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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우리에게도 다치아 같은 자동차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가 점점 소득불평등과 양극화라는 좋지 않은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이런 측면들이 강해지고 있습니다만 현재 우리나라 경제 구조가 체계적으로 이를 방어하고 개선하는 모양을 하고 있지 않아 우려된다는 얘기들이 계속 나오는 상황입니다.

소득 상위 그룹의 이익은 점점 커져가고 중산층에서 밀린 하위 소득 그룹들과 간극은 더 벌어지고 있습니다. 장하성 교수가 쓴 '한국 자본주의'라는 책에서도 이런 점을 잘 설명하고 있죠. 낮은 임금을 받는 저금임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 규모의 25%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이 비중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결국 이런 소득불평등은 양극화 현상과 맞물려 사회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습니다.

자동차로 이야기를 구체화시켜 보죠. 소득의 양극화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자동차 회사들은 높은 마진을 얻을 수 있는 고급화 전략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현대자동차그룹이 대표적으로 이런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데요. 문제는 현대차의 전략이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에 그대로 반영이 되면서 소비자들의 얇은 주머니 사정과는 다르게 시장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안이 있는 유럽

고급 차 판매를 늘리기 위한 전략을 구사하면서 심지어 경차조차 화려한 옵션으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소형차의 선택의 폭은 좁아지고 있고, 수동변속기가 달린 차량은 구경조차 하기 어려워졌습니다. TV 화면에는 크고 멋진 차들이 늘 등장해 소비자를 유혹합니다. 먹고사는 건 여전한데, 아니 더 힘들어졌다고 외치는 이들이 많은데, 자동차 가격은 계속 올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독일이 잘 사는 유럽 국가이긴 하지만 여기서도 비싼 독일 차를 구입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서민들에겐 남의 떡일 뿐이고, 저렴한 중고차를 구입하는 것으로 고급 세단에 대한 욕구를 소멸시켜야 하죠. 하지만 중고차 말고도 서민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대안이 있다는 게 그나마 우리와는 다르다 하겠습니다. 

폴크스바겐 골프가 하나의 예가 될 수 있을 텐데요. 골프 가격대를 보면 기본 가격이 3만 유로가 넘는 GTI에서부터 85마력짜리 기본가 17600유로의 골프 모델까지 판매 리스트에 올라 있습니다. 이해하기 쉽게 말씀드리면 4천만 원이 넘는 골프에서부터 2천만 원이 안 되는 골프까지 가격대가 넓다는 것이죠.

물론 서스펜션의 구조가 다르고, 엔진 성능이나 내장재 퀄리티 등이 일부 다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골프라는 차를 자신의 경제적 형편에 맞춰 구매를 할 수 있다는 건 소비자 입장에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좋은 대안이 하나 있는데, 바로 다치아입니다.


유럽인들의 저렴한 발, 다치아(Dacia)

다치아 로고/ 사진=logodatabases.com

최근 폴크스바겐 그룹 내에 있는 스코다의 한국 상륙 가능성을 언론들이 전하며 '저가 브랜드'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요.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 스코다는 폴크스바겐에 비해 가격이 싼 것이지 경쟁 브랜드들에 비해 가격이 싼 것은 아닙니다. 간단히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폴크스바겐 골프 왜건 2.0 TDI (150마력) 기본가 (독일 기준) : 28,400유로

포드 포커스 왜건 2.0 TDCi (150마력) 기본가 : 26,760유로

스코다 옥타비아 왜건 2.0 TDI (150마력) 기본가 : 26,250유로

푸조 308 왜건 2.0 2.0 HDi (150마력) 기본가 : 26,050유로

현대 i30 왜건 1.6 CRDi (136마력) 기본가 : 23,380유로

한마디로 스코다는 유럽에서 중간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드릴 수 있겠네요. 그러니 저가 브랜드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아 보입니다. 사실 진짜 저가 브랜드라는 타이틀을 받아야 할 곳은 스코다가 아닌 다치아입니다. 르노 그룹이 1999년 루마니아 국영 자동차 회사인 다치아를 인수했을 때만 하더라도 큰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렴한 인건비와 효율적 저가 시스템 개발을 통해 현재 유일하게 유럽에서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기록하는 자동차 회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르노의 전 회장 루이 슈바이처가 당시 부사장이던 카를로스 곤을 영입하고 그를 전면에 내세워 인수한 다치아는 현재까지 가장 성공적인 자동차 기업 인수합병의 예로 얘기되고 있을 정도죠.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가격대로 다치아가 판매되고 있을까요? 이 역시 동급 경쟁 모델들과의 독일 내 판매 가격 비교를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유럽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는 소형 크로스오버 모델 두스터(Duster)를 가지고 가격 비교를 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다치아 두스터 1.5 dCi (109마력 디젤) 기본가 : 15,390유로

피아트 500X 1.3멀티젯 (95마력) 기본가 : 18,950유로 

스코다 예티 2.0 TDI (110마력) 기본가 : 22,590유로

오펠 모카 1.6 CDTI (110마력) 기본가 : 24,285유로

르노 캡쳐 (한국명 QM3) dCi (110마력) 기본가 : 25,290유로

각 브랜드별로 두스터와 동급 중 가장 저렴한 모델들의 가격인데, 분명히 차이가 있죠? 그나마 저렴해 보이는 피아트500X의 경우 120마력짜리 디젤이 들어가게 되면 22,850유로까지 훌쩍 뛰게 됩니다. 다치아의 소형차(B세그먼트) 산데로의 경우 기본가가 6,890유로로 다른 브랜드 경차급(A세그먼트) 가장 낮은 가격의 모델 보다 더 낮은 가격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두스터/ 사진=다치아

우리의 물가 개념으로 바꿔 보면 소형급 차를 700만 원 전후로 살 수가 있는 것이죠. 물론 가격이 이렇게 낮다 보니 실내 내장재 품질이나 차량 강판의 안전성, 또 옵션을 다양하게 적용할 수 없다는 점 등은 아쉽습니다. 그리고 실내 소음도나 주행성능 등이 떨어지는 것도 단점으로 평가됩니다. 

하지만 나쁘지 않은 연비와 3년 무상보증 기간 등, 철저하게 경제성에 초점을 맞춰 서민들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매년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또 인기가 높다 보니 잔존가치도 높게 평가돼 다치아 모델들은 중고차 시장에서도 높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산데로 스텝웨이 / 사진=다치아


우리도 이제 저가 자동차 이야기할 때

다치아는 요즘 미니밴 광고를 통해 사커맘들의 마음을 훔치려 하고 있습니다. 비싼 SUV가 아닌 일만 유로 짜리 저렴한 미니밴으로도 아이들을 태우고 얼마든지 다닐 수 있다는 내용인데요. 여기에 상업용 밴 등을 내놓아 자영업자들의 부담도 덜어주고 있습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자동차 가격 속에서 철저하게 싼 가격으로 소비자들의 요구를 맞춰주고 있는 다치아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점이 크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여러 이유와 환경으로 다치아 같은 저가 브랜드가 한국 땅에서 바로 나오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또 이런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시스템을 갖추는 게 기술적으로 결코 만만치 않은 작업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저렴한 자동차의 등장을 무조건 이런저런 이유로 안 된다고만 할 게 아니라, 정부가 다양한 세제 정책이나 유인책을 마련해 기존의 업체들이 저렴한 모델들을 내놓을 수 있도록 한다든지 하는 방법을 본격적으로 찾고 논의를 해봐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몇 년 전 독일 자동차 커뮤니티에서 본 글이 떠오르는데요. 지금은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폐쇄됐지만, 만약 개성공단이 자리를 잡고 성공하게 된다면 거기에 자동차 공장이 들어서고, 저렴하고 품질 좋은 차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차의 또 다른 경쟁력이 만들어지지 않겠냐는 식의 내용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다른 나라 일에 관심이 높은 사람이구나' 정도로 넘겼습니다만 지금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꼭 개성공단이 논의에 중심에 들어올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양극화 시대에 맞는 중저가 브랜드에 대한 필요성을 우선 인식하는 것일 겁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높아만 가는 자동차가격, 올려다 보기 힘들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