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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아우디 R8도, 볼보 디젤도 모두 끝났다

지난 3 25일이었죠. 아우디 미드쉽 엔진 스포츠카 R8 마지막 모델이 조립됐습니다. 20인치 휠이 장착된, 카본 에어로 패키지가 적용된 퍼포먼스 콰트로 에디션이라는 게 언론을 통해 전해졌습니다.

R8 / 사진=아우디

 

2006 R8 생산이 시작되었으니까 모델 역사가 그리 오래된 슈퍼카는 아닙니다. 하지만 등장부터 파격적인 디자인과 가격 대비 훌륭한 성능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영화 좋아하는 분들에겐 아이언맨 주인공인 토니 스타크의 차로 잘 알려졌던 모델이기도 하고요.

 

같은 그룹에 있던 람보르기니 가야르도 플랫폼을 통해 나왔기 때문에 성능에 대한 신뢰도는 충분했습니다. 스타일, 성능, 화제성 등, 흥행 요소를 갖춘 모델이었기 때문에 계속 성장할 수 있을 걸로 내다봤습니다. 르망 24에서 검증받은 아우디 기술력과 콰트로 매력 등으로 어필하며 높은 장벽이 있는 슈퍼카 시장에서 빠르게 자리 잡았습니다..

사진=아우디

 

하지만 아우디의 주력 모델은 이런 슈퍼카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R8에 대한 투자와 생산 의지가 클 순 없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판매량도 조금씩 줄어갔습니다. 무엇보다 폴크스바겐 그룹 자체적으로 전동화 브랜드로의 전환을 선언했기 때문에 V10 자연흡기 엔진이 들어간 슈퍼카와의 작별은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차 자체가 나빠서 단종되는 게 아니었고, 아우디 최고 슈퍼카라는 상징성 또한 있어 원래는 지난해 아우디 TT와 함께 끝이 나야 했지만 주문이 늘었습니다. 마지막 R8을 갖겠다는 팬들이 몰린 겁니다. 그렇게 올해 3월 말까지 차를 계속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25일 드디어 마지막 모델 조립이 마무리된 것이죠. 해당 모델은 아우디 박물관에 들어가게 될 거라고 전해집니다.

사진=아우디

 

V10 엔진과의 작별이 R8과의 완전한 작별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계속해서 R8의 후속 모델이 전기차 버전으로 나올 수 있다는 얘기가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R8 10기통 엔진 시대가 막을 내린 것만은 분명합니다.

 

연간 최고 5천 대 넘게 생산될 정도로 인기를 끌던 R8은 이처럼 복합적인 이유로 그 끝을 맞았습니다. 하지만 아우디라는 브랜드 이미지에 많은 도움을 준 모델이라는 점은 분명하게 기억되지 않을까 합니다. 경형 스포츠카에 TT가 있었다면 슈퍼 스포츠카 영역에는 R8이 있었습니다.

사진=아우디

 

R8 마지막 모델 소식이 전해지고 이틀 후, 이번에는 북유럽에서 또 하나의 역사가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볼보의 플래그십 SUV XC90 디젤 모델이 막 마지막 조립을 마치고 역할을 끝냈다는 뉴스가 전해진 것이었습니다.

XC90 / 사진=볼보

 

사실 볼보는 중국으로 소유권이 넘어간 후 일찌감치 전동화를 선언했습니다. 유럽에선 독일 프리미엄 3사와 유일하게 판매 경쟁을 펼친 볼보였기에 너무 이른 결정이 아니냐는 반론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계획은 차질 없이 진행됐습니다.

 

2024 2월 벨기에 볼보 공장에서는 고객에게 인도될 마지막 디젤 엔진 모델이 조립됐습니다. V60이었는데요. 이 차는 폴란드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이게 우리가 도로 위에서 볼 수 있는 마지막 디젤 엔진이 들어간 볼보 모델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한 달 후인 26, 스웨덴 볼보 공장에서는 푸른 색상의 XC90 디젤 모델이 만들어졌습니다.

마지막까지 한 XC90용 4기통 디젤 엔진 / 사진=볼보

 

볼보의 45년 디젤 역사의 마침표가 되는 모델이었습니다. 아우디 R8 마지막 모델이 박물관으로 간 것처럼 XC90 디젤 역시 예테보리 볼보 자동차 박물관으로 가게 됐습니다. 사실 볼보의 디젤 역사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1979년부터 디젤 자동차를 만들었지만 당시 엔진은 폴크스바겐 그룹의 것을 가져다 썼습니다. 자체적으로 승용차용 디젤 엔진을 개발하고 이를 상용화한 것은 2001년의 일이니 상당히 늦었죠?

 

어떻게 보면 디젤 엔진 경쟁에 큰 재미를 못 본 볼보로서는 빠른 전동화 선언이 장기적 성장을 위한 하나의 해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전기차 노하우가 있는 모기업 덕분일 텐데요. 과연 그들의 바람대로 전기차 시대의 볼보는 독일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앞서나갈 수 있을지, 새로운 경쟁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합니다.

 

참고로 지난해 유럽의 디젤차 점유율은 13.6%였다고 유럽자동차제조협회가 밝혔습니다. 디젤의 대륙 유럽에서 디젤 점유율이 처참한 수준이 됐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보면 아직도 디젤 엔진이 들어간 자동차가 수백만 대 유럽에서 팔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엔진 자동차의 경쟁력은 적어도 유럽에서는 2035년까지는 계속될 겁니다.

사진=볼보

 

엔진이 들어간 신차 판매가 끝이 난 뒤에도 유럽 도로에선 많은 엔진 자동차들이 달리고 있을 겁니다. 그때까지 내연 기관 자동차를 만들어 파는 곳들은 얼마나 될지, 얼마나 남아 있을지도 궁금해지는 부분입니다. 환경을 생각하면, 그리고 전기차가 환경에 도움이 되는 게 분명하다면 이런 변화를 거부할 수도, 해서도 안 됩니다.

 

기후 위기는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R8이 단종되고, 디젤 엔진과 작별을 하는 등, 내연기관의 시대가 저물고 있는 광경을 목격하고 있자니 묘한 기분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습니다. 좋아하고, 익숙한, 우리 시대의 거대한 문화가 막을 내린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별은 그 대상이 무엇이든 아쉬울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