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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Auto 이야기

자동변속기가 대세? 수동은 죽지 않는다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오토매틱 차량을 보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죠. 여전히 자동변속기 차량 보다 수동변속기 차량이 더 많은 유럽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특히 운전하길 좋아하는 독일인들의 경우 수동이 아닌 자동변속기 차량을 타는 걸 창피한 일로 여기기도 했습니다. 운전 경력이 오래 된 독일인들에게서 이런 성향은 더 흔하게 나타났습니다.

심지어 오토 차량 운전하는 이들은 수동변속기로 면허를 따지 못한 '운전의 루저' 들이라고 놀리기까지 했습니다. 운전은 다이나믹해야 한다는 게 그 당시 많은 독일인들이 가진 생각이었고, 그런 분위기에서 자동변속기 차량을 선택한다는 건, 말 그대로 눈치 보이는 일이 됐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점점 자동변속기 차량들이 유럽에서도 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크고 좋은 차들부터 기름진 자동변속기 장착이 많아졌습니다. 특히 도심 생활이 늘어가면서 차량 정체 구간이 급격히 늘어갔고, 차량 증가까지 이어져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경우가 잦아졌습니다. 클러치 밟고 2단, 3단 변속하는 게 이런 막히는 구간에선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거기다 기술적으로 자동변속기의 성능은 눈부시게 발전해갔습니다.

부드러운 변속과 적절한 변속 타이밍은 안락함과 함께 연비효율까지 높여갔습니다. 높은 변속기 기술력은 스포츠 드라이빙을 주로 하는 자동차에서까지 수동이 아닌 자동 변속기를 장착하게 만들었습니다. 수동 기반의 듀얼클러치 변속기의 등장은 절대적인 수동변속기 찬양론자들의 변절(?)에 명분이 되기도 했죠. 자동변속기 차량을 몰면 루저 드라이버라 놀리던 이들이 어느 새 자동 변속기 차량을 운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포르쉐 PDK / 사진=포르쉐


수동, 사라지게 되는 걸까?

몇 년 전, 독일의 한 자동차 전문가는 수동변속기 천국이라 할 수 있는 유럽에서 빠르게 자동변속기 차량이 늘어가고 있다면서 이런 변화는 운전자들의 생활 스타일과 변속기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계속 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특히 자동변속기에 최적화된 전기차나 수소연료전지차의 확대와 자동변속기 장착률이 높은 SUV의 성장세 등이 이런 흐름에 속도를 더할 것이라고 내다 봤습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았는데요. 적어도 향후 10년 동안은 유럽 등 수동변속기 차량이 강세인 지역에서는 큰 틀의 변화는 없을 것이란 내용이었습니다. 여전히 콤팩트(C세그먼트) 급 이하 차량의 비중이 높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경제성을 중시하는 실속파들에게 수동변속기만 한 것이 없다는 주장 등이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이런 반론에 근거가 될 만한 재미 있는 자료 하나가 공개됐습니다. 얼마 전 소개해드린 바 있는 세계 최대 회계법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이하 PwC)라는 곳에서 나온 것으로, 각 대륙별 신차 변속기 종류별 규모, 그리고 2020년 변속기 종류별 사용량 예측 자료였습니다. 


수동변속기, 의외로 많네

우선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 등으로 대표되는 북미대륙의 경우 월등하게 신차 등록 시 자동변속기의 사용량이 많았고, 2020년에는 자동과 수동변속기의 사용량 차이가 더 벌어질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자동변속기 / 수동변속기 / 무단(CVT) 변속기 / 듀얼 클러치 변속기 차량 숫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북미대륙 2015년 신차 기준

자동변속기 : 12,529,389대

수동변속기 : 1,263,545대

무단변속기 : 2,957,538대

듀얼 클러치 : 624,786대


북미대륙 2020년 예상치

자동변속기 : 13,299,222대

수동변속기 : 989,184대

무단변속기 : 3,855,012대

듀얼 클러치 : 1,593,358대

무단변속기와 듀얼 클러치 미션을 자동변속기로 넣어 크게 분류하면 사실상 북미에서 수동변속기는 더욱 위축이 되는 상황이 됩니다. 여기에 전기차용 변속기와 흔히 반자동이라고도 부르는 자동화 수동변속기까지 포함하면 유일하게 북미지역에서 감소세를 보이는 게 수동변속기가 됩니다. 그렇다면 나란히 붙어 있는 남미대륙은 어떨까요?


남미대륙 2015년 신차 기준

자동변속기 : 228,620대

수동변속기 : 2,701,554대

무단변속기 : 39,487대

듀얼 클러치 : 80,468대


남미대륙 2020년 예상치

자동변속기 : 391,957대

수동변속기 : 3,909,414대

무단변속기 : 258,232대

듀얼 클러치 : 209,301대

남미는 북미와는 달리 수동변속기 비중이 무척 높았는데요. 이런 현상은 유럽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습니다. 유럽연합 28개국의 변속기 종류별 자동차 수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유럽연합 2015년 신차 기준

자동변속기 : 3,120,346대

수동변속기 : 11,925,328대

무단변속기 : 322,518대

듀얼클러치 : 1,996,910대


유럽연합 2020년 예상치

자동변속기 : 3,888,791대

수동변속기 : 11,659,577대

무단변속기 : 346,092대

듀얼 클러치 : 2,716,483대

약간 수동변속기 차량의 수가 주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큰 차이는 없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특히 운전의 재미라는 관점에서 보면 듀얼 클러치 변속기의 증가세와 수동변속기의 굳건함이 눈에 띕니다. 북미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죠? 뿐만 아니라 수동변속기가 그리 쉽게 유럽대륙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시아는 어떨까요? 우리나라와 일본, 그리고 호주를 하나로 묶은 자료와 중국을 비롯한 나머지 아시아 국가를 묶은 자료로 구분이 됐는데, 한 번 보시죠.


한국, 일본, 호주 2015년 신차 기준

자동변속기 : 4,637,472대

수동변속기 : 2,873,485대

무단변속기 : 4,988,271대

듀얼 클러치 : 386,840대


한국, 일본, 호주 2020년 예상치

자동변속기 : 4,363,449대

수동변속기 : 2,271,075대

무단변속기 : 5,190,570대

듀얼 클러치 : 462,940대

3개국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역시 무단변속기 장착 차량이 많다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또 전체적으로 변속기 변화의 폭도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는 것도 세 나라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수동 비율이 높긴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승용차의 95% 정도가 자동변속기 차량이라고 하니 일본과 호주에서 수동변속기가 생각 이상으로 많이 사용되는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중국 및 아시아 2015년 신차 기준

자동변속기 : 8,059,827대

수동변속기 : 17,622,221대

무단변속기 : 2,811,690대

듀얼 클러치 : 2,068,375대


중국 및 아시아 2020년 예상치

자동변속기 : 10,474,633대

수동변속기 : 22,120,037대

무단변속기 : 5,219,100대

듀얼 클러치 : 3,879,608대

중국과 인도 등 아시아 전체로 보면 역시 수동 비율이 자동보다 높은 걸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자동차의 판매량이 늘면서 변속기 역시 종류별로 골고루 높은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다루진 않았지만 러시아를 포함한 동유럽의 경우 수동변속기의 비중은 80% 수준에 이르고 있습니다. 

자동변속기 비중이 절대적인 우리나라 운전 환경에서만 놓고 이야기를 한다면 수동변속기는 사라져가는 과거의 것이 틀림 없습니다. 하지만 지구촌 전체를 놓고 보면 여전히 수동변속기는 대세입니다. 다만 이런 지역별 차이는 맞다 틀리다의 문제가 아닌, 그 나라, 그 지역의 특수한 운전문화, 운전 환경에 따른 선택으로 봐야 합니다.

어쨌든 유럽 시장에서 수동변속기는 여전히 많은 선택을 받고 있으며 이런 경향은 적어도 5년, 아니 그 이상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런 수요가 있는 한, 자동변속기 못지 않게 수동변속기의 기술도 계속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요즘 수동은 정말 좋게 나옵니다) 수동변속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무리 우리나라에서 자동변속기가 대세라 해도, 적어도 운전자가 수동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좀 더  만들어줘야 하지 않나 하는 아쉬움으로 마무리를 하게 되는군요. 


결론은!


 "수동,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사진=아우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