통해 라인강의 기적으로 이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50년대 들어섰을 당시 자동차 보급 수준이 인구 천명 당 12.7대였는데 그게 10년 만에 천명 당 81대 수준까지 올라갔죠.
1960년대에는 자동차 보급대수가 800만 대까지 치솟았고 70년대 들어서서는 자국에서 소비되는 자동차 보다 수출하는 자동차가 더 많아지게 됐습니다. 1952년 서독 정부가 속도제한을 없애면서 자동차는 그야말로 질주의 시대를 맞게 됩니다. 히틀러 시대 은빛화살이라 불린 전설의 레이싱 카들에 열광한 국민들답게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그들에게 자동차는 전쟁을 일으킨 국가, 그리고 패전국 국민이라는 따가운 눈총으로 갖게 된 위축된 마음을 질주 순간만큼은 날릴 수 있게 해줬고 독일 경제를 살린 생명수 같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급격하게 자동차가 늘어나고 빠른 속도의 시대를 맞으며 교통사고와 그에 따른 사망자도 급격하게 늘어갔습니다.
1970년에는 한 해 동안 2만 명이라는 엄청난 수의 교통사고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독일 정부의 계속된 노력으로 2000년 이후 사망자 수는 급격하게 줄어들었죠. 이제는 1년에 3,400명 수준이 됐습니다. 참고로 우리나라가 재작년 처음으로 한 해 교통사고 사망자가 5천 명 이하로 떨어졌죠.
두 나라 인구나 자동차 보급 대수를 비교해 생각하면 차이는 제법 나는 편입니다. 독일은 2013년 기준 인구 백만 명 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41명으로 스웨덴의 28명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세계 최고 수준을 보여주고 있죠. 반면 우리나라는 2014년을 기준으로 처음으로 백만 명당 사망자 수가 세 자릿수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교통사고율과 사망자 수 등이 줄어들게 된 데에는 많은 이유들이 있을 겁니다. 교통 시스템 개선과 운전면허교육의 강화, 계속되는 정부의 캠페인, 그리고 제도를 잘 따르는 운전자들의 의식 등이 어우러진 결과라 하겠는데요. 그중에서도 높은 안전벨트 착용률도 사망자나 부상자를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사진=ADAC
안전벨트 마이스터의 나라
독일에는 연방교통연구소(BASt)라는 기관이 있습니다. 교통과 관련된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한 연구, 그리고 각종 교통 관련 데이터 등을 분석하는 곳인데요. 작년에 이곳에서 자부심(?) 가득한 자료 하나를 공개해 많은 독일 언론들이 소개를 한 적이 있습니다.
독일연방교통연구소가 조사한 2015년 자료에 따르면 독일 성인들 98%가 자동차에서 안전벨트를 착용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아우토반에서는 99%까지 늘어납니다. 이 비율은 운전석과 동반석만이 아닌, 뒷좌석까지 포함된 수치입니다. 한 마디로 전 좌석에서 거의 모든 탑승자가 안전벨트를 하고 있다고 보면 되는 것이죠.
어린이들의 경우는 안전띠 착용률이 더 좋아서 평균 99%였고, 아우토반에서는 100%였습니다. 어린이용 카시트 장착률도 비교적 높은 편이었는데요. 도심에서 85%, 국도에서 89% 수준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수치가 계속 좋아지고 있다는 게 인상적입니다.
어린이시트 장착 모습 / 사진=ADAC
이처럼 안전벨트 착용률이 높다 보니 한 독일 언론은 안전벨트 착용에 있어서 만큼은 마이스터라고 기사를 쓰기도 했는데요. 이런 분위기가 계속 이어진다면 조만간 안전벨트 착용률이 어른과 어린이 할 것 없이 100%에 이르지 않겠나 예상됩니다. 독일도 여러 교통 문제를 안고 있긴 하지만 적어도 안전벨트에 있어서 만큼은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는 생각입니다.
현재 독일은 안전띠 외에도 자전거 타는 어린이들의 헬멧 착용에 대한 국가적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특히 6~10세 아이들의 헬멧 착용률이 69%로 2013년에 비해 6.9%나 떨어져 걱정이라고 하는데요. 주변의 자전거 문화가 발달한 유럽 국가들에 비해 성인 자전거 헬멧 착용률도 상대적으로 떨어져 이 부분에서 고민이 있어 보입니다.
사진=ADAC
'자동차의 나라답다'라는 표현을 독일을 향해 많이들 합니다. 벤츠와 포르쉐 등의 나라이자 속도제한이 없는 아우토반의 나라이기 때문이겠죠. 또 관련 산업이 매우 발달한 자동차 산업 국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외에도 교통법규를 잘 지키는 운전자들, 또 효율적 교통 시스템을 만들어 적용하고 알리는 정부의 계속되는 노력 등이 어우러져 있음도 간과해선 안됩니다.
우리나라를 재작년에 찾았던 국제도로교통사고데이터베이스(IRTAD)의 프레드 웨그먼 의장은 "한국은 장기적으로 교통사고를 줄이는 시스템을 갖춰야 하고 교통 관련 정부 기관들이 유기적으로 협력해야 해야 한다"고 발언을 한 게 언론을 통해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IRTAD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기관으로 회원국의 교통사고 자료를 정리하고 분석하는 곳이죠. 이곳에서 우리나라의 교통정책이 유기적이지 못하다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은 정부가 새겨들을 필요 있습니다.
단속이 우선이 아닌, 중장기 대책을 마련하고 지속적인 캠페인 등을 펼치는 방향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나라의 안전띠 착용률도 더 빠르게 상승할 수 있을 테니까요. 말이 나왔으니 IRTAD 자료 중 OECD 회원국의 자동차 뒷좌석 안전띠 착용률을 비교하는 자료를 보여드리면서 글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독일연방교통연구소 자료와 약간 차이가 있긴 하지만 냉정하게 우리의 현재를 확인하고 여러분 모두 안전띠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OECD 주요 회원국 뒷좌석 안전띠 착용률>
1위 : 독일 (97%)
2위 : 호주 (96%)
3위 : 아일랜드 (89%)
4위 : 뉴질랜드 (87%)
5위 : 핀란드 (86%)
6위 : 프랑스 (84%)
6위 : 스웨덴 (84%)
8위 : 네덜란드 (82%)
9위 : 스페인 (81%)
9위 : 덴마크 (81%)
11위 : 오스트리아 (76%)
12위 : 미국 (74%)
13위 : 이스라엘 (73%)
14위 : 스위스 (72%)
15위 : 리투아니아 (71%)
16위 : 헝가리 (68%)
17위 : 슬로베니아 (66%)
17위 : 체코 (66%)
19위 : 아이슬란드 (65%)
20위 : 일본 (61%)
21위 : 폴란드 (59%)
22위 : 아르헨티나 (26%)
23위 : 그리스 (23%)
24위 : 말레이시아 (11%)
25위 : 이탈리아 (10%)
26위 : 대한민국 (9%)
27위 : 세르비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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