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크스바겐의 E세그먼트 전기 세단 ID.7이 본격 판매되기 시작한 지 1년이 다 돼 갑니다. 그런데 아직도 한국 시장 진출이 확정되지 않았죠. 들여온다는 얘기는 분명 도는데 구체적인 확정일 얘긴 아직 나오고 있지 않습니다. 올 연말 출시 뉴스도 보이지만 확정은 아닌 듯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만이 아닙니다. 미국, 그러니까 북미 시장 진출 역시 확정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냥 확정이 안 된 수준이 아닌, 오히려 출시가 미뤄졌다는 소식입니다. 원래는 올해 말 정식 판매가 시작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지만 INSIDEEVs와 같은 전기차 전문 매체에 따르면 더 연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미국 폴크스바겐 딜러들은 오히려 ID.7 출시 연기 소식을 반겼다고 하더군요. 신차 나오는 것을 반대하는 딜러들이라니, 이해가 잘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속을 좀 들여다보니 왜 그들이 그렇게 반응을 하는지가 보였습니다.
일단 그들이 기대한 출시 예상가가 아닌 것이 문제로 보입니다. 매체들은 미국 시장에서 ID.7은 5~6만 달러 수준의 가격이 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그리고 이 가격으로는 별다른 기대가 안 된다고 전했습니다. 한 딜러사 소유주는 ID.버즈처럼 ID.7은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할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또한 메르세데스, 아우디, BMW 로고가 없는 세단에 누가 이런 금액을 지불하겠냐고까지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했습니다.
북미 시장에서 세단으로 괜찮은 성적을 내는 모델은 준중형 모델인 제타 정도라고 봐야 합니다. 파사트는 순전히 판매 부진에 따라 미국 시장에서 철수했고 아르테온 역시 별로 인기를 끌지 못했다고 합니다. 결국 SUV 중심으로 라인업을 다시 짜야 했다고 하는군요. 비교가된 ID.버즈와 ID.7은 시장 전체로 봐도 포지션이 다릅니다.
ID.버즈는 불리(마이크로버스)라는 시대의 아이콘을 재해석했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모델입니다. 또한 마땅한 경쟁자들도 현재는 쉽게 찾기 어렵습니다. 존재감이 남다른 전기 멀티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에 비하면 ID.7은 이 차가 아니더라도 대안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돈을 더 주긴 해야 하지만 당장 BMW i5, 메르세데스 EQE 세단 같은 같은 독일산 프리미엄 전기 세단들이 있습니다.
여기에 체급은 하나 낮지만 테슬라 모델3와 폴스타2, 그리고 현대차의 아이오닉6와 같은 중형급 크로스오버형 세단들도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ID.7의 입지가 애매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독일에서 방금 언급한 전기 세단형 모델들 판매량을 잠시 보도록 하죠.
▶독일 2024년 1~5월 주요 전기 세단 판매량 (자료:독일 연방자동차청)
BMW i5 : 2,332대
메르세데스 EQE 세단 : 3,631대
현대차 아이오닉6 : 1,924대
폴스타 폴스타 2 : 1,251대
ID.7 : 1,428대
ID.버즈 : 1,550대
독일에서 ID.7의 시작가는 56,995유로입니다. BMW와 메르세데스의 경쟁 모델들 시작가가 약 7만 유로를 살짝 넘기는 수준이니 13,000유로 이상 차이가 납니다. 거기다 본격 옵션질(?)까지 고려한다면 EQE 세단과 i5, 그리고 ID.7의 실제 판마 가격 차이는 더 벌어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판매량에서 오히려 더 고가 모델들에 밀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나마 이것도 폴크스바겐을 국민차 브랜드로 여기는 독일에서의 성적임을 고려한다면 해외 시장에서는 더 가격에서 차이를 낼 수 있어야 경쟁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의 폴크스바겐 딜러들이 이 차가 아예 미국으로 안 들어와도 괜찮다고 여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싶은데요. 돈을 조금 더 주고라도 독일 프리미엄 모델을 선택할 것이기 때문에 판매에서 ID.7이 의미 있는 성적을 내려면 결국 확실한 가격 차이를 통해 변별력을 키울 수밖에 없지 않나 싶습니다.
저는 이런 이슈가 한국 시장에서도 연동될 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우디가 아직 A6 e-트론을 내놓지 않았지만 i5나 EQE 세단과 같은 존재감 확실한 독일 E세그먼트 전기 세단이 있기 때문에 이것들과 ID.7이 어떤 차별화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특히 한국에선 제네시스 전기 세단도 있으니 이것과도 경쟁을 해야 합니다. 과연 배터리 성능, 디자인, 주행감, 브랜드파워 등에서 ID.7이 존재감을 확실히 낼 수 있을까요?
저는 폴크스바겐이 4년 후 새로운 전기 플랫폼을 통해 내놓을 모델들이 나오기까지는 VW가 전기차 시장에서 큰 힘을 쓰긴 어려울 것으로 생각됩니다. 미국 딜러들 반응을 보니 ID.7을 놓고 폭스바겐코리아의 고민이 길어지는 것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과연 ID.7은 어떻게 우리를 찾아오게 될까요? 좋은 차를 괜찮은 가격에 사는 것임을 강조하는 수밖에 없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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