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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VW 경차, 독일에선 아이폰 보다 싼 가격에 탄다?

폴크스바겐은 디젤 게이트 이후 전 세계적으로 많은 비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질이 나쁜 속임수를 썼고 워낙 그 규모가 커 판매는 고사하고 제대로 회사가 버틸 수나 있겠냐는 얘기까지 터져 나왔습니다. 실제로 이 사건 여파로 미국 등에서는 판매량이 많이 줄었고 러시아나 남미에서도 하락세를 면치 못했습니다. 


하지만 유럽의 경우 한 달 반이 지난 10월 판매량을 들여다 보니 생각 보다 디젤 게이트 영향을 의외로 적게 받은 것이 아닌가 싶더군요. 유럽자동차공업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EU 기준으로 10월 폴크스바겐 그룹의 판매량은 전년 대비 0.5% 마이너스 수준이었습니다. 오히려 아우디는 이 기간 판매량이 4.1%가 늘기까지 했죠. 독일과 중국 등에서도 10월 기준 되레 신차 판매량이 증가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서도 10월 한 달 타격을 받긴 했지만 11월에는 다시 사건 이전 수준으로 회복한 것으로 보입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선방(?)을 펼칠 수 있었던 걸까요?


폴크스바겐 UP / 사진=VW


VW은 지금 파격 프로모션으로 버티기 중

가장 큰 이유라고 한다면 엄청난 프로모션이 아닐까 합니다. 프로모션이라는 것은 보통 판매자들이 더 많은 구매를 유도하기 위해 내놓는 좋은 조건을 이야기하는데요. 폴크스바겐은 요즘 어느 지역 가릴 것 없이 대대적 할인 정책을 펴고 있죠. 어떻게 해서든 판매량이 떨어지는 것을 막아내야 한다는 것이 당면 과제가 됐고, 그러니 현재는 마진이 얼마나 되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수입사 차원에서 60개월 무이자 할부를 하거나 현금 구매 시 300~500만 원 가까이를 차종에 따라 할인해주고 있습니다. 문제가 된 EA189 타입 엔진이 아닌 이상 현재까지는 더는 배출가스로 인한 타격을 입지 않을 거라는 전망, 그리고 여기에 좋은 구매 조건이 더해져 소비자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분위기는 독일도 예외는 아닌데요. 특히 작은 차들의 경우가 더 조건이 좋습니다. 


독일 뒤스부르크대 센터오토모티브 리서치(CAR)는 폴크스바겐이 독일에서 어떤 할인 정책을 펴며 고객 잡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지를 조사했습니다. 눈에 띄는 내용 중 하나는 경차급인 폴크스바겐 업, 소형차 폴로, 그리고 골프 등, 가솔린 엔진이 장착된 차량들을 최대 30%까지 할인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는데요. UP의 경우 기본 가격이 9,975유로인데 30% 할인해 6,943유로에 팔고 있었습니다. 3천 유로 이상 할인된 가격으로, 이는 폴로나 골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특히 골프 1.2 TSI 모델의 경우 5,200유로, 그러니까 우리 돈으로 대략 650만 원 정도를 할인하고 있었습니다. 


폴로 / 사진=VW

그리고 또 하나 눈에 띈 내용은 경차 UP을 2년 동안 리스할 경우 총 비용이 독일에서 판매되고 있는 아이폰 6플러스 (64GB 기준) 보다도 적다는 점입니다. 1년에 1만 킬로미터 주행한다는 조건만 맞추면 추가 부담 없이 월 29유로 (약 3만 6천 원)에 이용할 수 있습니다. 2년 동안 지출하는 리스 전체 비용은 고작 696유로로, 아이폰 6플러스 (64GB)가 약 700유로 전후로 독일에서 판매되고 있으니 정말 스마트폰 보다 더 싸게 차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주로 도심에서, 출퇴근이나 근거리 이동에 쓰이는 경차 특성상 주행거리 제한도 그리 부담이 되는 수준은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요. 독일 포커스지와 인터뷰를 한 센터오토모티브 리서치의 두덴회퍼 교수는 이 정도의 리스 금액을 만약 2년 동안 탄다는 전제 하에 구매 비용으로 환산하면 신차를 절반 가격에 사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그에 따른 마진 포기는 당연한 일이라는 말도 덧붙였죠.


마진 포기는 물론 비판에 고개 숙여야 하는 현장

독일 내 폴크스바겐의 그간 인기를 생각하면, 또 독일에서 판매량 20위 권 안에 드는 인기 차종을 월 3만 6천원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한 것 등을 보면, 현재 폴크스바겐이 이번 사태를 얼마나 위기로 인식하고 있는지 가늠이 됩니다. 11월부터 시작된 이 할인 정책이 과연 어떤 결과를 낼지는 좀 더 지켜 봐야겠는데요. 하지만 저는 이런 과감한 가격 정책을 마냥 좋게만 볼 수는 없습니다. 경영진의 잘못된 선택의 결과이고 이로 인해 폴크스바겐의 많은 영업사원들과 노동자들, 그리고 그 가족들이 현재 뜻하지 않는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폴크스바겐 영업사원들 중 상당수가 현장에서 여러 비판의 목소리에 시달리고 있고 인력 감축에 대한 공포에 떨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월세와 생활비, 대출금에 대한 걱정을 한다는 폴크스바겐 어느 말단 직원의 얘기도 본 기억이 납니다. 왜 그들이 욕을 먹고, 왜 그들이 잘못에 대한 경제적 피해를 당해야 하는 걸까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에 대해 경영진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분명 소비자 입장에서는 다양한 할인혜택을 제공받는 요즘이 차량 구매의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려움을 겪고 있는 또다른 이들을 생각하면 마음 한쪽이 무거워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