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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제조사 뭐하나’스마트키 약점 이용 차량 싹쓸이


며칠 전 독일의 지역 온라인 매체 헤센샤우는 프랑크푸르트 근처 두 개의 작은 도시에서 6개월 동안 총 80대의 고급 자동차가 도난을 당했다는 보도를 했습니다. 차량 도난이야 어디서든 있어 온 일이지만 이 번 경우는 좀 달랐는데요. 모두 스마트키가 적용된 모델들이었습니다.


스마트키는 열쇠구멍에 키를 꽂아 시동을 켜지 않아도 돼 편리하죠. 요즘은 키를 가방이나 주머니 안에 넣은 상태에서 차의 문 손잡이를 잡기만 해도 잠김 상태가 해제되는 ‘패시브’ 방식의 스마트키 사용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런데 도난 당한 80대의 차량들 모두 이 ‘패시브’ 방식이 적용된 스마트키 차량들이었습니다. (일반적 원격 도어 잠금 방식의 스마트키는 제외)


동유럽으로 빼돌려진 고급 자동차들 중 일부가 체코 등에서 발견되었고 용의자 두 명이 체포되면서 이 번 사건의 내막이 알려지게 됐습니다. 두 명의 절도범들은 스마트키를 가진 운전자와 그 운전자 소유의 자동차를 각각 맡았습니다. 이동 중인 운전자와의 거리를 5~7미터 정도로 유지한 절도범이 스마트키와 자동차가 사용하는 주파수를 증폭기를 이용해 확장시킵니다. 그러면 차량 근처에 머물고 있던 공범은 확장된 주파수에 의해 보안과 잠금 장치가 해제된 차량에 탑승 엔진 스타트 버튼을 누르고 유유히 사라지는 것이죠.


손에 쥘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증폭기는 안테나를 뽑게 되면 최대 30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스마트키의 주파수를 확장시킬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또한 운전자와 차량 간의 거리는 100미터 이상에서도 차의 문을 열고 시동을 켤 수 있죠. 이 사건으로 패시브 방식의 스마트키 안전성이 도마 위에 오르게 됐습니다.



증폭기 범죄 설명도 / 이미지 출처=위키피디아




이미 수년 전 경고된 사안

제조사들 그 동안 뭐했나

최근 호주 언론도 이런 방식의 공격을 통해 차량 내 귀중품을 훔쳐간 사건을 보도하기도 했는데요. 독일의 한 보안전문가는 주파수 증폭기는 이미 인터넷을 통해 구할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처럼 스마트키 약점을 이용한 자동차 도난 사건은 이미 2011년 스위스 연방공대의 실험을 통해 그 가능성이 확인된 사안입니다. 그리고 그 경고는 실제가 됐습니다. 그럼에도 제조사들은 왜 이 경고를 소홀히 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자동차 회사 보다는 보안 관련 업체에서 주파수를 변형시켜 증폭기 사용을 못하게 하는 기술을 선보이기도 했죠. 그렇지 않아도 요즘 차량 해킹에 대한 소식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스마트키 조차 이처럼 약점을 노출해 운전자들의 불안감은 더 커지게 됐습니다. 당장 집밖에서도 얼마든지 이런 장비만 있다면 차량을 훔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전문가들은 급한 대로 은박지 등으로 스마트키를 감싸 보관하거나 알루미늄 캔 등에 담아 두라 당부하고 있습니다. 또 차량 키를 냉동실에 넣어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전했습니다.


이번 사건을 보도한 헤센샤우는 한 제조사에 이 문제를 문의했지만 제조사는 명확하게 답을 내놓지 못한 상태입니다. 아마도 자체적으로 조사를 진행한 후에 방법을 밝힐 것으로 보이는데요. 수입 차뿐만 아니라 국내 제조사들도 이런 패시브 방식의 스마트키를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결코 남의 나라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정부에서도 상황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갈수록 첨단 장비에 의해 자동차 이용이 편리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편리함 이면에 자리한 안전성을 너무 소홀히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걱정입니다. 소비자들의 현명한 대응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합니다. 그래야 제조사들의 안일함에 채찍질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첨단화 되고 있는 스마트키 / 자료사진=BM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