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출신의 프랑스 자동차 엔지니어 에토레 부가티는 자신의 이름을 딴 ‘부가티’라는 하이퍼카 브랜드를 유산처럼 남겨놓았습니다. 정확하게는 독일의 폴크스바겐 그룹에 의해 사라질 뻔했던 브랜드가 유지되고 있다고 해야겠군요.
훌륭한 자동차를 만드는 부가티였지만 그것만으로는 경영난을 극복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파산 직전까지 갔던 이 오래된 자동차 회사를 폴크스바겐 그룹은 1998년 인수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습니다. ‘지켜오고 있다’는 표현이 좀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사실 적절한 표현입니다. (왜 그런지는 나중에 설명)
폴크스바겐은 부가티 인수 후 무려 7년 가까이 신차를 내놓지 않았습니다. 최고 자동차를 세상에 내놓아야 했기 때문이었죠. 있는 기술 없는 기술을 총동원해 2005년 베이론을 선보입니다. 이때부터 부가티라는 브랜드 뒤에는 늘 놀라운 숫자들이 따라다닙니다. 사람들을 놀래킨 그 숫자는 돈과 관련한 것이 많았지만 성능과 관련된 것들도 많았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숫자들이 입을 떡하게 벌어지게 했는지 간단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001마력부터 1800마력까지
당시 신차가 130만 달러 중고차가 230만 달러
베이론이 등장했을 때 이 차의 출력이 1001마력이라는 소식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요즘도 300마력만 넘어도 고성능 자동차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1001마력이라니 놀랄 수밖에요. 2016년에 나온 베이론의 후속작 시론의 출력은 한술 더 떠 1500마력에 달했습니다.
베이론 최고속도는 431km/h였습니다. 시론은 시속 420km였고요. 이것도 속도제한이 걸려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더 빠르게 달릴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실제로 부가티 볼라이드 같은 시론의 파생 모델은 최고속도가 500km/h에 달합니다. (물론 부가티 자동차들보다 더 빨리 달릴 줄 아는 차들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최근 공개된 시론의 후속작 투르비용은 어떨까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로 최대 1,800마력까지 힘을 낼 수 있습니다. 최고속도 또한 445km/h 수준이죠. 0-100km/h(제로백)는 2초로 베이론이나 시론보다 더 빠릅니다. 그렇다면 이 어마무시한 성능의 부가티 모델들 판매가는 어떨까요?
베이론이 공개됐을 때 “얼만데?”하고 묻자 “네. 130만 달러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2백만 달러가 조금 넘는 액수입니다. 28억 원 조금 안 되는 수준이죠. 여기에 좀 특별한 옵션을 설정하면 가격은 더 올라갑니다. 그리고 중고차 시장에서는 30억 원 이상에 판매되기도 했습니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부족하니 그럴 수밖에요.
시론은 최초 판매가가 300만 달러였습니다. 지금 환율로 따지면 41억이 조금 넘습니다. 시론 기본형 외에 변형 모델들이 있는데 이것들은 더 비쌉니다. 시론 또한 중고차 가격은 새 차 가격보다 100만 달러 이상 더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애초부터 많이 만들 수 없는 수제 하이퍼카 부가티이니까요.
그러면 시론 후속인 투르비용은 얼마일까요? 250대 한정판인 이 자동차의 신차가는 410만 달러입니다. 56억 원 수준이죠. 베이론 시작가가 130만 달러로 팬들을 놀라게 했는데 최근 공개한 투르비용 가격 410만 달러에는 사람들이 그리 크게 놀라지 않는 듯합니다. 너무 비현실적인 가격이기도 하거니와, 이젠 이런 엄청난 가격의 원오프 모델들이 이젠 심심치 않게 나오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타이어 교체 비용이 5천만 원
엔진오일 교체 비용은 3천만 원
베이론은 판매가만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게 아닙니다. 미쉐린에서 만든 베이론만의 타이어를 장착해야 하는데 4개 1세트 장착하는 비용이 4~5천만 원 정도 됩니다. 트랙이 아닌 일반 공도에서 타는 것을 기준으로 주행거리 4천km에 한 번씩 타이어를 전부 다 교체해야 한다고 합니다.
휠은 조금 더 버틸 수 있는데 10,000km 주행 후 바꿔주면 됩니다. 시속 400km 이상으로 달릴 때 발생하는 원심력은 약 3톤. 이를 견디며 안전하게 타기 위해 이런 조치들이 필요합니다. 엔진 오일을 포함한 오일 교체 비용은 약 3천만 원입니다. 교체 시간만 해도 27시간이 걸린다고 하네요.
연료비, 세금, 보험료, 정기점검 비용, 심지어 연료 탱크도 정기적으로 갈아줘야 해서 이런 것까지 유지비에 포함된다고 하죠. 그 밖에도 정기적으로 유지시켜줘야 하는 것들이 여럿 됩니다. 좀 다른 얘기지만 만약 시동키를 잃어버리면 1억 원 정도의 비용이 듭니다. 일반적인 자동차 열쇠 잃어버리는 수준하고는 차원이 다른 겁니다. 어쨌든 앞서 얘기한 오일 교환 비용 등을 포함해 연간 자동차 한 대 유지하는 데 4억 이상이 듭니다.
투르비용으로 4일이면 세계 일주 가능
독일의 한 자동차 전문지는 시론 후속작인 신형 투르비용과 관련해 재밌는 계산을 했습니다. 세계를 일주하는 도로를 일직선으로 만들고 이 길을 최고속도로 계속 달린다고 가정하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데는 3일 18시간이 걸린다고 했습니다. 투르비용의 최고속도는 445km/h이고, 지구의 둘레는 약 40,075km. 따라서 약 90시간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384,400km 떨어진 달까지는 36일, 화성까지는 71년 226일이 걸립니다. 브레이크 관련 비용도 화제였죠. 브레이크 시스템 전체를 교체하는 데 약 1억 이상의 돈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건 기본 세라믹 소재의 브레이크일 때의 얘기입니다. 시론의 경우 옵션으로 8피스의 티나늄 합금 모노블록 브레이크 캘리퍼를 장착할 수 있는데 이는 훨씬 더 비쌉니다.
정확한 금액은 안 알려져 있지만 이 티타늄 브레이크 캘리퍼는 3D 프린터를 이용해 만들며 기존 캘리퍼보다 40% 이상 가볍습니다. 이는 부품당 2.9kg 정도로 아주 가벼운 수준입니다. 또 브레이크 인장 강도는 제곱밀리미터당 125kg에 달하는데 이는 웬만한 고강도 강철 인장 강도보다 더 높습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붙잡고 있는 케이블(개당) 인장 강도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격은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그밖에 시론을 가지고 최고속도로 달리면 연료통은 약 9분 후에 완전히 바닥납니다. 또 최고속도로 달릴 때 시론은 분당 약 6만 리터의 공기를 흡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반적인 자동차의 경우 분당 3~6천리터, 고성능 스포츠카의 경우 보통 분당 1만 리터 전후의 공기가 흡입됩니다.
60억 원씩 손해 보며 팔았던 베이론
부가티를 인수한 독일 자동차 업계의 전설 페르디난트 피에히. 그는 엄청난 손해에도 이 브랜드를 놓지 않았습니다. 손해액 수준은 어느 정도였나? 베이론 한 대 만들 때 개발비와 인건비, 홍보비, 그리고 기타 모든 소요 비용을 대당 비용으로 나눴더니 60억 원 마이너스였다고 합니다. 베이론 450대 만들고 2조라는 돈을 손해 본 것인데요. 페르디난트 피에히가 부가티 빅팬이었기에 가능해던 미친 짓(?)이었습니다.
나사 하나까지 특별하게 만들고자 했던 페르디난트 피에히의 열정이 아니었다면 부가티는 오래전에 사라졌을 브랜드입니다. 피에히는 계산기를 두드려야 하는 경영자였지만 동시에 부가티의 열렬한 팬이며 자동차 엔지니어링에 돈을 아끼지 않은 엔지니어이기도 했습니다. 포르쉐 시절부터 최고의 차를 만들었던, 또 만들고자 했던 그의 꿈이 부카티를 통해 마음껏 발현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가 떠나면서 부가티의 운명도 바람 앞에 등불 같았지만 극적으로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피에히가 유산처럼 남긴 부가티에 대한 열정과 철학이 이 회사를 지금까지 단단히 붙잡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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