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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원초적 기계덩어리, 랜드로버 디펜더



지프에 맞서기 위해 영국에서 만들어진 브랜드가 랜드로버죠. 비교적 대중적인 랜드로버 프리랜더와 디펜더가 있고, 고급스럽고 비싸기 그지없는 레인지 로버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프로드의 진정한 왕자. 수십 년 동안 그 원초적 모습이 변하지 않고 있어 마치 아마존의 원시림을 느끼게 해주는 디펜더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번 제네바모터쇼에서 이 디펜더가 두 가지 패키지를 한 모델을 내놓는다고 언론들이 소개를 하면서 다시 한 번 디펜더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이번에 선보이게 될 블랙 팩이 적용된 디펜더의 모습입니다. 멋지죠?

 

이건 숏바디로 흔히 불리는 3도어 디펜더 90 실버팩인 거 같네요. 시트에 븕은 색상이 가미된 가죽이 적용된 게 뭔가 좀 어색하긴 합니다만 어쨌든 멋집니다. 그런데 저는 이 신모델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디펜더 그 자체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디펜더에 색상이 들어간 가죽시트가 어색하다는 이유는 뭘까요? 앞서 말씀 드렸듯 이 차는 순수한 기계덩어리에 가장 가까운, 본연의, 존재의 이유에 가장 충실한 녀석이기 때문입니다. 디펜더는 1948년에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니까 67년 정도 됐나요? 처음에 이 차가 농사일을 하는 농부들에게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면 믿어지세요? 제가 사는 동네에도 나이 지긋한 독일 아저씨가 오래된 디펜더를 가지고 있는데 독일어로는 안행어(Anhaenger)라고 부르는, 바퀴 두개에 짐 싣고 다닐 수 있는 걸 끌고 다닙니다.  

 

사진출처 = gaelandefahrschule.de

 

사진에 보는 것 같은 겁니다. 물론 안행어는 다양해서 나무부터 건초더미, 거기에 공사장에서 쓰이는 자재 등을 다양하게 싣고 다닐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이런 야생성 살아 있는 디펜더는 크게 두 번의 변화를 꾀했습니다. 우선 첫 번째는 1983년에 지금 모습으로 변신을 한, 가장 큰 변화가 있습니다. 디펜더 90이라고 해서 3도어 숏 모델과 디펜더 110이라는 5도어 모델이 이 때 등장합니다. 사실 디펜더라는 이름으로 불린 건 그 이후인 1990년부터고 그 전엔 그냥 랜드로버였습니다.

 

1983년에 새롭게 등장한 디펜더는 파워스티어링 휠이 달리면서 풀사륜구동 방식이 적용됩니다. 본격적인 오프로드 신화는 이 때부터가 진짜라고 해야 되겠죠. 두 번째 변화는 2011년에 부분변경 모델이 등장하는 것이었는데요. 사실 디자인에서의 변화라기 보다는 이산화탄소 규제에 따른 대응이 우선 목적이었죠. 그나마 성능이라고 하면 최고속도가 132km/h에서 144km/h까지 빨라진 정도?

 

사진=디펜더 실버리미트 2005년형

사진= 디펜더 110 G4 챌린지 2006년형

사진=디펜더 90 스테이션 왜건 2007년형

사진= 디펜더 90 SVX 2008년형

사진= 디펜더 픽업 2007년형

사진= 디펜더 2013년형



스타일이 어디가 바뀌었는지 그 변화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모양새의 변화폭이 크지 않은 가운데 그 역사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 차는 네비개이션도 적용이 안되고, 원칙적으로 운전대에 오디오나 그밖의 기기 작동을 위한 버튼도 없습니다. 승차감이요? 타 본 사람들 얘기를 들어 보면 이처럼 불편한 것도 없습니다. 앞서 알려드린 것처럼 최고속도는 거북이 수준이고 코너링은 불안한 편입니다. 옵션이랄 것도 별로 없고 제동력도 조심해야 하죠.

 

그나마 ABS나 ESP와 같은 능동형 안전주행 장치 등이 내년부터 옵션이 아닌 기본 적용이 되는 게 뉴스거리라면 뉴스일까요? 그렇다면 이런 디펜더를 왜 사람들이 좋아할까요? 이는 역시 오프로드에서의 능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풀 4WD의 적용으로 기본적으로 험로주행의 자격을 갖추었고, 토크(360Nm)도 비교적 높아서 울퉁불퉁한 바윗돌들을 으라차차! 디디고 올라갈 수 있습니다.

 

거기다 이 차는 전자장비가 별로 없고 수리 또한 용이합니다. 무엇보다 내구성이 엄청나죠. 수십 년 전의 디펜더가 여전히 굴러다니는 걸 보면 그건 그냥 입증이 됩니다. 거기다 가격이 생각 보다 저렴합니다. 랜드로버 프리랜더 보다 싸고 지프 랭글러 보다는 한 참 더 쌉니다. 물론 랭글러의 마력은 디펜더의 두 배 수준이라는 걸 감안은 해야겠지만 암튼 이 차는 레인저 로버처럼 조심조심 타지 않아도 되는, 말 그대로 막 굴려도 되는 그런 차입니다. 

 

디펜더는 오래 된 모델이라고 해서 시대에 뒤떨어지고 그러는 트렌드와도 무관합니다. 온전히 그 색깔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몇 안되는 자동차라고 할까요? 힘을 느끼게 하는 디펜더 특유의 디자인은 늘 아드레날린을 분출하게 만들어 줍니다. 튜너들은 이 차에 손을 대기도 합니다만 약간의 편의성이나 스타일에서 변화를 줄 뿐 그 본래 성격까지 개조를 하지는 않습니다. 디펜더의 가치는 안락함에 있는 게 아니니까요.

 

마초 그 자체, 뭔가 브라질의 아마존 밀림을 보는 듯한 자동차계의 원시림 디펜더. 저는 이 차가 꽃단장을 하기 보다는 우리가 알고 있는 디펜더 그 모습 그대로 계속 존재해 나가길 바랍니다. 세상에 이런 단순무식(?)한 차 하나쯤은 꿋꿋하게 존재해 줘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그게 디펜더가 사랑받는 이유일 것입니다.

 

 

사진출처 : favscar.com & 랜드로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