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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독일 제2의 국민차 폴로의 추락

독일의 국민차라고 하면 골프를 꼽게 됩니다. 판매량부터 골프가 담고 있는 문화적인 측면까지, 넘어서기 힘든 대중의 사랑을 받는 그런 모델이죠. 그리고 B세그먼트 폴로Polo 역시 골프만큼은 아니지만 독일인들에게 인기 많은 모델입니다. 2의 국민차라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폴로 판매량이 요즘 심상치 않습니다.

폴로 / 사진=VW

 

 TOP 10에서 사라지다

독일의 연간 신차 판매량 순위는 오랜 기간 폴크스바겐 삼총사가 TOP 3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골프, 폴로, 그리고 파사트. 여기에 티구안까지 합세하면서 TOP 4가 됐죠. 마치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폴로 판매량이 힘을 잃기 시작하더니 최근에는 눈에 띄게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습니다.

 

20211~5월까지 독일 신차 누적 판매량 TOP 10

1 : VW 골프 (42,262,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5.3% 마이너스 성장)

2 : VW 티구안 (29,849, 전년 대비 28.0% 성장)

3 : VW 파사트 (24,944, 전년 대비 18.0% 성장)

4 : VW 티록 (23,519, 전년 대비 52.0% 성장)

5 : 스코다 옥타비아 (21,136, 전년 대비 38.9% 성장)

6 : 오펠 코르사 (21,120, 전년 대비 41.2% 성장)

7 : 피아트 두카토 (21,045, 전년 대비 24.2% 성장)

8 : BMW 3시리즈 (18,955, 전년 대비 14.1% 성장)

9 : 미니 (18,640, 전년 대비 36.0% 성장)

10 : VW UP (18,719, 전년 대비 148% 성장)

 

10위 안에 폴크스바겐의 모델이 절반이나 있지만 폴로 이름은 보이지 않네요. 폴로의 경우 12,221대가 팔려 5월까지 판매량 순위가 18위였습니다. 2위나 3위에 늘 머물던 모델이 18위까지 떨어졌다는 건 분명 좋지 않은 신호입니다. 참고로 전년 같은 기간에 16,227대를 팔았으니까 24.7% 마이너스 성장이었습니다. 2019년보다 판매량이 줄어든 작년이었는데 그 작년의 판매량에서 다시 큰 폭으로 하락한 겁니다.

 

폴로를 추락시킨 것은 내부자들?

그렇다면 폴로는 왜 이렇게 판매량이 눈에 띄게 주는 걸까요? 소형 해치백의 인기가 예전만 못해서? .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건 맞습니다. 다만 유럽에서 소형차의 존재감은 여전히 나쁘지 않습니다. 중형급, 그 이상이 가장 많이 팔리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독일은 SUV와 준중형(C세그먼트) 다음으로 소형이 많이 팔리고 있고, 유럽 전체로 보면 클리오, 폴로와 같은 소형차 존재감은 독일보다 훨씬 더 돋보입니다.

폴로 GTI / 사진 =VW

 

사실 폴로의 판매량에 가장 큰, 직접적 영향을 끼친 것은 폴크스바겐 그들 자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은 SUV, 콤팩트 SUV 판매에 보다 많은 힘을 쏟았고, 결국 그것들이 등장한 2018년부터 폴로는 시장에서 힘을 잃어갔습니다. 고객들이 (제조사 바람대로) 같은 급이라면 지상고 높은 SUV, 혹은 크로스오버 모델에 마음을 뺏긴 것입니다.

 

폴크스바겐은 티구안이라는 콤팩트 SUV로 큰 성공을 맛봤습니다. 그리고 2세대 티구안은 C세그먼트 이상의 영역까지 존재감을 넓혔죠. 덩치를 키우고 7인승 모델을 내놓았는데, 이는 티록T-Roc의 등장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서로 최대한 판매 간섭이 일어나지 않도록 자리 정리를 한 것입니다. 티록 등장에 골프만 타격을 입은 건 아니었습니다. 폴로도 덩달아 영향을 받았습니다.

 

조금만 돈을 더 보태면 괜찮은 콤팩트 SUV로 갈아탈 수 있다는 폴크스바겐의 전략이 먹힌 겁니다. 그 결과 티록의 순위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상승했고, 결국 폴로를 밀어내고 그 자리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티록 이후 다시 폴크스바겐은 소형 SUV 티크로스T-Cross를 내놓습니다. 처음엔 경차급 SUV로 티크로스가 소개되었지만 전장 기준으로 보면 영락없는 B세그먼트 SUV입니다.

 

골프 전장 : 4,284mm

티록 전장 : 4,234mm

폴로 전장 : 4,074mm

티크로스 전장 : 4,110mm

 

티록보다 티-크로스가 폴로엔 더 치명적인 영향을 주었고, 이는 판매량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021 1월부터 5월까지 티-크로스의 판매량은 13,102대로 이미 폴로를 넘어섰습니다. 수십 년 지켜온 폴로의 자리가 티크로스 등장 2년이 채 안 돼 무너진 겁니다.

티크로스/ 사진=VW

 

비슷한 신세가 된 포드 피에스타

티록과 티크로스의 사이에 껴 초라해진 폴로의 모습을 동병상련 마음으로 바라보는 자동차가 있는니 바로 포드의 소형 해치백 피에스타입니다. 피에스타는 독일에서도 자국 브랜드의 대표 모델로 여겨질 정도로 인기가 많았습니다. 늘 판매량에서 상위 10개 안에 이름을 올렸을 정도였죠.

 

그런데 올해 형편이 폴로보다 더 좋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곤두박질해버렸죠. 지난해 1월부터 5월까지 독일에서 팔린 피에스타는 13,016대였습니다. 12위 수준입니다. 그때도 그닥 좋지 않은 성적이었다고 얘기가 되었는데 올해는 5월까지 8,199대만 팔렸습니다. 37.0%나 마이너스 성장을 한 것입니다.

피에스타 / 사진=포드

 

판매량 순위는 35위까지 미끄러졌습니다. 반대로 새롭게 등장한 포드의 신형 크로스오버 모델 퓨마는 나오자마자 빠르게 판매량을 늘려나가는 중입니다. 작년(1~5) 4,362대가 팔렸던 이 모델은 올해(1~5) 벌써 9811대가 팔렸습니다. 피에스타의 배 이상(124.9% 성장)입니다.

 

폴로와 피에스타는 같은 회사에서 나온 (심지어 플랫폼을 공유한) 소형 SUV에 밀리고 말았습니다. 염려하던 골프보다 더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전기차까지 등장하면 받을 악영향은 더 커질 게 뻔합니다. 흔한 표현으로 관짝에 못질을 하는, 결정타가 될 수 있습니다.

퓨마 / 사진=포드

 

SUV와 전기차라는 대세에 밀린 소형 해치백들

TOP 10 순위에 오펠 코르사라는 모델이 6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게 보이시죠? 코르사 역시 폴로나 피에스타와 같은 B세그먼트 해치백인데 왜 저 차는 되레 성장세를 보인 걸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판매량 안에 전기 코르사가 포함돼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순수 배터리 전기차인 e-코르사는 올해 5월까지 독일에서 4,371대가 팔렸습니다. 독일 전기차 판매 순위 8위에 해당하는, 나쁘지 않은 결과입니다. 이 판매량 덕에 코르사는 폴로나 피에스타처럼 체면을 구기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푸조 2008을 베이스로 한 소형 SUV 크로스랜드X가 있기는 하지만 티-크로스나 포드 퓨마처럼 아직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코르사는 이래저래 버틸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e-코르사 / 사진=오펠

 

그런데 전기차로 생존을 이어갈 코르사와는 달리 폴크스바겐은 폴로를 대체할 I.D.2와 같은 소형 전기차 및 소형 SUV 전기차를 내놓을 예정입니다. 포드 역시 소형 전기 SUV 생산을 위한 플랫폼을 개발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폴로나 피에스타와 전혀 다른 대체제들이 속속 등장하는 것입니다. 당장은 소형 SUV에 치이고, 곧 있으면 전기차에 치일 운명인 것이죠.

 

최근 폴크스바겐은 부분변경된 신형 폴로를 내놓고 판매에 들어갔습니다. 더 좋아지고, 더 고급스러워졌으며, 물론 더 비싸졌습니다. 디자인의 변화도 눈에 띄지만 이런 변화가 과연 추락하는 폴로를 살려낼 수 있을까요?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절대지존처럼 버티고 있는 골프조차 사라질 테니까요.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티록과 전기차 I.D.3가 그런 예측을 가능케 합니다.

신형 폴로 / 사진=VW

 

머지않아 내연기관의 시대가 마무리 될 텐데, 소형 해치백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선 그 짧은 생존 기간만이라도 멋지게 버티다 보기 좋게 마무리했으면 합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상황을 보면 아름다운 은퇴보다는 쓸쓸한 퇴장 쪽에 폴로와 피에스타 운명이 더 가까워 보입니다. 50년 가까이 버텨온 존재들, 그리고 그것들이 만들어낸 헤리티지가 진행형이 아닌 과거형이 될 날이 얼마 안 남은 듯해 씁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