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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獨 자동차 잡지가 전해주는 최신 소식과 비교평가기

어느 독일 자동차 기자의 기아 K9 시승기



약 한 달 전쯤, 그러니까 지난 해 12월 초가 되겠군요. 독일 일간지에서 우연히 기아 K9의 시승기를 발견했죠. 나중에 알게 됐지만 유럽에서 최대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아우토빌트의 에디터가 작성한 내용이었어요. 자매지인지라 아마 시승기를 해당 일간지와 공유했던 모양입니다.

 

'어떻게 해서, 왜 느닷없이 기아의 K9 시승기가 올라왔지?' 좀 뜬금없다 생각했는데, 기사가 올라온 시점이 현대 제네시스 론칭일과 연결이 되더군요. 예전에 제네시스 행사를 위해 해외의 자동차 전문지 에디터들을 초청했고, 그 초청 명단에는 유럽의 전문지 관계자들도 포함돼 있다는 기사를 본 적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 때 한국으로 건너 간 에디터가 시승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진=기아

 

누차 말씀드리지만 독일은 시승기의 개념이 우리와 다릅니다. 물론 우리나라처럼 서술형 시승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가장 관심을 끌고 인정받는 건 <비교테스트>죠. 비교 테스트라는 건 꼼꼼하게 수십 여개의 항목들을 복수의 에디터들이 모여 경쟁 모델들과 비교해 그 데이타를 공개하는 것을 말합니다. 나온 자료를 가지고 순위를 매기는 것인지라 이견이 크지 않은 장점이 있죠.

 

다만 K9은 유럽에 들어오지 않은 상태인지라 이런 비교 테스트는 할 수가 없고, 그래서 한국에서 타 본 소감을 비교적 간단하게 적었습니다. 그래도 성의 없거나 어설프게 쓴 거 같진 않더군요. 해당 시승기를 다시 제가 간단히 정리를 해봤는데 독일 쪽 관계자가 어떻게 이 차를 보고 평가했는지 그 분위기 정도는 파악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급적 있는 그대로 직역을 했고 부분적으로 문장을 좀 다듬는 정도였다는 거 참고해주셨으면 합니다.

 

 

제목 : 벤츠 S클래스에 대한 기아의 저렴한 대답

 

"기아의 현재 성공은 과연 지나친 걸까? 디자인, 7년 보증, 나아진 품질 등을 통해 많은 유럽인들을 끌어 왔고, 현대와 합쳐져 이 자동차 그룹은 세계 5위의 판매량을 자랑하는 위치까지 왔다. 그리고 이제는 플래그십의 영역에 동참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K9으로 메르세데스 S클래스와 BMW 7시리즈에 도전하려고 한다.   

 

처음에는 정신나간 소리 정도로 들릴 수 있겠지만 꼭 그렇게만 볼 건 아니다. 페터 슈라이어의 디자인으로 잘 알려진 기아의 럭셔리급 모델은 싸구려 BMW의 카피 자동차로 보이지 않을 수준이다. 이 차를 타게 되면 그 첫 인상은 역시 인테리어를 통해 받게 된다. 전체적으로 가죽과 나무 등을 잘 사용했고 뒷좌석 역시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운전자 옆좌석의 버튼을 누르면 글로브박스로 빨려 들어갈 정도로 확실하게 등받이가 숙여진다. 2열에 앉았을 땐 하루를 마치고 DVD 영화를 보며 긴장을 풀 수가 있는 편안함이 주어진다. 그리고 운전석에선 크루즈의 캡틴이 된다. 굉장히 많은 기능 버튼들에 처음엔 놀라게 되지만 일단 적응이 좀 되고 나면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게끔 버튼들은 잘 배치가 되어 있다. 마치 BMW의 iDrive처럼 쓸 수가 있다.

 

사진=기아

 

그리고 K9에는 신형 S클래스에도 없는 헤드업디스플레이 시스템이 장착되어 있다. 그 외에도 다양한 고급 기능들이 들어가 있다. LED 램프 역시 인상적이고 모바일 핫스팟과 영리하게 작동하는 내비게이션 등은 훌륭하다. 다만 음성인식의 경우 완벽하진 못했다. 한마디로 이 차는 고급 차에 있어야 할 모든 옵션이 있으며 분위기 또한 고급스럽다. 그러나 고속도로에서 주행을 하며 이 차의 차이점이 드러났다.

 

에어서스펜션은 도로가 좋지 않은 상태에선 컴포트 모드 (안락 모드)에서도 그리 안락하지 않았다. 뒷좌석에서 커피를 마신다고 가정하면 자칫 (흔들림에) 넘칠 수 있다. 그리고 시속 100km/h가 넘어가면 바람 소리가 들려오는데 어느 정도인가 하면, DVD를 보고 있는 뒷좌석 동승자가 볼륨을 올려야 한다.

 

그리고 한국의 속도제한 110km/h를 무시하고 운전을 하게 되면 3.8리터 V6 344마력의 엔진이 힘들어 하는 걸 알게 된다. 또 시속 180km/h 정도에선 무겁고 호흡이 긴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수준이라면 기아가 약속한 최고속도 240km/h까지 가기 위해선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 수출을 위해 5리터 V8 450마력의 엔진을 만들어 내려는 노력이 어느 면에선 이해가 되었다.

 

오토미션은 평소에 비단처럼 부드럽게 작동하지만 마지막 8단은 약간 거칠게 변속된다는 게 느껴졌다. 대신 400Nm의 토크는 충분히 좋았다. 300마력 3.3리터 기본 가격은 약 35,000유로 정도가 된다. (이 금액은 단순 환율 계산법이고 수출이 된다고 하면 좀 더 오르지 않겠나 싶습니다.-스케치북)

 

기아의 해외사업을 책임지고 있는 관계자는 K9에 대한 믿음이 있다고 밝혔다. 미국엔 K900으로 수출이 되고 중동과 동유럽에도 수출을 할 예정이라고 했지만 독일을 비롯한 서유럽에선 만나지 못한다. 물론 그 관계자는 독일의 경쟁 모델들인 S클래스나 7시리즈 등과 맞설 수 없어서 이런 결정을 한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더 쎈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덧붙였다. 

 

비록 유럽 핵심 지역에 지금 당장 수출은 하지 않지만 2~3년 후에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1.9톤의 K9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강력한 원펀치가 없다. 뭔가 자신만의 포인트가 부족하다고 하겠다."

 

사진=기아

 

 

 

시승기를 읽고 나서...

 

K9에 대해 비판하고 독일 플래그십과의 비교를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기아차 관계자들의 발언에 쓴웃음을 짓기도 했지만, 막상 독일의 유명 매거진에 이런 내용이 올라오는 걸 보니까 마음이 뭐랄까요. "그것 봐라. 내가 뭐랬어~!" 뭐 이런 생각 보다는 '좀 더 잘 만들고 큰소리를 치지...' 하는 아쉬운 마음이 솔직히 먼저 들었습니다.

 

다른 차도 아니고 '현대기아차그룹'이 독일 프리미엄 3사의  최고 모델들과 경쟁하기 위해 내놓은 차이기에 감정이 더 복잡미묘했던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요. 풍성하다 못해 차고 넘칠 정도의 화려한 옵션과 괜찮은 마무리, 그리고 상대적으로 훨씬 저렴한 가격 등은 분명 장점입니다. 하지만 아주 간결하게 짚어간 주행 시의 여러 아쉬운 점은, 현재 상태로는 경쟁이 제대로 이뤄질까 하는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도 합니다.

 

특히 지적된 엔진의 힘 부족은, 아무래도 더 큰 배기량, 더 큰 마력의 엔진을 장착하지 않은 이상엔 독일을 비롯한 서유럽에는 진출하기 어려운 가장 큰 약점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아우토반에서 무한질주를 하고자 하는데 거기서 힘 부족이나 서스펜션 등의 문제가 드러나게 된다면 그건 판매에 직접적인 마이너스 요소가 될 테니까요.

 

비교 테스트를 통해 스펙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단정하긴 어렵지만 주행 성능에서는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져 보이고, 이런 수준이라면 독일에서 성공하긴 어려워 보입니다. 그 얘긴 결국 유럽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얘기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좀 늦더라도 뭔가 더 보강이 된 상태에서 들어와도 들어와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뭐 이 시승기에 반론도 하고 인정하지 않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현대차가 유럽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자동차 잡지의 평가가 이런 것을요. 옵션 좋고 공간 넓다고 해서 최고라고 할 수 없는 게 바로 이 대형 럭셔리급이 아니겠어요? 독일 프리미엄 3사를 경쟁상대로 지목하고,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더 낫다고까지 하는 관계자들의 자부심이 유럽에서도 인정받기 위해선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쉽게 말하면, 경쟁을 위한 첫발을 이제 내디딘 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언급은 안되었지만 브랜드의 가치나 그 차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색깔과 권위 등을 만들기까지 K9은 성능 이외의 넘어야 할 산들이 또 있다는 것도 결코 간과해선 안될 겁니다. 짧지만 기아의 플래그십이 어느 수준에 와 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시승기가 아니었나 싶네요. 좋은 한 주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