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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 아우토반 시승기

'로렐라이에서 힐링되다' 폭스바겐 업 시승기

*폴크스바겐이 만든 경차급 모델 업(UP). 잠시였지만 저렴한 가격으로 한국에도 들어올 것이라는 소문 덕에 관심을 받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천만 원 이하의 가격으로 수입되기도 어렵고, 수입 여부 자체도 확실치 않은 것으로 정리가 된 듯한데요. 개인적으로도 관심이 많은 모델이고, 그리고 여전히 남아 있는 업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을 조금이나마 풀어보기 위해 시승을 했습니다.

특별히 이번 시승은 여행기의 형식을 빌리기로 했습니다. 그 이유는 목적지가 잘 알려진 로렐라이 언덕이었기 때문인데요. 낯선 형식의 시승기가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여유로운 마음으로 읽어보시면 그래도 큰 불편은 없을 것이라 생각되는군요.  그럼 지금부터 로렐라이로 떠난 폭스바겐 업 여행기 시작하겠습니다.


 

무거운 시작

어제 종일 내리던 빗줄기들 생각에 눈이 저절로 떠졌다. 더 이상 시승을 미룰 수 없어 무조건 렌터카 업체에 예약을 하긴 했지만 오후 늦게나 돼야 먹구름이 걷힐 것이란 일기예보도 계속 마음을 찜찜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이 잘 나가는 경차와의 만남은 한동안 미뤄야 할 테니. 부비적거리며 침대를 빠져 나왔다.

 

사실 시승을 망설인 이유는 안 좋은 날씨 때문이기도 했지만 몸 컨디션이 이래저래 별로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럴 때 독일인들이 쓰는 말이 있다. “이히 하베 눌복(Ich habe nullbock)” 만사가 귀찮다는 뜻. 무거운 발걸음으로 렌터카 업체가 있는 공항으로 향했다.

 


기분 살짝 up 되는데?

예약한 차를 확인하고 결제를 하자 자동차 키를 건네주는데 스마트키가 아니었다. 혹시나 싶어 스마트키가 옵션 적용이 되는지 홈페이지에서 확인해 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커피와 음료 한 잔씩 들고 후배와 한참을 걸어갔다. “왜 이렇게 멀어?” 기분이 다운되어 있다 보니 별 게 다 투정거리였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렌터카들이 세워져 있는 주차장에 도착하자 칙칙한 차들 사이로 붉은색의 업이 뒷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기분이 살짝 업되는데?”

 


로렐라이(Loreley)로 가자

꽤 오래 전부터 시승 장소를 넓혀야겠단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우토반의 무제한 고속 구간도 좋지만 독일의 곳곳을 소개하며 시승을 하는 것도 의미 있겠단 생각에서였다. 주요 관광지라면 독일인들 보다 더 잘 알고 있는 후배가 첫 번째 장소로 하이델베르그를 추천했다. 사진 찍기에 좋은 자신만의 포인트가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런데 이 친구 갑자기 말을 바꾼다. 최근 시에서 그 자리에 출입을 막는 말뚝을 박았다는 것이다. "혼자만 아는 장소가 아니었군"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고속주행 테스트도 할 수 있고, 연비효율성도 확인할 수 있는 적당한 거리에, 이왕이면 코너링을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는 곡선구간이 많았으면 하는 그런 곳. 물론 차를 담아낼 사진의 배경으로서도 장소는 중요했다. 잠시 논의 끝에 우린 로렐라이를 목적지로 정했다. 키를 꼽고 시동을 켰다. “이제 로렐라이의 슬픈 노래를 들으러 가볼까?”

 


아우토반에 오른 UP

프랑크푸르트 공항 1터미널에서 로렐라이까지는 약 87km다. 막히지 않고 가면 1시간 10~20분 정도면 언덕 위까지 다다를 수 있는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우선 하늘부터 올려다 봤다. 비는 더 이상 내리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일요일 오전의 아우토반은 여유로웠고 업은 기대 보다 더 잘 달려주었다. 하체가 조금 무른 느낌이 들긴 했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차 안은 시속 100km/h 넘긴 상황에도 조용했다.

 

내리막길에서 탄력주행을 하자 매끄럽게 길을 타고 흘러갔다.  동급 중에서도 상위 수준에 있는 추월가속력은 자신 보다 큰 차들을 앞지르기 하는데 큰 문제는 없는 수준이었다. 5단 수동 미션이라는 점은 분명 한계를 보였지만 일단 고속도로에서의 업은 별 다른 문제가 없어 보였다. 첫 느낌이 만족스러웠다.

 

이처럼 첫 느낌이 좋게 와 닿았던 것은 넉넉한 1열 공간과 시원한 전방시야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업은 기아 모닝 보다 전장이 6cm 정도 짧다. 하지만 폭이 넓고 높이가 높기 때문에 운전자와 동승자 입장에선 작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마치 소형차를 타고 있다는 착각을 줄 정도로 1열의 느낌은 뛰어났다. 거기다 훌륭한 시인성은 쾌적한 느낌을 배가시켰다. 

 

차의 전체 길이가 짧은데 1열 공간이 넓다는 것은 뒷자리 2열 공간이 상대적으로 좁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만약 뒷자리를 많이 사용해야 하는 사람들에겐 이번에 시승한 2도어 보다는 4도어가 맞을 것이다. 2도어라 그런지 측면 시야도 시원하게 확보가 되었다. 넓고 쾌적한 공간이 주는 착시현상은 엔진에 대한 욕구를 키웠다 ' 조금만, 조금만 힘이 더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전방 시야가 매우 좋다

넉넉한 머리 쪽 공간

 

 

“우회하시오”

로렐라이를 가기 위한 제일 좋은 드라이브 코스는 뤼데스하임을 지나 좌측으로 라인강을 끼고 달리는 길이다. 마인츠에서 코블렌츠까지 계속해서 이어지는 150여 킬로미터 강변길은 자동차로 독일을 즐기고자 하는 이들에겐 놓쳐서는 안되는 코스다. 그리고 그 코스 중에서도 잘 알려진 게 바로 뤼데스하임에서 로렐라이 언덕이 있는 장크트 고아르까지의 비교적 짧은 구간이 아닌가 싶다.

 

뤼데스하임을 알리는 표시가 보였다. 이 도시를 관통하면 계속해서 강과 함께 달릴 수 있다. 하지만 시내 중심에서 차를 멈춰 세워야 했다. 공사 중임을 알리는 표시와 함께 길이 막혀 있었기 때문이다. 강물이 많이 차 올랐던데 범람이라도 한 걸까? 동네주민에게 물었더니 자전거 도로를 다듬는 공사 중이라고 했다. 하는 수 없이 우린 “우회(Umleitung)하시오” 라는 표시를 따라 산길로 향했다.

좌측으로 라인강이 보인다. 물이 많이 차 올라와 있다


관광객들로 늘 북적이는 뤼데스하임도 찌푸린 하늘 탓인지 도로는 한가로웠다. 그런데 이 산길을 달리기엔 업의 엔진이 문제였다. 3기통 가솔린 엔진은 999cc짜리로 최고마력이 75PS 밖에 안된다. 평탄한 아우토반이나 도심을 주행하기엔 모자람이 없겠지만 한참을 돌아 올라야 하는 굽이친 산길 주행에선 아무래도 힘이 달릴 수밖에 없다.

 

3단 주행에서 2단, 다시 1단, 다시 3단에서 4단으로, 계기반 정보창에선 수시로 변속을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요즘 수동차들은 이처럼 변속 시점을 전자적으로 표시를 해주고 있다.  코너와 경사에서 팍팍 치고 나가지 못하는 것이 조금 신경쓰였다. 하지만 경차한테 뭐 얼마나 바라려고. 편히 마음을 먹었다. 그러자 우리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뒤에 붙은 차들 마다 알아서 추월해 간다. 참 잘들도 달리지. 한참을 가자 뒤에 붙은 차들도 없고 다시 도로는 한가해졌다.

 

 

“고 놈 참 이쁘다”

수동 기어의 경차로 산길 주행에 어느 정도 익숙해질 때즈음 평지가 나왔다. 이제 내리막길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비록 공사하는 바람에 우회를 하게 됐지만, 그 덕에 생각지도 않은 시골의 따뜻한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익스테리어를 유심히 관찰했다.

 

전반적으로 어디 하나 모자라거나 과하지 않은 디자인이다. 직각 형태의 해치는 블랙글라스로 디자인의 포인트를 줘 투박한 느낌을 덜어냈다. 측면의 경우 단순하지만 깔끔하게 처리가 되어 있다  전면부도 만족스럽다. 헤드램프와 엠블럼, 그리고 범퍼 아래 쪽으로 연결된 전체적인 디자인은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디자인만 놓고 보자면 근래 나온 폴크스바겐 모델들 중 최고가 아닌가 생각된다.


실내는 약간 심심하고 할 수 있다. 베이지색 나무무늬로 꾸며진 대시보드를 보니 우리가 시승한 차는 move up 트림이었다. 참고로 업은 엔진(65마력, 75마력)과 옵션 등을 세분화 해서 총 8개의 트림으로 판매가 되고 있다. take up(9,975유로), move up(10,775유로), high up(12,600유로), black/white up(13,875유로). 여기에 가스(CNG)와 가솔린을 함께 쓰는 에코 up 세 가지 트림이 포함된다.

 

전체적으로 실내는 단정하다. 하지만 촌스럽지는 않다. 마감은 상당히 훌륭한 수준이었지만 공조기 다이얼의 경우는 다소 뻑뻑했다. 시트는 인상적이다. 처음에 올라 앉았을 때는 포지션이 너무 높은 거 같아 불편했지만 달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적응이 되었고, 상당히 편안했다. 운전석의 경우 시트 높낮이가 조절이 되었지만 보조석은 조절이 안되었고, 시승차는 히팅시트(옵션) 장착에 네비게이션은 달려 있지 않았다.

 

핸들은 예상 보다 더 컸지만 얇은 편이라 여성들이 쥐기에 어려움은 없는 수준. 타이어는 14인치 사계절용 한국타이어가 장착돼 있었는데 최대 16인치까지 적용이 가능하다. 트렁크는 좁지만 깊은 구조라 의외로 짐을 많이 담을 수 있게 되어 있다. 문제는 앞서 언급했듯 뒷좌석이 좁다는 것이다. 장거리 여행에선 뒷좌석 성인들을 위해서라도 자주 쉬어줘야 할 것 같다. 보험 문제만 없다면 동승자들 서로 운전대를 잡으려 할 것이다. 

센터페시아는 하이그로시 패널을 사용하고 있다

기어 앞 쪽엔 컵 홀더와 스마트폰 등을 놓을 수 있는 수납 공간이 있다

이 차는 4인승 용이다. 어린아이들을 안전벨트가 없는 중앙에 앉히는 등의 행위는 위험하다

2열 좌우측 하단으로 작은 수납 공간이 하나씩 있다

기아 모닝과 비교하면 트렁크는 최소 50리터, 최대 100리터가 더 들어간다. 2단 구성의 받침대를 빼면 트렁크는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간다

14인치 사계절 한국타이어

다 좋은데 도어 잠금 버튼이 문에 없다. 운전석에서 조절하게끔 되어 있는데 이 점은 좀 비판 받아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원가 절감이 뭐라고...

보닛 안 쪽에 차음재가 없지만 소음은 그리 불편하지 않다. 진동이 다만 문제


 

로렐라이 언덕

네비게이션 달려 있지 않은 차를 타고 하필이면 초행의 산길을 달려야 했다. 그래도 스마트폰 덕에 헤매지 않고 우회도로를 빠져 나왔다. 다시 익숙한 라인강변 도로에 진입하면서 힘을 내기 시작했다.  VW 차들 특유의 핸들 안전성 때문이었는지 산길 코너나 직선로에서 고속 주행에도 불안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로렐라이가 가까워 오자 이름 모를 고성들이 하나 둘 눈에 띄기 시작했다. 지역 발전을 위해 부자들이 고성들을 구입해 관리를 하고 있다는 후배의 얘기를 들으며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더 놀란 것은 로렐라이에 열광하는 일본인들이 상당수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 때 이 곳에도 한국 식당이 있었는데. 갑자기 한국 음식들이 정신업이 머리 위로 떠다닌다.

강 중앙에 있는 곳에서 과거에 통행세를 받았다

높은 곳에 있는 고성은 현재 호텔로, 일본인이 소유하고 있다

 

몇 분을 더 달리자 눈 앞으로 로렐라이 언덕이 들어왔다. 모서리에 세워진 깃봉과 깃발이 없다면 아무도 알아챌 수 없는 평범한 바위 언덕이지만 그 곳에는 슬픈 노래와 역사가 거대하게 자리하고 있다. 바로 그 이야기가 수백 수천의 사람들을 이 보잘 것 없는 언덕으로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 언덕으로 올라간다. 악셀 페달에 힘을 주었다.

저 멀리 로렐라이 언덕이 보인다. 깃봉과 깃발이 없으면 잘 알 수도 없는 밋밋한 바위 언덕

언덕으로 가는 길

절벽 가까이 있는 주차장. 현재는 주차료를 받지 않고 있다

 

 

그녀는 없지만 노래는 영원하리

언덕 위에 서서 라인강을 내려다 본다. 건너편 강가는 여름엔 캠핑카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강가에 차를 세우고 접이식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독일인들. 그들이 흔하게 즐기는 휴가의 단편이다. 허나 11월의 로렐라이는 조용했고 아늑했으며 스산하기까지 했다. 몇몇의 관광객들 사이로 로렐라이를 기리는 동상이 보였지만 관광객들을 위해 설치한 동상일 뿐 내세울 만한 것은 아니다.

 

로렐라이. 이 곳은 그저 강이 흐르고 높지 않은 언덕이 있을 뿐이다. 하이네의 슬픈 시와 질허의 구슬픈 멜로디가 아니었다면 아무 것도 아니었을 곳. 하지만 무심히 라인강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어느 사이 오래되고 익숙한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언덕에서 바라본 라인강. 이 방향으로 계속가면 독일의 북쪽으로 오르게 된다. 강 중앙의 뚝을 따라 걸어가면 검은색 로렐라이 동상과 만날 수 있다

남쪽 방향으로 본 라인강. 지금도 저 코너엔 배들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신호등이 설치되어 있다

언덕 위에 있는 또 다른 로렐라이 동상

 

 

업, 그리고 로렐라이

이제 문제는 라인강과 함께 UP을 어떻게 사진에 담느냐 하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와서 라인강과 로렐라이 배경으로 사진을 못 찍는다는 건 말이 안되는 거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라인강을 배경으로 사진 찍을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최후의 방법은 언덕 아래로 내려가는 수밖엔. 그런데 동행한 후배가 의뭉스럽게 웃는다. 이곳 주민들 아니면 알 수 없는 장소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로렐라이 언덕에서 다시 강변 쪽으로 내려가던 후배는 중간쯤에서 좁은 산길로 방향을 틀었다. 승합차 한 대 겨우 다닐 정도로 폭이 좁은 도로. 4개의 헤어핀을 빠져 나가야 마을에 다다를 수 있다. 수동 변속기가 바삐 움직이고, 엔진은 소리를 키운다. 그렇게 몇 분을 달려 오르자 작은 시골 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동네 슈퍼마켓이 우체국을 겸하고, 파출소로 쓰이는 가정집 뒤쪽으로 소방서가 있는, 말 그대로 시골 동네다.

이런 곳을 4개 거쳐야 마을에 다다른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 우측 하얀 건물은 한 때 전망 좋은 숙박업소였으나 현재는 영업을 하지 않고 있다고

후배가 안내한 곳에 차를 세우고 내리니 한 눈에 라인강이 들어왔다. 아래 고양이 성이라 불리는 고성이 보인다. 고양이 성 뒤쪽으론 쥐 성이 있다. 고양이 성의 성주가 쥐 성을 하도 괴롭혀 이렇게 이름 지어졌다는 얘기가 있다. 날은 맑지 않았지만 가슴 속 찌꺼기들이 씻기는 것만 같았다. 사진기 셔터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동양인들이 이런 곳에서 자동차 사진을 찍는 게 신기했는지 동네 사람들이 지나가며 힐끔거린다.

 

사진을 찍고 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서서 강을 내려다 봤다. 분위기가 그러했는지 괜시리 차가 더 이뻐 보인다. “이런 곳에서 프로포즈하면 무조건 성공일 텐데” 조용한 마을로, 저 아래 계곡으로 이방인들의 웃음소리가 퍼져나갔다.

좌측 언덕 위에 있는 게 '고양이 성'이다

 


돌아오는 길

내리막 길에서 헤어핀을 공략하는 업은 경차 수준 이상의 코너감각을 선보였다. 오버스티어 때문에 차의 머리 부분이 코너 안쪽으로 빠르게 돈다. 탄력 주행으로 속도가 붙어 브레이크를 밟았다.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다. 가벼운 차체 덕이기도 하겠지만 내리막길에서도 업은 안정적이었다. 경차 수준을 뛰어넘는 느낌이었다. 뿐만 아니라 풍절음이나 하체에서 올라오는 진동이나 소음도 적은 편이라 여간해선 불편함을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정차 시 엔진의 진동으로 인해 차체가 떠는 점은 계속해서 거슬렸다.

 

겨우 일정을 마친 우리는 늦은 점심을 먹고 다시 프랑크푸르트로 향했다. 되돌아 오는 길은 로렐라이에 갈 때 보다 더 공사현장이 많아 우회도로를 여러 번 거쳐야 했다. 하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출발 때의 조바심과 우울한 마음은 이미 사라졌기 때문이다.  자연과 함께 했던 하루는 지친 몸과 마음을 힐링해주었다.

조용하고 평안한 시골길을 헤치고 나오자 익숙한 아우토반이 펼쳐진다. 가속페달에 힘을 줬다. 140km/h의 속도가 넘어가자 바람소리가 커진다. 다시 속도를 줄였다.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잘한 불편함 몇 가지를 제외하면 이 차는 나무랄 데가 없다. 화려하게 차려 입지 않았어도, 감각적인 옵션들로 무장하지 않았어도 충분히 멋져 보였다. 

 

UP의 독일 내 판매성적은 A플러스다. 지난 달엔 4490대(12위)가 팔렸다. BMW 1시리즈나 아우디 A3 등 보다 더 팔렸다. 10위 권 안에서 만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경차가 되지 않을까 예상된다. 자동차 전문지들도 칭찬일색이다. 세계시장 1위 목표를 위해 개발된 미니카라는 말이 허언은 아닌 거 같다. 가격이나 경차 규정에 맞지 않는 제도 등의 이유로 한국땅을 밟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이다.

 

 

마무리

좋은 차를 탄다는 게 비싼 돈을 지불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걸 이 작은 차가 보여주고 있다. 그래도 소비자 입장에선 조금만 더 저렴했음 하는 마음이다. 후배는 그런 내게 “심하다.” 라며 웃는다. 제조사 입장에선 옵션 아니면 이익 내기 어렵다는 경차고, 원가 비싸디 비싼 독일에서 이런 정도의 가격이면 괜찮은 거 아니냐며 제조업체 편을 든다.  하긴 폭리만 아니라면 뭐.

 

왕복 175km 정도의 거리를 돌고 또 도는 바람에 220km 이상 달렸다. 그 중 절반은 산길을 운전한 것 같았다. 그만큼 많은 코너와 언덕을 경험했다. 태생적으로 작은 엔진의 힘부족을 뺀다면 만족감은 올라간다. 경차의 기준을 너무 높였다는 독일 전문가의 말이 떠올랐다. 기름은 딱 두 칸 떨어졌고 20유로가 들었다. 큰 차량이었다면 40유로 이상 들었을 거리다. 늦은 점심 덕인지 절약된 기름값 덕인지 뱃속이 든든했다.

 

로렐라이라는 보잘 것 없는 언덕을 세계적인 관광지로 만든 그 스토리텔링의 힘, 그리고 그 것을 유지하고 지켜나가는 그들의 노력은  독일인 특유의 뚝심과 치밀함을 보는 것 같다. 그리고 지금 달리고 있는 업을 보며 난 비슷한 느낌은 받는다. "이 놈의 독일차, 쉽게 안 무너지겠어" 나도 모르게 한마디 내뱉었다. 룸미러를 통해 어두운 하늘 끝자락에 자리한 붉은 노을이 보인다. 내일은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을 거 같다.

*여건이 주어진다면 앞으로도 이런 시승기를 계속 진행해 보고 싶습니다. 아우디를 타고 잉골슈타트 박물관으로, BMW를 타고 BMW Welt로, 벤츠를 타고 슈투트가르트로, VW와 함께 아우토슈타트로...여러분 생각은 어떠신지 모르겠네요. 추위 앞에서 너무 움츠리지 말고 건강한 한 주 되십시오. 긴 글 읽느라 고생들 하셧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