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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포르쉐 너마저, 독일 차 전통이 무너지고 있다



얼마 전 베이징 오토쇼에서 포르쉐가 박스터와 카이맨 GTS 모델을 선보였습니다. 포르쉐가 내놓고 있는 가장 저렴한 모델들이죠. 하지만 성능은 형인 911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 많은 분들의 의견입니다. 그만큼 싸고(?) 좋은 포르쉐라는 얘기가 되는데요. 


이즈음, 다른 소식이 또 들려왔습니다. 콤팩트 SUV 마칸에 4기통 엔진이 달릴 거라는 내용이었죠. 박스터가 나오기 시작한 90년대 중후반 이후부터 포르쉐는 4기통 엔진을 한 번도 자신들의 모델에 올린 적이 없습니다. 물론 브랜드 역사 전체를 놓고 보면 의외로 4기통 모델이 몇 있었지만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포르쉐 팬들이 인정한 건 단 하나, 수평대향 6기통 뿐이었습니다. 포르쉐 911이 바로 이 전통을 이어오고 있죠. (초기 파생 모델 중에 4기통이 있다는 걸로 들었는데 정확히 어떤 건지는 모르겠네요.) 



최근 소개가 된 박스터 GTS. 사진=netcarshow.com


6기통으로 자신 보다 더 큰 녀석들하고 당당히 승부를 펼친 야무진 엔진은 포르쉐의 자랑이었고 상징이었습니다. 그런데 중국 시장을 우선 겨냥했다고는 하나 SUV 마칸에 4기통 엔진을 올린다는 소식은 큰 변화가 아닐 수 없죠. 그런데 여기에 바로 다른 소식이 덧붙여졌습니다. 마칸 뿐 아니라 차세대 박스터와 카이맨에도 6기통 엔진과 함께 4기통 엔진이 달려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포르쉐가 아주 돈 독이 올랐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충분히 돈을 잘 벌고 있는 회사에서 뭐가 아쉬워 자신들의 전통을 깨면서까지 4기통 엔진을 올리려 하는지 모르겠다 싶었죠. 그런데 단순히 라인업을 확장해 가격을 조금 낮춰 많이 파는 게 과연 회사에 도움이 되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습니다. 지금도 충분히 높은 마진으로 많은 돈을 벌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여기 또 다른 소식을 보면서 '아~ 이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박스터 보다 더 싸고, 더 가볍고 작은 로드스터를 2016년에 선보일 계획을 포르쉐가 갖고 있다는 걸 자동차 전문지 한 곳이 단독으로 보도를 한 것이죠.



718 출시 소식을 전하고 있는 아우토빌트. 사진=스케치북


독일 아우토빌트는, 포르쉐가 718이라는 새로운 소형 로드스터 모델을 역시 2016년에 내놓을 계획을 갖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 차량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바로 '경량화'인데요. 1190kg 정도로 체중을 맞춰 내놓을 예정이라고 하는군요. 박스터가 약 1300kg이 조금 넘는 걸 생각하면 무게 차이가 100kg 이상 납니다.


사실 718은 1957년부터 62년까지 레이스에서 활약했던 경주용 모델의 이름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718의 스타일을 담을 계획이라고 하면서 박스터와는 약간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좀 더 앞뒤 오버행이 짧고 인테리어 또한 지금 것과는 다른 분위기를 연출할 거라고 하는군요. 



718 경주 모습. 사진=포르쉐


718 모습. 사진=favscar.com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이 차의 지붕은 천으로 덮게 되는 소프트탑 형태를 취하고, 손으로 직접 지붕을 여닫게 됩니다. 역시 무게 절감을 위한 선택이라고 하네요. 그리고 가장 큰 특징은 4기통 엔진이 들어간다는 사실이죠. 포르쉐가 처음 양산하기 시작한 356 모델이 4기통엔진이었죠. 그리고 박스터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968이란 모델 역시 4기통 엔진을 달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무게를 줄이고 작은 엔진을 달면서 포르쉐는 718의 가격을 약 39,000유로 정도로 책정을 할 것이라고 아우토빌트는 보도했습니다. 이 금액은 박스터의 약 60%가 조금 넘는 수준일 겁니다. 골프 R과 가격이 거의 비슷한 수준이에요. 다시금 저가 모델에 포르쉐가 도전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포르쉐가 돈이 궁해서 이런 선택을 한 것일까요?


포르쉐 356 판매용 모델. 사진=netcarshow.com


356 경주용. 사진=favscar.com


포르쉐 968. 사진=포르쉐


과거 포르쉐의 4기통 엔진을 단 모델들은 대체로 돈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최초 양산 모델 356은 회사가 돈이 없어서 4기통으로 시작한 것이고, 968과 같은 모델도 좀 더 저렴하게 많이 팔아 회사의 재정적 어려움을 타개해 보려 내놓은 모델이었죠. 이게 여의치 않자 박스터와 카이맨을 내놓았고, 다시 카이엔을 통해 포르쉐는 비로소 돈버는 회사로 전환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내놓을 4기통 마칸, 4기통 박스터와 카이맨, 그리고 새롭게 선보이게 될 소형 로드스터 718 등은 꼭 돈이 궁하거나 고파서 만드는 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그럼 뭘까요? 네, 환경 규제 때문이에요. 여러분, 중국도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를 굉장히 강화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유럽은 여러 차례 말씀을 드렸기 때문에 이미 잘 아실 테고요.


일정량의 자동차를 판매하는 자동차 회사들은 1년 동안 판매하는 전체 모델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평균을 어느 이하로 맞춰야 합니다. 유럽은 내년부터 평균 130g/km이고, 2021년부터는 95g/km가 됩니다. 이 평균치를 넘기는 회사들은 무지무지 많은 돈을 벌금으로 내게 돼 있죠. 그런데 재밌는 건 직접적으로 자동차 회사나 매거진들이 이런 점을 잘 얘기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겉으로는 더 다양한 고객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그렇습니다~라고 하지만 속으로는 '우리 비율 맞추려면 어쩔 수 없어요.'라고 말을 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작년에 포르쉐가 전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157,234대의 차를 팔았습니다. 그 중에 84,041대, 그러니까 전체 판매량의 53.5%를 차지한 게 어떤 모델인지 아세요? SUV 카이엔이었어요. 그 다음이 25,704대를 판 박스터/카이맨이고, 16.2%를 차지한 포르쉐 911이 25,704대를 팔았습니다. 마지막이 22,032대를 판매한 파나메라였죠.


가장 많이 팔린 카이엔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가장 높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 유지되면 포르쉐가 벌금을 와장창 얻어맞게 될 거예요. 그래서 회사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낮추기 위해 4기통 엔진을 올린 모델들을 속속 내놓고 있는 것입니다. 



벤츠의 콤팩트 SUV GLA. 사진=netcarshow.com


그런데 이런 환경 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고육책은 포르쉐에게서만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전통적으로 큰 차에 강점을 갖고 있고, 그래서 승차감을 고려한 뒷바퀴 굴림 모델들을 거의 대부분 만들어온 메르데세스 벤츠 같은 곳에서도 큰 변화가 일고 있습니다.


A클래스, B클래스, CLA, GLA 등, 요즘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 콤팩트 모델들 모두가 앞바퀴 굴림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일단 차가 작아지면 공간 확보를 위해 앞바퀴 굴림으로 바뀌게 됩니다. 거기다 차의 원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니 역시 좀 더 저렴한 앞바퀴 굴림으로 가는 것이죠. 그리고 이런 변화는 BMW에서도 보여집니다. 


3시리즈 이하의 모델들, 그러니까 앞으로 나올 1시리즈, 그리고 2시리즈 밴 등이 모두 앞바퀴 굴림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죠. 작은 차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건데, 그러면 왜 벤츠와 BMW는 이런 작은 차들에 자꾸 손을 대는 걸까요? 이 역시 포르쉐의 이유와 같습니다. 환경 규제에 대한 대응 차원이라는 거죠. 아우디 역시 A1과 새로 나올 A2 등, 작은 차에 신경을 부쩍 쓰고 있습니다. 벤츠 역시 앞으로 8개 모델 정도를 앞바퀴 굴림 방식으로 내놓을 것이라고 하네요. 즉, 규제가 독일 브랜드 전통적인 특성까지 바꿔버린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는 앞으로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더 작은 BMW, 더 작은 벤츠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이런 고급 브랜드들의 소형차 전략은 어쨌든 소비자들에게 보다 많은 선택권을 갖게 하는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하네요. 브랜드의 특성, 그 전통이 이렇게 무너지는가 아닌가 싶어서 말이죠.


* 댓글을 보면서 이 부분을 좀 더 설명을 드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음식으로 비유를 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오래 전부터 맛으로 유명한 음식점이 있었다고 하죠. 그 음식점 생길 때부터 이용하던 한 손님이 있는데, 그는 어느 날부터 그 음식점의 맛이 좀 변했다고 느낍니다. 주방장도 바뀌고, 그러면서 조리법에 변화가 왔기 때문이죠. 그 변화를 모르거나 조리법이 바뀐 후에 온 손님들은 사실 잘 모르는 부분일 거예요. "유명한 게 다 이유가 있었네~" 라고 새로 온 손님들은 이야기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랜 손님은 뭔가 아쉬움이 느껴집니다. 계속해서 그 음식점을 찾 아니면 발길을 끊든, 그건 이제 그 손님의 선택입니다. 단, 이해는 해요. 법규가 바뀌면서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를 법의 테두리 안에서 바꿔야 했을 테니까요. 어쨌든 그는 옛 맛을 떠올리며 조금은 아쉬운 마음으로 음식점을 나섭니다... 


독일 메이커들은 지금 큰 고민들을 하고 있을 겁니다. '어떻게 규제에 대응을 하면서 동시에 고객들이 우리에게 바라는 본래의 감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고 말이죠. 특히나 포르쉐나 벤츠, BMW 등은 엔진이나 구동방식 등, 주행을 통해 브랜드의 특성이 이어 왔기 때문에 고민이 더 클 것으로 보입니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와 전기차의 적용, 거기다 고집처럼 유지해 온 자신들의 전통을 깨는 이런 과정들... 뭔지 모를 이 아쉬움을 기술력으로 극복하고 자신들의 특색을 앞으로도 잘 유지해낼 수 있을지, 단단히 지켜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