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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꼬여버린 포르쉐의 마칸 단종

며칠 전이죠. 포르쉐 최고 재무 책임자 루츠 메쉐케는 독일의 한 자동차 언론과 인터뷰에서 내연기관 종말 시기는 연장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전기차 인프라 구축이 생각만큼 좋지 않고, 판매 역시 기대만큼 빠르게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것 등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그런데 참 재밌는 게요. 이 고위급 임원이 이런 이야기를 한 곳이 포르쉐의 신형 마칸 론칭 장소였다는 겁니다. 소식을 접한 분이 많겠지만 포르쉐는 유럽에서 올 상반기까지만 엔진이 들어간 마칸을 팔기로 했습니다. EU에서 요구하는 사이버 보안 규정을 맞추기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신형 마칸 EV / 사진=포르쉐

 

EU는 안전과 관련한 새로운 규정을 잘 만들어내기로 유명한 동네(?)입니다. 이번에 요구된 것도 자동차가 점점 디지털화하면서 해커 등으로부터의 공격에 더 많이 노출될 위기에 있기 때문에 안전한 제어를 위한 소프트웨어가 들어가도록 강제한 겁니다.

 

그런데 포르쉐는 마칸에 이런 장치를 넣기 위해서는 플랫폼을 새롭게 짜야 하는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아예 유럽에서는 더는 엔진이 들어간 마칸을 팔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따라서 유럽에서는 6월 말까지만 마칸을 팔아야 하기 때문에 마칸 EV가 판매될 하반기까지 길게는 몇 개월의 판매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마칸 S / 사진=포르쉐

 

사실 마칸 EV 출시는 원래 그들의 계획대로라면 2023년 상반기 공개, 2023년 말 판매였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1세대 마칸과 2세대 전기 마칸의 교체는 비교적 시간을 갖고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폴크스바겐 그룹 차원에서 만들던 신형 소프트웨어 개발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로 인해 1년 이상 판매가 늦어졌고, 그래서 그들이 원래 계획했던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도 이뤄지기 어렵게 되어 버렸습니다. 헤르베르트 디스 그룹 회장이 물러난 것도 이와 관련한 문책성 인사였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니 얼마나 이 문제가 그들에겐 큰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출시 지연으로 포르쉐의 계획은 꼬여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런 걸까요? 미국에는 마칸 EV와 엔진 마칸이 함께 (당분간) 판매될 거라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EU의 새로운 규정이 적용 안 되는 북미시장이니까 가능한 결정일 텐데 과연 2세대 전기 마칸과 엔진 마칸의 동행이 언제까지 북미에서 이뤄질지도 궁금한 내용입니다.

사진=포르쉐

 

그런데 이 글이 전기차 시대가 생각보다 빨리 오지 않을 수 있고, 그만큼 내연기관의 생존이 길어질 수 있다는 포르쉐 고위 임원 발언으로 시작했다는 거 기억하실 겁니다. 심지어 핵심 모델의 전기차 출시 현장에서 그런 얘기를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한 것입니다.

 

마칸의 꼬인 일정, 그리고 고위 임원의 발언을 함께 놓고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 혹시 포르쉐가 신형을 전기차로만 내놓기로 한 결정을 후회하는 것은 아닐까?' 마칸은 유럽에서만 1년에 2만 대 이상 판매되는 인기 모델입니다. 그리고 유럽의 이런 판매량은 전체 마칸 판매량의 30%를 넘는 수준입니다. 카이엔과 마칸이 벌어다 주는 돈이 엄청나다는 것을 누구보다 그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마칸 기어박스 / 사진=포르쉐

 

그런데 그 핵심 모델을 온전히 전기차로만 내놓는다는 게, 그것도 출시 일정이 늦어지며 스텝이 꼬인 상황에서 과연 얼마나 회사에 도움이 될지 열심히 그들 스스로 계산기를 두드려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여전히, 충분히 엔진 마칸은 경쟁력이 있습니다. (그러니 한동안 1세대와 2세대를 같이 팔겠다는 거겠죠.) 그리고 임원의 고백(?)처럼 내연기관의 시대는 어쩌면 그들 생각보다 더 길어질지도 모릅니다.

 

아우디 Q6 e-트론과 함께 사용하는 전기 전용 플랫폼을 통해 마칸 EV를 만든 것처럼 아우디가 곧 공개할 신형 Q5의 플랫폼을 이용해 2세대 마칸에도 엔진을 달아 계속 팔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를 혹시 하는 건 아닐까요? 이런 예상, 추측이 틀렸음은 마칸 EV가 큰 성공을 거둬야만 증명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뭔가 어수선해진 것 같은 마칸의 상황이 어떻게 풀려가나 잘 지켜봐야겠습니다.

신형 마칸 / 사진=포르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