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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냉간 시동 배출가스 문제, 제조사는 알고 있다

유럽에서 디젤차 판매율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는 소식은 이제 새로운 얘기가 아닙니다. 독일만 하더라도 올해 8월까지,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12%나 디젤차 판매량이 감소했죠. 유럽 전체로도 2009년 이후로 처음 50%대의 벽이 무너졌습니다. 아직은 소수일 뿐이지만 유럽은 도시별, 국가별로 내연기관 금지를 구체화하고 있기까지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디젤차 판매율이 떨어지면서 그 수요층이 어디로 갔는가? 하이브리드와 전기차, 그리고 가스차 등으로 옮겨가기도 했지만 훨씬 많은 운전자가  가솔린 모델을 선택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로 인해 이산화탄소 배출량 규제 대응에 어려움이 있을 거라는 얘기도 해드렸는데요. 그것 말고 또 다른 문제가 고민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바로 콜드 스타트, 우리 말로는 흔히 냉간 시동이라는 건데요.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요?

사진=포드


1. 냉간 시동으로 디젤, 가솔린 모두 질소산화물 과다 배출

냉간 시동은 엔진이 차갑게 식은 상태에서 시동을 걸어 엔진을 돌리는 것을 말합니다. (추운 겨울, 낮은 기온 상태에서 차의 시동을 거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 이렇게 되면 배기가스 정화장치의 정상적인 작동이 이뤄지지 못하는데요. 정화장치는 일정 수준의 온도(약 200~300도)가 되어야 돌아가죠. 그리고 이 온도는 보통 엔진을 돌리고 나서 3분 정도가 지났을 때 도달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따라서 이 3분 이전의 상황까지는 배출가스가 무해한 기체로 환원되지 못하고 배출구를 통해 나옵니다. 작년이었죠. 이미 이와 관련한 내용을 한 번 소개해드린 적 있는데요. 영국 배출가스 연구 실험 전문 기업인 에미션스에널리틱스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냉긴 시동 시 발생하는 질소산화물의 양이 디젤차와 가솔린차 모두 엄청난 양이었습니다.

냉간 시동 시 질소산화물 배출량/ 출처=에미션스에널리틱스


유로 6 디젤차 질소산화물 배출 기준 : 0.08g/km


디젤 차량 엔진 가열된 상황에서 시동을 걸 때 : 0.694g/km


디젤 차량 엔진 냉각 시 시동을 걸 때 : 1.061g/km


유로 6 가솔린차 질소산화물 배출 기준 : 0.06g/km


가솔린 차량 엔진 가열된 상황에서 시동을 걸 때 : 0.051g/km


가솔린 차량 엔진 냉각 시 시동을 걸 때 : 0.217g/km


2. 휘발유차 시동 켠 후 1분 안에 CO, CH 충격적 양 배출

자료를 보면 디젤도 엄청난 질소산화물을 냉간 시동 시 뿜어내지만 가솔린도 만만치 않은 수준의 질소산화물을 내뿜고 있습니다.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최근 독일 일간지 디차이트는 가솔린 자동차의 경우 질소산화물뿐만 아니라 또 다른 주요 오염 배출 가스인 일산화탄소와 탄화수소의 배출량이 충격적이라는 실험 결과를 소개했습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한 연구팀은 냉간 시동 후 30초 동안 배출된 오염물질이 일부 엔진의 경우 500km 거리를 달린 자동차보다 더 많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또 스위스의 소재 물질 검사협회(Empa)의 연구 결과도 공개했는데요. 가솔린 차량의 냉간 시동 시 (약 1분) 일산화탄소(CO)와 탄화수소(HC) 방출이 최대 1만 배 더 많았습니다. 모두 인체나 환경에 해를 끼치는 오염원들입니다.


이는 가솔린 자동차가 배출하는 일산화탄소량의 70%, 탄화수소의 90% 수준이라는 게 소재 물질 검사협회의 이야기였다고 디차이트가 보도했죠. 엔진이 식은 상태에서 시동이 걸리면 연료 일부가 실린더에 도착하기 전 흡기관에서 응축이 되어 버리고 엔진이 따뜻해졌을 때 이 응축된 연료까지 더 많은 양을 분사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엔진은 보호되지만 그만큼 오염물질이 많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진=현대자동차


하이브리드 자동차도 예외는 아니다

제조사들 외면 이유

현재 많이 판매되고 있는 하이브리드 및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 역시 문제가 있습니다. 전기모터를 이용해 짧은 거리를 달릴 수 있지만 일정 속도 이상, 그리고 일정 거리 이상이 되면 엔진이 작동하게 되어 있고, 이때 식어 있는 엔진이 돌면서 냉간 시동 때와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자동차 회사들은 모르고 있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너무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다만 물리적으로 시동을 걸자마자 바로 엔진 온도가 상승하고, 정화장치 온도가 200도 이상으로 올라가게 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쉽지 않다는 게 문제입니다. 하지만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아직까지 이에 대한 엄격한 법적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인데요. 법이 없으니 자발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나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물론 일부 모델의 경우 금속 촉매를 이용해 보다 빨리 정화장치가 가동하도록 유도하고 있지만 비용 문제로 일반화되기에는 부담이 있고, 또 확실하게 해결을 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닙니다.


디차이트 보도에 따르면 BMW는 보온병 원리를 이용한 캡슐 시스템을 개발했습니다. 엔진 전체를 보온병처럼 만드는 것으로, 시동을 끄고 12시간이 지난 뒤에도 엔진 온도가 40도 정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기술이 냉간 시동으로 인한 배출가스 문제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 아니라 연비 효율성에 초점이 맞춰진 기술이라고 디차이트가 전했습니다.


BMW만 아니라 엔진의 온도 문제, 그리고 정화장치의 빠른 작동을 위한 기술적 도전은 곳곳에서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역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법적인 기준이 마련되지 않는 이상, 언제 이 냉간 시동으로 인한 배출가스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게 냉정한 현실입니다.


일상에서 신경 써야 할 2가지

아파트 단지 등, 사람이 거주하거나 생활하는 건물 가까이 있는 지상 주차장에서는 전면주차가 필요합니다. 조금 불편함은 있겠지만 오늘 내용처럼 엄청나게 내뿜는 배출가스의 위험성을 생각한다면 불편함을 감수하는,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내연기관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어쨌든 이 문제는 풀어야 할 숙제이고, 만약 법으로 보호를 받지 못한다면, 운전자 모두가 이런 노력을 통해 조금이라도 위험성을 낮춰야 합니다.

독일 자동차 관련 관공서 주차장의 표지판. 후면주차하지 말라고 되어 있다 / 사진=이완


두 번째는 시동을 걸 때 배기가스가 나오는 자동차 뒤쪽에 서 있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최대한 차에서 떨어져 있도록 하고, 운전자 또한 시동을 걸 때 뒤에 사람들이 서 있다면 떨어져 있거나 다른 쪽으로 옮기라고 알려주도록 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냉간 시동 시 발생하는 배출가스 문제를 관련 부서나 입법기관에서 관심을 두고 이를 막기 위한 구체적 고민을 전문가들과 함께 하루빨리 진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국민 보건, 안전보다 우선되는 건 없다는 그런 마음으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