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동차 메이커들, 특히 그 곳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들 국적은 무척이나 다양합니다. 우리나라 출신의 디자이너들도 세계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는데요. 한 마디로 디자인의 완전한 글로벌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상당히 관심을 끄는 사람들이 있죠. 바로 독일출신으로 한국의 자동차 회사인 현대와 기아차의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는 토마스 뷔어클레와 페터 슈라이어가 그 주인공들입니다.
위에 있는 사람이 현대차 유럽수석 디자이너인 토마스 뷔어클레이고, 아래가 기아의 페터 슈라이어입니다. 잘 알고들 계실 겁니다. 저 역시 이들에 대한 내용을 한 번 이상은 다뤘기 때문에 익숙한 편인데요. 툭하면 독일 언론에서는 이들에 대한 기사를 내놓고 있을 정도로, 적어도 독일 안에서는 현기차의 성공적 디자인 방향을 이끈 두 사람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뭐 독일인이라는 어떤 자부심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런데 이 두 디자이너의 성향이나 걸어온 길이랄까요? 그런 게 좀 다른 편입니다.
2005년 BMW에서 현대차로 자리를 옮겨온 토마스 뷔어클레 수석 디자이너는 크리스 뱅글의 지휘아래 활동하던 디자이너였습니다. 성격도 드러나길 싫어하는 조용한 편이어서 현대차와의 조합은 어떤 면에서 어울린다 볼 수 있을 겁니다.
반면에 2006년에 기아차 수석 디자이너로 자리를 옮긴 페터 슈라이어는 이미 VW과 아우디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디자인된 히트 모델들을 가지고 있던 스타였습니다. 토마스 뷔어클레 역시 당시 현대로 자리를 옮긴 것을 의외의 선택으로 바라 봤지만, 가장 자동차 관계자들을 놀래킨 사람은 페터 슈라이어였습니다. 기아는 현대 보다 더 점유율이나 브랜드 인지도에서 낮았던 그런 곳이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 두 사람의 영입을 시작으로 현기차의 디자인은 엄청난 변화를 맞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영입이 된 것이죠. 물론 저 개인적으로는 현대 보다는 기아의 디자인을 더 성공적이라 생각하지만 어찌되었든 현대와 기아 모두는 이들 이후에 확실히 자신들의 브랜드 정체성과 개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됐죠.
토마스 뷔어클레 현기차 수석 디자이너는 i30의 컨셉 모델을 디자인하면서 부터 서서히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컨셉 모델의 스타일링 자체가 양산형에 가까웠는데요. 결과적으로 토마스 뷔어클레에 의해 양산된 i30은, 전 세계적으로 현재까지 60만 대 정도가 팔리며 현대차의 이미지와 판매 모두에 긍정적 영향을 끼친 자동차가 돼 주었습니다.
그리고 요즘 유럽시장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투산의 후속 모델 iX35를 통해 확실한 토마스 뷔어클레 식 디자인이 정착하게 됩니다. iX35를 디자인한 자신 스스로도 이 모델에 상당히 만족스러워 하고 있다는데요. 이런 내외적인 긍정적 평가에 힘입어(?) 이번엔 중형급 왜건 모델인 i40CW라는 좀 더 과감한 결과물을 선보이게 됐습니다.
일부 독일 언론에서는 현대차의 디자인 철학인 플루이딕 스컬프쳐의 장본인으로 토마스 뷔어클레를 언급하기도 합니다. 현대차 디자인에 아트적 임팩트 주기를 강하게 원했던 토마스 뷔어클레가 자신의 요구사항들을 점점 확대시켜 나갔다고 보는데요. 아무래도 저는 저 양반의 스타일과 방향성과 맞지 않는지 그닥 긍정적으로 와닿진 않습니다. 하지만 이전의 현대차 디자인과 지금의 현대차 디자인은 큰 차이를 보였다는 점과, 점점 더 (디자인 때문 만은 아니겠지만) 많은 판매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토마스 뷔어클레가 조용히(?) 현대차와 함께 했다고 한다면 이미 스타대접을 받고 있던 페터 슈라이어 기아차 수석 디자이너는 화려하게 기아로 건너오게 됩니다. 오로지 새로운 도전을 통해 무색무취의 기아차에 자신의 디자인을 통해 유일무이한 아이덴티티를 확립하고자 했던 것이죠.
특히 페터 슈라이어는 자신과 함께 했던 디자이너 여러명을 기아로 불러들였습니다. 그들 면면이 상당히 놀라운데요. 아우디 A8 작업에 참여했던 이부터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와 가야르도 디자인에 참여 했던 디자이너까지 화려한 인맥들이 기아에 뿌리내린 것입니다. 실제로 소울 이후 기아차의 디자인은 페터 슈라이어 사단에 의해 모든 것이 완성되었다 봐도 무방할 정도로 강력한 결과물들이었습니다.
이런 페터 슈라이어가 가장 만족스럽게 바라보는 모델은 바로 K5입니다. 실제로 페터 슈라이어는 " 누구도 K5가 이런 디자인으로 나올 것이라 상상 못 했을 것이다. 우리는 바로 이런 것을 이뤄내고 싶었다." 라고 말했을 정도로 K5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합니다. K5는 저의 취향과는 상관없이 한국자동차 디자인에 있어서 하나의 커다란 이정표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쨌든 토마스 뷔어클레와 페터 슈라이어가 현기차에 불어넣은 변화의 바람은 강해보입니다. 예전에 현기차 디자이너가 되길 꺼리던 사람들 조차 이제는 가장 입사하고 싶은 자동차 회사로 바뀌었기 때문이죠. 오늘 포스트는 날(광복절)이 날이고 해서 비판적인 내용은 자제해봤는데요. 끝으로 현기차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런 재능 있는 인재들이 제대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그런 기업 분위기로 좀 더 확대되길 바란다는 점과, 그리고 현기차에 참여하는 인재들의 다양성 만큼이나 현기차 미래의 청사진 역시 보다 다양하고 풍성해질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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