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일 자동차 세상/독일 아우토반 시승기

폭스바겐 CC 시승기

독일의 자동차 전문지들은 ‘엘레강스’라는 단어를 종종 사용하는데 대체적으로 고급 카브리오나 스포츠카, 쿠페 모델들을 수식하기 위한 용도로 쓴다. 오늘 만나볼 VW CC 역시 스포티하고 엘레강스한 차로 독일에선 소개하고 있다.

아마도 쿠페이기 때문에 붙여진 표현 같은데, 컨셉이 그렇다는 것이지 성능의 측면에서 보자면 ‘스포티’하다는 표현엔 동의하기 쉽지 않다. 왜 그런지에 대해선 조금 후에 살펴보기로 하고, 일단 폴크스바겐이 파사트CC에서 파사트란 이름표를 떼버린 것에 주목해 보자.

사실 처음부터 CC로 소개를 받은 한국고객들에겐 별 것 아니겠지만, 한국 시장을 제외한 나머지 시장에서는 이번에야 파사트CC가 아닌 CC로 공식 변경되었다. 이 이름의 변화를 이해하는 게 어쩌면 이번 시승기 전체를 이해하는 핵심 키가 될 수도 있기에, 좀 더 따지고 들어가 보고자 한다.

세단에 기준을 두면 불편함이 있는 차. 하지만 쿠페에 기준을 두면 실용적인 차가 4도어 쿠페다. 폴크스바겐은 이번에 새로운 명칭을 통해 후자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파사트라는 세단의 느낌을 지우고 고급스런 4도어 쿠페로서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 바람대로 세단의 이미지 보다 실용적인 고급 쿠페 이미지로 소비자들이 인식을 얼마나 할지는 미지수다. 이렇게 확신을 갖지 못하는 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째, CC는 브랜드 파워에서 한계를 가지고 있다. 

VW이라는 브랜드는 고급 양산형 메이커임엔 분명하지만 같은 독일 내 프리미엄 브랜드들과 섞이기엔 거리감이 어느 정도 있다. 이 거리감은 성능의 거리감이라기보다는 이미지의 거리감이다. 실제로 성능 테스트를 하면 독일 3사의 경쟁 모델들 보다 오히려 성능에서 앞선 평가를 받는 모델들을 가지고 있는 메이커가 VW이다.

하지만 독일을 벗어나 해외로 눈을 돌리면 내부적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독일 4사의 견고한 프리미엄 영역에 껴들 틈이 없어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이유로 CC 4도어 쿠페로서 한 수 아래로 취급되고 있다.

두 번째는 좀 더 구체적인 것으로, 프리미엄급 4도어 쿠페들과는 시작이 달랐다. 아우디의 경우 이미 중간급에서 A5라는 걸출한 쿠페를 가지고 있다. 거기에 스포츠백이라는 4도어 쿠페가 나타났고, 이젠 A7이라는 한 급 위의 고급 쿠페까지 등장했다.

메르세데스 벤츠 또한 마찬가지다. C클래스 쿠페는 물론 E클래스 쿠페가 이미 오래 전부터 자리하고 있었으며, 그 위에 CLS라는, 4도어 쿠페의 원조가 버티고 있는 것이다. BMW 3시리즈 쿠페와 6시리즈 쿠페가 있고, 이번엔 그란 쿠페라는 4도어 쿠페가 출시됐다.

모두들 전통적인 쿠페 시장에서 활약하던 메이커들인 것에 비해 VW은 쿠페 시장에서 이렇다하게 내세울 차가 아예 없던 메이커였다. ‘스타일리쉬한 고급형 세단’을 처음 내놓았는데 그게 파사트의 파생상품쯤으로 취급을 받는다는 건 메이커 입장에서 아쉬울 것이다.

폴크스바겐은 이런 현실적 인식의 벽을 헐기 위한 첫 번째 시도로 이름의 변경을 꾀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벽을 허무는 작업을 통해 CC는 독자적인 길을 가게 하면서 동시에 브랜드의 가치재고, CC를 통한 4도어 쿠페 시장에서의 굳건한 자리매김을 꿈꾸고 있다.

이름은 그렇다 치자. 그렇다면 과연 차는 어떠한가? 이제부터 디자인과 성능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해 보도록 하자. 과연 이 차는 스포티하며 엘레강스한 모델인지. 






외 모

CC는 파사트CC의 부분변경 모델이다. 하지만 이름이나 외모는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개인적으로는 예전 CC에 강한 매력을 느꼈었다. 상당히 상품성이 강한 모델이었다. 밋밋한 VW 라인업에 흔한 말로 엣지 있는 차가 등장한 것이다.

지금도 잘 돌아다니고 있는 구형 파사트CC의 전면부 헤드램프나 그릴의 강한 인상은 쿠페의 느낌이 잘 강조됐다. 하지만 후방램프의 과도한 크기나 디자인은 옥의 티였다. 그에 반해 이번 CC는 뒤태가 한결 고급스럽고 안정적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앞모습은 오히려 너무 패밀리룩에 충실한 나머지 변별력을 잃고 말았다.


이 지점에서 독일 전문가들의 실망과 비판이 쏟아졌다. 개인적으로도 동의한다. 파사트라는 이름을 떼면서까지 쿠페의 느낌을 부각시키고자 했는데 정작 디자인에선 오히려 보수적인 이미지를 덧입힌 것이다. 

이런 변화는 투툼하고 남성적인 이미지에서 좀 더 정돈된 중성적 이미지로 바뀐 티구안의 변화와도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 하지만 티구안의 디자인적 변화는 콤팩트SUV의 정체성을 그대로 가져가는 선에서의 변화이고, CC의 변화는 오히려 쿠페의 이미지의 퇴색이란 점에서 아쉬움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더욱 이 지적이 크게 느껴지는 것은 유럽형 파사트와의 명쾌한 차별성이 없다는 점 때문이다.

앞서 얘기했듯 패밀리룩이라는 통일감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굳이 VW CC라는 이름의 변화를 줄 필요가 있었는가 라는 반문이 가능해진다. 조금 더 과감한 디자인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CC의 다음 세대가 나올 때까지 뗄 수 없는 꼬리표가 되어 따라다닐 것이다 

      (유럽 파사트)

      (VW CC)


      (유럽 파사트 뒷면)



      (VW CC 뒷면)


앞면 그릴과 헤드램프의 경우유럽 파사트와 비교해 그릴의 각이 더 누워 있고더 고급스러운 질감과 마무리 능력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는 구형 CC 보다도 더 좋아 보인다쉽게 말해서 큰 틀 안에서의 변화는 없지만 작은 틀 안에서는 고급스럽고 엘레강스한 이미지를 잘 담고 있다고 본다.






실 내


차문을 열면 쿠페나 오픈카에서 느낄 수 있는 지점과 먼저 만나게 되는데 바로 차유리를 감싸고 있는 틀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점은 고급스러움을 더하고, 문을 열었을 때의 개방감을 높인다는 점에서 반갑다. 다만 운전석이나 보조석에서 문을 열고 닫을 땐 봉우리 같이 둥글 뾰족한 창문 부분은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 외에 실내는 그냥 파사트 사진을 그대로 옮겨놔도 다를 게 없는 구조다. 다만 시트는 확실히 매력적이다. 딱 보기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며 운전자의 몸의 좌우 움직임을 잘 잡아주게 생겼다. 실제로 처음엔 잠시 적응이 안되는 것 같지만 코너링에서 이 버킷형 시트의 능력은 발휘된다.

그런데, 꼭 좀 하나 얘기하고 싶은 게 바로 시트 포지션과 전방 시인성과의 부조화 부분이다. 동승자도 명확하게 불평을 한 부분이지만 기본적으로 시트 포지션이 높기 때문에 지붕이 낮은 쿠페를 타는 입장에선 운전자의 윗쪽 시선이 방해를 받게 된다. 

이런 부분을 해소하려 시트를 최대한 낮게 가져가면 전방의 탁 트이는 맛은 보완되지만 대신 전방 아래쪽을 주시하는 데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적절한 좌석의 높이를 찾는 일이 의외로 쉽지 않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차에 적응이 될 때까진 이 불만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 파사트 실내)

      (VW CC 실내)



(지붕이 낮아 답답할 수 있는 부분은 이렇게 밝은 색으로 위쪽을 처리해 최대한 시원한 느낌을 주려고 했다)



(센터콘솔 내 컵홀더가 야무지다. 하지만 눈여겨 볼 것은 바느질의 정확함이다. 마감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흰 실밥의 연결 부분이 정확하게 맞아 떨어진다.)



(디지털 계기반으로 넘어가는 추세지만 아우디, VW, BMW 등의 아날로그 느낌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VW CC 실내의 백미는 시트다)

(트렁크와 통하는 부분. 이런 차 타면서 얼마나 긴 물건을 싣게 될진 몰라도 암튼, 실용적이라 할 수 있다)


역시 뒷좌석의 천장은 낮다. 이건 쿠페가 갖는 어쩔 수 없는 약점이다. 기아 K5같은 차도 거의 쿠페형 세단이라고 해도 무방한 차이고, 그랬을 때 약점 중 하나가 바로 뒷좌석 머리 공간의 부족이다. 결국 세단의 관점에서 보면 불편함은 더 부각될 것이고 쿠페라는 시각에서 보면 용인될 수 있을 것이다.

CC의 전장은 경쟁모델들이라고 할 수 있는 아우디 A5 스포츠백이나 BMW 3시리즈에 비해 긴 편이나 휠베이스가 크지 않다. 긴 전장의 장점은 트렁크 용량에 향해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차폭은 아우디나 BMW 보다 더 넓다.



주 행

사실 시승한 모델은 한국에 들어가지 않는 140마력에 32.6kg.m의 토크를 발휘하는 엔진이다. 한국에 들어가는 파사트 TDI와 같은 엔진이지만 주행감은 미국형 파사트, 독일형 파사트에 비해 훨씬 부드럽고 이전 CC 보다도 좀 더 부드럽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떠먹는 느낌처럼 소프트한ㅁ직임과 편안함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한국에 들어가는 170마력에 토크 35.7kg.m의 엔진도 그렇고 시승한 140마력의 엔진도 그렇고 문제는 가속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점이다. 처음 정지에서 50km/h까지는 A5, 320d 보다 좋다. 하지만 0-100km/h, 0-130km/h 등의 기록에선 경쟁 모델에 모두 뒤쳐진다.

뿐만 아니라 자동 6단 기어 상태에서 측정되는 추월가속의 경우도 늦다. 이 점은 VW 차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단점이다. 연비에 방향을 잡은 탓이라 분석된다. 하지만 CC의 가장 큰 미덕은 비단결 같은 저속에서의 주행감이다. 핸들은 가볍지만 특유의 안정감 덕에 저속이든 고속이든 불안하지 않다.

특히 시속 50km/h 전후에서 보이는 코너링 시의 핸들링과 조향감은 탁월하다. 아무리 좁은 공간을 급하게 돌아나간다고 해도 운전자가 차를 컨트롤하는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주차 시에도 핸들은 깔끔하게 차를 잡아 돌리고, 고속에선 시속 200km/h를 넘어가도 안정적이다. 참으로 매혹적인 세팅이 아닐 수 없다.


요즘 독일제 차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하체 소음이 많이 줄어들고 있다. 그런 걸 감안하더라도 CC는 바닥에서 올라오는 소음도 거의 없고, 풍절음도 나쁘지 않는 수준이다. 전반적으로 부드러운 주행을 하면서도 하체가 너무 단단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물렁하지도 않은 적당하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 차는 스포티한 주행을 위한 쿠페가 아니라 부드러운 주행에 걸맞는 고급 세단형 쿠페라 할 수 있다강함이 아니라 부드러움에 방점이 찍힌 것. 이렇기 때문에  스포티하다는 표현 보다는 엘레강스한 차라고 하는 게 분명 CC에 어울리는 표현이 아닌가 싶다.




총 평

CC는 변화를 바라는 듯 보이나 아직은 과감히 이 점을 실현할 생각은 없는 듯 보인다. 아마도 다음 세대 모델이 나왔을 때에야 비로소 폴크스바겐의 진의가 확인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 수입차엔 차선이탈 방지 시스템이나 통풍시트, 주차보조장치 등이 빠져있다. 아쉬울 수도 있겠지만 굳이 없어도 운전에 지장은 없는 것들이다. 이렇게 옵션을 빼버린 이유가 있다. 우선 이전 CC보다 이번에 나온 CC는 기본가가 상당히 올랐다.

(유럽에서 팔리는 자동차들은 사이드 미러에 세로로 선이 하나 그어져 있다. 그 선 안쪽으로는 거울이 볼록하게 되어 있어 좀 더 넓게 볼 수 있는 효과를 준다. 한국은 평면으로 되어 있어 이 점에서 사이드 미러의 시인성의 차이가 나타난다)

안그래도 가격을 낮추는 것에 모든 역량을 기울이고 있는 수입사 입장에선 옵션을 이전 모델 그대로 적용해 오른 가격으로 승부를 보는 건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양 몇 가지를 과감히 빼면서 오히려 가격을 다운시켜버렸다. 영리한 대응이라고 느껴진 대목이다.

차 가격은 페이스리프트 되며 올랐지만 오히려 한국 고객들에겐 가격이 다운된 신형이 소개가 된 것이다. 디자인의 경우도 뭔가 새로움을 원했던 이들에겐 기대에 못 미치지만 점잖은 분위기를 찾는 고객들에겐 질리지 않는 이런 디자인이 오히려 반가울 수 있다.


파사트와 차별화를 이루고 싶은 폴크스바겐의 바람이 어쩌면 유럽보단 한국에서 먼저 실현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유럽형 파사트와 CC의 차이 보다 미국형 파사트와 CC의 차이가 좀 더 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이쯤 되니 재미난 상상을 해보게 된다.

한국에 들어온 미국형 파사트 디젤의 가격은 4천만 원. 현재 팔리고 있는 CC 디젤의 가격은 4 8백만 원. 이 두 모델 사이에 CC 140마력 디젤 모델이 하나 들어 가주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이러면 유럽형 파사트의 빈자리를 CC가 멋지게 매워줄 텐데...

어쨌든 CC는 강함이 아니라 부드럽고 점잖은 4도어 쿠페다. 칼러풀한 티셔츠 보단 진회색 양복과 어울려 보인다.하지만  패밀리룩도 좋지만 다음엔 조금 더 스포티브해지자. 디자인도 성능도 모두. CC는 그래도 되는 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