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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슬론주의에서 법정관리까지, GM의 흑역사

 

자동차 역사에 있어 미국은 유럽에 뒤진 채 시작했지만 산업적인 측면에서는 포드를 앞세워 주도권을 얼마 지나지 않아 거머쥐게 됩니다. 그리고 포드로 대표되었던 자동차 대중화는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GM으로 다시 넘어가게 되는데요. 미국 자동차의 좌우바퀴라고 할 수 있는 포드와 GM은 이처럼 엎치락뒤치락하며 지금까지도 그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그런데요. 오늘은 GM이라는 회사에 대해 좀 비판적인 관점을 갖고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해서 제목을  저렇게 붙였는데, 그냥 뭐 ' 이런 시각도 있겠구나~' 라고 가볍게 여기고 읽어주셨음 합니다. 이 블로그 처음 방문하신 분들 중에 저보고 어디 회사 알바 아니냐, 돈 얼마 받고 이따위 글 쓰느냐? 라고 그러는 분들이 계실까 미리 양해를 구하고 출발을 하겠습니다. 

 

 

1. 알프레드 슬론 & 슬론주의

알프레드 슬론 (혹은 슬로안, Alfred Sloan)은  윌리엄 듀란트가 세운 GM이라는 자동차 지주회사의 2대 경영자로 우리 앞에 등장합니다. MIT를 나온 이공계 계통의 인물이지만 자동차 엔지니어는 아니었죠. 윌리엄 듀란트가 몸집 불리기에 혈안이 돼 자회사를 주렁주렁 거느리며 회사를 위기에 빠뜨리며 쫓겨날 때 등장한 게 알프레드 슬론입니다.

 

이 사람은 회사를 맡음과 동시에 대대적으로 회사의 조직을 개편합니다. 상당히 잘 짜여진 조직으로 만들었고, 회사의 결정권을 집중화시켜 빠른 의사 결정과 대응이 가능하도록 재편을 했죠. 어떻게 보면 지금의 우리나라 재벌 혹은 대기업의 형태와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참 검소했다고 합니다. 재단을 세워 후학 양성에도 힘을 쏟고 기부도 많이 하는 등 좋은 이미지도 있습니다. GM이라는 자동차 회사가 세계 최대 자동차 메이커로 올라선 것은 알프레드 슬론의 노력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을 정도로 전설과 같은 사람이죠. 그는 헨리 포드와는 다른 방향에서 접근을 했습니다. 포드가 T 모델 하나를 가지고 가격과 성능의 개선에 초점을 뒀다면 슬론은 연령별 지역별로 어울리는 메이커를 다양하게 구성했고 또 한 브랜드 안에서도 무척 많은 모델들을 선보이면서, 흔한 말로 골라먹는 재미를 소비자들에게 선사를 한 것입니다.

 

우린 이걸 흔히 슬론주의라고 하는데요. 경영학도들도 배울 정도로 상당히 의미 있는 경영 기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좀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우선 슬론주의는 교묘하게 (혹은 절묘하게) 소비자들의 자동차 구매 회전 주기를 앞당겨 놓았습니다. 무슨 얘기냐면요. 우리가 알고 있는 부분변경 모델 있죠? 이 개념은 알프레드 슬론이 만들었다고 해도 될 겁니다.

 

어느 정도 판매가 된 모델의 뒤를 이어 얼마 지나지 않아 적당히 부분적으로 손을 본 모델을 내놓습니다. 이전의 타고 있던 모델에게 성능은 크게 개선이 된 게 없지만 그가 강조한 대로 스타일과 칼라풀한 색상으로 무장해 소비욕을 자극하는 것이죠. 대공황 이전 미국은 엄청난 소비력을 발휘했습니다. 자동차는 포드에 의해 대중화 되면서 사람들은 점점 다양한 것들을 요구하게 됐고, 이를 슬론이 받아내준 것입니다.

 

요즘 전자제품들, 스마트폰 등도 다 이런 '의도된 진부화' 전략을 이용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계속해서 소비자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제품에 대해 불만을 갖게 해서 새 제품을 갖고 싶게끔 유도를 한 것입니다. 슬론주의엔 바로 이 전략이 핵심적으로 담겨 있었습니다. 슬론은 자동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스타일이라고 분명하게 주장하던 사람입니다. 포드는 반면 성능에도 고민을 많이 했던 인물이었죠.

 

잘 만들어진 차와 소비하고프게 만든 차의 대결은 결국 감각적인 부분을 건드려준 슬론, GM의 승리로 돌아가게 됐습니다. (요즘 자동차 회사들 중에도 이런 주의를 갖고 있는 곳이 있...있...나요?) 어쨌든 슬론에 의해 50년대 자동차 교체 주기는 5년에서 2년으로 엄청나게 당겨지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화려한 GM의 시대가 이렇게 열리게 된 것이죠.

 

나중에 폴크스바겐과 같은 회사들은 이런 슬론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하며 포장만 바뀌는 차가 진짜가 아니라는 광고를 펼치기도 했고, 그래서 그랬을까요? 불리와 같은 차들은 히피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기도 했습니다. GM은 보다 많은 이들에게 다양한 차를 팔기 위해 자동차 할부라는 개념도 동원했고, 영화 등에서 자사 차를 홍보하는 PPL 광고도 도입을 하게 됩니다. 지금 자동차 회사들이 펼치고 있는 영업 전략을 이미 슬론은 1920년대 시작을 했던 것입니다.

 

 

2. 자동차 업체와 석유 회사들의 합작품 '전차 죽이기'

1900년대 들어서며 자동차는 들불처럼 퍼져나가게 됩니다. 자동차 산업은 가장 중요한 자본주의의 핵심적인 모델이 되게 되었고, 가난한 노동자도 누구나 차 한 대쯤을 소유하고픈 그런 세월이 찾아 왔습니다. 하지만 자동차 회사들에겐 당시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길거리를 다니며 수천 수만 명을 실어 나르던 전차였습니다. 그리고 자동차 업체들은 석유회사들의 지원 아래 전차를 무기력화 시키는 작전에 들어가게 됩니다.

 

실질적으로 알프레드 슬론이 이를 주도하게 되는데요. 가장 쉬운 방법은 전차 회사를 아예 사들여 없애 버리는 거였습니다. 선로 없애고 전선 짤라 버리고 하면서 그 자리를 버스가 대체하게 하지만 실제로는 자동차가 모든 도로를 지배하게 하려는 전략이 핵심이었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전차는 점점 그 존재가치를 잃어가게 됐고, 결국 자동차가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미국이 만들어지게 됐습니다.

 

사실 반론도 있습니다. 대중교통 정책의 실패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라는 그런 주장이기도 한데요. 하지만 그 주장 보다는 석유와 자동차 자본들이 만든 결과물이라는 게 좀 더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3. GM에 좋은 게 미국에 좋은 것

GM의 전성시대의 상징물과도 같은 자동차 캐딜락 엘도라도 (1953년형)

석유산업과 함께 자동차 산업은 이제 미국에 없어서는 안되는 중추적 산업이 되었습니다. 그걸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바로 찰스 윌슨이란 사람의 발언인데요. 아이젠하워 내각의 국방장관에 임명된 찰스 윌슨은 GM에서 일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런 유명한(?) 말을 했죠. "What is good for General Motors is good fot the Country.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 좋은 것이다.)"

 

이 한 마디로 당시 시대상황을 읽을 수 있지 않나 싶은데요. 참 공교롭게도 우리나라의 성장주의 논리와 한 치의 오차도 없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기업의 가치, 기업의 성장과 이익이 국가의 이익이라는 주장은 이처럼 GM이 무서울 것 없는 기업이 되었음을 증명했습니다. 이제 자동차 산업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며 어떻게 해서든 국가는 이 기업을 지켜줘야 하는 그런 보디가드가 되어버렸습니다.

 

 

4. 프레스턴 토마스 터커 죽이기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무튼 비디오로 이 '터커'라는 영화를 보고나서 받은 충격과 분노는 지금도 생생합니다. 제프 브리지스가 지금은 괴팍한 노인네 역할로 개성있는 연기를 선보이지만 젊었을 때는 정말 남성미 물씬 풍기는 매력남이었는데요. 그가 주연한 이 영화는 당시 미국의 빅3 (GM, 포드, 크라이슬러)에 의해 꿈을 펴지 못하고 스러져간 한 인물의 실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감독은 대부의 거장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하찮은 자리에서부터 시작했지만 끼와 열정으로 최고의 차를 만들고자 했고, 실제로 '터커 세단'이라는 뛰어난 차를 만들었지만 대기업들은 이 열정 가득한 인물을 아무런 것도 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리고 맙니다. 터커 세단은 1948년 당시 최고속도 196km/h에 제로백도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그가 만든 자동차에는 연료분사 장치, 디스크 브레이크, 안전벨트, 안전유리에 에어로다이나믹한 디자인까지, 다른 메이커들은 거들떠도 안보고, 적용하지도 않던 많은 안전장치와 최첨단 기술력이 다 녹아들어가 있었습니다.

 

터커 세단

그가 만든 이 차는 시대를 한참이나 앞서간 혁신적인 것이었습니다. 이를 미국 자동차 업계가 그냥 놔둘 리 없겠죠? 돈이 필요해 공장을 담보로 대출을 받으려고 했지만 은행권은 이를 거부했고 언론도 합세해 그를 몰아갑니다. 나중엔 그를 법정에 세워 완전히 몰락의 길로 빠뜨리고 말죠. 이 모든 게 빅3의 계략이었습니다. 터커는 그렇게 자신의 꿈을 눈물로 접어야 했습니다. 혹시 이 영화를 못 본 분들,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꼭 한 번 보시길 바랍니다.

 

 

5. GM의 추악한 민낯 고발 1965년

레바논 이민자의 아들로 변호사였던 랄프 네이더는 1965년 한 권의 책을 내놓습니다. 제목은 <어떤 속도에서도 안전하지 않다>였는데요. 내용은, GM이 만든 자동차가 안전은 무시한 채 디자인에만 치중하면서 돈벌이에 몰입되어 있다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이 차는 쉐보레가 내놓은 1963년형 쉐보레 코베어인데요. 코베어가 계속해서 소비자들의 불만을 샀습니다. 나중에 왜 이처럼 불만을 터뜨렸나 조사를 해봤더니, 타이어 공기압이 떨어지면 전복 위험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GM은 이를 알면서도 모른 척 은폐를 했던 거죠. (요즘도 이런 회사가 있는지 모르겠네요...전...뭐..없다고...말하고 싶은데...)

 

네이더는 이런 사실을 책에서 밝혔고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습니다. GM은 네이더의 뒷조사는 물론 협박에 미인계에 여론조작 등 쓸 수 있는 방법은 다 동원해 그를 사회에서 매장시키려 했고 결국 네이더와 GM은 소송에 들어가게 됩니다. 여론은 GM에 등을 돌렸고 결국 합의금을 GM이 물어내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 되었는데요. 네이터는 이 돈을 GM 안전을 감시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아 그리고 이 문제 많은 차는 모터트렌드에 의해 올해의 차로 선정이 됩니다.

 

네이더는 나중에 레몬법이 발의되는 중요한 책을 내놓게 되고요. 또 그의 안전 운동의 결과로 옵션이던 안전벨트가 기본으로 달리게 되었습니다. 네이더가 없었다면 GM은 아마 계속해서 안전벨트를 옵션으로 끼워팔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네요. 

 

 

6. 욕심이 부른 화

 

미국 3사는 오래도록 몸집을 불려왔습니다. 포드가 어디를 인수하면 GM도 어디를 인수하는 등 과도한 경쟁을 펼쳐나가면서 재정이 악화되게 됩니다. 경영은 슬론주의의 영향을 받아서 여전히 상명하복의 정신으로 똘똘 무장해 아래로부터의 혁신은 생각할 수 없는 경직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었죠. 거기다 노조들은 엄청난 복지혜택과 재정적인 지원을 받으며 배부른 귀족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차들에게 계속해서 밀린 미국 메이커들은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졌고, 결국 빅3는 정치인들을을 찾아가 구재금융을 신청하게 됩니다. 아시겠지만 이 때도 처음에 회장들이 전용기를 타고 돈 빌리러 왔다고 여론이 난리도 아니었죠. 우리 표현으로 말하자면, 정신상태가 썩어 빠졌다 라고 할 수 있겠죠.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자신했던 그 GM이, 포드가, 이제 자칫하면 공중 분해가 될 상황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누굴 탓해야 할까요? 그들 자신들의 잘못입니다. 결국 정부가 나서 그들을 보증하고 돈을 빌려주는데요. 이때도 반대 여론이 더 높았습니다. 토요타가 GM을 인수하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얘기가 나올 정도로 심각한, 굴욕적 상황을 어렵게 벗어난 GM은 그나마 이후 굉장히 빠른 시간 안에 법정관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무리

미국의 상징과도 같은 GM이지만, 자동차 산업의 얼굴마담과 같던 GM이지만, 혁신없이 돈 벌이에만 빠졌던 그들의 어두운 과거사는 너무나 깊게 역사책에 새겨지고 말았습니다. 저는 GM의 이런 과정들을 보면서 마치 평행이론을 읽는 것처럼 요즘 기업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무엇이, 어떻게 해야 건강한 전통과 권위, 존중을 받을 수 있는 기업으로 갈 수 있는 것인지는 GM의 모습을 반면교사 삼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GM이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일지는 과거의 모습을 대입해 그것과 맞아 떨어지는지 아닌지를 보면 알 것입니다. 사브를 망가뜨렸다는 여론에 대해서도 저도 할 얘기가 있지만 오늘은 일단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또 현재 한국 소비자들이 느끼는 GM에 대한 불안감이나 불신도 일단 언급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소비자들도 이젠 좀 더 냉정하고 또렷한 시각으로 자동차 회사들을 감시하고 지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은 한 번 강조를 하고 싶습니다.

 

오늘은 다소 부정적인 시각에서 이야기를 진행해 봤는데요. 앞으로는 칭찬하고 고마워하는 그런 이야기를 GM에게 건낼 수 있길 바라겠습니다. 독일 메이커들에 대해서도 앞으로 계속 공부를 해 나가며 비판의 '꺼리'가 있다면 찾아내 여러분과 가감없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좀 급하게 정리하느라 내용이 거칠었는데요.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