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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폴크스바겐 사는 고객 대놓고 비난하는 언론

어제 무척이나 화끈(?)한 기사("폴크스바겐이 공기 더럽히든 말든 값 싸면 그만"-2월 2일자 조선일보)하나가 올라와 인터넷을 달궜습니다. 해당 언론사는 디젤게이트라는 부도덕한 조작사건을 벌인 폴크스바겐 자동차를 우리나라 국민들이 너무 열심히 사주는 거 아니냐면서, 일종의 소비윤리에 대한 일침을 가하는 (듯한) 기사를 올렸습니다. 전체적으로 차를 구매했거나 관심을 보인 소비자에 대한 부정적 분위기가 가득한 그런 기사였는데요. 과연 이런 접근이 온당한 것인지 한 번 제 나름 따져보기로 했습니다.


소비는 욕구의 반영 vs 사회윤리 실종된 이기주의

폴크스바겐 자동차를 구매하는 것이 이처럼 언론을 통해 문제로 비춰진 이유는 디젤게이트, 그리고 유독 우리나라에서 잘 팔리는 현상, 이 두 가지 때문일 겁니다. 디젤게이트는 특별히 언급하지 않아도 다들 잘 아시리라 봅니다. 유로5에 해당하는 EA189 엔진에 조작 프로그램을 심어 미국 디젤 배기가스 규제를 피해간 사건이죠. 최악의 스캔들이자 기업윤리를 저버린 조직적 범죄사건이라는 데엔 누구도 이견이 없을 줄 압니다.

두 번째는 이 디젤게이트 사건으로 말미암아 폴크스바겐 디젤차에 대한 소비가 크게 감소한 상황에서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차가 많이 팔리고 있다는 것이 해당 기사의 비판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첫 번째로 '소비'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돈을 내고 어떤 물건을 구입한다는 행위는 한 마디로 욕망의 실현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만족을 최대한 느끼고 싶어하는 게 소비의 가장 밑바탕이라 할 수 있겠죠.

소비의 80%가 무의식에 의해 결정된다고 합니다. 아니 어떤 전문가는 95%라고도 합니다. 단지 우리의 의식, 그러니까 이성은 이 무의식 속에 일어난 욕구를 합리화 하는 데에 동원된다고 말합니다. 내가 필요해서, 내가 만족하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것을 구매한다는 이 절대적 감성적 영역의 가치를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죠. 더군다나 자동차는 어떤가요, 그 자체로 욕망덩어리 아니겠어요?

사진=VW

다만 우리는 소비욕을 제어하는 요소로 윤리적인 소비주의(Ethical Consumerism)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나의 구매행위가 이웃과 사회, 그리고 환경 등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고려해야 한다는 관점인데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윤리적 소비주의는 제품이 생산되는 과정에서 노동착취나 자연파괴 등이 발생하느냐 아니냐에 좀 더 무게중심이 가 있다 하겠습니다. 공정무역으로 만들어진 커피 같은 걸 예로 들 수 있겠네요. 

하지만 큰 틀에서는 거대 자본의 독과점에 대한 소비자의 저항, 착취하지 않는 공평한 거래, 그리고 환경이나 사회를 생각하는 소비 등을 모두 아우른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윤리적 소비주의는 본질적으로 욕망에 따른 본래적 소비행태를 억제하긴 힘이 듭니다. 특히 판매자들이 파격적인 할인혜택 등 다양한 유인요소를 들고 나오는 이상 소비의 윤리성은 욕구에 따른 소비 행태를 제어하기 더더욱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소비패턴은 상황과 모양만 다를 뿐 사실은 인간의 소비행위 전 영역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만약 조선일보가 이런 점을 언급하면서 소비의 윤리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기사를 작성했더라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않았겠나 싶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해와 과정 없이 매장에 몰려와 파격적 할인혜택에 흥분해 부도덕한 기업의 자동차를 구매하는 부도덕한 소비자들로 몰아만 간 것은 처음부터 강한 불쾌감과 반발을 살 수밖에 없었다 생각됩니다. 


파격 할인행사와 독일 차에 대한 구매욕 시너지 일으켜

이처럼 욕(?)을 먹어가면서까지 폴크스바겐 매장에 사람들이 몰린 이유는 앞서 얘기한 소비욕을 자극할 만한 유인요소, 그러니까 강력한 프로모션이 계속 이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십개월 무이자 할인행사와 천만 원을 훌쩍 넘는 현금구입 할인가 등은 충분히 소비자들을 끌어올 수 있는 요소입니다. 거기에 수입차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독일 브랜드라는 점까지 더해져 더욱 구매를 부추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하겠습니다. 물론 여기엔 외제차에 대한 과시욕도 어느 정도는 담겨 있다 할 수 있겠네요. 

만약 인기없는 수입브랜드에서 이런 상황이 발생했다고 해도 같은 결과를 냈을지는 의문입니다. 소비라는 것이 트렌드를 충실하게 따른다는 점에서 독일 차가 주도하고 있는 한국 수입차 시장에서 폴크스바겐의 할인정책은 관심 받기 충분합니다. 폴크스바겐 본사와 수입사 역시 강력한 재정 지원책을 통해 차량 판매가 이뤄지는 것을 돕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대목입니다. 한 마디로, 현재 상황이 폴크스바겐 차를 구매하게끔 구축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단지 독일 차에 대한 소비욕과 파격 할인정책 때문만일까요?

문제가 된 유로5 EA189타입 엔진 / 사진=폴크스바겐


폴크스바겐 판매를 돕는 반박 자료들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빠르게 접할 수 있습니다. 디젤게이트만 해도 독일, 미국, 한국 등의 언론에서 쏟아내는 양이 엄청났습니다. 저도 독일에서 나온 소식들을 한국에 계신 분들께 여러 차례 소개를 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정보들을 통해 폴크스바겐 디젤게이트에 대한 구체적 내용을 파악한 소비자들이 상당히 많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는 자신들의 선택을 정당화 하기 위한 객관적 자료가 준비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간단히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디젤게이트가 된 문제의 엔진은 유로5 기준에 해당하는 디젤엔진입니다. 제조사가 이미 이를 밝혔고, 현재까지는 유로6 디젤 엔진에서 이런 조작 프로그램이 심어졌다는 사실을 밝힌 기관이나 정부는 아직 더는 없습니다. 미국, 유럽, 그리고 우리나라 정부기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현재 소비자들이 구매를 고려하는 폴크스바겐 모델들은 유로5가 아닌 유로6 기준의 디젤차들입니다. 그러니 직접적으로 디젤게이트와 관련이 없는 것입니다.

특히 디젤게이트가 터지면서 붉어진 다른 자동차 회사들의 질소산화물 배출량에 대한 정보들은 디젤차 전반에 대한 문제라는 인식을 만든 촉매제가 되었습니다. 작년에 독일 아데아체라는 기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유로6 기준에 맞춰 실내 테스트를 한 80여대의 디젤차들 중 대단히 많은 질소산화물 배출을 일으킨 모델들은 문제가 된 폴크스바겐 모델들 보다는 다른 브랜드 차량들이었습니다. <유해가스 과다 배출한 디젤차 명단 공개되다> (2015년 9월 28일 글, 제목을 클릭하면 해당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ADAC

또 독일 자동차전문지가 직접 가솔린 자동차 1대와 디젤차 8대를 가지고 실제 도로를 달리며 질소산화물 배출량을 측정한 RDE 테스트를 실시했는데, 여기서도 뜻밖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디젤 배출가스 도로 테스트해 보니, 뜻밖의 결과> (2015년 11월27일 글, 제목을 클릭하면 해당 글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폴크스바겐 디젤게이트를 터뜨린 ICCT에 자료를 건낸 영국의 이 분야 최고의 업체가 테스트를 담당했기 때문에 내용은 충분히 신뢰할 만하다 하겠는데요. 여기서도 폴크스바겐은 오히려 가장 좋은 성적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RDE테스트에 참여한 차량들 / 사진= 각 제조사

이렇듯 해외에서 나타나는 자료들을 보면 적어도 폴크스바겐 유로6 엔진(EA288)이 다른 브랜드의 디젤차들에 비해 몸에 해로운 질소산화물이 더 많이 배출된다고 하기 어렵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정보들을 토대로 고객들이 폴크스바겐 구입을 위해 몰리고 있다면 이에 대해 무조건적인 비난을 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판매량 한국 빼고 모두 감소? 

또 판매량에 대한 부분도 어느 정도 반박이 가능한데요. 조선일보는 폴크스바겐의 디젤차 판매가 미국이나 영국, 그리고 일본 등에서 크게 떨어졌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치솟는 현상을 보였다고 했습니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린 내용입니다. 일단 미국에서 폴크스바겐 디젤차 감소는 디젤게이트가 공개되기 전부터 벌어진 일입니다. 이는 조선일보가 제시한 도표에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또한 미국에서는 해당 사건이 터진 이후 일부 디젤 모델 자체의 판매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수량 감소는 더더욱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상황에서도 제타나 파사트의 미국 내 판매량은 꾸준히 감소세를 보이긴 했지만 오히려 골프(특히 독일 수입 골프R, GTI, 일반 골프)의 경우 엄청난 판매 상승세를 디젤게이트 이후에도 미국에서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기업의 부도덕함에 대한 윤리적 소비주의가 미국에서 작동을 했다면 가솔린이든 디젤이든 폴크스바겐 모델들은 모두 판매량이 급감해야 하지만 모델에 따라 선별적인 폭발적 판매량 증가가 있었다는 점은 우리 소비자들의 선택과 저는 크게 다르지 않은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유럽을 볼까요? 

유럽자동차공업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폴크스바겐 모델들에 대한 EU 내 판매 비중은 오히려 2014년 보다 6.4% 상승한 결과를 보였습니다. 월별로 봐도 유럽에선 폴크스바겐 전체 판매량이 증가했으며 미국에선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골프 등 일부 수입 모델들은 9월 이후 높은 판매량을 보였습니다. 조선일보 말 대로라면 유럽 소비자들 역시 폴크스바겐 자동차를 사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언론의 관점, 좀 더 깊이 있었으면

몇 가지 예를 들어 이야기를 해봤는데요. 저는 여기서 폴크스바겐이라는 기업을 두둔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는 것을 말씀 드립니다. VW 차량 오너도 아니고 어떤 제안을 받거나 혜택을 받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독일에 살면서 그들의 부도덕함에 누구보다 실망하고 분노한 사람 중 한 명입니다. 하지만 폴크스바겐의 비윤리적 경영행태에 대해 비판을 하는 것과 소비자들의 차량 선택이라는 현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좀 더 신중하게 묶어 봐야 한다는 관점에서 이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무조건 소비자들을 이기주의적인 소비를 하는(물론 그런 면이 없다고 할 수 없지만), 윤리의식 부재의 집단으로 볼 게 아니라 그런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를 분석하고, 그에 대해 독자들에게 설명하고 비판할 부분이 있다면 분석 내용에 기초해 비판을 해달라는 것입니다. 적어도 조선일보 같은 대형 언론사라면 더욱 더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차라리 심도 있는 기획 기사로 문제에 접근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아무쪼록 독자들에게 더 깊이 있는 내용을 전달하는 그런 기사들이 많이 나와주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