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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자동차 세상/독일의 자동차 문화 엿보기

제네시스 유럽에서 성공하려면 "용기가 필요해"

현대가 자사 고급 브랜드를 제네시스로 결정한 후 가장 크고 고급스러운 모델인 EQ900을 선보였습니다. 현대차 임원들은 이 차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독일 프리미엄 3사의 S클래스, 7시리즈, 그리고 A8 외에는 어떤 것과도 비교하지 않았다며 상품성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치기까지 했는데요. 충분히 독일 프리미엄 기함들과 경쟁이 가능하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현대의 자신감에 비춰보면 미국과 한국 시장은 물론 보수적이랄 수 있는 유럽에서도 승부가 충분히 가능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독일 자동차 전문가들의 생각은 어떨까요? 


얼마 전 독일 일간지 디벨트는 현대 제네시스를 비롯한 아시아 럭셔리 브랜드의 유럽 시장에서 현재 상황과 전망을 담은 장문의 기사 한 편을 실었습니다. 물론 초점은 제네시스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디벨트는 우선 EQ900(수출명 G90)의 경우 미국 시장을 우선 겨냥한 고급 차라고 설명하며 북미에서 현대의 성장 과정을 간략하게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30년 전에 일본 자동차 회사들이 했던 것처럼 현대 또한 고급 브랜드를 만들어 경쟁하려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토요타의 고급 브랜드 렉서스를 하나의 예로 들었는데요. 미국에서는 렉서스가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유럽에서는 상황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EQ900 / 사진=제네시스 홈페이지


미국인들의 실용적 선택이 현대에겐 도움

전통적으로 미국인들은 실용적인 선택을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브랜드가 무엇인가 보다는 얼마나 내구성 있고 저렴한지, 또 얼마나 안락한지 등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죠. 이런 미국 시장의 특성에 맞게끔 렉서스는 조용하고 안락하며, 또 내구성 높으면서도 가격은 독일 차들의 60% 수준인 모델로 승부를 펼쳤고 성공을 거뒀습니다. 디벨트 역시 이런 시장의 특성에 맞게 현대 또한 EQ900을 고객 만족도 (혹은 신뢰도)와 안락함에 초점을 맞췄다고 했습니다. 제가 현대차 관계자로부터 들은 얘기 또한 비슷했는데요. 자신들처럼 후발 주자의 경우 브랜드 장벽이 높지 않은 미국 시장은 상대적으로 유럽 보다 경쟁을 펼치기 수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미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잘 반영한 렉서스였지만 유럽에서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판매량에서 별 차이가 없고, 좀처럼 성장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디벨트와 인터뷰를 가진 자동차 매니지먼트의 감독 슈테판 브라첼에 따르면, 1995년 독일에서 렉서스가 총 2,172대가 팔렸는데 올해 현재까지 1,700대 미만이 판매되었습니다. 그나마 이 수치도 작년 대비해 27.4%가 늘어난 것이라는데요. 재규어가 독일에서 같은 기간 4천대 가량 팔린 것을 생각하면 더 많은 모델을 갖고 있는 렉서스가 고전 중인 건 분명해 보입니다.


아예 혼다 아큐라는 유럽에서 판매가 이뤄지지 않고 있고 닛산 인피니티가 유럽 소비자와 만나기 시작한 기간도 얼마 되지 않아 판매량에서 렉서스보다도 한참 뒤처지는 실적을 보이고 있습니다. 궁금해서 유럽연합 내 올 11월까지 프리미엄급 브랜드의 판매량이 어느 정도나 되나 한 번 찾아 봤는데요. 1위는 아우디로 총 689,819대가 판매됐고 그 뒤를 이어 메르세데스 벤츠가 총 650,953대, BMW가 648,480대를 팔았습니다. 볼보가 235,666대로 뒤를 이었고 재규어가 35,729대, 그리고 렉서스가 33,717대였습니다. 시트로엥에서 분류된 고급 브랜드 DS(66,945대)와 이태리 알파 로메오(51,284대)까지 포함하면 순위는 더 밀려나게 됩니다. 


렉서스의 고전은 제네시스에게도 부담

EQ900 시승에서도 렉서스와 비슷한 비적

미국에서 고급 브랜드들 중 판매량 최고 수준(그나마 2011년 이후로는 BMW와 벤츠에 뒤진 상황)이었던 렉서스이지만 유럽에선 이렇듯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디벨트는 이런 부진의 이유로, 오래 전부터 유럽 전역에서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강력하게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점, 그리고 안락함과 저렴한 가격만으로는 유럽 명품소비족 취향을 만족 시키기 어렵다는 점을 이야기했습니다. 물론 딜러망과 A/S 등에서도 유럽 본토박이들과 경쟁이 쉽지 않다는 점도 생각해 볼 부분입니다. 그리고 이런 렉서스의 어려움은 현대 제네시스 EQ900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공통된 문제로 보입니다.


디벨트는 V6 3.8리터급 EQ900을 시승해 본 전문가의 의견을 간단히 소개했는데요. 65,000유로라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각 종 첨단 장치들이 가득했고 무척 안락했으며 넓은 공간을 칭찬했습니다. 다만 핸들링이 만족스럽지 못했고 자동변속기 역시 기대만큼은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또 제동 시 힘이 부족했고 트렁크가 너무 작아 아쉬웠으며 회전반경이 경쟁 차들에 비해 다소 컸다고 평했습니다. 이 평가대로라면 전체적으로 유럽 운전자들이 좋아할 만한 성능과 구성은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래서 그런 걸까요? 미국과 한국, 중국과 중동 등에서 출시를 계획한 현대는 아직 EQ900의 유럽 출시일정을 대외적으로 발표하지 않고 있습니다.


"독창성은 용기가 필요하다"

디벨트는 이 외에도 디자인에 대해 비중 있게 다뤘습니다. 특히 EQ900에 대해 '그릴은 아우디와 비슷하고 측면 하단부 등은 7시리즈, 뒤쪽은 S클래스 등의 이미지가 믹스된 거 같다' 라고 했습니다. 로고 역시 애스턴 마틴을 떠올린다고 덧붙였죠. 이태리 출신의 파올로 툼미넬리 자동차 디자인 교수는 새로 스카웃 된 벨기에 출신의 루크 동커볼케는 람보르기니나 세아트에서 굉장히 공격적인 디자인을 한 것으로 유명한데, 이미 방향성이 어느 정도 잡힌  제네시스 브랜드의 경우 자기 취향대로 디자인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습니다. 


페터 슈라이어 현대차 사장은 "새로운 이미지, 오리지널의 느낌의 디자인을 내놓아야 한다"라고 했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툼미넬리 교수는 "표면처리나 디테일 등은 S클래스 쿠페 수준으로볼 수 있는데 벤틀리 뒤태, 애스턴 마틴 로고 등, 유럽 최고 수준의 것들을 (모아) 빨아들이는 것 같다." 라며 다소 모호한 표현으로 제네시스 디자인을 비판했습니다. 전체적으로 디벨트는 디자인에서 제네시스가 자기의 색깔, 존재감이 부족하다는 것을 이야기한 것인데, 특히 툼미넬리 교수는 "하나밖에 없는 스페셜 원'이 되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다."라며 이 점에서 현대가 용기가 부족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로고들(맨 위에서부터 벤틀리, 미니, 제네시스, 모건, 애스턴마틴 순)/ 사진=제조사들

 

"진짜 프리미엄 되려면 유럽에서 성공해야"

디벨트는 앞에서 소개한 것처럼 차의 성격과 디자인 등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제네시스의 유럽 내 안착이 쉽지만은 않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렇다면 유럽시장 그냥 포기해 버려야 하는 걸까요? 이에 대해 디벨트에 실린 렉서스 독일 법인 임원의 이야기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렉서스 독일지사에 근무하는 울리히 젤처 씨는 "우리 차가 정말 좋다는 걸 증명하려면 프리미엄 자동차에게 가장 중요한 시장인 유럽에서 성공해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시장이 어렵다고 피한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는데, 결국 '뛰어난 성능과 자신만의 존재감을 가지고 과감하게 도전해야 유럽에서 제네시스가 성공할 수 있다는 걸로 기사 내용을 정리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독일 내 유명한 자동차 전문가 페르디난트 두덴회퍼 교수가 디벨트와의 인터뷰에서 한  발언을 소개해드리는 것으로 오늘 글을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유럽에서 프리미엄 브랜드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재규어처럼 역사가 깊든가, 아니면 테슬라처럼 기술에서 남과 다른 차별성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제네시스에게)필요한 것은 감탄할 만한 강력한 무엇(인상)이다."