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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단단해지는 자동차, 오히려 탑승자에겐 위험?

1950년대까지만 해도 탑승자의 안전을 위해 자동차는 단단해야만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다 벤츠에서 근무하고 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출신의 엔지니어 벨라 바레니(Béla Barényi, 1907~1997년)에 의해 그 생각들이 바뀌게 되죠. 크럼플 존(충격흡수지대)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입니다.


크럼플 존은 외부에서 밀려 들어오는 강한 충격을 흡수하는 역할을 하는데 앞은 보닛, 뒤는 트렁크 공간 일부가 여기에 포함됩니다. 이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세이프티 존이 있습니다. 자동차 측면과 A~C 필러 부분 등이 여기에 속하는데요. 그러니까 찌그러져야 하는 부분과 버티면서 승객을 보호하는 부분이 조화를 잘 이룰 때 부상 위험도가 낮아진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1962년 충돌 테스트 장면 / 사진=다임러

1939년부터 은퇴하던 1972년까지 다임러의 개발부서에서 근무를 했던 벨라 바레니는 안전 문제에 특히 관심이 많았습니다. 2009년까지 2,500여개 이상의 특허를 보유해 에디슨 보다 도 더 많은 특허를 가진 인물로도 유명합니다. 그는 자동차 전반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갖고 있었고, 크럼플 존도 그의 고집과 열정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습니다. 


결국 1959년 벤츠의 고급 모델 W111이 세계 최초의 크럼플 존이 적용된 자동차라는 타이틀을 달고 세상에 나오게 되었고, 그의 노력으로 벤츠의 충돌 테스트는 최고 수준을 유지하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벨라 바레니 / 사진=다임러



크럼플 존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안전에 있어 매우 중요한 크럼플 존의 가치가 요즘 퇴색되고 있다는 주장이 독일에서 제기됐습니다. 독일 일간지 디 차이트는 얼마 전 유럽 최대 운전자 클럽인 아데아체(ADAC) 자동차 사고 분석팀이 밝힌 충돌 안전과 관련한 내용을 공개했습니다. 


아데아체 사고분석가들에 의하면, 2000년대 이후에 만들어지는 자동차들, 특히 유럽에서 판매되고 있는 자동차들이 너무 구조의 강도에만 신경을 써 크럼플 존의 역할이 축소되고 있고, 이로 인해 충돌 사고 시 승객들의 중상 정도가 과거 보다 더 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흐름이 계속되고 있는 이유를 유로 NCAP에서 더 좋은 충돌 테스트 성적을 받으려는 제조사들의 대응 때문이라고 아데아체는 분석했는데요. 별 5개 만점을 받거나 그에 준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했을 때 차에 바라보는 시장의 부정적 인식을 고려, 차체가 강한 쪽으로만 점점 보강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작은 자동차들의 경우 몸집 자체가 크지 않기 때문에 크럼블 존을 넉넉하게 가질 수 없고, 따라서 일단 높은 별점을 받을 수 있는 강성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아데아체는 전했습니다. 이런 흐름이 되레 승객들의 흉부 쪽 부상 정도를 높이고 있다는 건데요.  SUV도 충돌 시 흉부 부상 정도가 더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들의 이런 주장은 충돌 테스트 분석 외에도 자동차 사고를 10년 단위로 조사해 얻은 자료를 통해서도 어느 정도 뒷받침 되었습니다. 2000년부터 2010년까지의 충돌 사고를 조사했더니 오히려 그 이전 보다 승객들의 사망율과 상체 쪽 중상 정도가 늘었다는 겁니다.


아데아체의 분석이 맞다면, 제조사들은 승객들의 안전 보다는 신차 별점 이미지에만 더 신경을 쓴 게 아니냐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자동차 강도와 강성이 보강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크럼플 존의 기술적 발전도 이뤄져야 진정한 의미의 충돌 안전성이 만들어지는 것이겠죠. 어느 하나를 소홀히 하면서 성적에만 집착하는 그런 자세, 더 이상은 없어야겠습니다. 


강성 보강용 트리디온 세이프티 셀 구조가 적용된 2세대 스마트/ 사진=다임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