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든 물건이 두고두고 팔리고 사랑 받기를 바라는 건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자동차도 그렇죠. 토요타의 경우 코롤라, 폴크스바겐은 골프, 우리나라 모델의 경우는 소나타나 아반떼 같은 모델이 그 예가 될 수 있겠네요. MINI처럼 아예 모델과 브랜드가 동일하게 꾸준히 이어져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체로 브랜드를 대표하는, 많이 팔리는 세그먼트 모델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대중적이지 않아도,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어도, 뭔가 브랜드 철학이나 정체성과 맞거나, 아니면 마케팅하기 좋은, 이에 특화한 그런 자동차일 경우 제조사는 그 모델에 힘을 주고 다양한 변주를 시도합니다. 시트로엥 Ami 같은 거죠.
“Ami”
아미는 2020년 공개된 전기차입니다. 그런데 한국 시트로엥은 에이미라고 부르는 모양입니다. 이미 시트로엥은 1960년대 아미라는 이름으로 자동차를 만들었고 그 이름을 이어 쓴 듯한데 이상하게 에이미로 불러달라고 합니다. 아미라는 표현이 군대를 떠올리거나, 혹은 특정 아이돌 팬클럽 이름과 동일하게 불리는 걸 피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어쨌든 에이미가 출시된 지 4년이 지났고, 그동안 유럽에서 (그것도 일부 유럽국에서만) 약 5만 대 정도가 팔렸습니다.
아주 작은 파생 시장용 모델 판매량으로는, 그것도 제한된 국가에서만 판매하는 것치고는 좋은 성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프랑스 제조사들은 이런 요상하고 귀여운 차들 참 잘 만드네요. 2012년 르노는 트위지라는 독특한 전기차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바퀴 4개짜리 전기 바이크 같아 보였던 트위지는 그 독특함으로 의미 있는 역할을 했습니다.
시트로엥도 2016년에 E-메하리라는 아주 독특한 전기 소형 SUV를 내놓은 바 있죠. 한정판이었던 터에 트위지만큼은 아니지만 역시 독특한 포지션으로 상당히 인상적인 역할을 시장에서 했습니다. 시트로엥은 이때부터 전기차 시장에서 자신들이 잘할 수 있는 게 뭔지를 더 진지하게 고민을 했던 게 아닐까 합니다.
2020년 출시한 에이미는 아주 저렴한, 그러면서도 충분히 도심에서 타고 다닐 수 있을 정도의 자동차임을 강조했습니다. 실내 분위기를 보면 간결함 그 자체입니다. 스마트폰에 디지털 인포테인먼트 영역을 대폭(?) 양보했고, 창문도 손으로 돌려서 열 수 있게끔, 그리고 에어컨조차 빼 가격 부담을 줄였습니다. 물론 에어백 같은 것까지 빠진 건 아쉽지만 어차피 시속 50km 이상(ECU 건들면 속도 더 올릴 수 있다고) 달릴 수 없기 때문에 홍보와 실용적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고 봐야겠습니다.
시트로엥은 이 장난감 같은 전기차를 내놓고 다양한 마케팅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시장 반응이 좋았던 이유도 있겠지만 전기차라는 새로운 카테고리에서 시트로엥이 할 수 있는 다양한 도전에 이 차가 한 축을 담당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차를 시각적으로 달리 보일 수 있도록 옵션을 구성했는데 ‘팝’ ‘바이브’ 등 7가지 버전 중 하나를 고를 수 있게 했습니다. 또 꾸미는 거 좋아하는 젊은 고객들을 위해 스티커 판매도 진행했습니다.
2022년 시트로엥은 또 하나의 흥미로운 소식을 전했습니다. 마이 에이미 버기(MY AMI BUGGY)라는 한정판 모델을 내놓은 것인데요. 딱 50대를 만들어 프랑스에서만 판매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17분 만에 매진됐습니다. 같은 해 에이미가 여러 유럽 국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는 소식이 나왔습니다.
개인 고객 못지않게 홍보를 위한, 홍보용으로 구입한 기업 고객도 많았다고 합니다. 포르투갈에서는 우편용 자동차로, 그리스 등에서는 경찰차 등으로도 주문이 이뤄졌습니다. 시트로엥은 더 적극적으로 이 전기차 알리기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그게 일정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자평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최대 1년까지 가능한 렌탈 서비스부터 특정 컬러를 적용한 모델을 별도로 선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이듬해인 2023년엔 앞서 소개했던 ‘마이 에이미 버기’를 유럽 여러 나라에서 역시 한정 판매했습니다. 1천 대 가량이 준비되었는데 역시 몇 시간 만에 다 매진이 되었습니다.
같은 해에 장애가 있는 운전자를 위한 ‘에이미 포 올’이라는 모델도 내놓았습니다. 휠체어를 보관할 수도 있고, 하체를 쓸 수 없는 이들이 쉽게 운전할 수 있게끔 전문 업체와 함께 변화를 줬습니다. 그리고 올해 2024년, 론칭 4주년을 기념한다며 시트로엥은 나이트 세피아 색상의 기념 모델을 다시 내놓았습니다. 거기에 ‘마이 카고 키트’라고 해서 작은 소포 등을 싣고 다닐 수 있는 카고형 모델도 함께 공개했죠.
이처럼 계속해서 에이미는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습니다. 14개까지 판매국이 늘었고, 그렇게 5만 대 이상 팔려나갔습니다. 스텔란티스 그룹은 시트로엥 에이미의 활약에 고무됐는지 자회사 오펠과 피아트에도 플랫폼을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오펠에서는 Rocks-e라는 이름으로 2021년에, 피아트에선 2023년 토폴리노라는 이름의 형제 모델들이 출시됐습니다. 작은 전기차 하나 개발해 뽕을 뽑을 대로 뽑고 있는 겁니다.
저는 전기차 시대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면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전기차가 등장할 것이고, 이는 내연기관 시대와는 또 다른 형태의 확장된 자동차 문화를 만들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한마디로 개인 이동성 형태가 더 유연하고 다양하게 해석되고 적용될 것이란 얘기죠. 저는 시트로엥 에이미가 그런 측면에서 꾸준히 변주되었으면 좋겠고, 그렇게 유쾌하게 시장을 계속 만들어 가주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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