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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아우디 회장, 순수 엔진 시대와 작별을 고하다

지난 10월 19일 독일에서는 아우디의 4도어 쿠페 A7 신형의 론칭 행사가 있었습니다. 아우디 회장 루페르트 슈타들러도 참석해 소개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는데요. 그런데 이날 주인공인 A7과 관련된 발언 외에 아우디 회장의 또 다른 발표가 관심을 끌었습니다.

루페르트 슈타들러 아우디 CEO와 신형 A7 / 사진=아우디


“2025년부터 순수 내연기관만 장착된 모델은 나오지 않는다”

독일 일간지 벨트(Welt)는 이날 행사에서 루페르트 슈타들러 회장의 전동화 발언을 소개했습니다. 벨트지에 따르면 아우디는 2025년부터 엔진만 장착된 신차를 내놓지 않게 됩니다. 즉 순수 전기차는 물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그리고 A7에도 적용된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처럼, 전기 모터가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들어간 전동화 자동차만 내놓겠다는 것이죠.


이미 지난 프랑크푸르트모터쇼를 통해 독일 자동차 업체들은 전기차를 모터쇼의 핵심 주제로 놓고 새로운 전략을 발표했습니다. 벤츠와 스마트를 만드는 다임러 그룹은 디터 체체 회장이 나서 2022년부터 모든 차종에 1가지 이상의 전동화 차량이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고, 또 BMW 역시 미니까지 포함해 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을 대거 늘리겠다고 했습니다.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서 발표 중인 디터 체체 회장 / 사진=다임러


그 중 전기차 관련 투자 규모로는 최고 수준인 30조 원에 이르는 액수를 쏟아붓기로 한 폴크스바겐 그룹이 눈에 띕니다. 2025년까지 그룹 전체적으로 80종의 전동화 모델을, 2030년까지 300여 종에 달하는 전동화 자동차를 내놓게 되는데요. 이에 따라 아우디도 2025년까지 전동화 차량을 개발할 예정이며, 세계 모든 아우디 공장에서 전기차 생산이 가능하도록 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슈타들러 회장의 발언을 통해 아우디는 더욱 구체적으로 순수 엔진 시대의 막을 내리겠다고 선언을 한 것입니다. 이런 선언은 그룹 차원에서 2030년을 순수 엔진 시대의 마지막이라 밝힌 것보다 5년 빠른 것으로, 이처럼 급격하게 독일 자동차 업계가 판을 전기차 등으로 바꾸게 된 이유는 뭘까요? 


SUV의 붐과 CO2 규제 속사정

아직 일상에서는 그 변화가 크게 다가오지 않지만 자동차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이라면 몇 년 전부터 자동차 시장을 관통하는 핵심 트렌드 3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하나는 전기차이고 또 하나는 전기차와의 최적의 조합이라 얘기되는 자율주행, 그리고 마지막은 이미 경험하고 있는 강력한 SUV의 붐이죠.


루페르트 슈타들러 회장은 A7 론칭 행사장에서 바로 이 SUV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현재까지 아우디 미국 판매 모델의 절반이 SUV이고 독일에서는 약 25%, 그 외 유럽과 다른 대륙의 경우 30% 이상의 비중으로 팔리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독일에서도 2025년쯤 되면 판매되는 아우디 모델의 절반이 SUV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죠. 그의 관심사가 지금 무엇인지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이런 상황은 아우디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놀라운 속도로 모든 브랜드가 SUV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고, 이제는 SUV 쿠페, 소형 SUV 등, 변형된 크로스오버 형태의 좌석 높은 자동차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이 거대한 흐름은 제조사들에게는 마진 높은 SUV 판매량 증가로 이익을 높일 수 있다는 즐거움을 주지만 크고 무거운 SUV가 팔리면 팔릴수록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라는 고민거리도 함께 안겨주고 있습니다.

e-tron 콰트로 컨셉트 / 사진=아우디


현재 아우디가 판매하는 자동차의 평균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약 130g/km가 조금넘는 수준으로 2021년부터는 브랜드 평균 배출량을 95g 이하로 낮추지 않으면 안 됩니다. 기준을 넘겼을 때 엄청난 벌금을 물게 되기 때문인데요. SUV의 증가는 이산화탄소 평균 배출량을 줄이는 데 장애가 되고 있고, 전동화 자동차가 아니고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어 보입니다.


제조사들이 미래 시장을 선점하겠다, 기술 선점을 하겠다, 친환경 시장으로 전환하는 사회적 기업으로서의 역할을 다 하겠다는 등, 여러 이야기를 하지만 그들이 내연기관과 거리를 두는 가장 큰, 그리고 당장의 이유는 바로 이산화탄소 규제에 있다고 봐도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물론 테슬라 등장으로 미국 시장에서 독일 고급 세단이나 SUV 판매가 영향을 받은 것도 이유가 됩니다. 또 볼보나 재규어가 각각 2019년과 2020년부터 순수 엔진만 장착된 모델은 내놓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도 자극이 됐을 겁니다. 디젤 게이트 역시 부쩍 전기차에 관심을 갖게 한 이유일 겁니다. 거기에 전기차를 강력하게 밀고 있는 메르켈 총리가 연임도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참고로 메르켈 총리는 디젤 게이트와 독일 제조사들의 카르텔 의혹에 대단히 화가 나 있는 상황이죠.


이처럼 여러 이유가 얽혀 있기는 하지만 이산화탄소 규제에 따른 천문학적 벌금을 면하기 위한 것만큼 제조사들에게 당장의 위협은 없어 보입니다. 결국 루페르트 슈타들러 회장의 발언은 독일 제조사뿐만 아니라 모든 자동차 회사의 현재진행형 고민임을 보여줍니다. 겉으로는 화려하고 거창하게 전기차 시대를 그리지만 이산화탄소 규제 대응이라는 발등의 불이 그들이 변하려는 가장 강력한, 실질적 이유는 아닐까요? 뭐가 됐든, 자동차 심장인 엔진의 변화는 불가피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