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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BMW를 프리미엄의 길로 이끌어 준 자동차

 

자동차를 좋아하는 독일인들에게 2013년 역시 나름 추억하고 기념할 모델들이 제법 있는 해입니다. 곧 포스팅을 하겠지만 폴크스바겐 비틀이 나온 지 75년이 되는 해이고요. 또  포르쉐 911이 태어난 지 5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짱짱한 역사, 아이콘이 되어버린 모델들 속에서 독일인들이 의외로 많은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는 모델 하나가 올 해 기념일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바로 BMW 5시리즈의 3세대 모델인 E34가 그 주인공입니다.

 

5시리즈는 1972년에 선보인 E12 모델이 1세대로 그 후에 E28(2세대), 그리고 1988년부터 생산이 된 5시리즈의 세 번째 모델이 됩니다. 그런데 처음 모델도 아닌 3세대 모델에 독일인들은 25주년 기념일이라는 의미를 부여해 주고 있는 걸까요? 그건 이 모델을 통해 BMW가 진정한 프리미엄 브랜드의 세계로 진입을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80년대 중반까지 독일 고급차에서는 벤츠가 독보적이었습니다. 1985년에 준대형인 E클래스를 대표하는 W124가 세상에 나오면서 그 분위기가 더 다져지는 듯했습니다. BMW도 노력을 많이 하긴 했지만 판매 성적이나 브랜드의 가치, 성능 등에서는 아직 벤츠의 상대가 될 수 없던 시절입니다. 그런데 80년대 후반부터 BMW의 반격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 반격의 시작은 86년에 나온 7시리즈 (E32)와 88년에 선을 보인 3세대 5시리즈 (E34)가 첨병 역할을 했다고 일반적으로 독일에선 평가하고 있죠.

 

86년 선보인 2세대 7시리즈

1세대 5시리즈인 E12.

2세대 5시리즈 E28. 개인적으로는 1.2세대의 프론트 그릴 (안쪽으로 기울어진)과 램프의 조합을 가장 좋아라 합니다.

3세대 5시리즈 E34. 심플함 그 자체죠.

 

 

디자인

E34는 2년 전에 나온 7시리즈 (위에 사진 참고)의 라인을 많은 부분 적용을 했습니다. 매우 독일적인 정제되고 간결한, 기능에 충실한 듯한 그런 디자인이 좋은 평가를 받게 되는데요. 이런 BMW의 디자인을 이끈 건 클라우스 루테 수석디자이너였습니다. 클라우스 루테는 자동차 디자인에선 영광스러운 자리에 있는 이름이겠지만 가정사로 보면 너무나 가슴 아픈 삶을 산 이름이기도 했습니다.

 

클라우스 루테

3년 전에 조지 나가시마라는 BMW 디자이너 (E39 탄생의 중요한 역할을 한)에 대한 포스팅을 하면서 잠시 언급이 됐었습니다만, 폴 브락 후임으로 BMW 4대 수석 디자이너로 클라우스 루테는 NSU(현 아우디 전신)에서 옮겨 오게 됩니다. 이 양반이 성격(?)과 비슷하게 전체적으로 디자인이 매우 간결하고 조용한 느낌을 주고 있는데요. 그의 BMW 이전에 디자인한 것 중 대표적인 모델이라고 한다면 NSU의 Ro 80을 모두 꼽고 있습니다.

 

이게 클라우스 루테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Ro 80인데요. 지금 디자인과 견주어도 촌스러움은 느껴지지 않는 그런 디자인이 아닌가 합니다. 살짝 가미된 곡선의 느낌이 매우 고급스러운 느낌을주고 있습니다. 그가 디자인한 아우디 50이란 모델은 나중에 VW에 아우디가 인수되면서 폴로(Polo) 소형차에 적용이 되게 됩니다.

 

직선의 간결함이 부각된 E34 모습인데요. 선대 모델인 E28부터 디자인에 참여가 됐던 클라우스 루테에 의해 BMW 디자인은 대중들에게 크게 어필을 하게 됩니다. 어찌보면 독일인들에게 환영받을 수 있는 그런  디자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처럼 모든 게 다 잘 풀릴 것만 같던 클라우스 루테였지만 아들 살해 혐의로 디자이너로서의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마약 중독자였던 아들의 공격을 방어하다 칼로 가슴을 찌르게 됐고, 그 결과 2년 9개월 동안 수감되게 되죠.

 

감옥에 있던 기간이 짧았던 건 당시 동정 여론과 정당 방위에 가깝다는 정상참작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이처럼 그가 없는 상황에서 BMW는 2년 동안 거의 수석디자이너 자리는 공석이나 가깝게 비어 있게 되죠. 물론 인테리어 담당 디자이너가 임시로 수석 자리를 맡고, 그 외에도 많은 디자이너들이 디자이너실 책임자의 빈자리를 잘 메우긴 했지만 여러가지 회사 내의 문제가 뒤섞이며 매우 힘든 시절을 BMW가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 때 등장한 디자이너가 바로 크리스 뱅글입니다.)

 

하지만 클라우스 루테는 자리에 없었어도 이미 그가 다져놓은 디자인 철학과 기본 스케치 등을 토대로 90년대 중반 4세대 5시리즈 E39는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보닛과 키드니 그릴이 이 때부터 일체형으로, 그리고 두 개의 동그란 헤드램프가 하나의 커버 안으로 쏙 들어가는 큰 변화를 보이게 되죠. 디자인 얘길 하다 보니 4세대까지 진행이 되긴 했습니다만 어쨌든 3세대 5시리즈는 정갈한 디자인 등으로 인해 당시 장관들의 관용차로도 애용이 되면서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기술 경쟁, 그리고 성장

E34가 나오기 전에 독일의 고급 자동차 시장에 기술적 흐름은 아우디 콰트로로 대변되는 4륜 구동과 왜건의 적용이었습니다. 벤츠 W124도 사륜이 나왔고, 아우디 역시 4륜이 80년대 등장하면서 4륜 승용차의 시대가 활짝 열린 것이죠. 특히 4륜에선 아우디가 한 발 성큼 앞서가고 있던 상황인지라 BMW 역시 이를 소홀히 할 수 없었는데요. 하지만 뒷바퀴 굴림이라는 BMW 특유의 운전성능이 네바퀴 굴림으로 인해  반감되어 이후 BMW의 사륜 구동은 큰 역할을 못하고 잠행을 하게 됩니다. (이후 SUV의 활성화로 xDrive는 다시 주목받게 되죠.)

 

85년 나온 벤츠 E클래스 W124

특히 1988년 E34가 나온 2년 뒤에 라이벌 회사라고 할 수 있는 아우디가 내놓은 아우디 100 모델은 BMW의 자존심에 상처를 내게 되는데요. 아우디 100과 E34의 첫 비교테스트에서 E34가 패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판매 결과에서도 밀리게 되고 말죠. 그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BMW는 절치부심 엔진 개발에 들어가고 그 결과 연비효율성은 좋아졌으면서 힘은 더 커진, 바노스(Vanos) 엔진이 등장을 하게 됐습니다.

 

특히 처음엔 포르쉐의 도움을 받아 V8 엔진을 장착했지만 이후 자체적으로 V8 엔진을 개발해 아우디와 다시금 8기통 엔진 대결을 벌이게 되죠. 물론 소비자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은 건 실키식스로 불린 직렬 6기통 엔진이었습니다. 사실 이 당시 독일 메이커들의 엔진 변화는 꽤 복잡한 과정을 갖고 있어서 여기서 그걸 다 언급하기엔 좀 그렇고요. 기회가 되면 다음에 따로 한 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어쨌든 엔진에서도 E34는 다양한 시도와 도전, 경쟁을 펼치며 기술력을 키워갔습니다.

 

 

투어링(왜건)의 등장

 

E34는 또 하나의 의미 있는 기록을 갖고 있는데요. 5시리즈 처음으로 왜건 모델이 적용이 된 것입니다. 특히 사진 속 지붕을 보세요. 지금의 파노라마 썬루프의 느낌을 주는 양쪽 개방형 루프가 적용이 되어 있습니다. 실용성과 쾌적함, 거기에 특유의 드라이빙의 맛을 모두 준 투어링 모델은 5시리즈 성장의 또 다른 발판이 되어 줬습니다.

 

물론 고성능 모델인 M5도 자리를 잡게 되고, 여기에 M5와 왜건이 합쳐져, 당시 유럽에서 M5 Touring은 가장 빠른 왜건 모델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E34는 E32(7시리즈)를 연상시키는 전체적인 느낌 덕이었는지, 아니면 왜건 모델을 본격적으로 합류시킨 탓인지는 몰라도 상당한 판매량을 기록하게 됩니다. 이전 두 세대의 5시리즈 판매량의 모두를 합친 것의 두 배 수준인 130만 대가 8년 동안 세계적으로 팔려나갔거든요.

 

아 그리고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518g 투어링이란 모델도 있었습니다. 가솔린과 천연가스를 같이 쓰는 바이퓨얼 차량이었는데요. 1.8리터 엔진으로 힘이 많이 부족해서 판매는 그닥 신통치 않았습니다. 이렇게 파란만장한 역사를 갖고 있는 E34는 1995년 말에 단종되고 4세대 E39에게 그 영광의 바톤을 넘겨주게 됩니다. E39는 디자인을 제외하면 3세대 형님의 거의 모든 유전자를 품고 태어났고, 이후 굉장한 성공을 거두게 됐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독일에서 프리미엄이라는 딱지가 벤츠만의 전유물이 될 수 없게 됐습니다. 물론 이런 도전에는 아우디와의 경쟁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고요. 아우디 역시 BMW와의 경쟁을 통해 프리미엄 메이커라는 가치를 부여받게 됐고 80년대 중후반부터 시작된 이들의 이런 경쟁은 90년대에 이르러 결국 독일 프리미엄 3사라는 개념이 자리를 잡게 했습니다.

 

E34는 매우 순결한(?) 운전 지향적인, 그런 기계적인 장치로 똘똘뭉친 자동차였습니다. 그의 등장과 함께 벤츠의 독주 시대가 끝날 것임을 예견할 수 있었고, 아우디와의 치열한 경쟁의 서막이 열렸으며, BMW가 지금의 글로벌 빅 히트를 기록하는 시작점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렇기에 독일의 자동차팬들은 5시리즈 중에서도 이 세 번째 모델 E34를 계속 기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오늘은 5시리즈의 세 번째 모델에 대한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좋은 한 주의 시작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