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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제네시스 EQ900 무관심이 디젤 엔진 부재 때문?

2016 제네바모터쇼는 고급 차와 SUV라는 두 가지 키워드가 중심에 있었습니다. SUV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 번 아우디 Q2 소개와 함께 간략하게 의견을 말씀 드렸죠. 고급 차를 볼까요? 마세라티가 SUV 레반테(또는 르반테?)를 공개했고, 부가티가 시론을 선보였으며, 쾨니세그 레제라 등이 그 화려함을 뽐냈습니다. 늘, 언제나, 모터쇼는 이런 초호화 수퍼카들이 고급 요리처럼 쇼장을 빛내게 되죠.

이런 성찬들 속에 현대차 역시 전시 전부터 관심을 모았던 아이오닉과 플래그십 제네시스 EQ900 등을 공개, 존재감을 드러내려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한 언론의 보도를 보니 제네시스 EQ900가 기대만큼의 반응을 받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유럽에 당장 내놓을 차가 아니기 때문에 관심이 덜 할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었는데 기사 내용을 보면 호응을 얻지 못한 이유가 다른 데 있는 것 같았습니다.


사진=현대

동아일보에 따르면 제네시스 EQ900가 모터쇼에서 (기사 제목처럼) '찬밥' 신세였던 것은 디젤 라인업의 부재 탓이었습니다. 그렇게 기사를 쓴 근거는 두 가지였는데요. 우선 미국의 자동차 매체 카스쿠프의 분석이 한 가지 이유였습니다. 동아일보는 카스쿠프가 '유럽 소비자들은 고효율 차량을 선호하는데 제네시스 G90(EQ900의 수출명)는 디젤 라인업이 없어 관심 밖이었다'라고 지적했다고 전했죠.

또 하나는 동아일보 자체적인 판단이었습니다. 독일 고급차 시장은 95%가 디젤 엔진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 시장에서 디젤 엔진을 올리지 않은 플래그십을 선보이는 것은 시장 상황과 맞지 않다는, 그런 주장이었습니다. '라인업에 디젤이 없으니 관심도도 떨어진다'라고 본 것이죠. 그러면서 현대차 유럽법인 판매 부사장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했습니다. 제네시스가 디자인과 품질은 유럽과 맞지만 고급차 세그먼트에서 가솔린 파워트레인이 차지하는 부분은 크지 않다고 한 것이죠. 정말 그럴까요?


독일 플래그십 디젤 점유율

기사를 읽다 보니 정말 이런 주장이 근거가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유럽이 디젤 선호가 높은 건 맞습니다. 하지만 현대 관계자 발언처럼 가솔린 파워트레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정말 적은지 직접 확인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참고로 유럽에서 가장 자동차 판매량이 많은 나라는 독일과 영국으로, 독일은 1년에 신차 판매량이 약 3백만 대가 조금 넘고, 영국은 3백만 대에서 20~30만 대 정도 빠지는 수준을 보입니다. 

영국의 경우 정책적으로 디젤을 지지하지 않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디젤 점유율이 유럽 다른 국가들에 비해 낮습니다. 대신 독일은 고급 차 소비가 높으면서도 디젤 선호도 또한 유럽연합 평균 수준이죠. 마침 기사에서도 구체적으로 독일을 거론해 저는 속으로 '다행이다'라고 생각하고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쉽지가 않더군요. 

2015년 한 해 독일에서 판매된 신차의 약 48% 정도가 디젤인 것까지는 쉽게 확인이 됐는데, 플래그십 모델들의 디젤 점유율만을 따로 확인하기가 의외로 어려웠던 것입니다. 좀 고생을 하던 끝에 2015년 독일 내 플래그십 판매량과 디젤 판매량을 확인할 수 있었고, 바로 비율 계산에 들어갔습니다. 결과는 다음과 같았는데요. 준대형(E세그먼트)급을 제외한 각 브랜드의 플래그십만 따로 모아 계산했으니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2015 독일 내 주요 브랜드별 플래그십 판매량 (괄호 안은 디젤 판매량 및 디젤 점유율)

아우디 A8, S8 : 총 3,593대 판매 (디젤 2,885대, 디젤 점유율 80%)

BMW 7시리즈 : 총 2,595대 판매 (디젤 1,868대, 점유율 72%)

벤틀리 : 총 502대 판매 (디젤 0대 )

재규어 XJ : 총 221대 판매 (디젤 196대, 점유율 88.6%)

렉서스 LS : 총 23대 (디젤 0대)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 : 총 175대 판매 (디젤 96대, 점유율 54.8%)

메르세데스 벤츠 S클래스 : 총 7,312대 판매 (디젤 3,384대, 점유율 46%)

포르쉐 파나메라 : 총 1,751대 판매 (디젤 749대, 점유율 42.7%)

롤스로이스 : 총 82대 (디젤 0대)

폴크스바겐 페이튼 : 총 1,438대 판매 (디젤 1,223대, 점유율 85%)

테슬라 모델 S : 총 1,582대 판매 

총 판매량 : 19,274대

디젤 판매량 : 10,405대 

디젤 점유율 : 53.9%                                                                                                   

자료 :KBA

일단 각 브랜드의 가장 상위급 모델들, 그러니까 제네시스 EQ900와 같은 세그먼트이거나 그 보다 상위에 있는 럭셔리 모델들만을 따로 떼 놓고 보니 디젤의 점유율은 절반을 조금 넘는 상황이었습니다. 95%가 디젤이라는 주장과는 차이가 많이 나는 결과죠. 비교적 디젤 점유율이 높은 모델은 디젤 엔진 선택이 두 가지 이상 가능한 모델일 경우이고, 반대로 디젤 점유율이 낮거나 없는 경우는 라인업에 디젤 엔진이 하나이거나 아예 없는 경우들입니다. 

테슬라의 경우 전기차라서 자료에서 빼는 것도 생각했지만 어쨌든 이 역시 소비자들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전체 판매량에 포함을 시켜 봤습니다. (테슬라를 뺀 경우에도 디젤 점유율은 58% 수준) 그러니까, 디젤 라인업이 없어서, 디젤만을 선호하는 기호에 맞출 수 없기 때문에 관심이 덜했다는 주장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 하겠습니다. 


진짜 무관심 이유는 뭘까?

사진=현대

정말 동아일보 기사에서처럼 모터쇼 현장에서 EQ900가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다면, 그것은 디젤 엔진의 부재에서만 답을 찾을 순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전에 이미 언급을 한 적 있습니다만, 소비에 있어 보수적인 유럽인들은 브랜드가 가진 역사와 전통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유럽의 럭셔리 모델들은 대체로 100년 전후의 역사를 가진 제조사들이 만든 것들이죠.

심지어 역사가 짧다고 생각하는 아우디조차 백년이 넘는 브랜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월요일(7일) 브랜드 탄생 100년이 되는 BMW와 영국산 럭셔리 브랜드들 모두가 자동차 역사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자신들의 이름을 다져왔습니다. 이들이 내놓는 자동차를 구매하는 것은 이곳 사람들에겐 그 브랜드의 전통을 소비하는 것이죠. 거기다 디자인에도 매우 민감합니다. 

EQ,900가 나쁘지 않은 스타일을 보인다고 해도 자신만의 색깔을 뚜렷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것은 어필하는 동력을 잃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장을 주도하거나 선점하는 기술혁신 이미지도 아직은 부족할 수밖에 없고, 과감한 마케팅을 펼치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디젤 엔진의 유무는 무관심의 결정적 이유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침 며칠 전 독일 언론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너에서 제네시스 EQ900을 다룬 기사가 있어 그 끝 부분만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유럽 시장에 제네시스 G90 판매 계획은 아직 없다. 미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와 중동 등에 구체적 수출 계획을 가지고 있다. 독일 등 유럽에서는 가격보다 (이 급에서는) 프레스티지(가치, 명성)가 훨씬 더 중요하다. 이미 2014년 여름부터 제네시스 (G80) 세단이 65,500유로라는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지만 판매량은 신통치 않다. 이처럼 이미 제네시스 G80으로 (현대는)아픈 경험을 했고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확인한 바 있다. 독일연방자동차청 자료에는 제네시스의 정확한 판매대수가 드러나 있지 않다.'

디젤 엔진이 없다는 건 유럽에서 판매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조건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부진과 무관심을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훨씬 다양한 이유들이 숨어 있다는 것을 책임 있는 언론들이라면 설명해줄 수 있어야겠죠. 현대 또한 디젤 라인업 부재를 이유로 제네시스의 유럽 시장에서의 저조한 성적과  마케팅에서의 소극적인 태도를 덮으려 해서도 안될 것입니다. 정말 승부를 볼 마음이 있다면, S클래스 보다 낫다 정말 자신한다면, 유럽에 과감히 뛰어들고 정면 승부를 펼쳐 보는 건 어떨까요. 약간의 용기, 그게 지금으로선 제네시스 발전을 위해 더 좋은 태도가 될 것입니다.


사진=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