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동차 디자인 흐름은 크게 3가지 정도로 압축할 수 있을 듯합니다. 우선 쿠페입니다. 세단은 물론 SUV까지 쿠페 타입이 지배하고 있다고 할 정도로 많이 나오고 있는데요. 쿠페가 득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뻐 보이기 때문입니다.
가끔 쿠페가 공기 역학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쿠페는 고속 주행 시 필연적으로 와류나 부력 방지 등을 위해 스포일러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통적인 노치백 타입의 세단이 전면부 공기 저항을 더 받기는 하지만 지붕을 타고 내려가는 뒤쪽 공기 흐름은 오히려 영향을 덜 받습니다. 요즘 쿠페 트렌드는 그냥 이뻐서 제조사들이 밀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두 번째는 강렬한 인상입니다. 더 강하다는 이미지, 더 강렬한 이미지를 소비자에게 남기고자 하는 자동차 디자인 흐름이죠. 세 번째는 크로스오버입니다. 전기차가 늘어나면서 배터리가 들어가고 엔진과 다단 변속기가 사라지면서 차체는 그에 맞게 다양한 변화를 맞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변화, 좋게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 세 가지 흐름 중 과한 이미지 심기입니다. 디자인이라는 게 일정한 기간을 두고 공통의 흐름이 만들어지는데 언제부터인가 자동차들 인상이 근육질의,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것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헤드램프가 길어지면서 동시에 날카롭게 마치 눈을 치켜뜨듯 올라간다거나,
그릴이 커지고 대범해진다거나, 범퍼를 더 각지게, 또 측면에는 보다 많은 선과 면 작업을 통해 존재감을 최대한 드러내려 하고 있죠. 그 바람에 단순함의 미학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애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켄 시걸의 책 '미친듯이 심플'에서 이렇게 말했죠.
'심플함은 비즈니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함 힘이다. 또한 복잡한 세상에서 돋보일 수 있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현대차의 아이오닉 5 콘셉트카가 나왔을 때 저는 이런 심플한 미학이 주는 가치를 현대가 깨달았나 보다 싶어 반가웠습니다. 하지만 양산 모델을 보고서는 더 과감(?)하게 더 단순함, 심플한 방향으로 가지 못한 것이 아쉬웠습니다. 요란한 선들을 거둬내 더 단순화했더라면 아이오닉 5는 지금보다 더 각광받았을 것입니다. (물론 지금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기에 이런 얘기가 와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확실히 요즘 자동차 디자인은 존재 '과잉'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저는 BMW의 세로형 거대 그릴 채택이 아닌가 합니다. 4시리즈에 적용된 그릴은 (벌써 적응한 분들도 계시겠으나) 처음 등장했을 때 그 과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죠. 사실 4시리즈 스케치를 보면 디자이너들이 무엇을 구현하고 싶었는지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실제 결과물은 늘 스케치와 다릅니다. 결국 그릴만 부각된 부담되는 디자인이 나온 거죠.
BMW가 세로 그릴로 아이덴티티를 과하게 드러내려 했다면 토요타 경차 아이고는 유럽의 치열한 경차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조건 튀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증이 만들어낸 디자인이 아닌가 합니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2세대는 1세대의 귀여운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등장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닌자 엑스'냐며 급격한 디자인 변화에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았죠. 그리고 2018년 부분변경 되면서 과감한 도전에서 다소 힘을 뺀 듯했습니다. 경차의 귀여운 이미지도 조금 되살린 느낌도 나고요. 시장의 비판에 반응을 제조사가 보인 경우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최근 아이고와 관계 있는 콘셉트카 하나를 토요타가 공개했는데 또 발동이 걸린 모양입니다.
아이고 X 프롤로그인데요. 경차의 지상고를 최대한 들어 올린, 일종의 크로스오버 모델입니다. 양산될 모델은 조금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헤드램프 디자인의 그 형태는 유지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토요타는 이 디자인이 유럽에서 꽤 반응을 얻을 것이라고 장담했다죠.
기존의 아이고 느낌을 살린 후면 디자인과 측면, 그리고 지상고를 올린 전체적인 방향성 등은 저는 인정합니다. 하지만 전면부 디자인의 과함은 조금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헤드램프를 진정?시켜줬으면 하는데, 토요타가 그럴지 의문이네요. 왜 유럽에서 토요타 디자인이 최하 수준으로 평가되는지 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과해도 너무 과합니다. (닛산 주크 때 반응은 잊었나?)
디자인이 영향을 얼마나 주었는지는 현대 쏘나타를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안타까웠습니다. 전면부 디자인이 주는 부담감, 좀 더 정확하게는 그릴과 범퍼의 부담스러운 조합, 그 '과잉'이 만든 결과가 아닌가 합니다. 물론 디자인만으로 쏘나타의 부진을 이야기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디자인에 나쁜 영향을 받았다는 것도 부인하긴 어려울 겁니다.
이 외에도 많은 차가 날카로운 선, 과감한 범퍼 디자인, 그릴의 거대함 등에 기대고 있습니다. C필러 쪽 지붕은 지나치게 낮아지고 있고, 전체적인 이미지는 강함을 넘어 기괴함으로까지 이어집니다. 기괴함 하면 람보르기니 베네노를 빼놓을 수 없죠. 미국 에드먼즈닷컴이 선정한 자동차 역사에서 가장 못생긴 차 100개 중 당당히 1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람보르기니도 과거엔 이렇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과함, 기괴함이 하나의 캐릭터화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직접 본 베네노의 존재감은 정말 대단했지만, 그 압도하는 존재감 때문에 과연 어디까지 디자인이 괴랄해질지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는 오히려 전기차들이 이런 과격함을 배제한 듯해 좋습니다.
좋은 디자인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테슬라의 디자인도 요즘처럼 과잉의 시대와 다르고, 재규어의 전기차 I-페이스는 언제봐도 질리지 않고 좋습니다. 재규어나 디자이너 이안 칼럼의 방향성이 좋은 결과물을 만들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디자인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죠. 정답은 없습니다. 제가 싫은 게 누구에겐 좋고, 누구는 좋다고 해도 저는 싫을 수 있는 게 디자인입니다. 그러니 강요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닙니다. 그래도 여기저기서 같은 얘기가 반복해 들린다면 제조사들도 긴장을 좀 해야 하지 않을까요? 스티브 잡스가 했다는 말을 소개하면서 오늘 얘기를 끝낼까 합니다.
"심플함이 복잡함보다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심플해지려면 생각을 비우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결국 이것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심플함에 이르는 순간, 산맥도 옮길 수 있을 테니까요."
디자인만을 놓고 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디자인을 포함해 기능의 심플함, UX의 심플함, 철학의 심플함까지 연결이 되겠죠. 이 심플의 의미를 자동차 회사들이 진지하게 생각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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