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시작과 함께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끈 소식이 있었습니다. 한국판 컨슈머리포트 '스마트컨슈머' 사이트 (smartconsumer.go.kr)가 오픈한 것인데요. 소비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제품 품질 및 가격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만들어진 소비자정보 포털사이트였습니다.
리콜 정보, 가격 정보, 거기에 피해주의보 등, 국가기관 여러 곳에 있는 제품 관련 정보를 한 곳으로 모았고, 그중에서 가장 큰 관심은 '비교공감'이라는 품질 비교 테스트 항목이었습니다. 1936년 설립된 미국 비영리 소비자단체 컨슈머리포트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제품의 품질을 직접 비교 평가해 그 내용을 공개하겠다는 것이 기본 취지였습니다.
제품에 대한 공정한 평가를 통해 소비자들의 선택을 돕기 위한 비교공감은 하지만 5년째 접어들고 있는 지금까지 기대에 못 미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많은 자동차 소비자들이 기대한 자동차나 자동차용품에 대한 품질 비교 정보가 턱없이 부족해 정말 이게 한국판 컨슈머리포트가 맞는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수준입니다.
컨슈머리포트 잡지 표지 / 사진=컨슈머리포트
미국 소비자들의 나침판 역할 컨슈머리포트
우리나라에 컨슈머리포트가 많이 알려진 부분은 아마도 자동차일 겁니다. '미국 컨슈머리포트가 선정한 최고의 자동차 브랜드' '컨슈머리포트가 뽑은 역대 최고 연비 자동차' '컨슈머리포트가 발표한 자동차 신뢰도 조사' 등, 자동차 부분에 대한 컨슈머리포트의 결과 발표는 제조사에겐 그 어느 기관의 평가보다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고 소비자들에겐 제품 선택의 나침판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80년째 이어져 오고 있는 컨슈머리포트의 명성과 신뢰에는 구독료와 회비, 그리고 후원금 등을 받으며 독립적으로 운영이 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자동차의 경우 제조사들이 컨슈머리포트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결과는 소개할 수는 있어도 그 구체적인 평가 내용에 대해서는 홍보자료로 이용하지 못하게 막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제조사와 컨슈머리포트 사이의 연관성을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에 철저하게 제조사들과 거리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 원칙은 자동차뿐만 아니라 생활가전이나 전기제품 부분 등, 모든 품질 비교 항목에서 동일하게 작동하는데요. 한국의 모 자동차 회사가 컨슈머리포트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마치 첩보영화의 한 장면과 같았던 이야기를 듣고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공개할 수 없는 점 이해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미국에서 나오는 여러 평가 중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게 컨슈머리포트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소비자 선택에 도움을 주는 기관은 미국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제가 살고 있는 독일에도 슈티프퉁 바렌테스트 (Stiftung Warentest)라는 품질 비교평가를 담당하는 독립 재단이 존재합니다. 1964년부터 각종 제품을 테스트해 그 내용을 발간하는 책자를 통해 상세히 전해주고 있는데요.
슈티프퉁 바렌테스트 책 표지 / 사진=test.de
독일, 전문지와 자동차클럽이 역할
다만 독일 슈티프퉁 바렌테스트가 미국의 컨슈머리포트와 다른 점이라면 자동차 부분에 대한 품질 조사나 비교 평가의 경우 자동차 전문지나 독일 자동차 클럽 아데아체(ADAC) 같은 곳에서 더 활발하고 있다는 점일 겁니다. 그리고 전문지나 아데아체의 자동차 품질 평가는 전문성을 발휘, 상상하기 어려운 테스트까지 진행하고, 결과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일 및 유럽의 많은 자동차 운전자에게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자동차의 모든 것을 비교 평가하는 아데아체는 유료회원만 1800만 명인 유럽 최대 자동차클럽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회원뿐 아니라 누구라도 비교 평가한 내용을 무료로 확인할 수 있도록 정보를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독일 언론들 역시 아데아체에서 실시하는 어린이 카시트 테스트 결과, 연비나 배출가스 측정 결과, 각종 소모품과 부품에 대한 품질 조사 내용을 전달하고 있기 때문에 그 영향력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자동차로 휴가를 떠날 때 어떤 고속도로의 어떤 휴게소 음식이 비싸고 맛이 없는지, 어느 유럽국가의 기름가격이 싼지, 또 어떤 브랜드의 직영 정비소 서비스가 좋고 나쁜지, 좋은 자동차 대리점과 그렇지 못한 곳이 어딘지, 추천할 만한 유료주차장과 비싼 주차장은 어딘지, 터널과 교량의 상태가 좋지 않은 곳은 어디인지, 자전거 헬멧은 어디 것이 더 안전한지 등, 우리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의 수십 가지 자동차 관련 평가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독일 자동차 전문지들도 역시 다양한 품질 조사를 진행하는데요. 가장 대표적인 게 1년에 두 차례 펼치는 타이어 평가입니다. 독일은 법적으로 겨울타이어를 장착하게 하기 전부터 이미 운전자들이 알아서 여름용 타이어와 겨울 타이어를 갈아 끼우고 있습니다. 또 아우토반에서 고속 주행도 일상적으로 하는 곳이기 때문에 타이어 정보는 특히 중요한데, 거의 모든 판매되는 타이어에 대한 테스트를 실시해 좋은 타이어를 고를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어린이 카시트 테스트 장면 / 사진=아데아체
어린이 카시트 테스트 장면 / 사진=아데아체
또 직접 자동차를 구매해 10만km 정도 달린 후 그 과정을 공개하는 내구테스트 역시 자랑할 만한 전문지들의 품질 조사 영역입니다. 또한 내비게이션은 물론 워셔액 등, 소소한 소품들까지 모두 체크하고 있으며, 배터리나 브레이크, 서스펜션 등, 전문적인 영역까지도 비교 테스트해서 그 결과를 공개합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자동차가 어떤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어떤 부분이 나쁜 평가를 받는지 어렵지 않게 정보를 찾을 수 있어 좋고, 엔진오일이나 냉각수를 채워야 할 때도 이런 곳들이 전해주는 품질 평가 내용을 십분 활용하고 있어 매우 유익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현실은 어떤가요?
차량용 응급키트 품질 조사 / 사진=아우토빌트
스마트컨슈머 5년간 자동차 관련 시험 단 3건
스마트컨슈머 사이트를 방문하면 카테고리 가장 처음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비교정보' 카테고리입니다. 그리고 다시 이 카테고리는 '비교공감'과 '일반비교정보'로 나뉘어 있는데요. 직접 시험하고 조사해서 그 제품의 장단점을 알려 구매를 돕는, 실제로 소비자들이 스마트컨슈머에서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비교공감' 부분입니다. 그런데 자동차의 경우 지난 5년 동안 단 세 번의 테스트만 있었을 뿐입니다.
2013년 11월에 실시한 블랙박스 품질 비교조사, 그리고 2014년 11월에 실시한 타이어 품질 비교조사, 마지막으로 2015년 2월에 실시한 자동차 에어컨 필터 품질 비교조사 등입니다. 미국이나 독일 등에서 나오는 자동차 관련 품질 비교 조사의 양과 비교할 때 부끄러운 수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나마 꾸준히 업데이트되는 '일반비교정보'의 경우 직접 품질 비교테스트를 한 내용이 아닌, 다른 기관의 조사 내용을 모아 소개하는 것이고, 이 역시 자동차와 관련된 것은 분량이 적을 뿐만 아니라 이미 언론을 통해 알고 있는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한국판 컨슈머리포트가 생긴다고 했을 때 다수의 소비자가 기대한 것은 직접 관심 있는 제품을 비교 테스트해 그 내용을 공개하는 것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너무나 빈약한 활동은 기대를 무색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헬멧 테스트 장면 / 사진=아데아체
정부 재정지원 및 독립적 활동 도와야
스마트컨슈머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만들고 한국소비자원이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거창하게 시작했지만 과연 이곳에 다양한 제품을 테스트할 수 있는 재정적 지원은 있는지, 또 전문성을 가진 인력이 충분히 활동하고 있는지 의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부가 소비자들에게 좋은 제품정보를 알리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제대로 재정적인 뒷받침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경영에는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않게 독립적 운영이 보장돼야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자동차 매체들의 상대적 영세성으로 선진국의 자동차 전문지들처럼 다양한 품질 비교 평가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스마트컨슈머가 역할을 해줘야 합니다.
자동차 2천만 대 시대, 세계 5위권 자동차 생산국가, 1년에 신차를 포함해 400만대 전후의 자동차 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나라에서, 그럼에도 자동차나 자동차 관련해 신뢰할 만한 제품 정보를 알려주는 곳이 없다는 거, 이게 정상적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말 국민을 위한,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는, 그리고 기업을 긴장하게 해고 품질 경쟁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고자 한다면, 이처럼 스마트컨슈머를 방치해선 안됩니다. 5년 동안 자동차 관련 품질 테스트 3건. 정말 부끄러운 우리의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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