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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오펠 배기가스 의혹이 진보 보수언론 싸움으로?

그간 몇 차례 전해드린 바 있지만 독일 자동차 기업들에 가장 두려운, 혹은 정말 귀찮은 존재를 하나 꼽으라 한다면 독일움벨트힐페(Deutsche Umwelthilfe, 이하 DUH)라는 친환경비영리단체가 아닐까 합니다. 1975년에 처음 설립된 이곳은 환경과 관련된 모든 부분을 연구 조사하며 환경을 해치는 정책이나 기업에 맞서는 등, 매우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활동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이 DUH가 독일 언론에 자주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데요. 그간 디젤은 물론 가솔린을 포함, 내연기관 자체를 없애고 새로운 구동시스템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해왔던 곳이었고, 이로 인해 자동차 제조사 등과 심한 대립을 보여왔습니다.


DUH 시위 모습 / 사진=Maximilian Geiss, DUH


모터쇼 현장 시위부터 오펠 조작 의혹 제기까지

DUH는 디젤 게이트가 터진 작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 개막일, 현장에서 눈에 띄는 반디젤 시위를 벌였습니다. 질소산화물이 제조사들이 이야기한 것보다 훨씬 많이 배출되는 등, 인간에게 해로운 배출가스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스위스 한 대학과 손잡고 몇몇 디젤 모델들에 대한 배출가스 실험을 했고, 이때 처음으로 오펠 자피라 모델이 유독 많은 배기가스를 내뿜는다며 폴크스바겐과 비슷한 조작을 의심하게 됩니다.

유로6 모델인 오펠 자피라에는 선택적 촉매 환원 장치(SCR)가 달려 있고, 이걸 통해 유로6 기준을 충족시켰다는 게 제조사의 주장이지만 DUH는 자체 조사를 통해 기준치의 2~4배, 특별한 주행 조건에서는 최대 17배까지 질소산화물이 배출되고 있다며 조작을 강하게 의심했습니다. 


오펠 자피라 테스트 장면 / 사진= DUH


공영방송과 진보언론의 가세

이처럼 오펠에 대한 의심과 별도로 DUH는 얼마 전 벤츠의 다임러 그룹을 고소하게 됩니다. 카탈로그에 나온 것과 달리 실제는 배출가스를 더 많이 배출하기 때문에 THE BEST OR NOTHING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죠. 이와 관련해 현재 다임러 측도 맞고소를 한 상태이고, 특히 DUH의 대표 개인까지 고소할 정도로 감정의 골이 깊어졌습니다.

이처럼 DUH의 움직임에 힘을 주는 일이 최근 연이어 일어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바로 독일의 대표적 주간지 슈피겔(Spiegel)의 가세였습니다. 슈피겔은 오펠이 폴크스바겐처럼 조작을 통해 배출가스 문제를 넘어가려 한다며 특집 기사를 통해 비판했죠. 독일 내에서 진보적 매체로 최고의 신뢰성을 자랑하는 슈피겔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오펠을 지목함으로써 이 논란은 더 커지고 말았습니다.


'디젤거짓말'이라는 제목으로 오펠을 비판한 슈피겔 / PDF 캡처

그리고 독일 제 1공영 방송인 아에르데 (ARD)의 한 축인 서부독일방송 베데아르(WDR)의 한 시사 프로그램에서도 오펠 문제를 심층 보도하기에 이릅니다. 공영방송과 진보 주간지, 그리고 친환경단체가 일제히 오펠의 조작 의심을 한 목소리로 비판하고 나서면서 오펠은 큰 궁지에 몰리게 됩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보수 언론들은 오펠 편에서 진보 매체들을 비판하기 시작합니다.


보수 언론들 방어에 나서다

토요타 기부금을 슬쩍 흘리는 언론

슈피겔의 기사가 터지며 촉발된 오펠에 대한 의심에 대해 먼저 반론에 나선 건 프랑크푸러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이하 FAZ)이었습니다. 일간지로 독일을 대표하는 보수 언론인 FAZ는 '디젤 증오'라는 제목을 통해 DUH에 대해 강한 어조로 비판했습니다. 기사는 '독일 산업의 자존심 자동차. 누가 이들을 무릎 꿇리려 하는가?'로 시작하는데요. 특히 다른 환경단체들과 DUH를 비교하며 자금 운용에 등에도 문제가 있다는 논조를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 기사가 나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역시 중도 보수 성향의 주간지 포커스가 DUH에 대한 비판 기사를 내놓게 되는데요. 한 발 더 나아가 토요타의 기부금을 연결 지으며 DUH 활동이 오해를 받을 수 있음을 비판하게 됩니다. 


FAZ와 포커스 로고 / 이미지=위키피디아

포커스는 기사를 통해, 정부와 연방자동차청이 제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해 DUH와 제조사들 사이에 대화가 불가능한 정도로 대립하게 만들었고 불필요한 논란만 키웠다며 정부의 대처를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토요타가 이 단체에 우리 돈으로 7~8천만 원 전후의 기부금을 매년 내는 점을 거론하며 사람들에게 은연중에 DUH 활동이 순수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느낌을 주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이미 토요타는 이 단체에 18년 전부터 기부를 해왔기 때문에 특별히 디젤 게이트 이후 의도를 가지고 접근한 것은 아니라고 포커스 스스로 밝혔습니다. 하지만 FAZ나 포커스 등, 유력 언론이 이처럼 언급을 한 것만으로도 많은 독일인은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언론에서 어떤 부분에 대해 언급하고 의혹 제기를 했다면, 일단 그 자체만으로 비판의 대상은 대중에게 부정적 이미지를 얻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DUH에 대한 두 보수 매체의 비판은 또 다른 논란이 될 수 있어 보입니다.


자동차 산업 보호 VS 국민 건강을 위한 당연한 활동

포커스는 또 DUH가 소송 등을 통해 개선과 예방이라는 비영리단체 본연의 임무보다는 소송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너무 취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견을 내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DUH는 어떤 형태의 수입이든 연구를 위해 사용되고 있다고 반박했는데요. 곧 자체적으로 30여 대의 디젤차를 모아 실주행 시 발생하는 배출가스 테스트를 할 예정이며, 여기에는 토요타의 디젤 모델도 포함시키겠다는 뜻을 포커스 측에 전달했습니다.

이렇듯 보수 매체와 진보 매체가 보이는 전혀 다른 논조는 오펠이 배기가스를 조작했는지 정부가 공식적으로 확인해주기 전까지는 한동안 계속 이어질 거로 보입니다. 하지만 DUH 측은 최근 자료를 내고, 정부가 이 문제를 확인할 의지를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며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는데요. 포커스는 정부의 발표에 따라 어느 한 쪽이 큰 상처를 입게 될 것이라며 중립적인 의견을 냈습니다.


공영방송 WRD 홈페이지 캡처 화면

독일 보수 언론은 자동차 산업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는 입장입니다. 자동차 업계 전체를 범죄 그룹으로 몰아가는 일부 진보 매체와 환경단체 행동이 지나치다는 게 그들의 의견이죠. 반대로 진보 매체나 환경단체 DUH는 오펠의 조작은 거의 확실하며, 이는 소비자와 국민을 위해서도 밝혀져야 하는 문제라고 주장합니다.

개인적으로 DUH의 활동 자체가 외부 압력으로 제약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하지만 너무 강하게만 나가다 보면 정도 이상의 부딪힘과 분쟁이 발생할 수 있고, 이런 이유로 정작 문제의 본질을 놓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강약 조절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고소장 남발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고요. 또 보수 매체가 들려주는 독일 산업의 근간인 자동차를 지키자는 목소리 역시 충분히 이해됩니다. 

그렇다고 구체적으로 나와 있는 의문을 산업 보호라는 명분을 내세워 일종의 물타기를 하려는 태도 또한 매체가 갖는 명성에 걸맞지 않아 보입니다. 자동차 산업 발전을 위해서라도 이 문제는 깨끗하게 털고 가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 독일은 오펠 문제와 DUH라는 단체를 놓고 진보와 보수 매체 사이의 갈등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언론의 모습이 과연 독일 국민들에겐 어떻게 비칠까요? 무엇이 정말 국민을 위한 목소리이고 행동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남의 나라 언론 이야기를 하는데 왜 이렇게 익숙한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