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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꿈의 신호등 시스템이 눈앞에 와 있다

옛날, 뭐 그리 먼 옛날은 아닙니다. 독일 도로에는 그뤼네 뷀레(Grüne Welle)라는 단어가 적혀 있는 표지판이 도심 입구에 세워져 있었죠. 영어로 바꾸면 그린 웨이브, 녹색 물결이란 뜻이 되는데요. 이론상 표지판에 적힌 속도로 이곳부터 주행을 하면 신호에 걸리지 않고 완벽하게 해당 구간을 통과할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처음 사거리에서 그 다음 사거리까지의 거리는 625미터이고, 이 구간에서 신호가 바뀌는 시간은 90초입니다. 그러면 여길 지날 때 시속 50km/h 정도의 속도면 파란신호를 계속 받아 사거리에서 멈추지 않고 통과할 수 있습니다. 


그뤼네 뷀레 이해도 / 독일위키피디아 캡쳐


실패한 녹색물결, IT가 되살려 내다

사실 이 녹색 물결 시스템은 미국 유타주에 있는 솔트레이크시티가 1917년 처음 도입했다고 합니다. 물론 사람들이 직접 신호체계를 작동시켰던 수작업 방식이었죠. 독일에는 1920년대 베를린에 처음 신호등이 설치되며 그 도로 주변에 이 시스템이 적용됐고, 1970년대까지 독일 전역에서 이어져왔습니다.

하지만 실효성이 없었고, 결국 극소수의 몇 지역을 빼고는 그뤼네 뷀레 표지판은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왜 실패했을까요? 간단합니다. 변수가 너무 많았던 거죠. 불법 주차된 자동차, 횡단하는 보행자, 그리고 추월을 조심해야 하는 자전거 등, 계산할 수 없는 변수로 제대로 실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 직진 구간에서만 적용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양측면 사거리의 자동차들은 긴 정지 신호에 걸려 지루하게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이런 경우를 붉은 물결이라 불렀죠. 상당히 과학적인 신호등 체계이지만 이처럼 무수하게 변하는 상황에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이론상으로만 가능할 것만 같았던 녹색 물결이 그리 멀지 않은 시간 안에 실현될 것으로 보입니다. 


독일의 녹색 물결 표지판 / 출처=위키피디아


독일에서는 '넷팅어댑티브코디네이션'이라고 부르는 이 첨단의 교통신호체계는 레이더, 카메라, 그리고 센서 등을 이용해 실제 도로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정보를 수집해 2~3분 간격으로 신호등을 새롭게 조절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독일 드레스덴에 있는 기술종합대학교에서 이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실험했하다고 독일 일간지 디차이트가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약 1천 개의 연결고리는 택시와 버스, 지상 구간을 지나는 지하철과 승용차 등의 흐름을 5초마다 중앙제어 컴퓨터에 보내고 이 컴퓨터는 다시 도시에 있는 470여개의 신호등을 상황에 맞게 조절해 거의 서른 곳의 사거리에서 녹색 물결을 구현해 냈습니다.

또 각 종 센서들은 대형트럭이나 보행자 등을 구분해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고 디차이트가 전했는데요. 특히 트럭들의 경우 멈췄다 출발할 때마다 엄청난 배기가스를 배출하기 때문에 이런 시스템을 통해 도심의 환경보호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런 배출가스 문제는 트럭만의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배출가스로 인한 도시의 오염도를 크게 줄일 것으로 기대됩니다.


도시 전경 / 사진=픽사베이


이미 준비를 마친 자동차 회사들

신호체계가 이처럼 지능화되는 것 이상으로 자동차 회사들은 이에 맞는 시스템을 오래 전부터 준비했습니다. 흔히 말하는 Car-to-X로, 자동차와 교통체계가 서로 통신을 하며 정보를 주고 받는 것을 말합니다. 무선인터넷이 가능한 장치를 신호기에 설치하면 자동차들이 주는 정보를 신호기가 취합해 교통센터에서 보내고, 이걸 보내진 정보로 신호등은 그 때 그 때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이 정보는 다시 개별 자동차에게 보내지게 됩니다.

이미 벤츠, 아우디, 볼보 등, 여러 자동차 회사들이 광범위하게 테스트를 통해 당장 실행해도 괜찮을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한 상태인데요. 몇 킬로미터의 속도로 주행을 해야 파란색 신호를 받아 사거리에서 멈춤 없이 통과할 수 있는지 운전자에게 알려주는 기능은 도로 인프라만 갖춰지면 바로 시작할 수 있는 기능 중 하나입니다. 

이처럼 짧은 순간 도로의 거의 모든 상황이 컴퓨터를 통해 확인이 되고, 신호등은 정보를 토대로 변환되고, 다시 이 정보가 자동차에 주어지는 등, 쉼 없이 자동차와 교통시스템이 정보를 주고 받게 되는 것, 이게 그토록 사람들이 꿈꿨던 녹색 물결인 것이죠.


사진=볼보

만약 파란색 신호를 못 받고 신호대기 중에 있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현재 일부 제조사들은 자동차 스스로 시동을 끄고 다시 파란 신호가 들어오기 5초 전에 자동으로 시동을 켜 주행할 준비가 됐음을 운전자에게 알려주는 식의 기술도 가지고 있습니다. 정말 계속해서 자동차는 영리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똑똑해진 자동차, 똑똑해진 도로는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위험을 줄여주고, 또한 신호체계와 정보 교환을 해 정체 구간, 신호대기 구간을 줄여 교통 흐름이 원활하게 합니다. 흐름이 좋으니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많은 감소는 물론 연료의 절약, 그리고 쾌적하고 안전한 도로가 될 수 있는 좋은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이런 기술의 순기능을 이야기할 때면 그 이면에 있는 보안 문제 등이 늘 함께 언급되는데요. 염려되는 점이 분명 있지만 그 우려를 씻어내는 노력을 자동차 회사들이 책임감을 갖고 해줬으면 좋겠고, 무엇보다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이런 미래 도로망 구축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 과연 우리의 도로와 자동차의 발전은 어디까지 이어질까요? 기대와 우려를 함께 갖고 관심 있게 변화를 지켜보고자 합니다.


사진=아우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